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일상적인 이야기로 이어가는 듯하면서도 질문의 다음이 또 질문으로 끝난다. 뭐, 정말 이런 행동이 지긋지긋했다면 10년 전에 진작 질렸을 테니 무의미한 질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뜻은 이것이다. 정말로 지겹지 않다 느끼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진저리가 나면서도 참아주는 것인지. 의외라면 외외로 그는 이런 제 습관이 남에게는 꽤 귀찮은 짓이라는 자각이 있었다. 이어 온화의 표정을 마주한 그는 더 말 잇지 않고 묵묵하게 있을 뿐이다. 눈 아래로 내리깔아 느릿하게 감고 뜨길 두어 번.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고 머리를 떠돌았다. 다만 화유현은 평생을 의문하는 이였으니 머리가 어지러운 정도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래서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단념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생각이 많아져 더 듣더라도 이야기를 온전히 정리하기 어려울 듯하니 말이다. 천천히 정리할 시간을 가져야만 무엇이라도 이해하리라.
"그러면 너는? 넌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들을 만한 이야기 다 들었다 싶으니 이번에는 질문의 방향이 바뀔 차례다. 슬며시 기울인 고개에, 상대방을 향해 싱긋 휘어진 눈이 제법 반짝거리는 것도 같다. 염치라곤 없는 녀석이 걸려온 적도 없는 공정거래를 하자는 속셈은 아닐 테고, 역시나 그는 말갛게 보이는 눈 뒤로 다소 속물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밀을 일부나마 공유한 사이가 된다면 언젠가 온화의 입이 더 가벼워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어차피 그 자신은 비밀이라고 할 중요한 인생사가 없기도 했다. 제 비밀은 비밀이 아니었다. 단지 누구도 깊이 묻지 않았기에 지금껏 말하지 않았을 뿐. 온화와 같다면 같을지도 모르는 이유였다.
"아니, 머리카락 뽑혀."
힘 빼는 건 싫지만 내버려두면 힘 대신 머리 빠지게 생겼잖은가. 역시나 길이가 어느 정도를 넘어서니 거추장스럽다. 그냥 잘라 버릴까? 돌아가면 고려해 봐야지. 깔린 머리칼 살살 당겨보았지만 미동이 없다. 결국 유현은 힘 빼는 짓 하는 수밖에 없었다. 온화의 말랑통통한 팔뚝…으로부터 더 안쪽의 옆구리를 미력하게 밀어본다. 적극적으로 홱 밀쳐서 치워 버리기보다는 데굴데굴 굴러주십사 부탁하는 꼴이다.
뭐 하나 거를 타선이 없이 공평했던 다갓.. 그리고 룰렛... ^Q^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향성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캐이입 찐하게 하다보면 놓치는 부분 생겨서 나중에 후회하기는 하지만 일단 내가 내 캐 구르는거 굉장히 즐기고() NPC 하나하나 전부 소중하게 느껴지고 정감가고... 일상도 이제 그냥 일상이 아니라 행동이 반영되는 그런 방향이라 최고다 여기가 괜히 갓어장이 아니구나~~!
이 정도라도 들어준다면 좋을 텐데. 공감이 되는 말이지만, 신이 그런 소원을 들어줄 존재는 아닐 터다. 오히려 이 정도라도 들어달라고 비는 목소리를 유심히 듣기만 하다가 비웃는 것이라면 몰라도. 진작에 포기했고, 포기를 넘어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최소한에 가까운 그에게 있어 신께서 들어준다는 말은 영 달갑지도, 가깝지도 않은 말이었다. 뭐, 당신이 더 말 붙이지 않는 것을 보아 당신도 엇비슷한 상황이겠거니 싶을 뿐이다. 주절주절 신에 대해 예찬했더라면 그는 잘 빌어보라며 자리를 떠버렸겠지.
"……무엇이냐 말한다 쳐도 필히 다르겠지. 인간은 같은 곳에서 잠을 자도 다른 곳에서 꿈을 꾸는 법인데."
아마 서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렇게 덤덤하게 얘기하고는, 입 구석에 남은 초콜릿 칩 혀밑으로 굴려 넣어 녹였다. 어차피 언젠가 깨달을 일이다. 자신의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쳐도 받아들일 확률은 적고, 물들 수도 있으니 그저 길잡이만 해줄 뿐이다.
