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자버렸다. 여름만 되면 체력이 생각보다 많이 빠져 잠이 자연스레 늘어버린 탓이다. 이 잠이라는 것도 극단적인 것이, 언제 눈을 붙이더라도 새벽 5시만 되면 귀신같이 깨던 것이 지금은 갑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부스스 눈 뜨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 무아회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몸을 잽싸게 일으키자 가슴팍 위에 있던 목화가 굴러 떨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붙잡는 것에 성공한 이후로 그날의 운수는 끝이 나버렸다.
어찌어찌 준비를 끝내고 나니 시간은 또 훌쩍 지난 것만 같고, 또 머리를 틀자니 오늘은 손이 급해 빗질도 제대로 안 되는 날이다. 헛손질 몇 번 하던 아회는 안 되겠다 싶어 머리를 대충 손에 휘감고 다른 손으로 가느다란 붓을 부여잡았으나, 뚝 소리가 나며 손아귀에서 두동강이 나지 무언가. 그는 그런 붓을 허망한 시선으로 내려다 보다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인간이 다 이렇지 뭐……."
그건 그거고, 지각은 지각이다. 그는 문을 쾅 소리가 나게 열었고, 목화를 어깨 위에 얹지도 못하고 품에 어화둥둥 안은 채 부적을 두 개나 태웠다. 북쪽 장군님 축지법 쓴다는 제사장 집안 아이들의 놀림을 무시하고 도착한 것은…….
"늦어서, 죄송, 합니다."
아! 상호 합의적으로 육신의 온전한 존립 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보완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지만 최근 있었던 일로 하여금 복슬삑삑 목화의 정서상 좋지 않았음을 깨닫고 적룡 자아도 격하게 동의를 표한 바 노잼 무아회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번에도 바깥으로 나가는듯 싶었다. 하지만 요괴를 사냥하는 산과는 다른 방향이었는데 그곳으로 향하는 학생들도 가는 길에 드문드문 보였다. 수업이 진행 되는 곳에 도착하자 먼저 온 학생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수업을 해주실 도사님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듯 했다.
" 흠 ... "
늦잠이라도 주무시는건가 싶었지만 보통 그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머리를 한번 긁적이곤 주변을 좀 더 둘러보려 앞으로 나아갔다.
느릿느릿 걸음 옮겨 화원으로 나가니. 저와 같은 붉은 두루마기의 학생들과 하 사감 있었다. 면식이 있는 이들과 눈인사 손인사 나누며 그 사이 섞여들었다. 이제 얌전히 수업이나 들어야겠거니- 했는데 저를 본 하 사감 반응 영 이상하다. 제가 여기로 오면 곤란하다나.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고개 비스듬히 기울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오늘은 여가 내켜서 왔을 뿐인데. 학생이 수업 들으러 오는 거에 곤란하고 자시고 할게 있나."
말한 것처럼 제가 여기 있어서 뭐가 곤란한지 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곤란하다니까 이걸 빌미로 삼아볼까?
"정 곤란하면 자습 때려놓고 저 뒤에서 면담이나 하면 어떻소. 물을 것도 있고 하니."
대충 둘러댄게 통할까 싶긴 한데. 되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다. 그런 말 툭 던져놓고 그 새 옆에 있던 후배 하나 옆구리에 끼고 노닥거린다.
한 번 걸음하기로 한 이상 쓸데없이 미적거리기보단 빨리 고생하고 끝내는 편이 더 낫다. 운동장에 도착할 즈음엔 유현은 완전히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니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선생을 빤히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은 고작 인사 한 마디 건넨 것이 다이니 무언가 다르다는 낌새는 눈치채지 못한 채였다.
"……보시다시피 경험 부족이네요."
대답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주먹질이 더 빠르게 날아들었다. 영 뵈는 것 없는 눈이라 그것이 공격인지 무언지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맞아버리고 만다. 조금 비틀거리던 것도 잠시였다. 이야기가 갑자기 이리로 흘렀다는 것은 즉……. 그는 곧바로 다리에 힘 싣고 현진의 무릎을 내리밟으려 했다. 흐름 상 싸우자는 말인 듯하니 미력한 반격 시도해 보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큰 불이익은 없는 듯싶다. 어쩌자고 늦잠을 잔 건지, 당혹스럽던 마음을 갈무리하며 품 안에 조심스레 안았던 목화 혹여라도 놀랐을까 손가락으로 살살 쓸어준다. 오늘은 아침부터 수난이 많았는데, 얌전히 따라왔으니 퍽 고생 많았다. 그것보다 파견된 도사, 지선…… 소개가 이어지던 중, 그는 목화를 향한 시선이 서서히 올라가더니 자신을 향한 눈웃음이 되자 다소곳이 자세를 고쳤다.
