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정과 비아냥을 알았을 터인데도 그냥 흘려버리는 것 보고 픽 웃었다. 그래. 어차피 그는 그런 존재다. 다른 사감은 몰라도 하 사감은 어느 인간이 그의 앞에서 무얼 하든 눈도 깜짝 안 할 것이다. 심기를 건드린다면 모를까. 제가 건드린대도 아직은 역린 쥐고 있으니 봐주는 것일 테지. 순간 순간 저와 동떨어진 것 깨달으나 의미 없다. 실실 웃는 얼굴로 그저 말할 뿐이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면 거 죽을 가능성이 높겠구려. 무어. 함구하겠다면 달리 알아보면 그만이지."
영 사감에 대해서는 언급하면 짜증이라도 낼 줄 알았으나 의외로 별 반응이 없었다. 웃는 것 보니 어차피 아무 것도 못 들을 것이라 생각하나? 말린다면 그를 이용해 들을 수 있는 것 있겠지. 하 사감 비웃든 말든 어깨 으쓱였다.
"말리려 한다면 내야 좋지. 그걸 빌미로 뜯어낼 수 있는 것 분명 있을 테니."
당장 제게 득이 된다면 약이든 독이든 이용하면 그만이다. 역린 쥐고 놓지 않는 것도 술을 이토록 주구장창 마셔대는 것도. 새 맥주캔 내어주자마자 냉큼 받아 열고 입에 대었다. 이번엔 조금 천천히 몇 모금 마시고 하 사감 말에 히히 웃었다.
"에이. 셔틀로 생각하긴. 이 오밤중에 학생 땡깡 받아주고 술도 달라는 대로 주는- 감사한 사감이라 생각하네만? 너무 과찬이라 낯간지러운가?"
키득키득키득. 술 거하게 취한듯 연신 웃어대나 눈동자 붉은 빛 또렷한 것이 전혀 취하지 않았거니 보인다. 그래 보이건만 마냥 취한 척 하 사감 어깨에 제 팔 슥 두르고 기대 나른히 중얼거렸다.
"하해와 같은 은혜에 내 어찌 보답해야 하나 싶은데. 하 사감님이여. 먹고 마시는 것 외에 향락은 관심 없으신가?"
스슥 천 스치는 소리 나며 제 붉은 두루마기 자락 살짝 아래로 늘어진다. 험히 놀아도 나름 계집이라 관리는 하였는지 어깨며 허벅다리며 뽀얗다. 히- 웃는 낯에 눈웃음 더하고서 하 사감 빤히 보았다.
외출할 적 교복이 아닌 옷을 입는 것은 꽤 오래간만이었다. 옅은 도포, 자신의 모습을 타 학생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반투명한 비단 드리운 멱리까지. 다만 남에게 모습 보이지 않는 효과보다는 길 잠시 헤맸을 적 더운 날씨에 내리쬐는 해를 가려주는 것이 더 마음에 들었으리라.
"외출을 들키면 좀 곤란한지라, 부득이하게 치장하고 말았지요."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다르겠지. 수선을 맡겨 매화 자수 있는 붉은 두리 소매 도포요, 바림질 되어있는 용 자수 두루마기 교복 차림이 적색이 일색이기에 위용과 단호함을 돋운다면, 지금은 색 배치부터가 유령 같은 고요함과 고아한 미를 더 돋우고 있었을 테니. 아회 비단을 천천히 걷어내곤 차분하게 지팡이 손잡이를 더듬었다. 동생이라.
"어떤 부분에서 그리 느끼었는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염려하는 부분에서 형님과 저는 다르니 안심하시지요."
말을 듣지 아니한다고 썰어내진 않는단 뜻을 덤덤하게 전하고는, 아회 주변 슥 둘러본다. 사람 없음을 확인하곤 품 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아직 줄 생각은 없는지 팔을 뻗지는 아니하고, 고개 느릿하게 기울였다.
