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 자리에서 일어날 적부터 그런 예감이 들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뭔가 생길 것만 같은 예감.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눈 뜨자마자 벽에 세워둔 역린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무시 할 수 없는 감인 것은 맞았다. 그리고 그 감각은 수업을 들으러 갈 적에 더욱 선명해졌다.
"흠-"
허리춤에 역린 끼고 삐딱하게 서서 오늘의 수업 목록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일전 수업 어쩌고 들었지. 인정 받으면 좋을 것이고 아니면 뭐랬더라. 어쩐지 아주 오래 전에 들은 것처럼 기억이 가물거려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그래도 잘 생각나지 않아 에라 모르겠다 하고 걸음 옮겼다.
수업 안내표를 앞에 두고 화유현은 현재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떤 수업을 들을지의 문제로 곤혹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어렴풋이 선택은 했으나 그냥 가기가 싫어서 고민하는 척 뻗대고 있는 중일 뿐이었다. 그러잖아도 빈약한 몸뚱어리, 덥다며 한동안 꼼짝도 않으며 식물 같은 생활 좀 즐겼기로서니 이렇게까지 부실해질 수가 있단 말인가? 본래부터 없던 근육이 쑥쑥 빠지는 것을 스스로 체감한 바 그는 결국, 이젠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때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체력 단련해야지…….
힘이 없구나.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라면 힘을 내야지.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여하간 운동은 좀처럼 주관 뚜렷이 드러내지 않는 그가 확실하게 호불호를 표하는 몇 안 되는 종목에 속했다.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생물은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를 싫어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로 시작하는 이런저런 변명을 다 쳐내자면, 그냥 땀이 불쾌하고 싫다는 이유밖에 안 남는다. 하지만 어쩌겠나. 동물로 태어난 이상 필수적인 활동량을 충족해야만 하는 것을. 답지 않게 조금 미적거렸지만 결정 내린 이상 더 시간 끌 필요는 없다. 그는 곧바로 수업 장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아, 빨리 걷다 지치면 안 되니까 조금 천천히.
늦잠을 자버렸다. 여름만 되면 체력이 생각보다 많이 빠져 잠이 자연스레 늘어버린 탓이다. 이 잠이라는 것도 극단적인 것이, 언제 눈을 붙이더라도 새벽 5시만 되면 귀신같이 깨던 것이 지금은 갑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부스스 눈 뜨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 무아회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몸을 잽싸게 일으키자 가슴팍 위에 있던 목화가 굴러 떨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붙잡는 것에 성공한 이후로 그날의 운수는 끝이 나버렸다.
어찌어찌 준비를 끝내고 나니 시간은 또 훌쩍 지난 것만 같고, 또 머리를 틀자니 오늘은 손이 급해 빗질도 제대로 안 되는 날이다. 헛손질 몇 번 하던 아회는 안 되겠다 싶어 머리를 대충 손에 휘감고 다른 손으로 가느다란 붓을 부여잡았으나, 뚝 소리가 나며 손아귀에서 두동강이 나지 무언가. 그는 그런 붓을 허망한 시선으로 내려다 보다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인간이 다 이렇지 뭐……."
그건 그거고, 지각은 지각이다. 그는 문을 쾅 소리가 나게 열었고, 목화를 어깨 위에 얹지도 못하고 품에 어화둥둥 안은 채 부적을 두 개나 태웠다. 북쪽 장군님 축지법 쓴다는 제사장 집안 아이들의 놀림을 무시하고 도착한 것은…….
"늦어서, 죄송, 합니다."
아! 상호 합의적으로 육신의 온전한 존립 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보완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지만 최근 있었던 일로 하여금 복슬삑삑 목화의 정서상 좋지 않았음을 깨닫고 적룡 자아도 격하게 동의를 표한 바 노잼 무아회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번에도 바깥으로 나가는듯 싶었다. 하지만 요괴를 사냥하는 산과는 다른 방향이었는데 그곳으로 향하는 학생들도 가는 길에 드문드문 보였다. 수업이 진행 되는 곳에 도착하자 먼저 온 학생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수업을 해주실 도사님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듯 했다.
" 흠 ... "
늦잠이라도 주무시는건가 싶었지만 보통 그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머리를 한번 긁적이곤 주변을 좀 더 둘러보려 앞으로 나아갔다.
