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실까지 가는 동안 온화 입 천근만근 닫혀있다고 유현조차 아무 말도 안 하고 달래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휴게실 도착했을 때의 상황 또한 사뭇 달랐을 것이다. 먼저 온화 손에 지팡이 들려있냐 아니냐의 차이부터 명백했겠지. 하지만 유현이 열심히 잘못했음을 어필한 덕에 나름 평화로운 방법으로 제 의구심을 충족하는 것에 그치게 되었다. 휴게실 구석에 밀어넣고 다짜고짜 묻는 행동이 과연 평화롭냐고 물으면- 글쎄지만.
어쨌거나 주사위는 던져졌고 남은 반응은 유현 하기 나름이었다. 과연 무슨 대답으로 이 상황을 타파할 것인가. 아니면, 익히 알고 있는 자극 추구하는 자세로 더 긁어올 것인가. 가만히 기다려 들은 대답은 뜻밖이라면 뜻밖에도 전자였다. 사뭇 공손하게 실토한 그를 얼른 다 말하라는 눈으로 빤히 응시하니. 이내 돌아온 답변 가관이다. 유현답다면 다웠지만서도.
"모-야 그게. 딴 생각 하느라 나를 못 봐? 그것도 그런 생각을?"
이유에 이유까지 다 듣고 난 온화 반응 처음엔 그랬다. 겨우 그거, 고작 그거에 제가 밀릴 수가 있냐는 양. 안 그래도 큰 눈 더 크게 뜨고 어이없어 하는 표정 짓다가 돌연 으핫! 하고 웃음 터뜨렸다. 아하하! 곧 발랄한 웃음 소리 내며 웃겨 죽겠다는 듯 웃었다. 웃다가 잠시 유현 흘겨보긴 했지만 이내 어깨 으쓱이며 밀했다.
"참 나! 고작 그런 생각에 밀린게 어이없긴 한데. 유우 오빠니까 봐줄게- 딴 사람이었으면 얄짤없어! 감사하라구!"
연인도 아니면서 연인인 양 그리 떠들고 잠시 키득키득 더 웃더니. 슬쩍 고개 들어 유현의 뺨에 입맞춤 하려 했다. 일종의 기분 풀렸다는 표시랄까. 제멋대로 굴어놓고 여전히 제멋대로 떨어져 휴게실 소파에 폴싹 앉았다. 앉자마자 구두부터 벗어버리는게 습관 내지는 버릇인 듯 하다. 짧은 스커트임에도 무방비하게 다리 모아 올렸지만 때마침 휴게실에 둘 외에는 없었으므로 그나마 다행일까. 마치 제 집 제 방마냥 편안히 자세 취한 온화 돌아보며 손 살랑살랑 흔들었다.
"자자- 얼른 와서 다른 생각 뭐 했는지나 얘기해줘- 아님 순찰 중에 무슨 일은 없었어-?"
생글생글 웃으며 유현 바라보는 모습은 그저 평소대로였다. 조금 전 기분 뚱했던 건 아주 싹 날아간 것처럼.
같이 갈래. 여기서 기다릴래. 그 질문에 남학생은 같이 가겠다고 했다. 온화 생긋 웃으며 그 애의 손 잡으려다가 필담 하는 모습에 멈칫했다. 손을 잡으면 글을 쓸 수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내가 이 남학생 옆에서 나란히 걸으면 돼! 한 팔로 꼭 안고!
온화 유일한 장점은 생각하고 실천하는데 텀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바로 양피지에 열심히 필담 중인 남학생 옆으로 가서 허리에 팔 슥 두르고 거리 좁힌다.
오호- 가까이서 보니 더 귀여워-
일만 아니었으면 같이 놀자고 꼬셔볼 법 했다. 필담 하는거야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 바람이 어쨌든 지금은 근무 중이고 이 학생의 문제를 도와줘야 했다. 해서 노는 건 조금 미뤄두고. 양피지에 적힌 글 하나하나 세심히 읽었다. 그러다 잉크 터졌을 땐 키득 웃어버렸지만.
"흐흠- 그랬구나. 음- 학년 대표는 바쁘니까- 어, 내 패밀리어?"
패밀리어가 달아났다면 혼자서라도 쫓아서 나올 법도 하다며 공감하듯이 말했지만. 남학생이 제 패밀리어에 대해 물었을 때의 대답은 느낌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나는 없어- 동물 싫은 건 아닌데 동물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거든- 사람 중에서도 특히 별난 사람들-!"
그 말처럼 온화는 패밀리어가 없었다. 다른 누이동생과 오라비들은 있었지만. 저는 어째서인가 동물보다 사람이 더 좋았다. 가장 가까운 부모부터 형제자매, 일가친척, 그리고 학원의 선후배와 동급생, 지금은 타인된 사람 전부. 흥미의 대상이자 애착이 대상이었다.
