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일찍 돌아갈 수 있나, 하여 형님과 함께 시간 보낼 수 있나 싶었더니만 이게 누구야, 악명 드높은 죄악 나부랭이 아닌가. 아, 빌어먹을. 오늘은 야근 확정이구나. 뻔뻔하게 살아 돌아간다는 가정을 하며 그는 느긋하게 상대를 훑었다. 곧 잡혀갈 놈이 손님 타령이라니, 끔찍하지 않은가.
"내 살다 이리 열린 놈은 처음이야, 재밌는 녀석일세."
……그것보다 내 아무리 인종 모호하게 생겼더라도 언더테이커 성을 달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나? 음, 내 사실 언더테이커 가문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어머니가 그쪽 사람이었을지 어떻게 알아? 내 낳고 얼마 안 있어 돌아가셨는데 혹시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걸 생각해보면 거 신분 상승시켜준 착한 녀석일세. 열린 생각과 닫힌 생각이 공존한 발언을 뒤로 그는 끌끌 웃었다.
"미안하지만 내 양과자를 싫어해. 줘도 안 먹지." 양갱과 홍삼 쩨-리 좋아하였다……. 신체 일부, 누군진 몰라도 여기에서 명 달리했나 보구먼. 우스운 일이다. 살아가다 갑자기 죽어버릴 적 무슨 생각을 했을꼬? 뭐, 내 일이 아니니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생각이라곤 일절 없다마는.
순찰 중에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잦지만 사건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었다. 그야 거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나올 곳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간 큰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니 오늘도 어제처럼 평화로운 순찰을 마치고 복귀해서 오늘의 간식은 뭘 먹을지 고민하는 하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어기 바닥에 나뒹구는 시신과 서 있는 연청색 머리의 남자를 보기 직전까지는.
"흐음?"
나름 시체에 숙련된 오러답게- 는 조금 말이 이상한가. 아무튼 이런 상황에는 익숙한 오러답게 온화는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가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히 그리고 흥미롭게 제 앞의 상황을 살폈다. 하늘색 머리에 손목에는 수갑이라. 아마도 그들 중 한 명일까나. 아. 이왕 마주칠거면 그이나 마주치지. 요즘 단 것 고픈데. 일 끝나면 연락이나 기다려볼까. 머릿속에 생각 빙글빙글 돌리며 얼굴엔 만면에 미소 띄웠다. 웃으며 금방이라도 눈물 흘릴 듯 억울해하는 남성에게 다가가 상냥히 말했다.
"그렇구나. 이쁜 자기야. 저 남자가 먼저 자기를 죽이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런거구나. 그치?"
어머. 여기 피 묻은 것 좀 봐. 남성의 목에 피칠갑인 것 보고 안쓰러운 듯 말하고. 손 들어올려 서슴없이 남성의 얼굴 감싸 물기 촉촉한 눈가를 쓸어주려 한다. 정말로 그의 말을 믿는 것처럼 말이다.
"많이 놀랐겠네- 괜찮아?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겠니?"
남성의 자색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한 붉은 눈에는 그저 순수한 선의가 감돌았다. 그 뒤에 작은 흥미 감추듯.
"좋아. 네 분노, 그렇게 한껏 표출해봐.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 그렇게 날뛸 수 있겠니."
이번에도 고드름울 성공적으로 막아낸 가현은 고개를 까딱인다. 저 몹쓸 분노와 증오 때문에 제 가문 사람들은 필요를 다하기 전 흙 속에 파묻히는 달갑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다. 저렇게까지 인간에 대해 적대심을 불태우는 이유와 근원이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 필요조차 없다고 여겼다. 그저 제 분풀이를 위한 대상에 불과했으며 자신의 완벽한 일상을 망쳐버린 것에 대한 댓가는 치르게 해야겠다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문명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유사 인류다운 발상이구나. 그 반대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아까 전 폭발으로 몸이 녹았던 것을 확인했었다. 당연하게도 눈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열에 약했으며, 그렇다면 제가 움직일수 없게 되어버릴 수준이 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점점 커지는 상대를 따라 가현의 고개가 따라 올라가다가 이윽고 다시 지팡이를 겨누었다. 역시 마냥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구나 싶으면서도.
"커졌으니까 그에 걸맞는 화끈함을 선사해줄게. 봄바르다 막시마."