"에잉, 흑룡이란 이해할 수 없구료."
단지 그렇게 말할 뿐이다.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닌데도 어찌 남을 신경 쓰느라 자신조차 가누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기숙사의 성향 상 흑룡 기숙사를 배척하는 본능을 부여받았거니와, 그 이전부터 타인에게 설명하기 힘든 성정을 타고났기 때문에. 누군가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대체 왜 상관을 쓰고 자신을 돌보지 않으려 드는 것인가, 어차피 배신 당하는데, 인간의 관계란 영원할 수 없거늘 어찌 그런 것에 의존하는지 알 수가 없다. 쿠키 하나를 더 집어 들 적, 그는 그 자세 그대로 잠시 멈추고 귀를 의심했다. 령도에 바닷가가 있어 물놀이를 즐기기 좋다.
"확실히 바다라면 즐거이 놀 수 있을 터이지."
쿠키를 집어 든다. 바다로 가자, 누군가 애처롭게 얘기했던 것이 귓가를 맴도는 것만 같다. 아회야, 바다로 가자. 령도로 가면 많은 것을 보자. 너울거리는 비단처럼 춤추는 파도를, 하늘을 유영하는 새를, 햇빛 속에서 찬연히 빛나며 바스러지는 백사장을. 그렇게 속삭였건만 바다는 정작 한 번도 가지 못했고, 눈에 담지 못했다.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은 어째 기억의 편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바다는 내키지 않는다 얘기하면 그것은 약점이 된다. 타인에게 약점을 들키느니 입을 다무는 것이 옳다. 그는 쿠키를 입에 밀어 넣고 침묵했다.
"……적기는 언제라도 생길 수 있겠지. 지금 갔다간 익사할 것만 같아 령도는 꽤 무섭구료."
침묵 뒤엔 농담답지 않은 농담을 던진다. 현 상황에서는 진짜 죽을 것 같은 위험이 도사렸으니, 가볍고도 경박한 농담이겠다. 그러고는.
온화 문득, 이제와서 그걸 묻느냐는 표정 지었다. 유현이 제게 이러는 것이 귀찮지 않냐 질리지 않냐는 물음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화가의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작은 손 잡았을 때부터 햇수로만 따져도 10년이다. 중간의 공백기는 제쳐두고- 각자 학당 들어오고서는 얼굴 더 자주 보며 지냈다. 이러는 것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새삼스럽지 않은가. 그러니 말로 할 필요도 없단 듯 어깨만 으쓱이고 말았다.
대화의 화두라는 것은 한 쪽이 잇길 멈추면 그대로 끊기는 것이다. 자연스레 흐름 바꾼 유현의 말에 그 반짝이는 눈 지그시 바라보았다. 무엇을 바라서 저러나. 대충 짐작은 간다. 비밀이거나 하지 않았던 얘기 서로 풀음으로서 그 뒤의 얘기 들으려는 것일 터다. 학당에 들어온 후로 유현에겐 계획적이 면모가 새롭게 보였다. 그 대상엔 저도 포함이란 건가. 매정하다 싶으면서도 유우답다 생각한다. 그러니 조금은 어울려주자 싶어 줄곧 궁금했던 것 하나 물었다.
"그러네. 그러고보니 네 눈. 어쩌나 그 사달 났는지 들은 적 없는 듯 한데?"
작년, 아니 재작년이었나. 갑작스레 유현의 시력 나빠졌던 것 기억한다. 당시에는 방에 불 좀 켜고 살라며 흘려넘겼지만 그저 흘리기엔 내내 가슴 한 켠에 박혀있던 가시였다. 그것 이제 무언가 들어나보자. 그리 묻고 킥킥 웃었다. 유현의 손이 옆구리 닿아서다.
"그러니까 그냥 누우면 된대도. 거 참. 고집하곤."
간지럼 잘 타듯 몸 살짝 움츠린 온화 곧 옆으로 데굴 굴러 머리카락 내어준다. 구른 김에 엎드려서 멀찍이 있던 베개 가져와 제 머리 밑에 받친다. 그대로 눈만 감으면 잠들지 않을까 싶은 모습으로 유현 응시했다. 이제 대답이나 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