"맞다 맞아- 나 있지-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패밀리어 삼고 싶었다-? 아니면 내가 패밀리어가 되도 좋았는데- 여지껏 그런 사람을 못 만났어-! 하하!"
명랑하게 웃으며 말하고 시선 계속 주변 둘러보았다. 이래저래 딴짓 하고 있었지만 부엉이를 찾아달라는 말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죽은 시체와 똑같은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의심했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친히 제 모습 베껴줄 줄이야! 고통에 앓느라 찌푸리듯 구겨져 있던 웃음이 마침내 완연한 쾌소로 변모한다. 조금 전까지 욕 내뱉던 것과는 딴판으로 크게 웃음소리 흘린다. 아! 당신은 알까? 내가 쭉 당신을 찾아왔음을. 그날 이후로 가슴 속에 기묘한 불이 피게 되었지 뭔가. 앞을 밝혀 주지는 못할 망정 죄 불태워 이 내 침잠한 삶 끝없이 돌아보게 만드는, 그러나 기꺼이 몸 던지지 않고선 견디지 못할 불이. 당신이 날 살려두고 간 탓에 그 불이 꺼지지 않는다. 이것은 나를 초열에 불타도록 한 원한이자 보은이니, 반가워도 모자랄 판에 절망할 시간이 있을까?
"기분 좋다면 어쩔래?"
광기로 번뜩이는 눈 마주보며 그 역시도 입꼬리 길쭉이 찢어 웃는다. 주저앉아 꺾인 다리 서서히 일으켜 세우며 대꾸했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며 이죽거리는 의도도 조금 담겨 있었다. 고작 이따위 일로 슬프고 절망할 리가 있겠는가. 그런 시시한 절망보다는 분명 더 재미있는 일이 있을 테다. 이를테면 저와 똑같은, 정확히는 제 얼굴 베낀 놈 패는 경험 같은 것 말이다.
"반대로 묻지. 내 얼굴은 마음에 들어?"
조금 전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원망願望 이제야 다시 시도해 본다. 상대의 얼굴을 주먹으로 온 힘 다해 후려치려 했다 이 말이다.
"가장 증오하는 사람과 강제로 하루를 보내야 한다면?" 아회: "오, 내 아주 좋아하는 질문이네. 학원 재학할 적엔 매일 생각하던 것이니 말이야." "그리고 실천으로 옮겼네." "죽였지. 아무도 몰라, 앞으로도 모를 게야." "섹튬셈프라."
"어떤 부분에 성적인 감정을 느껴?" 아회: "...대체 왜 이 세계까지 와서 이런 질문을 받느냐 묻고 싶구먼 그래." "어디 보자, 내 아무리 가벼운 사람이라도 말이야... 그래, 늘 묵직하게 두려 하는 것이 세가지 있네만." "하나는 내 직함에 대한 사명감이고, 둘은 타인의 간곡히 비밀로 해달란 이야기고, 셋은 아랫도리야." "감정 느낄 일 없다 이 말이지." "형님은 또 왜 나와? 아서라, 내가 손대기엔 가녀리고 아름답고 순수하며 빛이 나거니와(이하 50여 가지의 칭찬이 줄줄 이어졌다.) 완벽하신 분이기 때문에 절대 안 돼." "그렇다고 남도 안 돼. 애지중지 품어 키워야지."
"왜 그애를 죽였어! 그애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회: "범죄자이지 않나. 극악무도하게 사람을 죽이고 그 악명을 널리 떨치며 사건사고가 끊이지를 않지. 죄를 다 읊어주랴, 용서 받지 못할 저주를 쉽게 사용한 죄, 그 저주로 하여금 여러 가정을 파탄낸 죄, 혼혈과 머글을 차별하여 무고한 목숨을 버린 죄, 사상을 강요하며 마법사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 죄, 또 뭐가 있지? 추종자를 만들어낸 죄? 뿌리깊은 죄악?" "에이잉,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되먹지도 못한 녀석 같으니라고." "네 죄가 없다 이야기 하는데, 어디 그럼 죽은 시체 대신 징역을 선고 받고 디멘터의 키스라도 받아볼 테냐. 진정 죄가 없으면 아즈카반에 수감될 일은 없겠지. 하하, 그것도 꽤 볼만하겠구먼. 가자! 인카서러스!"
>>99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아 진짜 최고다 AU 아회~~ 아니 조건 1 이길 수 있는 사람 있을까 과연 ㅋㅋㅋㅋㅋ 그래도 형님이 좋다고 애지중지하고 그런 모습 보이면 막 막 손수건 물뜯 하려나? 아니면 몰래 처리를...?! 본편 아회 그 와중에 짜식눈이야 어케 ㅋㅋㅋㅋㅋㅋㅋ 하악 웃다 숨넘억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