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칭찬받았다. 가현은 기쁘다는 듯 미소지었다. 적어도 내 사랑이 빗나가고 있지는 않았구나. 보이지 않더라도 사랑 하나만큼은 향해야 할 곳을 잃지 않은 채 제대로 향하고 있구나.
"응. 열심히 들었으니까요~ 동 사감님께서 저번 수업에서 말씀하셨잖아요? 이런 것도 사랑ㅇ"
한껏 잘난 체를 하면서 떠들어대는 목소리가 뚝 끊긴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한 몇번 말을 더 하려고 시도하는 듯 싶다가 가현은 묵묵히 입을 닫고 오물거린다. 너무해. 말을 못 하면 몇몇 저주는 못 쓰는거 아니야. 더 많은 사랑을 드릴 수 있었는데. 볼에 바람이 차 볼록해진다. 너무해.
그래도 주변을 느끼고, 당신을 느낄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금방 만족할수 있었다. 다른것이 전부 잠기더라도- 자신은 촉각 하나만 남아있다면 충분하다고 여겼기에.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그 분을 느낀다는 죄의식은 크겠지만 그 정도는 이해해주실 수 있겠지. 가현은 부적 두장을 재차 꺼낸다. 말을 못하니 빠르게 사람 모습을 접어내고, 이름도 쓰고, 접은 사람의 머리 부분에 피로 점을 두 번 찍어 불태운다. 당분간은 쓰던거 계속 써야지.
윤하는 얼굴을 찡그렸다. 기껏 저주를 쓰고 도술을 맞춰도 의미가 없는듯 했다. 사감님도 진명을 알지 못하면 죽이지 못한다며 조롱을 하는듯 했다. 어릴적엔 그가 한마디 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었기에 침묵의 삶을 살았기에 그가 말을 못하게 되는 것은 어릴적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불러오는 것은 짜증, 증오.
' 진짜로 죽어도 원망하지 마세요. '
설마 진짜로 죽겠나싶었지만 혹여 정말 죽여야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는 망설일 생각은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죽인다. 언제 동 사감님이 다시 폭주해서 이런 일을 벌일지는 알 수가 없었으므로 싹을 잘라내고 싶은 것이었다. 이런 불쾌한 경험은 인생에서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 그나저나 진명이라 ...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
손에 쥔 부적을 허공에 던지며 생각했다. 던져진 부적은 사라지고 동 사감님이 있던 자리의 대기가 찢어지며 파열음을 일으켰다.
하 사감, 춘 사감, 동 사감인 당신도 모두 다 인간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을 무언가이다. 춘 사감과 같이 얼굴에 돋아나는 비늘. 이내 나방인지 용인지 모르는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연은 놀라지 않는다. 춘 사감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보고 난 후로, 모두 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것이다. 연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선배, 아니 궁기가 했던 곧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이 이것이었던가. 이 상황에 사감이란 자들은 멀리 물러나 있고, 막아내는 건 저희들이라. 지끈거리는 머리에 연은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짚는다. 그러다 부적 두 장을 손에 드니, 동 사감을 향하여 지금의 짜증을 번개로써 내리치려 한다.
.dice 1 2. = 1 .dice 1 10. = 7
HP 1000 부적 18/20
763Oh, bo you know Key MAN?◆ws8gZSkBlA
(w5dtdSJkmg)
못 걸으면 나갈 수 없노라 생각했는지, 다리에 힘이 빠져버린다. 털썩 주저앉았음에도 그는 수치를 느끼지 않았다. 무력감도. 보살핀다는 말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오로지 갈피없는 분노만 품을 뿐. 주저앉아 결국 주먹을 휘두를 수 없다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 죽일 수 없다면 죽을 만큼 괴롭게 만들면 된다.차라리 죽여달라 비는 것이 좋았겠노라 회고하도록. 입 벙긋거려도 소리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입모양 걸쭉하게 단어 하나를 뱉는다. 아마 욕설인 듯싶다.
─.
나오지 않는 소리를 뒤로 부적 꺼내 입으로 물어 찢는다. 불타오르는 네 발 달린 짐승 형상이 야차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시도한다.
이 와중에 다행스러운 점은 잠기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겠다. 유현은 막 사용했던 도술을 쓸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직감을 느꼈다. 연달아 제약이 걸리다니 불편하기 짝이 없는 수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감은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상해를 가하지는 않고 있으니 그것이라도 위안 삼기로 했다. 또한 이런 처지에도 시도할 수 있는 행동은 아직 남아 있었다. 가진 모든 것을 잃을 때까지, 그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도 선생님이신데, 학생들에게 힌트라도 알려줄 수는 없으신가요?"
진짜 이름을 모르면 방법이 없다라, 농담처럼 유현이 가볍게 물었다. 사감을 붙잡아두는 데엔 실패했지만 덕분에 상대의 현재 위치 만큼은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바위는 조각나고, 흙이 바스러져 고운 가루로 흩날린다. 날카로운 입자의 모래바람을 몰아쳐 사감을 덮치도록 이끌었다.
.dice 1 2. = 2 .dice 1 10. = 3 HP 1000 부적 12/20
시각 차단 3/6
767Oh, bo you know Key MAN?◆ws8gZSkB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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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거구나. 우리 사감님도 참 욕심쟁이라니까. 동 사감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가현 역시 방긋 미소지었다. 그렇게 자신을 갈망하고 원해주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상대가 원할수록, 자신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을 속삭여주며 전해줄 수 있었으니까.
다음 저주를 쓰려고 준비하던 참에 또 무언가 잠기는듯한 느낌이 났다. 아. 이렇게 되면 내가 수업을 잘 들었다는걸 보여드릴수가 없는데. 사랑을 증명할 방법이 또 하나 줄어드는데. 저에게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저는 사감님을 사랑하기에. 위험마저 등진 채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랍니다. 동 사감이 있을 방향을 한참 바라보던 가현은 부적을 두장 더 꺼내 휙 날린다. 닿는 자리에 후려친듯한 충격이 있게끔.
흑룡 기숙사 사감님이라고 저주만 쓰길 원하시는지 비슷한 종류의 도술은 아예 사용이 안되는듯 했다. 방금 쓴건 청룡 기숙사 학생들이 사용할법한 것이었으니까 흑룡의 입장에선 꼴보기 싫었던 것인지.
' 아니 그러면 이 입이나 좀 열어주고 그런 말 하던지. '
눈이고 귀고 입이고 다 잠궈버리려고 하면서 정작 이런거 쓰는꼴은 못보는게 참 너무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힘의 우위가 명백하니 걸려버린 저주는 해주하긴 힘들듯 했다. 그럼 진짜로 흑룡답게 저주 하나만 믿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아까 물어뜯어 피가 조금씩 새어나오는 손가락을 다시금 물어뜯은 그는 부적에 동 사감님의 이름을 적어내고선 그대로 땅에 던져 짓밟았다.
짜증에 소리 지를 적에 목에 매실 씨앗이 걸린 것 같이 느껴지니, 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뱉어지지도 삼켜지지도 않는 것에 제 목에 손을 가져가며 기침을 하나 꽉 막혀 아무 소리도 내뱉지 못한다. 억눌린 감정을 밖으로 내뱉지 못하니 연은 입술을 꽉 깨문다. 동 사감을 보고 다시 부적 두 장을 손에 든다. 말하지 못 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제 화를 다시 번개로써 내리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