되려 더더욱 확실하게 화력이 좋은 마법을 쏟아낼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길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비를 걸고 돈을 달라 했다라. 그럴 듯한 얘기지만 여긴 마법사의 사회다. 돈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건- 조금 앞뒤가 안 맞는 감이 있단 말이지. 그래도 지금은 납득한 척 해볼까?
온화는 울기 시작한 남성을 보며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어떡해 어떡해- 하고 진심 살짝 담아 그런 말도 해 보고. 남성이 이제 잡혀가서 죽는 거냐고 하자 짧게 머리를 굴렸다. 얼굴은 여전히 안타까운 표정으로. 남성의 말에 사뭇 진지하게 생각하는 척 해싸가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한 양 고개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정당방위라면 이대로 잡혀갈 이유는 없지. 응! 이쁜 자기야. 나랑 약속하면 신고 안 할게."
어차피 둘 밖에 없지만 누가 들을새라 목소리 낮추고 작게 소곤거렸다.
"저 시체 깨끗이 치우고 여기서 나랑 만난 걸 절대 비밀로 할 수 있다면 나도 본 것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약속하면 오늘 여기에선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할래?"
어느새 다시 생긋 웃으며 약속을 말하는 온화의 귀에 뒤로 수근대던 소리 하나가 들리는 듯 했다. 쟤 안 보이는데선 분명히 딴짓 할거라니까. 응. 맞아. 그래서 뭐 어쩔까? 이 편이 재밌는 걸.
원한이나, 사회에 대한 불만, 그 조차 없이 취미처럼 살인을 즐기는 이들. 인간으로서 되지 못한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 시키는 것이 자신이 하는 일이었으니, 연은 우범지대를 순찰하며 모퉁이나 골목 안쪽을 살핀다. 곁을 지나는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평범한 친절한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도 범죄자일지도 모르는 것이라. 한 명 한 명 지켜보던 연은 언젠가 전단에서 보았던, 범죄를 저지른 자의 얼굴을 본다. 기억 속에 똑똑히 남은 그 얼굴. 연은 놓칠 새라 그의 뒤를 따라 밟는다.
가문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것에 한 번. 막과자니 뭐니 남자 하나와 또 얘기하는 것에 두 번. 눈 마주했을 적 그는 느긋한 기색 숨기지도 않는다. 양갱에서 두 번 하고도 반.
"개탄스럽게도 내 네게 알려줄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구나. 잡종이니 무어니 집어 치우지."
나긋하게 이야기하던 그는 시체를 잠시 본다. 먹었니 무어니 하기에 역겨움 느껴야 정상적일 터인데 먼저 드는 생각은 먼 나라 이야기다. 저 도야지 같은 새끼, 쳐먹는 것이 자랑이라고. 지금까지는 인내하고 있기에 거센 단어를 입속으로 씹어 삼킬 뿐이다. 스위츠 가문, 그래, 어디서 들어봤다 했더니 그 양과자 이름으로 바꾸는 이상한 집안이구나.
"안타깝기 그지없어, 형제. 선택지 두 개였거늘 어찌 어려운 길을 선택해."
자멸하면 스스로 죽게끔 지켜볼 터인데 꼭 요즘 것들은 손 더럽혀달라 빌어. 내가 이 일 시작하기 전에는 그런 놈들 거의 없던 걸로 기억하건만 어찌 저리도 뻔뻔한지, 세상 참 말세라 생각하던 그는 끝내 생각했다.
"귀찮은 거면 귀찮은 거지 굳이 소중한 사람 이야기로 흐르는 이유를 모르겠으이…. 뭐, 내 없다고 해도 자네는 필히 있을 거라고 제멋대로 망상하며 그 추악한 망상 속에 날 밀어넣고 홀로 위안 얻을 것 같으니 더 말은 붙이지 않도록 하지. 좋을 대로 망상하게. 잘 할 것 같으니."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 했고 나는 지금 세 번을 참았으며 네깟 것이 내 소중한 사람을 알아내려 들어? 괘씸한 것. 저런 것들이 감히 형님에게 손을 대려 든다 생각하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만 같다. 오로지 자신만이, 이 아회가 온전히 품어야 할 사람을. 내가 형님의 안온한 삶을 위해 그 빌어먹을 형제자매 다 죽여버리고 가주까지 찢어 죽였건만…… 이젠 시체에 파리 꼬이듯 잡것들이 설쳐. 그는 지팡이를 꺼내고는 폭식을 향해 권총 쏘듯 휘갈기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