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최대 12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진행 때에는 #을 달고 써주시면 됩니다. 진행레스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색깔을 입히거나, 쉐도우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도 모두 오케이입니다. 스레주가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쁘게 꾸며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레주도 무협 잘 모릅니다...부담가지지 말고 츄라이츄라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적용하며, 이에 기속됩니다.
숫돌에 대충 갈렸다 한들 육중한 도와 함께 산 지 몇 년이 되었는가? 두어 번만 갈아도 고기만을 썰지 않겠다는 듯 선득하게 빛을 발하는 요물이다. 이 정도면 좋다. 투박한 칼을 한구석에 내려둔다 한들 재하의 곁에서 멀게 있지는 아니하였다. 당신을 훑는 눈길은 느긋하고, 취기에 절어있다 한들 저 사람 취했구먼, 생각하는 것은 이미 표정에 다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예기치 못한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눈썹 또한 까딱이는 것이 영 제 감정 숨기는 것은 못 하는 사람인 듯싶다.
"어찌 그런 표정으로 봐. 요괴인 줄 알았나?"
흰머리에 색이 다른 눈이니 그럴 법도 하겠다마는, 들려오는 대답은 또 의외인지라 재하 대충 턱을 괴며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그 이름으로 안 불린지 좀 됐는데. 입 싼 녀석들이 또 있단 말이야… 그런데, 교국?"
반응 보니 고기 사서 바로 돌아갈 사람은 아니겠구나. 재하는 구석에 아무렇게 둔 의자를 발로 슥 끌어와 앉았다. 한쪽 다리를 무릎 위로 올리고, 턱을 괴는 모습 너머로 당신을 훑는 눈동자가 날카롭다. 사냥감인지, 아니면 같은 포식자인지 훑듯 한 번 위아래로 가늠했다.
"그쪽, 하오문도요?"
툭 던지는 질문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소속이 어디냐, 무림인이 내 이름을 왜 아느냐, 교국 얘기가 왜 나오냐……. 앞발을 내디디는 맹수처럼 느긋하게 손 뻗는다. 도마 위가 아닌, 바로 앞 탁자 위 투박하게 썰린 고기 조각 하나를 입에 툭 던져 넣으며 재하는 나지막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분명 어떤 정보를 물어와도 같이 일은 안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니면 정보 사와서 속 긁어보려는 놈팽이인가?"
이제 보니 목소리 또한 다르다. 재하의 목소리가 나긋하다면 이것은 나긋하지만 그 높낮이가 달랐다. 어딘가 초연하던 목소리와 달리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서려있었으니.
"뭐, 맞든 아니든 싸우면 나야 좋으니 상관은 없지만. 그쪽, 교국 얘기가 왜 나왔는지 말이나 해보쇼. 내가 못 배워서 사람 낯짝 기억하는 재주는 없지만 그쪽 같은 무림인은 기억 못 할 리가 없어서 말이야."
게 누구요? 재하 길고 가늘게 미소 지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간교한 미소와 슬쩍 보이는 송곳니가 거대한 고양잇과 맹수의 느긋함을 빼닮아있었다.
취기에서 깨어난 야견은 눈앞의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과 표정을 찬찬히 살피더니 꽤나 빠르게 결론을 내린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재하도령은 솔직히 웃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있는 근간은 쉽사리 표정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굳이 말한다면 그래,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가 있다면 저러지 않을까. 오히려 저치가 말하는데로 요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납득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오문? 거 고기는 잘 보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보는 눈은 더 키우셔야겠수다. 이렇게 곱상한 거지가 어디 있겠소?”
야견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낮춰 또 다른 재하도령과 눈을 맞춘다. 턱을 괴고 자신을 살피는 날카로운 눈. 마치 설표가 사냥감을 보고 침을 고는 듯한 예리한 송곳니. 무언가 수가 틀린다면 도축되어 입가심거리가 되는 것은 야견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기세다. 그러나, 야견은 오히려 이런 살벌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고는 농을 섞어 대꾸한다. 마치 먹잇감 냄새를 맡고 그르렁거리는 늑대를 닮아있는 표정이다.
