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ㅋㅋㅋ 우리 도화 아가들 아프면 안되는데 넘 혹해버리는 것이야~ ㅋㅋ 페이스 무너진 온화? 가장 먼저 표정 관리 안 되고 말투 평범하게? 바뀌고~ 긍정적인 쪽으로는 당황해서 횡설수설+얼굴 빨개짐+허당끼 나옴 이러겠지만~ 부정적인 쪽으론 말투 신랄해짐+까칠예민+상시 분노... 어라 이거 그냥 적룡이잖아?(?) 암튼 이럼~
차라리 목소리를 계속 높이고 있었다면 공처럼 쭈그렸지만 사실 사람인 누군가가 이 자리에 존재한다는 걸 알릴 수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늘봄은 해 진 시간에 고성으로 혼잣말을 지속하는 게 얼마나 민폐인지 정도는 아는 상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때문에 아닌 밤중에 두 사람에게 찾아온 약간의 불운이 자아낸 우연은 놀라울 만치 작위적이고, 한층 치명적이었다.
접촉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규칙 세 가지. 첫째, 앞을 제대로 보고 다닐 것. 둘째, 사각지대에서는 특히 행동에 주의할 것. 셋째. 되도록 너무 딴 생각에 푹 잠기지 말고 보행 자체에만 주의 집중 할 것. 불행하게도 손늘봄은 이 모든 규칙을 보란 듯이 어기고 있었고 현재의 늘봄은 알 수 없는 사항이지만 상대방은 지독한 불운이 선사한 고통에 몸을 가누지 못했으니 누군가의 잘못이라기엔 말 그대로 사고, 사고일 뿐이었다.
"아, 이거 진짜 어디 갔... 뜨악!?"
이 말을 몇 초만 빨리 했어도 위치를 알리는 최후의 신호로 작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일시적으로 스쳐갔지만 이미 정수리에 벼락처럼 내리꽂힌 둔탁한 통증은 초 단위로 흘러간 회한마저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눈 앞에 별이 돌고 은하수가 흐른다. 아아, 아버지... 어머니... 불효자는... 무의식에서 짧은 생애 전체의 회상이 자동 재생되었다가 사그라든다. 아직 저승길 밟기엔 이르다는 듯 눈앞에 펼쳐진 하얀 별무리도 차츰 가라앉고, 두 눈을 몇번씩 깜빡거리자 늘봄은 현실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눈앞이 하얀 건 변함 없었지만. 새하얗고 긴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린다. 무릎을 꿇은 채로 충돌해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 늘봄은 눈밭에 파묻힌 쥐처럼 유현의 몸 아래에 폭삭 깔리고 말았다. 으으으으, 고통 찬 신음소리가 복도를 은은하게 울린다.
손이 붙잡혀 있어 제대로 머리를 감싸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일단은 높이 팔 든 자세였기에 급하게나마 가장 취약한 부위를 지킬 수는 있었다. 그렇다 해서 떨어져내리는 충격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미처 감싸지 못한 부위로 뻑─'쿵'이나 '빡' 같은 귀여운 표현은 절대 나올 수 없었다!─ 전해져 오는 충격에 일순간 눈앞이 하얗게 밝아지는 듯했다. 이내 1초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간격을 두고 머리가 마비될 듯한 통증이 온 뇌중을 뒤흔들었다. 부주의했군. 지금 뭐랑 부딪친 거지? 웅크려 머리 쥐어잡고 바르작거리면서도 그는 느려진 머리 팽팽 돌렸다. 부딪치자마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고, 어깨나 팔 같은 부위에 받혀서는 결코 들릴 수 없는 타격음이 난 걸 봐선……. 생각을 막 정리할 즈음 그의 짐작을 확인해 주기라도 하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제 몸뚱이 아래에서, 조금 전 멀리에서 들은 것과 같은 음성이. 어쩐지 좀 푹신하더라니. 그는 비척비척 몸을 일으켜 자신이 본의 아니게 깔아 버린 학생의 위에서 비켜났다. 여전히 골 울리는지 바닥으로 내려오면서도 한쪽 손은 머리를 짚은 채였다. 고통의 절정을 넘고 나서야 잠시 잊었던 허리께의 아픔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둘 모두 그다지 환영하고 싶지 않은 감각이었지만, 아픈 티는 눈살 좀 찌푸린 정도로 끝이었다. 그는 우선 치렁치렁하게 잔뜩 흐트러지고 몸 밑에 깔리기까지 한 제 머리카락부터 조심히 당겨 회수한 후 한 갈래로 대강 묶어두었다. 방금 전과 같은 불상사는 당분간 사절하고 싶었다. 그리고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매무새를 정리하였다. 그 다음엔…… 아, 잠시 앞에 누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유현은 이런 상황에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모르지는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폐를 끼쳤네요. 괜찮으신가요?"
