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이 웃고, 미소짓기만 하던 가현은 제 웃음을 조금 누그러트렸다. 인간의 편에 섰다. 그 한마디만으로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는 듯 싶었다. 제 어머니가 제가 아주 어릴 적 전래동화처럼 이야기해준 적 있었다. 먼 옛날. 인간은 신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그리고 거기에 노한 신은, 조상들을 전부 죽이고 이 세계를 한번 엎었다지.
인간과 신의 이야기에서 주목받지 못한 존재. 선의인지 뭔지 모를 것을 내비치며 신에게 함께 반목했으나, 끝내 그 결말은 참담했던 존재. 아마 그 존재가 그 대립에서 인간의 편을 선 이 사감님의 형제이지 않을까. 퍼즐이 하나 끼워맞춰진다. 그것 역시 신의 뜻. 감히 신을 거스르는 자들이 맞이해야만 할 운명. 태초의 어머니와 반목하며, 인간의 편을 든 이단자의- 너무나도 당연한 최후였지만. 지금 자신은 하 사감님에게 궁금증을 해소하러 온 것이지 엿을 먹이려고 이 곳으로 찾아온 건 아니었기에 가현은 말을 아낀다. 그저 공감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가엾고, 덧없으며, 이제는 인간들 중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이단의 죽음을. 자신은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감님께서 그 때 그렇게 노하셨군요. 인간들. 인간들. 그렇게 되새기며, 향할 곳 잃은 분노를 저희에게 쏟아 두셨는지요."
조금 차분해진 모습으로 가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사감님의 모든 것을 공감하기엔, 자신은 많이 어긋나 있었지만. 적어도 기억하기 싫은 참담한 꼴이었을 것이라는 게 너무나도 잘 느껴지는 듯 싶었다. 이미 그 때부터 포용하고 있었다. 분노와 원한이 무엇이든, 애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배경을 들으니 더더욱 깊게 포용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 날. 사감님의 시선에서 자신들은 그저 제 형제를 죽게 하고 자신마저 해치려 드는 존재로 보였겠지. 허나, 그것 뿐이었다. 공감과 이해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자신의 안쓰러운 마음조차 하 사감님을 향하다 끊기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은 MA의 신자였으며, 과거의 그 자들은 결국 그 분에게 반목했기에 정말 당연히 맞이해야 할 결말이라고 여기고 있었으니.
"네에, 이 학당 안이랍니다~ 그보다 그렇게 그 물건을 바라고 계신가요? 놀라워라... 그 분께서, 여덟이 자신에게 그 목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며 즐거워 하셨답니다. 혹시 사감님도 그 여덟 중 한 분이신가요?"
가현은 하 사감의 반응에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낸다. 어쩌면 조금 더 알려줘도 손해를 볼 것이 없다고 여겼다. 만일 저들이 인간보다 더 뛰어난 감으로 그 물건을 찾으려 들었다면 진작 찾았을 터인데, 물건의 위치 정도는 어느정도 감을 잡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이야기조차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주 좋은 기회를 잡았다. 가현의 눈꼬리가 샐쭉 가늘어진다.
"정말로 알고 싶은건 사감님 형제분들의 위치이지만~ 그건 이미 싫다고 하셨으니. 정말 싫으시다면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그러면.. 남은 세 가지를 꼽아볼까요?"
그렇게 말하며, 가현은 제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이야기를 하나 꺼낼 때마다 천천히 접었다.
"첫째. 제가 바라본 사감님들의 모습에서는 한결같이 동물 모습이 비쳐 보였으나, 영 사감님은 그렇지 않았지요. 오히려 다른 학생이나, 신선님들. 도사님들을 볼 때와 같이 사람의 신체 일부가 비쳐 보였답니다. 그렇다면 영 사감님은 당신들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저희같은 사람이신 건가요?"
"둘째. 송 보리라는 학생을 아시는지요. 백룡 기숙사의 6학년 생이자.. 저와 같은 제사장 가문인 학생이랍니다. 전부터 지켜본 바, 사감님들께서는 유독 그 아이만 피하셨어요. 누구에게나 자애롭고 포용심 넘치시는 동 사감님 마저도. 혹시. 이유를 알고 계시나요?"