“간단하지만 별스러운 이야기야. 교국에서 그쪽과 같은 이름과 얼굴을 한 높으신 나리를 본 적이 있거든. 이름이 같다면야 그럴수도 있겠다며 넘어가겠는데, 눈 색까지 같으니 정말로 둔갑한 요괴인가했지.”
야견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기를 써는 탁자 위에 팔을 올려둔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편히 자세나 잡고자 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편한걸로 치면야 싸우는 쪽이 몇배는 좋다만, 싸우는 것 만으로는 눈앞에 있는 이 불가해한 상황의 전모를 깨닫기는 어려울테니까.
“그러고보니 남 이름을 멋대로 불렀으니 내 이름도 까는게 예의겠지? 야견이요. 일단은 파계회 중놈.”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속내로 하나 둘 가늠해 본다. 내가 아는 재하 도령? 푸줏간 운영하는 평범한 인간에게 도령이란 말이 왜 나오는지, 생판 초면인 사람이 뭘 아는지. 단순히 머리 돌아버린 광인인가? 하오문도에게 어쭙잖은 정보 주워듣고 호기롭게 싸움이라도 붙어보려 왔다기엔 지나치게 무르지 않나. 고기 한 점 더 집어 들까 생각했을 적, 재하는 눈을 빤히 마주하다 낄낄 웃었다. 날카로운 웃음이었다.
"눈짓만 해도 아낙들 절로 후리는 천한 놈도 있는데 곱상한 하오문도가 설마 없겠나 생각했지, 난."
마음에 들었다. 눈치도 빠르고, 술도 빠르게 깬 것 같고. 숲에서 간혹 마주하는 늑대들이 그리 영민하던데 딱 그쪽이다. 저거, 안 그런 듯 살다가 나중에 거슬리는 건 목 물어버릴 놈이구먼. 아직 자신을 안다는 사실이 거슬리지만 당장 고이 모셔둔 칼 쥐어 저기 있는 고깃덩이랑 똑같이 만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의자에 등을 기댄 재하는 한쪽 입술을 픽 올렸다.
"교국에서 나랑 같은 얼굴에 이름 가진 높은 놈이 있다고? 하하! 그것참 살면서 들은 소리 중에 가장 재밌는 농담이구만, 거 자리 눌러 꿰찬 놈이 요괴 아니겠나? 교국이 괜히 마교라 불리는 것이 아니듯, 그쪽엔 요사스러운 것들 많다고 들었는데."
재하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눈 슬쩍 굴리며 도마 위에 있는 고깃덩이를 보았다. "……생각해 보니 짜증 나는데. 그 *같은 곳에서 버틴 것 같잖아." 작은 중얼거림이 음산하다. 교국에서 자신을 빼닮은 녀석이 있다니, 비겁한 녀석이다. 그리고 긴 손가락 쭉 펴서 한곳을 가리킨다. 의자 하나가 구석에서 얌전히 자리하고 있었으니, 가져와서 앉으라는 듯하다.
"야견이라! 이름 한 번 끝내주는군. 파계회면 거 고기 먹는 땡중이라 할 수도 없고 말이야!"
스님이 고기라! 박장대소하듯 깔깔 웃던 재하는 아예 의자에 늘어지듯 앉더니 근처에 있던 투박하게 썬 고기 조각을 하나 더 입에 던져 넣었다.
"재하 말고 귀태니 백정 놈이니, 기생 오라비니, 기름집 가정 파탄 낸 망나니니 편할 대로 부르쇼. 여기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부르니까. 무엇보다 그 이름 버린 지 10년은 넘었어."
하나 먹을 게요? 오늘 잡은 놈이요. 재하는 이야기 값이라는 듯 작은 도마를 슬쩍 손으로 집어 들었다. 소로 추정되는 고기가 투박하게 썰려 있으나 붉은 기운 싱싱하기 그지없다.
야견은 질투난다는 표정으로 또 다른 재하를 익살스레 흘려보더니 긴 손가락으로 가리켜진 의자에 터벅터벅 걸어가 털썩하고 걸터앉는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아무래도 교국의 높으신 재하도령도, 시장바닥의 푸줏간 주인 재하도 요괴는 아닌듯했다. 이래뵈도 절간에서 큰 몸이니 요사스러운 것들을 구분하는 재주는 있었으니까. 그럼 야견이 어딘가에서 느끼고 있는 이 위화감은 무엇일까. 요괴가 발하는 요기가 아니라면 무엇이 신경쓰인단 말인가.
