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감정에 취한 손늘봄은 상대의 축하가 어느 정도의 온도를 띄고 있는지 섬세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지독한 우연의 연속의 오늘따라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건 신의 안배일까, 그 반대일까. 아직은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늘봄은 행복했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응, 그거면 된 거지.
"'역시'라고 하는 걸 보니 짐작 중이었구나? 하긴... 아, 좀 뻘쭘하다. 내가 초면부터 너무 오르락 내리락 했지? 아무튼 갈수록 청룡 티를 낸다니까, 티를 내. 민망해라~"
그거면 됐다. 행복에 젖어 웃음을 한없이 흘리던 늘봄은 유현의 한마디에 저의 뺨을 한번 긁적이며 민망함을 드러냈다. 스스로 생각해도 그 자신의 성격은 청룡 자체였으므로 이런 평가를 받아도 할 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나 남의 입으로 적나라하게 평가되는 건 또 다른 문제라, 어쩔 수 없이 조금 부끄러워지고 마는 것이다. 그 감정은 곧 성큼 다가온 유현의 모습과 기묘한 탐심이 서린 눈빛, 이어지는 질문에 또 다른 색깔의 감정으로 덧칠되고 만다. 늘봄은 눈을 깜빡였다. 상대방의 두 눈이 바짝 다가와 정면에서 맞닿고 있으니 이제는 정말로 각자 색깔 다른 저 눈동자 안에 도사리고 있는 기이한 탐심을 모르거나 은근슬쩍 아님 체 묻을 수도 없다. 아, 그나저나 눈 예쁘네. 아니 이게 아니지! 손늘봄은 제멋대로 이리저리 튀는 마음을 매우 쳐서 한 갈래로 정돈한 뒤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응? 그런 게 궁금하구나? 많이 궁금했나 봐... 흐으음, 어려운 질문인데... 일단 숫자로 표현해서 10점을 만점이라고 치면 지금 딱 10만큼 행복한 것 같고, 문장으로 묘사를 한다면 나비랑 새들이 가슴 안에서 열심히 날갯짓 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하하, 새삼 말로 표현하려니까 어색하네. 그만큼 기쁘고 두근두근 벅찬다는 소리인데, 어때? 잘 전달됐을까!"
어색한 웃음이 섞인, 그러나 착실한 답변이 한바탕 지나간다. 이윽고 손늘봄은 적절한 문장을 궁리하느라 또다시 이리저리 구르던 눈동자를 유현의 눈에 똑바로 맞춘다. 그 안에는 의외로 약간의 불만이 서려 있다.
"근데 왜 너는 계속 존댓말 써? 나만 반말 하면 좀 그렇잖아. 유현이 너도 나한테 말 얼마든지 편하게 해도 되는데~! 그게 더 좋다고!"
강요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요구하는 게 참 당당하기도 하다. 상대가 존댓말이 입에 붙어 반말보다 편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런 건 고려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늘봄은 꿍얼거렸다. 참 귀찮은 인간이다, 라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무엇이 계기가 되었던 아회가 저렇게까지 흐트러진 모습 되지 않았다면 저는 영원히 저 사람 또한 웃고 침울해하며 그것 누군가에게 내비치는 사람이란 것 알 일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 보며 깨닫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외면했던 것 중에서도 가장 깊숙히 밀어넣고 감추어 저조차도 알지 못 하고 싶은 마음. 진작에 잘라 내쳤어야 하는 그 우스운 마음의 존재를. 영원히 모르는 채 끝냈어야 했다.
