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적으로 조성된 공터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게이트에 처음 들어올적 조우했던 거대한 인공지능을 회상하고 있었다. 지식의 끝을 본 선구자들이 방문자들에게 자신들이 깨우친 위대한 진리의 편린을 전수하는 곳. '선악의 구분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금 위험하긴 하겠지만...' 악용이 되진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머릿속을 부유하던 생각들을 깔끔히 정리한다.
" 내가 고민 해봤자 달라지는것도 없고. "
작게 기지개를 켜며 잡스러운 걱정을 날려보내며 튕겨오르듯 일어섰다. 이렇게 생각이 복잡할때는 몸이라도 움직여야 괜한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있기에 기술이나 연습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요정의 나뭇가지를 가볍게 쥐어들었다. '기왕이면 혼자보단 대련이 좋을거 같은데...' 주위를 두리번 거리곤 누군가가 오지 않을까 하며 잠시 시간을 보낸다.
"여기서 대련을 하면 보통은 대련이 너무 격해지기 전에 인공지능 스승님들이 와서 말리시긴 하지만... 그럽시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죠."
철의 제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한다. 강산도 큰 부상을 입어서 차후 의뢰 수행에 지장이 생기거나 하는 것은 곤란한 입장이었으니.
[현재 사용이 가능한 대련장은 이 쪽에 있습니다.]
철이 이미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강산 또한 '백두'를 꺼내니, 때마침 나타난 인공지능 스승이 대련을 하려는 둘을 적당히 대련하기 좋아보이는 공터로 안내한다. 스스로가 조심할 뿐 아니라 인공지능 스승도 지켜보고 있는 듯 하니, 큰 부상이 생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련장으로 이동하며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여기 들어올 때 조금은 언행을 신경쓰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이번엔 사양하지 않을게요."
강산도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잡는다.
[준비.]
그 짧은 사이에, 강산은 의념을 끌어올린다. 대련의 준비를 겸해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고민 하나에 잠깐 영성을 할애한다. 평소대로 할까 평소에 잘 안 쓰던 걸 써볼까?
[시작!]
그리고 시작 음성이 들리자마자...가문의 비전 마도 엘 데모르를 시전한다. 게이트의 침식 현상을 닮은 마도가 주변의 공간을 순식간에 지배한다. 지금 강산이 하고 있는 것은 강철 주변의 땅을 흔들고 올록볼록하게 만드는 정도이지만, 아마 이것도 강철에겐 상당한 방해가 될 터였다. 어쩌면 그러다가 철의 발 밑이 갑자기 낮아져서 넘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시작과 함께, 주위 공간을 잠식하는 의념을 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게 그...' 저번에 전투할때도 봤었지만, 특이한 마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식의 견고함으로 미뤄볼때 역분해는 비집고 들어가지도 못할것이 분명했으므로, 다른 방안을 모색하는게 옳겠지.
" 처음부터 강하게 나오... 윽...?! "
갑작스럽게 주위의 땅이 요동치고, 요철이 생겨 거동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마도 B의 영역에선 주위 환경을 어느정도 무시하며 시전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안정적인 환경에 비해선 집중을 더욱 요구했다. 반격을 위해 뒤로 몇걸음 물어나려고 함과 동시에 솟아나온 돌부리에 걸려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져 자세가 무너졌다. 처음부터 묘하게 웃긴꼴을 연출함과 동시에 헛웃음을 지어보인 나는 넘어진 상태로 의념을 끌어올려 식을 맺었다. 내가 방금 떠올린대로. 마도를 B정도로 끌어올렸다면 주위 환경이 어떻든, 무슨 자세를 하든...
" ...반격정돈 할 수 있습니다! "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짜여진 의념이 거대한 물방울의 형태를 취하고, 허공에서 터져 물벼락을 강산의 머리 위로 쏟아낸다.
.dice 1 100. = 95
//9 방어를 따로 굴리는편이 서술이 매끄러울거 같아서... 따로 굴렸습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강산은 의도대로 철의 자세를 흔드는 데에 성공하자 애써 웃음을 참는다. 자세가 너무 가벼우면 무례해보일 거라구.
철이 반격은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마도를 시전한다. 반격에 대응하기 위해 상대를 집중해서 본다. 상대가 같은 마도사이므로 누워있더라도 방심하지 않으려 생각한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산이 오판을 했다는 거지만. 그러니까, 철이 공격이 그의 시야 바깥, 머리 위에서 아래로 들어오고 있다는 걸 한 발 늦게 알아차렸단 것이다. 평소라면 마도로 받아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엘 데모르를 다루는 연습을 해보겠다고 그 시전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지금 강산의 수준으로는 다른 마도를 쓰려면 먼저 엘 데모르의 시전을 해제해야 하는 것이다. 역분해를 쓰기에도 너무 늦었다. 놀란 표정으로 헛손질을 하다가 머리 위에 발판을 만들어 막아보는 것으로 대응하려 하지만, 늦었을뿐더러 발판의 위치도 정확하지 않아서 결국 물은 강산의 위로 떨어져 얼굴과 옷을 적신다.
