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한창 혈기 왕성하고 바람에 구르는 낙엽에도 눈물짓는 감성 풍부한 시기. 몸에 도는 피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해서 기행도 자주 벌이고 매일 비슷비슷해도 별 이상 없는 하루하루를 꼭 각자 달라야 한다는 것 마냥 잡고 늘어질 구석을 어떻게든 찾아내고, 없으면 끝끝내 만들어 내고야 마는 잡스런 기운이 넘치는 나이. 이 나이대의 학생들은 대개 지루함을 견디는 인내력이 한없이 부족하곤 했고 늘봄도 거기에서 크게 예외인 부류는 아니었던지라, 그는 이따금 남는 여가 시간마다 손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곧잘 꼼지락 거리거나 신체 단련으로 참칭한 뜀박질을 하며 1분 1초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곤 했다. 강도 높은 수업에 연달아 시달리거나 해서 특별히 신체적으로 피로했던 하루가 아니라면 이제 거의 버릇같이 된 가벼운 뜀박질로 평생에 걸쳐 피부 아래 스며든 한기를 수분으로써 배출해 내 몸의 건강을 독려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안정적으로 기동하도록 유도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딱히 수업이 힘들지도 않았고 특별히 힘 뺄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힘이 빠지던 다리, 늘어지는 사지와 하품만 연달아 나오는 입술, 가물가물 잠기는 눈꺼풀 따위의 반응은 썩 기이했고 영문 모를 것이었다. 늘봄은 움직이지 못해 도로 극을 달리는 감정을 삭이며 머릿속으로 이상 현상의 원인을 이 잡듯 뒤지다가 이내 포기했다. 좌우간에 오늘은 텄다. 괜히 무리했다가 병이라도 나면 불난 데 기름 붓는 꼴이 될 게 뻔하니 얌전히 있는 게 답이다.
그래도 말이지,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기엔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손늘봄 가라사대. 시간이란 금보다도 귀한 것이다. 이건 좀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지만, 적어도 오늘은 더더욱, 그런 기분이라고.
"심심해 죽겠다!"
뭐라도 해야 한다. 늘봄은 충동적으로 손에 집히는 걸 아무거나 껴안고 기숙사를 나섰다.
설렁설렁 거닐며 살랑살랑 들어오는 밤바람을 맞다가 그제야 손에 들린 것을 확인해보니 그 정체는 언젠가 만들다 말았던 자그마한 곰인형이다. 눈이 애매하게 달리다 말아서 한쪽만 있는 모습이 조금 기괴한 한편 게으름과 방치의 말로 같아 안쓰럽기도 해서 늘봄은 구비하고 다니던 반짇고리를 급히 꺼내고 안에서 굴러다니던 실과 바늘, 그리고 곰의 반대쪽 눈이 될 작은 구슬을 꺼냈다. 그래, 오늘 밤 날 잡았다. 내 너를 완벽한 자태로 완성시키리라. 비장한 다짐을 마음 속으로 읊조린 늘봄은 바늘에 실을 끼우다가 구슬을 떨어뜨리고 만다.
떨어졌다. 작은 구슬이 톡... 통통... 도르륵... 거의 들리지도 않을 소음을 만들며 바닥을 구른다. 몇초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하니 구르는 걸 보고만 있던 늘봄은 퍼뜩 정신을 차린다.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저 구슬과 같은 색깔의 구슬은 이제 없다. 저걸 잃어버리면 다른 구슬을 써야 하는데!
"앗, 어. 야! 야아! 안돼! 이 자식아, 어딜 가! 멈춰! 멈추라고!"
구슬에는 귀가 없으니 알아듣고 딱 잘 멈출 리가 없는데도 늘봄은 무의미한 비명만 지르다가 뒤늦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작디작은 구슬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춰버렸고, 결국 늘봄은 몸을 쪼그려 바닥을 짚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의 접촉사고가 발생하는 건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복도의 사각지대, 쭈그린 채 무릎걸음 하는 작은 체구의 학생, 어두움... 모든 요소가 두 동년배의 만남을 재촉하고 있었다. 가능한 안 좋은 방향으로.
류 가에서 죄인을 구속-집행 하는 행렬은 그 분위기 흉흉하나 매우 별나다는 말 종종 들었다. 열 명 남짓으로 무리 지은 이 행렬은 모두 머리부터 발 끝까지 붉은 장속 걸친 것 물론이오 붉은 베일로 얼굴마저 가려놓아 낮에 보면 모를까 밤길에 마주치면 숨 앗으러 온 괴이라 착각하고도 남았다. 거기에 전원 각기 다른 무구를 소지하고 있어 그 기세가 더욱 험악했다. 무장을 곁든 적색 일색의 차림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그들의 장속 등판에 빛 다른 붉은 실로 수놓은 연꽃이었다. 이 자수 하나가 유독 그리고 남달리 인상적이었다. 특히 과격한 현장을 거치고 온 후에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붉게 번들거려 더욱 존재를 드러냈다. 마치 그 자수가 피를 당겨 머금은 듯이 말이다. 위와 같이 눈에 띄는 모양새이지만 이들은 낮과 밤 가리지 않고 늘 당당하게 활보하며 그들의 소임을 다했다. 이렇다보니 하늘섬의 사람들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종종 볼 수 있었고 몇몇은 이들을 포함한 류 가의 사람을 가리켜 '붉은 연꽃' 이라고 언급하곤 했다.