느릿느릿 걸음 옮겨 화원으로 나가니. 저와 같은 붉은 두루마기의 학생들과 하 사감 있었다. 면식이 있는 이들과 눈인사 손인사 나누며 그 사이 섞여들었다. 이제 얌전히 수업이나 들어야겠거니- 했는데 저를 본 하 사감 반응 영 이상하다. 제가 여기로 오면 곤란하다나.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고개 비스듬히 기울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오늘은 여가 내켜서 왔을 뿐인데. 학생이 수업 들으러 오는 거에 곤란하고 자시고 할게 있나."
말한 것처럼 제가 여기 있어서 뭐가 곤란한지 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곤란하다니까 이걸 빌미로 삼아볼까?
"정 곤란하면 자습 때려놓고 저 뒤에서 면담이나 하면 어떻소. 물을 것도 있고 하니."
대충 둘러댄게 통할까 싶긴 한데. 되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다. 그런 말 툭 던져놓고 그 새 옆에 있던 후배 하나 옆구리에 끼고 노닥거린다.
한 번 걸음하기로 한 이상 쓸데없이 미적거리기보단 빨리 고생하고 끝내는 편이 더 낫다. 운동장에 도착할 즈음엔 유현은 완전히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니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선생을 빤히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은 고작 인사 한 마디 건넨 것이 다이니 무언가 다르다는 낌새는 눈치채지 못한 채였다.
"……보시다시피 경험 부족이네요."
대답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주먹질이 더 빠르게 날아들었다. 영 뵈는 것 없는 눈이라 그것이 공격인지 무언지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맞아버리고 만다. 조금 비틀거리던 것도 잠시였다. 이야기가 갑자기 이리로 흘렀다는 것은 즉……. 그는 곧바로 다리에 힘 싣고 현진의 무릎을 내리밟으려 했다. 흐름 상 싸우자는 말인 듯하니 미력한 반격 시도해 보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큰 불이익은 없는 듯싶다. 어쩌자고 늦잠을 잔 건지, 당혹스럽던 마음을 갈무리하며 품 안에 조심스레 안았던 목화 혹여라도 놀랐을까 손가락으로 살살 쓸어준다. 오늘은 아침부터 수난이 많았는데, 얌전히 따라왔으니 퍽 고생 많았다. 그것보다 파견된 도사, 지선…… 소개가 이어지던 중, 그는 목화를 향한 시선이 서서히 올라가더니 자신을 향한 눈웃음이 되자 다소곳이 자세를 고쳤다.
"……지선, 말입니까?"
재미있는 아이라면 목화 님을 데리고 있기 때문인 건가, 저번에 현진 도사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본다. 땅신령에게 인정 받은 인간은 빠르게 지선이 될 수 있다 하였던가. 지선이라, 영광된 자리이긴 하다마는. 과연 북부의 피를 이은 자가 그런 영광된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그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선택받는다 한들 시선으로는 무엇도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흥미는 있으나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을 택해보려 합니다. 지선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는 늘 그렇듯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덤덤하니 감정 희미하나 요지는 간단했다. 지선이 되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늘의 뜻일 것이라고. 자리에 앉으려 할 적엔 목화 먼저 조심스레 책상 위에 앉을 수 있도록 손 조심히 뻗었다.
"좋아합니다. 차 또한 미적지근한 것을 좋아하지요."
과거 점술 들었던 학생의 얘기 귀동냥으로 듣자 하니, 찻잎점이라 하였지. 흥미가 동한다. 찻잎으로 앞날을 볼 수 있다는 것인가? 신기하기도 하지.
>>383 눈치 안 보고 은근슬쩍... 그러나 당당하게 치 하고 싶은대로 하고 인간 구경은 좋아하고 평소에 무슨 생각 하는지 잘 모르겠고 근데 영 똑부러지는 느낌은 아니고... 그렇습니다(끄덕) 가현이도 야무지게 낼름 하는 거 뭐냐구요 완전 사랑에 빠진 여고생 그 자체(?)인데 왠지 고혹한 분위기~😏
>>386 앗 평범하게 날리신 건줄 알았어요...ㅋㅋㅋㅋㅋㅋㅋ 잘 다녀오시구~ 조심히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