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소리가 들려온다. 눈이 보이지 않았는지 이제 보인다는 목소리도, 때에 맞지 않는 산뜻한 소리도, 거기다 뒤에서 들리는 사감의 목소리는…… 듣지 않은 걸로 하기로 했다. 비틀거리며 걷는 소리도 들린다. 어두운 복도 속에서, 그는 상당히 많은 것에 대한 불쾌함을 느꼈다. 아마 대다수 비슷한 감각을 느끼고 있을 터다. 잃었노라고, 잃었다고. 그걸 느끼는 건 잠시일 뿐이면서도 그리 많은 불평을 뱉겠지. 인간이란 그런 법이다, 언제라도 조금만 잃는다 하면 그리도 불쾌를 표했다. 지금 상황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며 회피하려 든다. 적어도 그가 살아오며 봐온 편협한 시선에서 인간은 그런 존재였다. 자신도 다를 바는 없으나, 그래도 하나 다른 점은 있는 것 같다.
이 세계에선 원래 이런 삶이 정상이노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 허락하지 않은 것이 들어오노라, 사라지노라. 그렇기에 지키려고 영원히 가두려 든다. 영원히, 그래, 영원히. 명분은 주어졌고 이성은 과거를 헤집는다. 영원히, 영원히, 그 빌어먹을 영원은 대체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니려고. 깨진 단안경을 벗어 바닥에 떨군다. 그리고 부적 불태웠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타오르듯 떠오르더니, 영거리에서 사감을 쏘아 맞추려 든다. 빗나가도 괜찮다. 맞을 때까지, 그리고 정신을 차린다 해도 멈추지 않으면 될 일이다. 부적이 다 타오를 때까지.
알아서 오히려 좋지 않을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걸 한 번도 묻지 않고 넘어가면 화유현이 아니다. 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나아가자, 또다시 어두운 복도가 그를 맞이했다. 여전하게도 침잠한 공간이다. 문득 밤벌레처럼 뒤틀린 사감의 형상과 이곳이 썩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영원히 보살핌 받다가는 굶어 죽게 생겼답니다."
아, 한데 굶주림은 으레 사람의 인간성을 마모시키고 지옥과도 같은 참상을 불러온다 하더라. 아직 목도한 적 없는 경험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니 다같이 굶어 죽는 것도 정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 정신 차려야지. 찾는 답은 아마 거기에 있지 않을 테니까.
부적이 소모되고, 동 사감의 머리 위에 암석이 생겨난다. 그것들은 이내 무너져 낙석으로 내려앉았다.
일단 한번 호승심을 불태우기는 했는데, 이전의 하 사감에 비하면 조금.... 뭐랄까. 같은 흑룡으로써 공감가는것이 많아 갈수록 표출되던 감정이 억눌러진다. 하 사감님에 비하면 훨씬 얌전한 느낌이기도 했으며, 왜 폭주했는지 구구절절 다 설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친절하게도.
"사감님, 사감님~ 이야기하는데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저희도 졸업은 해야죠~?"
그동안 많은 졸업생을 떠나보냈을 사감님이 왜 이렇게 집착하실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만약 보였다면 한껏 안아드렸을 텐데. 감히 자신의 촉각을 잠가버린 것도 그런 이유라면 일단은 받아줄 수 있는데.
"불순물은 안 죽고 저희가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해요? 저는 그런 애정도 나쁘지 않지만... 일단 그건 그거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사감님이 애정을 주셨으니~ 저도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슥 웃으며 부적을 두장 다시 꺼낸다. 위치를 알 수 없으니 이전처럼 이미지를 그려가며 날리지는 못했고, 대신 부적 두 장으로 사람 모양을 접는다. 각각 머리와 다리에 피가 흐르는 손가락으로 콕콕 점을 찍고, 재차 불태운다. 애정은 받은 만큼 돌려주는게 옳은 일이라고 얼핏 들었던 적이 있기에 자신도 그렇게 할 뿐이었다.
그 지킴을 감히 누가 바란 것인지도, 대체 누가 지켜지는 것에 기뻐했는가에 대해서도 알 도리가 없다. 어찌 되었든 제정신은 아니구나 싶고, 불쾌함이 늘어만 간다. 단순히 자신을 마지막으로 담게 하기 위해 타인의 시각을 앗아…….
"…."
그는 자신의 손을 들어 눈가를 더듬었다. 더듬거리던 손길을 뒤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통제감에 금이 간다. 사감이든 뭐든 그딴 것이 대체 뭐길래,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라 내 두려워 할 성싶을 것 같은가, 저딴 것들이 대체 뭐길래 영원과 안정을 운운하는가. 감히 내 앞에서, 날 놀리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말도 없다.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기만 한다. 저 형체를 향해, 인간도 아닌 사냥해야 할 녀석을 향해서.
"다시 말해봐."
마지막이고 뭐고 다시 말해보라고. 그리 말하며, 사감 목 손으로 부여잡으려 시도했다. 성공했다면 어디서 난 힘인지 모를 것으로 그대로 땅에 처박았으리라.
아하, 죽는 건 상관 없는 거였구나. 지킨다는 말을 인간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말았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라면 상관 없을 일을.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 동 사감을 바라본 순간, 눈앞이 끊기었다. 단절이고 차단이다. 암전과는 달랐다. 어둠을 '보는' 것과도 다르다. 저항할 새도, 수단도 없이 순식간에 멀어진 시야를 느끼고 있자면 깜깜한 머릿속에 사감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린다. 사감이 장담한 대로 유현이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광경은 그의 모습 뿐이었다. 유현은 제 눈을 두어 번 더듬어 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정을 유지한다. 괜찮다. 어차피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다. 미래의 일을 빠르게 겪는 셈이라 생각하면 편하겠지. 이대로 잠금이 풀리지 않고 영영 남는대도 아쉬움은 없다. 하지만 이 상황이 이런 난장판에서 벌어지는 것만은 달갑지 않았다. 이러면 방향을 알 수가 없는데.
하는 수 없이 소리로 방향을 어림잡고 소리의 진원이 있을 법한 자리, 동 사감의 지근거리에서부터 도술이 발동하도록 하고자 했다. 성공했다면 사감의 근처 바닥에서부터 묵직한 흙기둥이 일어나 그를 후려쳤을 테다.
.dice 1 2. = 2 .dice 1 10. = 5 HP 1000 부적 16/20
560OH, Do you know Key Man?◆ws8gZSkB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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