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산은 쉽사리 고개를 들지 못한다. 싫지 않다면 왜?라는 의문이 떠오를 때쯤 토고의 답이 이어지고 그는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
토고의 답이 끝나자 이번엔 강산 쪽이 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침묵한다. 분명 강산도 모든 걸 마냥 쉽게만 얻은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한때는 원하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이 있었고, 또 형제들이나 부모와 비교당하던 때가 있었다. 또 그가 방랑하는 동안 아무런 고생이나 위협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특별반 입학 조건인 레벨 20은 재능이 있다 한들 결코 고생 없이 달성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고, 가문의 비전 역시 그에게 비전을 익힐 의지가 전혀 없었더라면 여전히 익히지 못한 채로 남았읗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고생했다'같은 말은 그에게 변명처럼 들릴 것이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고?"
지난 날들의 감정을 담아 강산의 입에서 결국 짜증섞인 한 마디가 나와버린다.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고.
"그래요 그쪽 사정 모르고 눈치없이 나댄 건 제가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근데 우리 오마니가 국가유공자라서 내 집안 환경이 이런 건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고."
어차피 토고의 말대로 타고난 환경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강산은 앉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더니 엘 데모르의 시전을 해제한다. 발판이 사라짐과 동시에 강산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더니...
"못 나면 우리 오마니 반도 못 따라간다고 ×랄, 잘 나면 집안 빨 받고 잘 나가는 거라고 ×랄! 그냥 때리라우."
다시 자세를 잡으며 욕설과 함께 눈을 부릅뜨더니, 염동 마도로 토고를 세게 밀쳐내려 한다. 그딴 이유로 미움받는거면 이유없이 미움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도 않으니, 차라리!
강산주 그... 토고는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지금 강산이의 저런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하고 있으니까... 착한 사람이 무너졌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너도 그런 인간이야.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서 희열 느낄 것 같거든..? 그런데 이걸 그대로 표현해도 될까..? 강산이랑 관계가 엄청 틀어질 것 같은데 그러면 최대한 다른 방향으로 잡아보고
크크... 크하하하 토고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디어 그의 또 다른 면이 튀어 나왔으니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인 척 했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이다. 화를 내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사람이다. 그 꿈을 가지고서 타인에게 그리 말하는 모습이 썩 보기 좋았다. 드디어 나와 같은 진흙탕에 구르는 구나 하는 희열감도 들었다. 그러나 이게 정말 옳은 걸까. 내가 운명이란 것이 증오스럽다고,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럽다고 타인에게 이러한 감정을 품고 그를 해하는 행위를 해도 되는 걸까.
"..."
토고는 웃음을 멈춘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염동파를 피하지도 못하고 토고는 그대로 직격하여 쓰러진다. 육신에 가해지는 충격보다 깊은 바다에 빠진 듯한 정신이 더 괴로웠다.
"그랴, 니는 항상 이렇지."
나쁜 뜻은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토고는 몸을 일으킨다. 참으로 증오스럽고 혐오스럽고, 이러한 감정을 어디로 토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항상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거. 더러워 지는 거 지 혼자면 되지 굳이 남까지 더럽히지 않는 거."
어린 시절의 장면 몇몇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이래서였나? 어디를 가든 쑥덕이는 소리와 시선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혹은 내가 활약하는 것이 다른 이들의 기회를 뺏는 일이 되기도 했었기 때문에? 차라리 못난 놈 취급받더라도 너무 튀지 않으려 했었던건가? ...그래. 정말 좋아하는 것이 아닌 한 금방 흥미를 잃었던 데에는 그런 이유도 없진 않았었다.
그래서 강산은 특별반이 좋았다. 특별반에선 모두가 특별한 구석이 있었고, 심지어 강산보다 눈에 띄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기에 특별반에서 때때로 강산은 강산 자신일 수 있었다. 미리내고에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가야금을 버리지 않고 아이템화 의뢰를 맡아보기로 한 것도, 영월 습격 작전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한 것도. 가문의 입장을 고려한다든가 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되길 바라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느라 남이 잘 되길 바라지 않고 오히려 추락하는 것에 기뻐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거의 잊고 있었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세상에 있던 것이 없던 게 되진 않더라.
염동 마도에 맞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웃음소리를 흘리는 토고를 노려보며 이를 악문다. 그러다가도, 그가 일어나지 않자 한편으로는 슬슬 의아해하려던 차에 토고에게 귀를 기울인다.
"...나라고 항상 좋은 사람이 되진 못 해."
토고의 말을 듣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되묻는다.
"대련은 어쩌고?"
공격하지 않는 상대를 다시 공격하기엔 그도 좀 뭣하긴 했다. 말투를 존대로 되돌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18번째. 예고했던 빚 탕감 얘기는 일상 끝날때쯤 나올 것 같아요. 이 다음다음레스쯤?
사실 토고에게는 훈타 말고도 다른 길이 있었지만... 이제는 왜 이런 길을 택했을꼬 하는 후회가 몰려온다. 다 먹고 살고자 하는 일이겠지만. 이제와서 후회한들 뭐하리... 걍 해야지.
"끌끌... 니 재밌네. 근디, 주씨는 이미 있다. 아주 유명한 도련님이다."
어쩌면 둘이 형제 지간이래~ 하는 소문은 퍼질지도 모르겠다. 토고는 힘차게 열리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선다. 아재라고 불린 금발 청년은 장사 한다 말하고 토고는 처음보는 그에게 가볍게 목례한다. 테이블 하나에 두 사람이 앉고 메뉴판을 내민 것을 받아든다. 흠흠... 페퍼로니, 치즈, 콤비네이션, 피망, 양파, 멸치..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