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은 알렌이 힘없이 웃다가 이내 침묵하자 '내가 말을 잘못 했나...?'싶어서 조금 긴장한다. 그렇지만...알렌이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잠시 기다려본다.
"응. 알렌 형은...다시 찾아내서 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었지?""
이어진 알렌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답한다.
"난...처음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 같아. 특히 기왕이면 재능있는 사람들을 말이지. 그 땐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고, 명확한 꿈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특별반을 지켜보고 싶어서 오게 됐었어. 그래서 미리내고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오마니께서 지원해주시더라고. 입시 준비할 땐 나도 그 특별반이 될 줄은 몰랐긴 하지만..."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그는 설명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강산은 신규 입학생이었고, 지금은 벌써 겨울과 봄을 지나 초여름.
"처음엔 마냥 신났어. 다른 곳에선 배울 수 없는 걸 배우고,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발전을 구경할 생각에 말이지...나 같은 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니 중간에 낙제해서 일반반으로 보내지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 그런데... 다윈주의자들로 인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희생자가 나와서 급우가 될 뻔했던 사람들이 죽었대. 살아남은 사람들마저도...영월 습격 작전 알지? 살아님은 특별반마저도 위험에 처하게 되니까 외면할 수가 없더라고."
들어오게 된 이유만으로는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강산의 답은 길어진다.
"그리고 그날 영월에 참전했을 때 깨달았어. 나도 이미 관객이 아니라 배우들 중 한 명이었다는 걸."
내가 원하지 않는 결말을 피하고자 한다면, 구경하기만 해선 안 된다는 것 또한 알았지. 굳이 말하지 않은 비밀 문장을 속으로 되뇌이며 알렌을 돌아본다. 그리고 알렌이 하려는 말이 무엇일지 기다려본다.
"당연하게도 모든 순간, 모든 장면을 함께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각각의 공연자에겐 각자의 순번과 배역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내 차례가 아닌 동안 다른 사람에게 귀를 기울여주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뭘 좀 아네? 거기 버팔로 윙도 끝내주거든. 겉은 완전 바싹 익어서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번지르르해서 이거 퍽퍽한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드는데, 딱 한 입 베어물면 적당한 육즙이 입 안에 감돌고 쫄깃하면서도 버석하진 않은 절묘한 식감이 크으... 거기다 탄산 음료 하나 곁들이면 천국이 따로 없지. ”
상점가의 골목이 넓어봤자 얼마나 넓겠는가! 버팔로 윙의 맛을 떠올리면서 조디악은 고개를 끄덕인다. 개꿀.
“ 뭐, 안내하는거야 어렵지 않으니까. ”
거기다가 음식물을 섭취할때도 심볼이라는 저 헬멧을 쓰고 있을지가 궁금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조디악은 벽에서 등을 떼고 따라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까닥하며 앞서 걷기 시작한다.
“ 소문도 알려줄 수야 있긴 한데... 진짜 듣게? 누가 들어도 헛소문인데. ”
비유하자면 유찬영이 영혼의 단짝을 만나 결혼식을 올린다는 급의 황당무게한 찌라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한두 번은 맞을 걸 각오했고, 지금도 각오하고 있다. 방어막이 깨져나가는 소리와 깨진 틈새로 들어오는 불꽃에 한 쪽 눈을 찌푸리지만, 다른 쪽 눈이라도 부릅뜨려 한다. 마도사인 이상 얼핏 거리를 두고 중열 내지는 후열에 서는 것이 유리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상대는 거너다. 방아쇠 한 방에 의념 탄환이건 화약이건 순식간에 날아올텐데 어정쩡하게 거리를 두는 것은 의미없을 것이 분명하단 것이다. 그리고 강산에겐 근접 공격에 적합한 마도 기술도 있었으니, 차라리 가까이 붙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이성적인 판단만이 거리를 좁히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긴 하지만. 마도 B에 이른 이상 이제 예전부터 습관적으로 해왔던 손동작이 필요하진 않았다. 스태프에 불의 의념이 옮겨붙어 도깨비불을 피운다. 그 동시에 신체와 신속을 강화해 스태프를 양 손으로 쥐고 힘껏 휘둘러온다.
쏘아진 불꽃이 방어막을 깨트리고 피해를 입혔다. 순간 비릿한 웃음이 지어졌다. 서로의 기량을 비교하며 공격과 방어를 연습하는 일종의 수행과도 같은 대련의 본질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일 뿐.
토고는 스태프에 모여진 의념을 포착한다. 그것을 휘두르려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토고는 총을 이용해 막으려 하다가 자신이 들고 있는 것은 고르돈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그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스태프를 쥔 그의 손목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려 한다. 허나 대응이 늦은 만큼, 확실하게 도깨비불에 맞아 토고는 피해를 입는다.
거리가 벌려진다. 흙벽이 세워져 그의 모습이 가려졌지만, 손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는지 스태프를 쥔 손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흙벽이 무너진다. 일부러 이런 걸 노린 건가? 거리를 벌리기 위함인가? ...그 정도라면 어울려줘도 될 것 같았다. 어쨌든, 사정거리에만 들지 않으면 되니까.
토고는 그와의 간격은 유지한 채, 옆으로 뛴다. 흙벽이 무너지는 방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며 그를 향해 의념탄을 쏘아대며 견제와 더불어 공격을 날린다.
태어난 게 잘못인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 잘못인가? 개개인의 잘못인가? 토고는 그의 물음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이러는 이유도, 어른답지 못한 이유이기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어찌됐을까.
토고는 꾹 닫은 입을 천천히 연다.
"싫지 않다."
사실이다. 강산 이라는 사람만 두고 본다면, 싫어하진 않는다.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긴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확대한다면 싫다. 좋은 집 자제로 태어나서 가문의 비전과, 방랑이라는 일탈을 목숨의 위협 없이,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그것이 싫다.
"근데, 싫다. 누군가는 발악을 해야 발끝이 겨우 닿는데 누군가는 별 다른 노력 안 해도 쉽사리 얻어버리는 그 운명이 싫다." "아예 무지했으면 모를까.. 적당히 머리 굵어지니 눈에 다 들어오는데, 이 화를 표현 할 수 없는 현실이 싫고" "차라리 나쁜 놈이었음 화를 내든 내가 피하든 욕을 하든 뭘 하겠는데 사람이 좋은 게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