"푸흡...!"
강산은 얼굴을 막고 물기를 닦아내며 버둥거리면서도, 철이 있는 자리의 바닥을 푹 꺼트려서, 적당한 깊이의 구덩이를 만들어서 떨어트리려 한다.
시야 밖에서 누군가가 물에 시원하게 적셔지는 소리가 들리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행스럽게도 반격이 제대로 들어간듯 싶었다. 주위의 지형을 조작하는 기술은 확실히 위력적이고 대처 하기 어려운 기술이지만, 1:1의 상황에선 어느정도 돌파구가 생긴다. '이것도 숙련도가 낮을때만 가능하겠다만...'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다, 주위의 땅이 진동 하는 것을 느끼자 빠르게 뒤로 굴러 자리에서 벗어난다. 그러자 아주 약간의 차이로 자신이 있던 자리에 구덩이가 생긴것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훔쳤다.
" 이런 덩치로는 구덩이에 꽉 낀단 말입니다. "
씨익하고 웃으며 가볍게 농을 던진뒤 나뭇가지를 가볍게 쥐고 흔들자 무형의 의념이 나뭇가지의 끝에 맺혀 방울져 떨어진다. 투명하게 응축된 의념이 일순간 자신이 뿌린 물을 타고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다.
철의 영창에 반응해 바닥의 물기가 얼어붙고, 강산은 냉기가 그를 덮치기 전에 뛰어오른다. 그대로 로프커넥트를 사용해 위로 이동하려고 하지만....
"으윽!"
대응이 늦어 발목이 잡혔다. 그 바람에 이동에 실패하고 바닥에 엎어진다. 강산은 '적룡의 눈 쓸걸....'이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대련을 속행한다.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수가 필요한데...그래, 이렇게 하면 어떨까. 방금 떠올린 '적룡공훈장'이 가진 효과를 발동시킨다.
▶ 적룡의 눈 - 전투 중 한 번, 망념을 50 증가시켜 발동할 수 있다. A랭크 상당의 화염 보호막이 발동된다. 보호막은 파괴되기 전까지 유지된다.
화염 보호막이 강산의 발목을 붙잡은 얼음을 녹인다.
"A랭크가 좋긴 좋네요! 원래 이런 용도는 아니지만...!"
발목이 얼어붙은 느낌이 없어지자마자, 강산은 남은 화염 보호막을 두른 그대로 신속을 강화해서 몸을 날려, 강철을 들이받으려 한다. 누가 알랴, 실전에서 이런 방법을 써야 할 때가 생길지?
레벨 30대에 진입한 각성자는 빙판에 넘어지는것 정도로는 다치지 않는다. '...괜찮겠지?' 그래도 저렇게 엎어지면 걱정이 된단 말이지. 잠시 걱정스런 눈빛으로 엎어진 그를 바라보다 이어지는 행동에 눈을 크게뜬다. 불꽃의 구체를 몸에 두르더니 그대로...
" ...발사됐다? "
아주 잠시 당황을 하긴 했지만, 빠르게 진정하며 의념으로 영성을 강화하여 어떻게 저 공격을 대처할지 머리를 굴린다. '얼핏 봐도 몸으로 들이박히면 아프다로 끝날 화력은 아니고...' 최소한 B랭크 이상으로 보이는 화염덩어리(강산)의 궤적을 빠르게 계산해낸 뒤 주위의 빙판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신속은 낮고, 몸을 기민하게 움직이는 재주도 그다지 없지만 주위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 아슬아슬 하겠는데... "
다시 한 번 나뭇가지를 가볍게 흔들어 의념을 바닥에 흘려보낸 나는 그대로 다리를 움직여 빙판을 미끄러지듯 이동했고, 아주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그가 달려드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덕분에 수염 끝부분이 조금 탄거같긴 하지만...!
" 이건 반칙 아닙니까 강산씨? "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며 농담을 건낸 나는 연기가 나는 수염의 끝부분을 대충 비벼끄곤 의념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렸다. 형체를 이룰 정도로 응집된 의념이 주위의 빙판을 부숴서 끌어당기고, 다시금 구체의 형태를 취했다. 의념을 가득 머금어 강렬한 존재감을 띄는 얼음 구체를 그대로 보호막과 충돌시키려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