미안하다 말하는 사람치고는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미안한 기색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진심을 다한 태도가 아니라는 둥의 문제는 우선 차치하고, 정신 차리자마자 그새 사람 관찰하는 습관이 튀어나온 것이다. 최소한의 예의 지켜야 한단 자각은 있기에 노골적으로 구경하는 티는 내지 않으려 했으나,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적어도 죄책감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했으리라.
저를 쿠션 삼아 있던 몸 위 무게감의 주인이 차츰 땅바닥으로 옮겨가자 그저 하얗기만 하던 시야도 서서히 트였다. 머리에 충격을 잘못 받고 눈이 이상해진 건 아니었군. 다행인 일이었지만 안심은 한순간이고 고통의 잔향은 길다. 머리, 어깨부터 등 무릎 손발목이 모두 욱신거렸다. 사고 당시 자세가 자세였던 만큼, 그리고 상대방과의 체구 차이가 차이였던 만큼 늘봄이 받은 대미지는 상당했다. 온몸으로 넘어지면서 머리와 머리를 부딪힌 건 마찬가지니까 저쪽도 고통이 심할 법한 데도, 연신 앓는 소리를 내는 자신에 비해서 얌전한 축에 속하는 반응에 늘봄의 마음 속에선 약간의 의아함과 억울함이 동시에 고개를 든다. 뭔데? 나만 아픈 거야? 물론 한쪽이라도 덜 아픈 게 좋은 일이고 큰 부상이라도 입었다면 피차 난감할 일이 되었을 걸 안다. 아니, 근데! 늘봄은 맺힌 눈물조차 채 닦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퍼뜩 들었다. 쌍방 과실인 건 알지만—사실 굳이굳이 따지면 아닌 밤중에 어둠 속에 잠복하고 있던 스스로의 과실이 조금 더 큰 것 같기도 했지만—누군지 얼굴 좀 보자!
"괜!..."
마구잡이로 '괜찮아 보여요?!' 정도가 튀어나올 예정이었는데 눈앞에 놓인 사람의 형상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오자 목부터 턱, 하고 막힌다. 푸르고 회색인 두 눈과 고향처럼 익숙해서 친근한 백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다.
"괜! 괜,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요! 아. 그러니까 솔직히 엄청 아프긴 한데... 아마 뭐 크게 다친 덴 없는 것 같고... 피도 안 나고..."
뭐라는 거야, 손늘봄! 갑작스럽게 너무 아름다운 걸 봐서 정신이 나갔나 보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있나. 직공이라는 건 언뜻 그렇지 않아 보여도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관찰 및 제조하고 세심하게 가다듬어야 하는 직업이었고 그러한 쪽으로 발달되어 온 민감한 감각은 대에 걸쳐 피에서 피를 따라 내려오며 늘봄의 몸 속에도 제대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건 일반적인 옷감이나 의상, 장신구, 풍경, 그림에서 시작해 사람이나 동식물까지 예외가 아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다. 늘봄은 아름다운 것에 약했다. 더 간단히 요약하자면 좀 얼빠였다.