- 돌이켜보면 후회의 시작은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설프게 나서버려 처음으로 내가 왜 그랬지 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부터다. 이전까지만 해도 단단히 봉해두었을 터인데. 제 경솔함이 봉한 것 무르게 풀어내어 그간 쌓아둔 것 무색하게 무너뜨렸다. 이제 다시 봉할 자신 없는데. 다시 쌓아올려 견고히 만들 자신 없는데. 무너진 것 앞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없다 되내일 뿐이 제 최선이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작디 작게 웅크리는 것이.-
아마 본의가 아니겠지만은. 모르는 모습 사이 알고 있는 모습 얼핏 비치는 것에 속 더 비틀린다. 그러나 담배 연기와 함께 씹어삼켰다. 그렇게 내뱉는 쓴 숨과 함께 무엇이 그리 불쾌할 것 같으냐 묻고 한참을 그저 침묵으로 흘려보냈다. 물음에 답 없으니 저 역시 말을 아꼈다. 그 사이 꾹꾹 눌러 담았던 담뱃잎 거의 다 타들어가 슬슬 마지막 한 모금 만을 남겨두어갔다. 빨갛게 타들어간 담뱃잎은 서서히 희색빛으로 식는다. 그 마지막을 빨아들이려는 찰나. 아회가 불렀다. 저 아닌 영이를.
"예."
그리고 태연히 대답하는 제가 비틀린 속 아주 끊어낼 듯 움켜쥔다. 분명 손 따로 두었는데 지금 이 순간도 제 목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 견딜 수 없으면 피하라고. 버틸 수 없으면 도망치라고. 저도 종종 그리 말 하고 다녔으면서 이 순간 스스로 그 말 지키지 않고 있었다. 직접 빚는 모순이 더할 나위 없이 추하다 여기면서도 뒤늦게 고개 돌려 아회 보았다. 금방이라도 노려 볼 듯 기운 얼굴 흔들림 없는 눈으로 보았다. 그 어떤 붉은 옷 걸쳐도 푸르스름한 백색 잃지 않는 아회 가만히 주시하며 조곤히 이어지는 목소리에 새삼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이런 일 없었다면 영원히 듣지 못 했을 이야기다. 그리고 그 모습도.
궁기. 라는 이름 듣자 단박에 검은 호랑이와 일전 보았던 푸른 머리 사내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전해달라 부탁하던 사내. 아. 그래. 그 선물 전해주며 누구냐고 물을까 하다가 관두었지. 그 때 묻지 않았어도 이리 알게 되니 결국 알아야 할 것은 알게 됨일까. 이전 사실 떠올리기 무섭게 다음 말이 비수 되어 제 명치를 헤집는다. 너 또한 그쪽 부류였으니. 제가 아닌 영이에게 하는 말이지만 저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 여기서 아회 착각한 대로 영이 행세 하는 것 그 반증이다. 아니면. 정말로 착각한 것이 아닌 진정 저에게 하는 말일지 모른다 생각하며 당장이라도 명치서부터 뜨끈한 것 올라와 게워버릴 것 같다.
또다시 짧은 침묵 흘렀다. 그 사이 입 안 지그시 깨물어 역력한 구토감 참아내었다. 역히 굴 것이라면 끝까지 뻔뻔해라. 스스로를 다그치며 제게로 뻗어오는 손 바라보았다. 그만큼 벌어진 두루마기 사이에 아회 얼굴도. 그 입이 하는 말 들으며 그 손이 제 얼굴에 닿게 내버려 두었다. 불쾌하고 두렵다. 궁기가 누군가가 무엇 저지를지. 맹세. 지켜준다고. 떠나지 않는다 했으면서. 왜 그리 퉁명스레 굴어. 아회의 손 하고픈 대로 두며 이어지는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들었다. 이윽고 제 입 열었을 때. 유순한 행동과 달리 나온 목소리 사뭇 서늘했다.
"제가 어째서 이러는 지는. 더 잘 알지 않으십니까."
과연 그럴까? 아니어도 상관 없어.
"지켜드리겠다. 떠나지 않겠다. 맹세요? 글쎄. 제가 언제 그런 것을 했던지요."