"이보게. 그거 들었소? 령도에 '붉은 연꽃' 다섯이 다녀갔다더군." "아- 그거 말인가. 진작 들었지 이 사람아! 헌데 이번엔 별 일 없었다더만?" "일이 없다니. 죄인이 그새 도망갔다던가?" "아닐세 아니여. 그 반대여! 글쎄. 그 집 안에 고대로 가만히 있었다잖나." "아이고 세상에. 집 안에 그대로? 그- 제 부모며 형제며 제 손으로 다 도륙내놓은 그 집에?" "그렇다니까! 나올 때도 시뻘겋게 뒤집어쓴 그대로여가지고 그네들보다 벌갰다고 하더만. 하도 숭해서 그 다섯 중 하나가 제 옷으로 덮어서 데려갔다던데." "어허- 그리 얌전히 잡힐 것이면 뭣하러 그런 짓을 저질렀을꼬." "낸들 아나. 아무튼 잡혔으니 걱정할 일 없을걸세. 잡혀가서 나온 적 없지 않나. 거기." "그거야 그렇지. 비린 얘기 했더니 혀가 영 그렇구먼. 주점에나 갑세. 지짐에 곡주 한 사발 축이고 가자고." "좋지. 허허."
타인의 치부 혹은 알지 못 하는 부분을 건드리는 것은 자중해야 할 일이다. 긁어 부스럼이란 말이 괜히 있을까. 방금 제가 도령에게 물은 말 역시 그렇다. 어느 모로 보나 그리 좋지 못 한 부분임이 명확한데. 도령도 죽을 수 있다 경고하건만. 온화 표정 그저 흥미로이 웃을 뿐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인가. 글쎄- 한낱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언젠가 죽을 것이 분명한 팔자인데. 고작 죽음이 두려워 무엇을 못 할까."
낄낄. 마냥 가볍게 웃으며 도령 하는 행동 물끄러미 보았다. 상자에서 케이크 꺼내 먹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니. 그저 볼 뿐이었다. 제 몫을 챙기려거나 먹으려는 기색 전혀 없이 보고 있다가 오물대는 도령의 뺨 쿡 눌러보려 했다. 마치 먹는 것이 신기한 듯이.
"도령 그렇게 말하니 물러나지. 라고 하고 싶으나 궁금해 한 시간 제법 길어 그냥은 못 무르겠구만. 내 타협하여 왜 알려고 하면 안 되는지 정도는 들어야겠어. 그것도 안 되나?"
그 정도면 많이 물러줬다. 그런 느낌으로 말하고 탁자에 괴던 팔 내렸다. 때 맞춰 주문한 음료 나와서다. 빨간 자몽에이드는 도령의 앞에 그리고 홍차가 담긴 머그잔과 진한 갈색 액상 담긴 샷잔은 제 앞에 놓였다. 이미 레몬 한 조각 들어간 홍차에 샷잔에 담긴 액상 아낌없이 붓고 같이 나온 티스푼으로 휘휘 저었다. 붉은 찻물에 갈색빛 흩어져 진한 검붉은 빛으로 물들어간다. 동시에 코를 간질이는 달짝지근한 향 흘렀다. 익숙하게 향 살짝 즐기곤 아직은 김 모락모락 나는 기묘한 홍차 천천히 마시며 시선 물끄러미 도령 보았다. 이번은 대답 해 줄지 아닐지 지켜보듯.
자캐가_어렸을_때의_꿈과_현재의_꿈 : 앗. 아파요. 어렸을 때는 가문 사람들이 어머니와 자신에게 모질게 굴지 않고 인정도 받고 싶었대요. 자기도 사랑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나 뭐라나. 지금의 꿈은 사람들이 자기를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한대요. '사람'들이요.😏
행복해진_루트의_자신을_만난다면_자캐는 : 오늘 대체 왜 이런대요!🤦♀️
어느 의미의 행복인지 모르겠지만 과거부터 시작해 행복을 쌓은 자신을 만난다면 없는 사람 취급을 할 것이고, 미래의 행복을 쟁취해낸 자신을 만난다면 한없이 기뻐할 거예요.
전자는 아회에게 있어 희망고문이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후자라면 현재의 자신에게 있어 가능성이라도 있거니와 대화를 통해 숙원하던 것을 이룰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지만, 처음부터 행복함을 쌓은 녀석이라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
자캐식으로_프로포즈 : ((머리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고민의 끝까지 달려봤지만 마땅한 대사가 안 떠오름)) 으아악... 으아아악...🙉
#오늘의_자캐해시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아회, 어서오세요. 오늘 당신이 표현할 대사는...