"그리고 솔직히 민폐는 저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아서요. 아니, 당연히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뭘 좀 찾는다고 그만. 아무튼 저도 죄송해요. 어디 다친 덴 없어요? 크게 넘어졌는데."
그게 당신에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손늘봄의 신경이 영 다른 곳에 쏠린 덕분에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미안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라든가, 빤히 바라보는 시선의 본질이라든가, 다분히 상투적인 사과의 말 이전에 늘봄의 존재 자체를 잠시 잊은 것 같은 행동 따위는 크게 거슬리는 점이 되지 못했다. 이어진 말은 급격한 흥분이 가라앉고 올라온 이성과 진심이다. 불시에 찾아온 아름다움 덕분에 약간 누그러졌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지만.
가구에 부딪쳐 버렸을 때 조금 아프기야 했지만 고작 그것만으로 다리에 힘 풀려 이 사달 난 것도 다 근력 부족 때문이다. 한 손으로는 정수리를 조금 비껴간 머리 위쪽을, 다른 손으로는 들이박은 허리 부분을 짚고 있으니 조용히 앓는 성격인 그로서는 제법 아픈 기색 숨기지 않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 그게 중요하지는 않지. 아닌 밤중에 이리도 떠들썩한 방식으로 마주쳤으니 흥미 동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는 상대가 불연 고개 들기도 전에 저부터 먼저 다가가 얼굴을 바짝 가까이하였다. 표정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가뜩이나 아픈 와중 눈앞에 얼쩡거리는 짓이니 여차하면 한 대 얻어맞을 각오도 했건만─
웬걸. 다른 쪽으로 효과를 본 모양이다. 고개를 들 때까지만 해도 상대는 분명히 노기 서린 목소리로 운 떼었으나, 그 기세 순식간에 친절한 어조로 변모했다. 극적인 반응의 전환. 그 기복이 뚜렷하니 청룡인가 싶기도 하나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앞서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화를 낼 것만 같던 목소리 끊긴 시점이 제 얼굴 마주보았을 때였던 것이다. 유현은 그 잠깐의 당혹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 그는 제 생김새가 인간의 객관으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 모자라는 인간성을 외견으로나마 덮고 때로 이런 식의 호감 역시 살 수 있으니. 백룡의 호기심은 어느 때에나 불쑥 고개를 들고 제 존재를 피진한다. 상대가 말을 찾는 도중 그도 잠시 난데없는 고민에 잠겼다. 어떤 동물이 되었든 저마다의 미적 기준, 혹은 생존에 필요한 기능과는 별개로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특질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도 그에 포함된다. 하지만 그것이 제게는 결코 와닿지 않기에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아름다움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심지어는 이유 없는 호의가 되기까지 하는 걸까? 해답이 무엇이건 말없이 길바닥에 나앉은 채로는 의문해 보았자 답을 구할 수는 없으리라. 그는 가까웠던 얼굴 조금 뒤로 물리며 생긋 미소지어 보였다.
"화는 풀리셨나요?"
상대는 분명 괜찮느냐 마주 물었건만 엉뚱한 대답을 돌려준다. 곱게 휘어진 눈매 은근하니 무엇을 염두에 두고 꺼낸 말인지는 뻔했다. 다행히 제대로 된 답도 이내 따라붙었다.
"네, 큰 문제는 없네요. 멍이 조금 들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면 가만히 두어도 나을 테죠."
간혹 당장은 괜찮게 보이다가도 알고 보니 뇌진탕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지만 아마 그 지경까진 아니리라. 사실 정말 크게 다쳤다 하더라도 흥미가 동한 것 앞에서는 목숨이나 부상 따위는 뒷전으로 미뤄도 상관없다. 그는 고개 살며시 기울이며 순전한 호기심 담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