느릿느릿 말 이어지는 사이에도 제 얼굴 더듬고 있었다면 느껴졌을 것이다. 눈매 빙긋 휘고 입매 곱게 호선 긋는 것. 차분히 웃는 얼굴을 하고 그 때까지 미동도 없던 몸 움직였다. 이번엔 제가 팔 뻗어 아회에게 닿으려고- 덮어씌운 두루마기 흘러내릴새라 조심히 등과 허리에 제 팔 휘감으려 하며 그만큼 거리 좁힌다. 피했다면 피한대로 두었겠지만. 아니라면 평소와 같이 허나 기묘한 분위기 두른 채 제 품에 안으려 했겠지. 좁든 멀든 그 귓가에 똑똑히 들리게 말했겠지.
"통 기억이 나질 않으니. 어째. 이 자리서 다시 한 번 맹세해 드리리까."
문득 지금 제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다.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다. 그냥 무슨 대답을 할지 얼른 듣기나 했으면.
어떠한 사람인지 중요한가, 알 수 없다. 잿더미는 잿더미, 타오르는 것은 타오르는 것! 아니, 아회란 인물은 지나치게 자신을 숨겨두어 타인에게 배신감 느끼게 하기 충분한 작자였다. 철저하게 자신의 감정 숨겼다는 것은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단 반증이기도 하니. 그것이 아무리 삼 년이라는 세월 동안 함께한 당신이라 할지언정. 서로의 인생을 알지 못하니 이해도 없고, 이해한다 쳐도 그간의 행동이 정당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영아."
내막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숨기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얼굴을 느릿하게 더듬는 손길에 감정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윤곽이요 당신을 구성하는 온기를 통해 자신이 기억하는 얼굴 맞는지 가늠할 뿐.
"……."
그리고, 삽시간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미소 짓는 얼굴을 더듬던 손길도 멈춘다. 품에 안긴 채 한참이고 입을 다무니 금방이라도 부적 태우고 도망쳐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 느껴진다. 아니, 지금의 아회라면 검붉은 부적 태워 앞발을 내지를지도 모른다. 잔뜩 긴장해버린 몸은 고양감에 긴장한 것이 아니다. 이는 날선 경계였다. 당신이 그런 것을 했느냐 물었던 순간부터, 마지막 남은 일말의 이성까지 산산이 조각난 듯이.
"……내가 우습니?"
소름 끼치는 정적 속에서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가 흐른다. 감정 흐려 삭막하던 어조는 동일하지만 구성하는 소리는 조금 더 낮다. 그리고 삭막한 만큼 싸늘하고, 첨예했다. 실시간으로 감정을 승화시켜 버린다는 듯, 당장 어조가 높아질 기미는 없어 보였다. 기이한 사람이자, 그만큼 자신을 놓는 것에 능한 인간이었다.
"본디 인간에겐 자유가 있으며 구순을 열어 의견을 표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지, 영아."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하였단 뜻이다. 아회의 두 눈이 뜨였다. 그간 눈을 뜨지 않았던 자였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기대를 하지 아니하여 볼 이유도 없거니와, 타인을 인식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빌어먹을 문제가 있었기에. 다만 오늘은 다르다. 아회는 당신의 낯짝을 보고 싶었노라 생각했다. 지껄이는 그 표정을, 서린 감정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너는 아니야. 이 내가 너의 주인 된 자가 아니었어도, 네가 맹세한 것을 잊었더라도 너는 그러지 말았어야만 했어. 내가 안 했다고 해도 너는 했다고 해야만 한다. 억울하더라도 그게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지 않니."
짐승의 눈이다.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닌 그것이라 표현해야 응당 옳을, 인간의 것이 아닌 눈이었다. 번뜩 뜨인 빛바랜 은빛 눈동자는 선득했고, 동공은 먹잇감을 발견하여 물어뜯기 직전의 맹수처럼 풀려있다. 사물이 아닌 저 너머를 바라보는 듯한 인위적인 시선은 이질감을 불러왔다. 그가 천천히 손가락을 들었다 놓길 반복한다. 어느새 돋아난 날선 손톱이 툭, 툭, 느릿하게 당신의 관자놀이를 건드리려 들었다. 다시, 다시라.
