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수해나 지진, 화산 폭발과 같은 재해에서 제 몸뚱이 외에 건진 것이 없는 자들이 하늘을 원망하며 울부짖는다. 나시네도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비록 그 원인이 자연 재해는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인재(人災)였다.
그들은 말한다. 분명 누군가가 죄를 지었기에 신이 벌을 내린 것이라 이를 설명한다. 나시네는 생각했다. 자신이 더 일찍 각성했어야 했다고. 각성을 일찍 할 수 없었더라면 최소한 아버지와 오빠가 갈라지기 전에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보았어야 했다고. 마냥 사랑받는 막내의 위치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었다고.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았으면 그 순간의 평화에 취해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다며, 그래서 재앙이 벌어졌다 책망한다.
바닥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이 보다 더한 암흑은 없을 것이며 이 보다 더 낮은 곳은 없을거라 믿었었다. 당연하게 여겼던 따뜻한 보호자의 품도, 안온한 집도, 침대도, 옷도, 방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순간이 꿈만 같았던 탓에 오히려 현실이 악몽이 되고 모든게 없어지는 순간 도망치고자 만들어낸 환상이 현실같았다.
다행히 천운이 닿아 자신의 인도자를 만났다. 아직은 자신이 용서받을 자격이 있다는 듯 그 존재는 자신을 악몽에서 구해냈다. 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런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좋은 새로운 가족을 만났고 다시 그녀는 그 곳에 안주했다. 다시는 잃지 않을거라 소중하게 지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환상은 환상이라는 듯 악몽은 나시네의 환각을 부수고 무너뜨렸다.
무너지고 또 무너져버린 인간의 마음은 거듭된 재앙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뭔가를 놓쳐서 내가 어리게 굴어서 내가 내가 내가!
"신께서는..."
이 자리에 존재하는 하야시시타 나시네는 입을 열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볼가에 흐르는 온기가 느껴졌고 언제나 차분했던 목소리는 희미한 떨림을 담았다.
세상을 원망했다. 어째서 인간은 이리도 어리석고 잔악하단 말인가. 왜 똑같은 원죄를 반복하고도 깨닫지 못하며 재앙을 부르는가. 자신을 원망했다. 어째서 하야시시타 나시네는 가족하게 한없이 의지하기만 했는가. 왜 좀 더 미더운 딸이 되지 못했는가.
"엄격한 훈육자보다..."
어쩌면 자신은 길을 잃은 자신을 책망하다 못해 본인 스스로가 자신을 옥죄였을지도 모른다고. 실상 언제나 그녀의 신은 하야시시타 나시네가
"인간이 스스로 일어서기를 바라며 이를 인도하시는..."
악몽을 두려워하며 어른을 찾는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려주시는 자상한 인도자이십니다."
스스로 일어서서 길을 결정할 수 있을거라 믿고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언제나 믿어주고 있었다.
#"저희가 실수하더라도, 넘어지더라도 이를 지켜봐주시며 다시 일어나기를 기다려주시는 목자이십니다." 어느새 내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던 것 같다.
>>806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몸을 쓰는 이들의 축제는 뜨겁고, 그렇기 때문에 더 접근적이라고요. 기사들의 재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기사단의 문양과 깃발, 이곳을 기점으로 명성을 높이고 싶은 야망을 가진 방랑기사들의 모습. 축제를 노리고 물건을 팔기 위해 판을 벌린 사람들의 모습 등. 다양한 소란들로 시끄럽게 펼쳐진 채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던 시윤은, 멀리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에 천천히 고개를 돌립니다. 아니, 그 길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뚜벅, 뚜벅, 단지 가벼운 걸음걸이에도 땅울림이 전해집니다. 두 팔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풀들이 자라나고, 그 머리에는 각진 조각상이 어색히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아인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인상입니다. 단지 살결이 바위로 이뤄진 인간일 뿐.
" ...... 음! " " 필라메데스 경께서는 먼 곳을 찾아온 기사들에게 반갑다고 말씀하십니다. " " 하지 마라. " " 축제는 즐겨 마땅한 것이나, 분명 최고의 기사를 뽑는 자리이니만큼 각자의 분쟁이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테니. 가능하면 성숙한 태도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시는군요. " " 그렇게. " " 이번 축제는 공정하게 이뤄질 예정이며, 그에 대해 문의할 것이 있다면 본인을 찾아오라고 하십니다. 자신은 공원에 있는 야영지에서 쉬고 있을 예정이라고 하시니. 누구라도 물음을 구해도 좋다고 하시는군요. " " 이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