꼬드기면 넘어올 지도 모른다더니 이것 봐라. 말 잘 하는 것이 저만 그런가. 칼 같은 거절에 미간까지 찡그리는 것 보고 나름 상처 받은 표정 지었다. 그럴싸하게 생겨선! 속으로 불만 투덜이며 맥주캔 비웠다. 분풀이 대신 하듯 빈 캔 구깃구깃 누르다가 영노란 말에 힐끔 흘겨보았다.
"내가 끌고 오고 싶어서 끌어왔나. 주니까 받아온 것을."
잔뜩 괴롭혀진 캔 휙 던져놓고 두루마기 자락 펄럭 열었다. 방금 생각나긴 했지만 전에 받았던 영노의 호드기 그 안에 달려 있었다. 두루마기 안쪽에 끈으로 달린 호드기 들었다 놓자 대롱대롱 흔들린다. 영노가 뭐였더라. 뱀이었나 사자였나. 그 둘 섞인 것이었나? 에이 모르겠다. 두루마기 내려 놓고 검지로 하 사감 볼 꾸욱 누르며 조잘대었다.
"비린내 나면 뭐 어쩔 것이여. 뺏어서 내다 버릴 텐가? 흥이다. 못되게 구는 댁보다야 이 영노가 훨씬 귀엽겠네."
거진 투덜거림 투성이 말 줄줄 늘어놓더니 에휴- 제풀에 한숨 길게 내쉰다. 이러는게 다 무슨 소용이냔 듯. 숨 내뱉으며 낮아진 목소리 그리 덧붙인다.
"여즉 말없다 갑자기 물어보긴. 이것 학당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인가? 그럼 밖으로 치우던가 하겠지만."
제 가문이 이런 물건 다루는데는 도가 텃으니 말이다. 안 된다면 조만간 집에 들러 맡기고 오면 될 것이다. 그런 생각 했다.
이무기라 하는 것 보니 뱀인가 보다. 하긴 비린내 나는 것이 뱀 아니면 무어겠냐만. 그렇다 쳐도 하 사감의 이런 반응은 조금 갸웃해진다. 영노라 해도 고작 요괴 아닌가. 신수에 비하면 격이 낮지 않나. 그런데 비린내가 난다며 불쾌해하고 대놓고 싫단다. 하지 말라던 볼 누르기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무엇이 이리도 그의 심기 건드는 걸까. 슬그머니 손 내리고 하 사감 빤히 보았다. 궁금하면 물어야지.
"이리 성 내는 건 내 학당 다니며 처음 보네. 무엇이 그리도 싫은 게요? 물린 적이라도 있소? 뭐를 먹혔거나."
저 분노의 연유 알 길 없으니 이건가 저건가 하고 물어보곤 저도 따로 생각을 해보긴 한다. 저리 단순한 이유로 이렇게 싫어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흠. 방금 무어라 했더라. 불쾌한 비린내가 나고. 양반 백 명을 먹으면 용이 되고. 용이, 된다...?
저도 모르게 생각이 말이 되려는 것 막아세운다. 설령 맞다 하더라도 그것 제가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니 태연하게 당신 왜 그러냐 하는 시선 보낸다. 뭐가 그렇게 싫어서 으르렁대느냐고.
"싫으면 진작 잡아 족치지. 이리 두고 있는 댁도 별종이여. 음."
저리 싫어하니 조만간 기회 되면 써서 버리든가 해야겠다. 쓴 다음은- 저도 모르지. 썼을 때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가볍게 생각하며 하 사감 위로 폭 늘어진다. 싫든가 말든가. 비린내가 나든가 말든가. 제 알 바인가. 작게 하품 하고 제 머리 그의 어깨에 기댔다. 사람꼴 하고 있는 동안은 알차게 즐겨야지.
앟 전화 한통 하고 왔더니 보배로운 AI그림이 있을 줄이야~~~! ^Q^ 손가락은 지금 AI 중에서는 니지저니가 그나마 낫다고 들었는데 이건 아직 안 써봤고... 링크 두번째 짤처럼 손은 안 보이는 구도로 하거나 차라리 뒷짐지게 하거나 뭔가 짚고 있게 하거나... 그렇게 하는게 조금 더 자연스러울것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