"내가 아는 너는 말이다, 무 씨 집안의 사람들이 두 번 맹세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맹세란 것은 그 순간으로 향후를 정하는 것인데 어찌 꽁무니 내빼듯 두 번 정할 수 있겠느냐 반문하였겠지. 어설픈 맹세는 족쇄가 되는 법이라며. 그런데 잊었다고? 두려우냐? 네 죽음이 두려워서 이리 내빼는 것이냐? 이제 와서? 때늦은 반항 따위는 듣지 않으마. 그렇다고 하여서 네 그 사람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속삭이는 목소리 너머로 관자놀이 건드리던 손톱 멈춘다. 일순 입 다물리며 가늠하듯 눈을 좁히다가도, 이내 정확히 시선 마주하듯 머리카락과 똑같은, 희미한 푸른 기운 남은 은빛 눈이 붉은 눈 똑바로 응시하려 들었다.
어이가 없으려니 짧게 한숨을 흘리던 연은 헛헛하게 웃으며 아니꼬울 궁기를 올려다본다. 그 본래의 모습을 보이긴 했다만, 인간의 모습을 싫어한다니. 그렇다니 왜 사감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인지 그때의 반응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그럴 적에 미안하다는 어투를 두고선 연은 낯을 찡그리며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다. 이 역시도 진심이 아닐 것 같아서. 진심이라 하더라도 당한 것이 있는 자신으로썬 거짓말쟁이, 범죄자일 당신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쯧."
그건 그렇지만. 연은 혀를 차더니 고개를 젓는다. 주머니에 관해 물으면, 연은 두루마기 소매 안에서 끈으로 팔목 묶어둔 비단 주머니를 꺼내 보인다.
으아악 오늘로 며칠 못 왔지... 이런저런 사고가 좀 있었어서 접속이 뜸했네요_(:3」∠)_
갱신합니다!!! 늘봄주 답레 확인했어요!! 앗 많이 바쁘고 아프셨다니 뒤늦은 위로를...🥺 으음~ 텀은 신경쓰지 않는 편이라 저는 괜찮아요! 되도록이면 제대로 끝맺고 싶긴 한데 제가 요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저도 텀이 좀 늦어질 것 같은데 늘봄주만 괜찮다면 느긋하게 이어오는 걸로 해도 될까요? 우웃 주말 미니이벤트도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접속을 못해 버렸네요.... 캡한테 죄송하고 이런... 이런 현생 억까 규탄하고 고소하겠다........(;´༎ຶД༎ຶ`)
제가 아회에 대해 모르는 것 이상으로 영이에 대해서도 모른다. 지금 들은 말 만으로 아회 이해할 수 없듯 편린 혹은 그조차도 되지 않을 추측으로 무엇을 안다 할까. 그래도 그건 확신할 수도 있었다. 아회가 이리 대하는 영이라면 그 맹세란 것 번복하지 않을 것이라. 무 씨 가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도 영이가 그저 무 씨의 규율을 따를 뿐이라 해도 그럴 것이라. 동시에 납득하고 만다.
얼굴 내어준 만큼이란 듯 그 마른 몸 품에 안았다. 그동안 숱하게 들어올리고 끌어안고 어루만지고 온갖 희롱이란 희롱은 다 했으면서. 지금은 이 이상 힘 주면 부서지지 않을까 그 손길 참 조심스럽기도 하다. 한 팔 등 받치고 한 팔 허리 두르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품 안에서 굳어버린 아회처럼. 저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거짓 하나 섞이지 않은 말 차분히 내뱉고 아회가 영이 한 번 불렀다. 그리고 또 한참을 시간 흘려보냈다. 무수히 흘린 시간에 마냥 밝을 줄 알았던 하늘 서서히 기울며 저 멀리서부터 땅거미 져온다.
연이은 침묵 그냥 둔 것은 딱히 유순하게 굴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냥. 그건 알고 있었으니까. 아회는 항상 곧장 답하지 아니하고 간격을 두어 말하곤 했으니까. 단지 그게 조금 길 뿐이다. 지금은.