"……지선, 말입니까?"
재미있는 아이라면 목화 님을 데리고 있기 때문인 건가, 저번에 현진 도사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본다. 땅신령에게 인정 받은 인간은 빠르게 지선이 될 수 있다 하였던가. 지선이라, 영광된 자리이긴 하다마는. 과연 북부의 피를 이은 자가 그런 영광된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그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선택받는다 한들 시선으로는 무엇도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흥미는 있으나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을 택해보려 합니다. 지선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는 늘 그렇듯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덤덤하니 감정 희미하나 요지는 간단했다. 지선이 되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늘의 뜻일 것이라고. 자리에 앉으려 할 적엔 목화 먼저 조심스레 책상 위에 앉을 수 있도록 손 조심히 뻗었다.
"좋아합니다. 차 또한 미적지근한 것을 좋아하지요."
과거 점술 들었던 학생의 얘기 귀동냥으로 듣자 하니, 찻잎점이라 하였지. 흥미가 동한다. 찻잎으로 앞날을 볼 수 있다는 것인가? 신기하기도 하지.
>>383 눈치 안 보고 은근슬쩍... 그러나 당당하게 치 하고 싶은대로 하고 인간 구경은 좋아하고 평소에 무슨 생각 하는지 잘 모르겠고 근데 영 똑부러지는 느낌은 아니고... 그렇습니다(끄덕) 가현이도 야무지게 낼름 하는 거 뭐냐구요 완전 사랑에 빠진 여고생 그 자체(?)인데 왠지 고혹한 분위기~😏
>>386 앗 평범하게 날리신 건줄 알았어요...ㅋㅋㅋㅋㅋㅋㅋ 잘 다녀오시구~ 조심히 들어오세요!!!
과거의_자신을_만난_미래의_자캐가_해주는_한마디 : "두려움은 네가 만드는 것이지 느낄 것이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울 터이다. 지금은 느낄 때이니. 양껏 두려워해도 좋다. 숨길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울고, 두려워하고, 화내고, 웃고, 짜증 내고. 하고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표출해라." "……미래는 그래도 순리대로 올 터이니."
자캐에게_연애의_끝은_결혼인지_물어보자 : "……이 세계에 정조를 지키는 행위는 오히려 이상성욕이라 불리운다오. 집안의 부흥을 위해 연애도 없이 결혼하는 마당에…… 연애의 끝이 결혼이냐 묻는 건 둘 중 하나지." "머리에 꽃만 들어찼거나, 남 속내 긁으려는 것이거나."
손가락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자캐는_커뮤가_엔딩난_후에_가장_먼저_무얼하러_갔나요 : 음~ 엔딩이 나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새 의도했던 것보다 깊숙히 들어와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람 소리마저 잔잔해지고 자신이 내는 소리 말고는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윤하는 이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하늘의 색깔이 아까보단 더 어두워진 것이 아무래도 날이 저무는듯 했기 때문이었다.
어라. 곤란해지는게 하 사감이 아니다? 그 말 들으니 등골 오싹해진다. 제가 무얼 했어야 했던 것 같은데 그걸 하지 않아서 곤란해질 것 같달까. 그렇게 되면 처지가 반대가 되잖는가. 아이 귀찮게. 감이 안 좋아도 평소 찾던 수업을 들었어야 했나.
이것저것 생각은 많이 나지만 그 뿐이다. 이미 와버린 수업 바꾸는게 더 귀찮다.
"에잉. 수업 하나 날로 먹을랬더니."
자습 내주고 저랑 놀자하니 됐단다. 면담은 나중에 사감 방으로 오라길래 어깨 으쓱이고 옆에 낀 후배에게 장난질 쳤다. 거 하루 논다고 아무 일도 없을건데. 그렇지 않니? 아직 저학년인듯 뺨에 솜털 보송한 사내아이 톡톡 건들며 희롱하다가 하 사감 손짓 힐끔 보았다. 가까이 오라는 거 같으나 흥 하니 고개 돌려 무시했다. 놀아줄 것도 아니면서 왜 오래. 나눠주는 부적이나 휙 뺏듯 받아들고 팔랑팔랑 흔들었다.
이걸로 불을 피워보라- 는 건 주술 써보라는 의미겠지. 주술로 해보라니. 왠지 싫다.
"음- 통과 안 하면 수업 안 끝나오?"
부적 쓸 생각 티끌도 없어보이는 얼굴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제 옆구리에서 꼬물대는 후배더러 먼저 해보라고 하고서 그거 구경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