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낄 웃은 하 사감은 온화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손짓해서 새로운 맥주캔을 건넸습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온화를 응시했습니다.
' 날 무슨 술셔틀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주? '
>>418 윤하
' 흠 '
궁기는 가만히 식료품점 방향으로 가는 윤하를 보다가 생각에 잠겼습니다. 식료품점과 윤하를 번갈아보더니, 한 손으로 턱을 쓸었습니다.
그리고 꽤 대담하게, 그는 자신의 호랑이 반 가면을 벗고서 그것을 까마귀에 들려 어디론가 날렸습니다. 맨 얼굴을 동생 외의 학생에게 보이는 것은 처음일텐데. 궁기가 자신의 어깨를 휘감은 뱀의 턱을 쓸었습니다. 시선을 살짝 멀리 돌린 채, 윤하의 맞은편에서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부딪히듯 그는 윤하가 가까워졌을 때 쯤에야, 몸을 살짝 옆으로 비꼈습니다.
식료품점에서 사야할 것들을 다시 확인하려 미리 써둔 메모를 확인하려던 윤하는 마침 눈 앞으로 다가온 사람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힐뻔 했다. 다행히 저쪽에서 먼저 피했기에 그는 황급히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 아, 죄송합니다. "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다닌 자신의 책임도 있으니 먼저 사과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다 학당 학생이냐고 묻는 상대방의 얼굴을 그는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눈웃음, 그것만 본다면 꽤나 선한 인상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깨 위의 뱀과 눈을 마주치자 그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 아, 네. 마지막 학년입니다. "
자신이 학당 학생임을 묻는 것을 보면 예전에 학당을 졸업한 선배인 것일까. 마침 오늘은 두루마기도 입지 않고 나와서 물어보는 것 같았다.
" 그것을 물어보는걸 보면 학당의 선배님이신가요? "
이 정도를 묻는 것은 실례는 아니겠지. 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도 마찬가지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궁기는 그립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미안하다는 것처럼 눈썹을 아래로 끌어내렸습니다.
' 미안해요, 갑자기 말 걸어서. '
낯선 사람이 알은 체하니, 싫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 듯 그가 말했습니다.
' 마지막 학년이면, 곧 졸업이겠네요. 기분이 꽤나 싱숭생숭 하겠어. 그러고보니, 뭐 하나 물어도 되나요? '
궁기는 여전히 미소 지은 채, 윤하를 응시했습니다.
' 최근에 학당 문이 굳게 닫혔던데, 그 이유를 아나요? 아는 애가 거길 다니는데, 최근 일주일 동안 연락 한 통이 없었거든요. 물어봐도 답변이 하나 없어서... ' ' 아, 답장 자체가 안 와서 무슨 일 있나 싶었어요. 학당으로 방문하고 싶어도 외부인은 방문이 안 되니만큼.... '
무탈한 날이었다. 학당에서 수업이 없는 날임을 전날 확인했기에 오늘 하루는 느긋하게 보내고자 하였다. 평소 기상시간 보다 두 시간 정도 늦잠을 자고, 몸를 단장한 뒤 가볍게 아침을 챙긴 뒤, 남은 시간은 푹신한 러그, 따스한 벽난로 주변에 앉아 목화에게 책을 여럿 읽어주던 무탈한 하루. 마지막 책을 읽어줄 적 삑삑대며 호랑이는 정말 곶감을 무서워하느냐 묻는 조그마한 털 뭉치를 손가락으로 잔뜩 간지럽히고, 삐비빅 웃음을 터뜨리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던 조그마한 존재를 위해 아회는 부적을 태웠다. 제 몸에 가두듯이 눕히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삐롱삐롱 조그맣게 숨소리 들려오자 아회는 느긋하게 뺨을 비비고는 자신도 잠에 들고자 자세를 바꿨다.
그러자 무탈한 하루의 마무리라는 듯 벽난로가 불타며 서신이 나타났다. 처음엔 어머니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나 싶었으나 가문의 인장은 찍혀있지 않고, 신변에 문제가 생겼더라면 다른 것도 함께 왔을 터였으니. 아회 고개 까딱이자 서신이 자연스레 펼쳐져 러그에 안착했다. 내키지는 않지만 일단 읽어보고자 손을 뻗는다.
"……."
어디 보자, 그래, 슬슬 서신 보낼 때가 되긴 하였지. 몸을 웅크리자 불 그림자가 일렁였다. 잠든 조그마한 목화를 손바닥에 고이 올려두고, 푹신하고 조그마한 베개와 얇은 이불이 있는 목화 전용 침대에 눕혀준다. 손가락으로 다독거리며 작게 편지를 쓴다. 잠시 외출할 터이니, 오래 걸리지는 아니할 겝니다. 그리고 화장대 거울 앞으로 걸어가 지팡이를 쥐고 안경을 찾을 적, 아회는 저도 모르게 몇 번 더 화장대 한구석을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 맞다.
그 빌어먹을 흑룡 기숙사의 사감 때문에 개박살이 났지.
……오늘 하루는 조금 더 힘이 들겠구나. 손을 까딱여 상자가 날아오게끔 하고는, 품 속에 넣어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열었다 닫았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었다. 장소는 천부……. 그 사람의 냄새는….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은 아닌지."
과신한 탓에 조금 더 헤매고 말았다. 천부야말로 사람 찾기 끔찍하게 어려운 곳이거늘 무엇 하러 과신하였는지. 평소와 달리 멱리 쓰고 아스라히 백색 가까운 벽람빛 도포 차림이니, 교복 입은 학생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