1. 『불쌍하게도』 : "……동정이란 것은 값싼 기만에 불과한 것. 내 그대의 사정은 알 수 없소. 어떤 일을 겪었는지, 속이 어떤지, 무슨 과거가 발목을 잡았는지 감히 헤아리지 못하고 내뱉고 있음에 유감을 표할 뿐이오."
2. 『사라지고 싶지 않아』 : "아직,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오로지, 내가 해야만 하는, 내가, 흐윽, 곧 쥘 수 있는데, 이, 이 손으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아, 아아, 흐, 흐흑, 흐흐흐, 으흐흐흐흐흐─" "차라리 처음부터 죽여버리지. 그날 나를 죽였어야지……. 지랄맞게도 이놈이고 저놈이고 염병에만 온 힘을 쏟아서……." "아, 지, 옥, 영이랑, 영이랑 같이- 가기, 로, 했…는……데……." "어, 머니…… 죄ㅅ……."
((소름 끼치는 정적))
3. 『두 번 다시는』 : "……다시는 그러지 마시오." "자네는 아직 학생이지 않소. 배우고, 떠들며, 웃을 나이의."
"반복이란 것은 말입니다, 유일한 가치를 떨어뜨리게 하지요." "내로라하는 천재라 평가받고 자라셨으니 무슨 말을 하는지 익히 알았으리라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17세. 날 때부터 감수성 메말라 질풍노도의 시기에 다른 의미의 노도에 빠진 기인. 스스로 불러온 나약함에 시달리고 있는 소년, 화유현은 지난번 체력 단련 수업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제 생각하기에도 체력 수준 처참하니 좀 움직이면서 살아야겠다고. 그날 수업은 어찌저찌 따라갈 수 있었기에 이 정도면 괜찮겠거니 생각했건만 그 다음날이 되자 곱게 지내 온 근육이 혹사를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로 만 하루가 더 흐르고도 근육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쯤 되자 햇빛 싫어하니 곰팡이 같고, 안 움직이니 화초답던 화유현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방안에서 더위에 뻗어 있던 그는 제 팔을 눈앞에 가까이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당장 '뭐야, 이 가는 팔?' 같은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유현은 생각했다. 성격적인 문제도 평생 억누르고 사는 판에 몸 고된 일 정도야 못 버틸 것도 없으니, 일단 걸어다닐 필요가 있겠다.
최근 활동량이 줄어든 이유는 더운 날씨 탓이 컸으니 밤에라도 이제까지 하지 않았던 활동을 몰아서 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되리라. 가벼운 차림으로 나선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후덥지근한 여름날 밤 구태여 싸돌아다니는 학생은 그 말고는 아마 없는 듯하고, 텅 빈 복도는 적막하니 늦은 시각의 풍치 즐기기에는 제격이었다. 그리 생각하기가 무섭게 들려온 소란만 아니었다면. 불현듯 적막이 흐트러졌다. 머리칼 그러모아 올려 묶으려던 두 손이 우뚝 멈추었다. 소리의 정체는…… 그리 멀지 않은 저편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 시간에 이리 시끄럽게 굴 만한 일이 있기라도 한가? 가벼운 호기심에 발걸음 그리로 향하려던 차, 그는 앞을 제대로 보고 다녀야 한단 사실을 그만 간과하고 말았다. 정신 팔린 나머지 그는 모퉁이 곁에 놓인 낮은 장식장을 보지 못하고 그것에 골반을 거하게 들이박고 말았다. 그것도 모서리 부분에.
이 인간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라서 신음소리도 안 내고 아파한다. 독하다, 독해. ……아니, 이게 아니지. 그는 비명도 못 지르고 들이받힌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조금 뒤에야 몇 걸음 비틀거리며 그 자리 조금 벗어나려는가 싶더니…… 기어이 다리에 힘이 풀려 옆으로 무력하게 쓰러지고 만다. 하지만 유현은 넘어지기엔 도가 텄기에 갑작스러운 위기에도 신속히 반응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손으로는 머리를 보호하고, 아. 하필 머리 묶느라 남는 손이 없었지. 그리하여 여기, 화유현과 손늘봄은 피치 못할 불운을 마주하기에 이른다. 이 세상을 극본이라 한다면 다소 진부하고도 인위적이란 혹평을 들어도 모자랄 방식으로.
감명 깊게 잘 읽었어요...😌 온화네는 오늘도 알쏭달쏭한 사건과 떡밥과 류가 간-지-가 느껴지고 아회네는 진단이... 맵다.... 하지만 한국인이 매운맛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맵지만 맛있네요... 특히 유언이나 다름없는 마지막 말 부분이요 히히 오타쿠는 이런 거 못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