“*같은 곳이라.....”
야견은 살짝 흘려진 음산한 욕지거리에서 그 위화감의 편린을 눈치챘다. 앞서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가 있다면 이런 진풍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했었지. 그러나 지독하게 다른 두 사람이 공유하는 과거가 있다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백정 양반, 어차피 장사도 접어야 할 시간인 듯 한데 이야기나 좀 들어볼까. 안주는 핏기 도는 좋은 고기가 있겠다. 술은 내가 쏘지.”
야견은 고기먹는 땡중을 이야기하며 깔깔 웃는 재하가 맘에 들었는재 허리춤에서 표주박에 담긴 술을 들어올려 흔들며, 자리에 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사람과 꼭 닮은, 그러나 분명히 다른 자의 눈을 바라보며 묻는다. 표범의 꼬리를 밟는 짓거리긴 하다만, 지금이 아니면 못할 짓거리니.
“백정 양반, 시장바닥 출신은 아니지? 내가 시장 바닥 출신이라 대충은 알거든. 몸가짐에 뭔가 고상한 기운이 껴있어.”
날선 송곳니 드러나게 웃는 표정이 짐짓 얄밉다. 교국의 감찰국장 재하와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임은 틀림없다. 경박하고, 때로는 천박하며, 하물며 상대가 절정의 무위를 가진 강자임에도 시종일관 자신의 태도를 고수했으니. 조금만 대화의 물꼬를 튼다면 음험한 이야기도 곧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야말로 야생의 짐승과 같은 인간이었으리라. 당장 날것을 하나 집어먹는 작태도 그러하고, 당신의 태도를 이따금 가늠하는, 등불 사이로도 투명할만치 쨍한 색 번들거리며 드러내는 눈알도 그러했다.
*같은 곳. '그' 재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언사.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내려놓을 수 없는 기억이 있기 마련이옵지요. 같은 말로 뭉근하게 돌리거나, 마두들이 있는데 뭐 하러 거기 산대? 같은 말로 넘길 수 있을 터인데도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반응은 있기 마련인 듯하다. 술 이야기에 낯짝 환히 펴진다.
"뭘 좀 아는 사람이군! 고상하게 꽃다운 시절 사부에게 머리를 깎여 승복 걸치는 중들은 이런 맛을 모르지."
당신의 추측은 완벽하게 들어맞았으리라. 곤극 대사를 서슴없이 인용하는 모습을 뒤로 재하는 눈을 마주치더니 늘어져있던 허리를 숙이며 대충 손을 뻗었다. 그리고 표주박을 향하던 손이 잠시 허공을 배회했다. 시장 출신이 아니라는 언질 때문이었다.
"……."
잠시간의 침묵을 뒤로 손이 무서운 속도로 고기 써는 칼을 향하더니, 자루를 쥔 손을 뒤로 쿵! 소리가 났다. 첨예한 칼날이 깊숙하게 탁자에 꽂혔으나, 오로지 칼날만이 탁자에 꽂은 어떤 연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순한 위협이거나, 혹은 그만큼 예민한 주제거나, 강자인 당신임을 알기 때문에 사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산발이 된 머리 사이, 차갑다 못해 얼음장같은 눈길 사이로 기묘하게 웃음 지은 재하는 새하얘질 정도로 칼자루를 쥔 손 너머로 음산히 속삭였다.
"마시기도 전에 맛을 떨어지게 하지 마쇼."
아마 위협이었던 모양이다. 경지 차이 알면서도 퍽 제멋대로인 놈이다. 칼자루를 쥔 손을 떼고 날고기 한 점 집어 든다. 피 빼지 못했던 놈인지 제법 길게 잘린 것을 입에 물자 입가에 붉은 핏자국 남는다.
"다만 용서해 드리지. 그쪽 처음에 물어다준 빌어먹을 교국 출신 재희년 얘기는 오래간만에 들으니. 말해보쇼, 내가 시장 바닥이 아니면 어디 출신이라 예상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