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아직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가 악귀를 쫓는다는 얘긴 들어봤지만 벼락 맞은 뱀은 좀 그렇긴 하려나?"
강산을 치료하면서 상태를 확인하는 여선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답한다.
"조금 쉬었다가 가자."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희미하게 빛나는 나무로 가보면... 까마귀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들이 지키던 보석 한 무더기만이 무너진 돌들 사이에 남아 빛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로도 강산과 여선이 보석을 가지고 게이트를 나갈 때까지, 까마귀들이 그들을 건드리거나 방해하는 일은 일절 발생하지 않았다. 나가는 길에 까마귀 몇 마리를 마주치긴 했지만 모두 겁먹은 눈치로 슬금슬금 강산에게서 멀어졌다. 아마도 그가 떨어트린 번개를 보고 크게 놀란 것일지도.
의뢰에 대한 린의 감상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테스트 기록지에는 강산이 방금 쓴 내용 외에도 위에 곡의 장르와 속도를 바꿔가며 테스트한 기록이 여럿 보일 것이다. 의념을 사용한 연주가 아니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조각상은 의념을 사용한 악기 연주라면 대부분 반응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곡의 속도에 맞춰서 빙빙 도는 것 외에 특별히 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마도랑은 별개지만...일차적인 정의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악기 연주 기술이 있으면 연주에 의념을 담아 사람들에게 감각을 전달함으로써, 버프 효과를 부여할 수 있게 돼. 만약 이걸로 버프 말고 공격을 한다든가 물리적인 간섭을 일으킨다든가 하고 싶으면 마도도 공부해야겠지만. 그건 '불협화음'이라는 마도 기술의 일종이거든."
연주에 의념을 담아서? 의념각성자라 하여 모두가 의념의 활용법이 같지는 않다. 같은 도구라도 어디에 사용하냐에 따라 그 숙련의 방향이 달라지듯 의념각성자 수 만큼 익숙한 의념 활용법도 각양각색이다. 그리고 린은 단 한번도 의념을 연주에 담아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정신을 왜곡하는 편이 그녀에게는 편한 쪽이었다.
"역시나 기술을 사용할 것에 가까운 조건이었군요." 약간 남은 미련을 금방 털어버리고 손 끝으로 움직이지 않는 조각상을 콕콕 살며시 찔러보다 장난스럽게 웃는다.
"모양은 귀여운데 아직 완성품이 아닌 모양이어요. 아쉬워라. 보지 못한 사이에 열심히 수학하신 것 같사와요." "소녀가 듣기에도 불협화음이라는 기술이 그리 쉽게 들리지는 않으니 말이어요. 참, 신 한국에는 별일 없는지요? 소녀는 지금 해외에 있어 소식을 잘 듣지 못하고 있사와요." //8
"그렇긴 하지...대부분의 기술들이 그렇듯이 맨땅에 헤딩하는 걸로는 얻기 어려운 편이더라. 나도 가야금을 처음 배웠을 때는 오래 전이지만 악기 연주 기술이 생긴 건 올해 와서였으니까...그렇지만 그것도 벌써 몇 달 전이긴 하네. 악기 연주도 불협화음도 영월 습격 작전 이전에 다소 급하게 익혔었지. 사연이 좀 있어서."
'백두'를 잠시 내려놓고, 그 악기를 다룰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일들을 떠올리며 린에게 답한다. 해당 기술들 자체는 영월 습격 작전에서 많이 쓰이지 않았지만, 어쩌면...가야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는다. 아이템 테스트는 린이랑 대화할 동안 잠시 쉴 생각인 듯 하다.
"이 조각상? 응...미완성이긴 하지. 의념을 싣은 연주에 반응하는 것 이상으로 구체적인 효과를 부여하려면 마도 인챈트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 나도 미완성이네. 올해 와선 새로운 기술도 익히고 의념기도 생기고 새 친구도 만들고 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장난스레 답한다. 지금 정도도 학기 초에 비해 많이 강해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직 '그 때' 그가 목격한 그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기에 미완성이 아닐까.
"아. 마츠시타 씨도 해외에서 활동하느라 요즘 잘 안 보였었구나? 음...헨리 파웰의 묘소가 테러당했고 반장님도 거기 휘말리셨었다던데 들었어? 마츠시타 씨도 그때 단톡방에 있었던가?"
헨리 파웰 묘소 테러 사건을 언급할 때, 강산은 목소리를 낮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소곤거린다.
강산의 말을 들으면서 문장에 맞추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편입생들이 들어오기 전 기존 인원이 영월에서 많은 일을 겪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니 별 말을 얹지 않고 잠자코 듣는다.
"강산군의 말씀대로라면 세상에 완성된 사람은 없을것이어요. 사람이란 존재는 죽기 전에도 완결이 나지 않는 존재이니 말이어요." "완성이 없다는 말은 바꿔 말하자면 발전에 끝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니..."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미소 지으며 답한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경험 할 수 있다. 그리 생각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사와요. 너무 뻔한 답인가요."
아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바티칸 중앙 도서관에서 넋이 나갈 것 같은 토론의 한 가운데서 정신을 붙들고 있느라 제대로 보지 않았던 채팅 내용을 떠올린다. "네. 소녀도 보기는 했사오나...' 말끝을 흐리면서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는 표현을 한다. //10
"음...나도 어떻게 될 진 모르겠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해. 혹시나 1세대 어르신들이 화가 나서 찾아오실 수도 있으니까. 만약에 그 분들과 좋지 않은 떼어 마주치는 상황이 온다면 최대한 예의바르게 대하는 걸 추천할게. 가족 얘기나 과거의 인연 같은 건 웬만하면 함부로 언급하지 마. 큰일나."
어느정도는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잘못하면 매를 맞을 수도 있댔던가. 강산은 이쯤에서 예전에 만나 대화했던 지리산의 도인 어르신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아 그러고보니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네. 마츠시타 씨에겐 별 의미 없는 소식일 수도 있지만...나랑 같이 입학해서 친하게 지내던 애가 있었는데, 걔가 대운동회 후로 실종되었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더라. 한태호라고...만신창이가 되었었다가 겨우 회복되었고 무기도 박살났다지만, 살아서 돌아온 게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