...그래서- 알고 있었으니까 침묵 깨고 흐른 그 목소리에 놀라지 않았다. 정적으로 벼려진 듯 차고 날선 목소리가 오히려 아회다웠다. 심연의 바닥은 저 목소리 같지 않을까. 분명 이처럼 싸늘하고 선득할 것이다. 그 목소리가 내뱉는 말들 하나하나가 그렇듯.
서서히 이어지는 소리에 저 아닌 영이를 향한 말 나올 것도 예상은 했으나 곧 또다시 겪은 적 없는 일 일어났다. 아회가 눈을 떴다. 영영 감겨 있을 줄만 알았던 얇은 눈커풀 들어올려지며 그 속 만큼이나 감추었던 희디 흰 눈동자가 나타났다. 결코 호의적이지도 상냥하지도 않은 눈이었다. 제 사람을 책망하기 위한 눈이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온화가 아니라 여태 몇 번이고 부른 영이를 꾸짖기 위한 눈.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역시나 영원히 볼 일 없었을 너무나도 아름다우며 인간 초월한 듯 이형적인 은빛 눈동자.
아회의 눈이 영이 보며 말했다. 영이라면 응당 하지 않았을 말을 어찌 했느냐고 이제와 변심하였으냐고 조곤히 꾸짖고 나긋히 따져물었다. 온화가 요괴에게 홀려 주먹 들었을 적에도 탓하거나 혼도 내지 않던 아회가 영이. 제 호위에겐 잡아먹을 듯이 서늘한 화를 내보이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손톱 뾰족하여 금방이라도 제 가죽 뚫어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눈동자 처음 보았다는 기쁨에 웃음 사라질 줄 몰랐다.
그러나 돌연 손 멈추고 말도 끊겼다. 갑작스러움에 왜. 보다는 이제야. 라고 느꼈다. 여태 말하던 것 환영인 마냥 입 다문 아회가 온화 본다. 보고 있었다. 온화를 보게 된 것일 터다.
저것 봐. 저렇게 말하잖아.
여태 환히 지었던 미소 그제야 식어갔다. 붉은 눈동자 식어 검게 흐려졌다. 핏기 식어 낯빛 희어졌다. 먼발치부터 드리우는 황혼 되려 붉은 머리칼 칙칙하게 비추었다. 검게 죽어 떨어지는 낙엽처럼. 검붉은 눈 역시 은빛 눈 마주 응시하다가 먼저 아래로 시선 떨구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목소리는 가라앉은 앙금처럼 침잠해있었다.
"그러셨나. 그리도 귀애하셨던가."
느릿느릿 말을 하고 뚝. 소리 날 듯이 온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을 적 조심스럽던 손길이 여태 흐트러진 채 였던 아회의 차림 정돈해주려 했다. 난장판이 된 머리 차분히 넘겨주고. 죄 벌어진 옷깃 당겨 옷의 구실 제대로 하게끔 갖추어주고. 그것 하였든 아니든 온화 단 하는 하지 않았다. 아회가 손 거두지 않는 한 그 손에서 얼굴 먼저 떼지 않았다. 단지 온화 평상시 그러하듯 멋대로 아회 돌보아주고 다 하고서도 그 자리에 머물렀다. 다른 말 없이. 별개의 행동도 없이.
아회가 지금 화를 내거나 더 날카롭거나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그랜절)(비설 하나 챙겨와서 조공 바치기...)
아회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특히나 '무 씨 가문의 아회'라는 부분에 대해 아주 과민하게 반응하고, 사소한 것도 부풀려서, 그리고 예민하게 받아들여요... 살아오며 눈치를 심하게 본 탓이고, 제대로 교정받지 못했기 때문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고작 싸움 하나로도 제사장 집안까지 생각하고, 현재 온화를 알아본 이상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거랍니다... 인간불신이 아주아주 심한 애인데 하필 멘탈 깨지고 비설 털리니 원내에서 아회 기준으로 잘 대해준 후배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