여기서 가현은 나름대로의 각색을 더했다. 누군가 부탁했다며 직접 거론하고 물어보는 것은 조사꾼으로써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기에. 제가 어렸을 적부터 심심치 않게 봐 왔다. 제 가문에서. 제 아비의 바램을 이루어주지 못하거나 어설프게 대처해 민폐를 끼친 뒷조사꾼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여기서 자신이 어설프게 군다고 그런 일을 겪지는 않겠으나, 이미 그 때 느끼고 배운 것들이 몸에 밴 탓이 크다. 조사를 할 땐 이야기를 최대한 각색하며 그 어떤 의문도 표하지 못하게 할 것.
"그리고 셋째. 이건 그냥 제 궁금증이랍니다. 가능하시다면,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사장 가문이기 이전. 그 분의 신자로써.. 조금 탐구심이 생겼답니다."
손가락이 완전히 접힌 손을 내리며, 가현은 하 사감을 바라보았다.
"번거로우시다면, 전부 이야기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 대신, 제 의문이 충족되지 않은 만큼 제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가현의 입꼬리가 기이하게 끌려 올라간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싸움이 났던 학생은 제사장 가문 아이라더라. 아회 지금도 멍이요 생채기 조금씩 남아있다면, 그 아이는 머리를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아직도 붕대를 칭칭 감고 있다지. 부러진 코는 말할 것도 없다. 아회가 누군가를 때렸노라, 싸움이 났노라 얘기하는 것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한 번 싸움이 나면 꼭 그랬다. 아회의 상태가 좋든 나쁘든 간에, 상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맹수가 한차례 습격한 듯 꼴이 성하지 못했다. 고요한 자 타오를 때면 한 번 크게 타오르고 다시금 잠잠하니, 희롱으로는 끄떡도 없는 자를 태우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는.
하물며 무표정에서 다른 것 덧대어지는 꼴은 흔히 보이는 행동 절대 아니었다. 툴툴대는 척 종알댈 때, 미소를 거두는 것도 순간이었지만 그 자체로도 필히 귀한 것이긴 하였으니. 아회 절편 집어 들자 고소한 참기름 내음 은은하다. 떡이란 것 입안에 들어차면 그 식감 찐득하고 묵직하니 그렇게 좋아하지는 아니하지만 이런 고소한 내음만큼은 싫다고 할 수 없으니, 여인 떡 먹여주면 본인도 머리 만져질 동안 꿀떡 하나 정도는 집어먹어야겠다 생각했을 찰나였다.
"온화 낭자……!"
그만둘까 싶으면 새롭게 장난을 치다 못해 바깥까지 얘기하고 있으니, 아회 경을 치듯이 여인 이름 딱 부르곤 바깥이니 무엇이니 하는 변명에 앓고 만다. 사대부적 생각이나 양것들이란 이런 것이 숭하지도 않은지. 존경이니 무어니 해도 어찌 인간의 귀한 신체가 닿는지 원! 사리사욕 채우려 만든 바깥 풍습이 분명하다 생각하며 도망가려 했으나, 머리 올린답시고 딱 꾸러미 쥐여주니 더 화 내진 못하였다.
"하아……."
결국 오늘도 낡고 지쳤다. 덜렁 들리는 몸이 평소보다 더 기운 없다. 인간들이란…… 바깥이고 안이고 이런 존재가 하나라도 더 있다간 아예 기숙사 바깥으로 나가지 아니하는 삶을 살고 말 것이다. 아니, 북부 바깥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없소." 기어이 말 꺼내곤 종이 꾸러미 만지작댄다. 쉬이 묶인 끈 느슨하게 풀어 꿀떡 하나 집어먹는다.
머리 제법 길었으니 그리 모난 부분이나 상한 곳 없는 것으로 보아 애지중지 기른 듯싶지만, 어째 아회 머리빗질이 엉성하던 것인지, 아니면 멱 감고 말리는 것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고 자연적으로 말리는 것인지 뻗친 부분 제법 있다. 길 터내듯 머리빗질하자 그것도 쉽게 사그라들었으며, 아회 얌전히 머리 틀어 올리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