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현은 눈동자를 도륵 굴렸다. 아직 살아계시는구나. 그 이름 하나하나를 전부 말씀하시기에. 그리고 인간이 형제를 앗아갔다고 하셨기에 그들도 그리 된 줄 알고 있었다. 이건 조금 큰 실례였는걸. 그러다가도 뒤이어지는 말에는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이런 걸 두고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는 걸까?
"저런. 이건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 죄송해요. 그렇다면. 그 분들은 어디에 계시는 걸까요? 만약 사감님께서 다른 곳에서 오셨다면, 사감님의 고향인가요. 아니라면.."
일단 어떻게든 웃음기를 지운 가현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밀어붙일 땐 밀어붙이더라도 제 의견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오해한 것에 대한 사과를 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이윽고 또 다른 호기심이 한 꺼풀 드러났다. 신께 죽임을 당한 존재들이야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친다면- 아직 살아있는 그 형제들은 어디에 있을까. 가현은 고개를 갸웃 했다가 바로 돌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범상치 않은 모습이 보이던 사람들이 몇 더 있었는데 말이지.
"하 사감님처럼, 이 곳 학당의 사감으로 계시는 건가요."
이상한 일이었다. 보리라는 남학생. 그리고 신선. 그리고 영 사감님. 그들을 볼 때는 무언가가 들러붙어 있는 알수 없는 형태였건만. 유독 사감님들을 보았을 때 이질적으로 뚜렷한 형태가 보였지. 자신마저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동물의 형태. 그것은 영 사감님을 제외한 각 기숙사의 사감님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었다. 허나 만약 자신의 추론이 맞다면, 영 사감님은 무엇이란 말인가. 의문은 깊어졌으나 의문에 대한 갈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 바로 전부 해소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죠. 저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이 곳에 배우러 온 입장이니만큼, 좀 더 많은것을 알아가고 싶을 뿐이랍니다~"
그렇게 하면 제가 당신들을 포용하기 좀 더 쉽지 않겠나요. 가현은 잔망스럽게 웃었다. 농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만 것이 굉장히 찝찝했으나, 지금 당장 말해줄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다면 훗날 다른 사감님들께 물어보거나, 다시 하 사감님을 귀찮게 만들어도 좋겠지.
무슨 부탁이냐는 말에 가현은 잠깐 입을 닫았다.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행여 알게 된다면 제가 물건을 찾으러 갈 적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맨 입으로 알려주기는 싫다고 능청을 떨어보려 해도- 지금 많은 걸 물어보고 얻어가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 주제에 또 그렇게 능청을 떨 만큼 막돼먹은 사람은 아니었다.
"으음~ 저도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답니다. 호랑이를 닮은 무언가의 목이라고 하셨으니까요. 그 것을 찾아보라고 하셨답니다."
저신이 말한 것이기는 했으나 뒤늦게라도 생각해 보니 부탁은 아주. 굉장히 잘못된 단어 선택이었다. 명하셨다는 것이 더 옳을 터. 가현은 알게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에는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 결국 또 이렇게 신 님에게 실례를 범하고야 마는구나. 이 한계를 타파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가현은 다시 방긋 미소짓는다.
"그 목을 어딘가에 숨겨두셨다고 하신 것까지. 아아, 어쩌다 보니 모든 걸 말씀드리고 말았네요~ 신께서 제게 명하신 것은- 이게 전부랍니다?"
가현이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자신은 이미 그 장소를 제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것 하나만큼은 쉬이 이야기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가현은 자연스레 말머리를 돌린다.
1.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구만." 아회는 청각이 대단히 예민한 편이에요. 비단 청각만이 아니라 촉각과 후각도 예민한 편이랍니다. 타고난 감이 좋다지만 본인은 이 감을 행운으로 생각하되 불행으로도 생각하고 있어요.
2. 토도독, 똑, 휘익. 아회의 참 독특한 버릇이에요.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생기거나 고심할 때 손가락을 토도독, 하고 두들기는 버릇과 혀를 찰 때 쯧이 아니라 똑, 소리가 나게 뱉는 버릇, 그리고 길 가다 짧고 낮은 휘파람 휙 부는 버릇이 있답니다. 남에게 방해가 될 수준은 아니니, 본인도 고치지 않고 있어요.
"에이~ 역시 같은 기숙사 학생이 아니라고 그러시는거죠?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잘 말씀해 주셨으면서."
가현은 조금 아쉬운 듯 보였다. 속 시원하게 한겹 한겹 벗겨지더니, 결국 다시 여기서 막혀버린다. 역시 마냥 얻어가기만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단 말일까. 맥주라도 사다 드려야하나. 지금조차도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고 계시는 사감님을 바라보던 가현은 이윽고 미소짓는다.
"괜찮답니다. 적어도, 그 분께 미움받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화를 블러오게 되든지. 저는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에."
그렇다면 이제 보리를 피하는 이유까지만 알아보면 될 터. 그 질문을 하려던 가현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라. 이게 이렇게 되어버린단 말이지. 여태껏 자신이 조금 무례한 태도로 지껄였던 이야기에도 그저 넘어가주셨던 사감님께서. 신께서 명하신 것의 이야기에 이리도 민감한 반응을. 가현은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두 번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답니다. 사감님. 제게 형제분들의 위치를 알려주고 싶지 않으신 것처럼, 저 역시 그럴 뿐이니까요?"
당장 달려들어 제 멱살을 휘어잡을것만 같은 살벌한 분위기. 그 분위기를 느끼며 가현은 그저 미소짓고 있얼다. 이것 또한 애정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독백하지 않았는가. 아무리 지금 이 자. 하 사감이 인간이 아닌 존재라고 할지언정, 그 분의 존엄성 앞에서는 그 빛을 잃을 뿐. 자신이 진정 두려워하고 경외하며 따라야 하는 존재는 오직 그 분 하나뿐인 것을. 제 몸뚱이가 부러지고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그 분 하나만 바라보겠노라고 다짐한 것이 자신이었으니.
지금의 위기를 잘 비틀어 극복할 방법 또한 떠올리기 시작했다. 잘 구슬린다면 어떻게든 될 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에 이리도 격한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에게 이 것으로 더 얻어낼게 있단 말인가? 제 눈을 내리깔지 않고 똑바로 사감님을 향하며 뜻 모를 미소만을 머금던 가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사감님께서 정말로 못 듣고 되물어보시는 것은 아니겠지만. 원하신다면, 가벼운 정보라도 서로 교환하는 것도 괜찮을것 같은데 말이예요~"
그게 싫으시다면. 저는 사감님의 일방적인 애정을 받아들이며 함구할 뿐이랍니다. 입꼬리를 바짝 올리며, 가현은 끝내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309 아앗, 첫번째 예리해요...! 사실 시각이 없는 이유는 한쪽 눈이 많이 나쁘기 때문이랍니다.😇 윙크를 하고 그쪽 눈으로 보면 저혈압 핑글 돌고나서 서서히 눈 보일 때처럼의 흐린 시선으로 보일 정도라나 봐요. 그래서 단안경을 꼭 끼고 다니지만, 어째서... 저는 픽크루에서 늘 빼먹는 걸까요...? 바보 아회주...🙄
박쥐 초음파...! 사실 아회는...! 박쥐여요!!!(아회: 인외는 시트로 낼 수 없소.) 이이녀석 오늘도 나를 방해해~
아회의 환경이 쉽게 깨지고 물드는 일은 없었으니, 지금도 딱 그러하다. 당신도 그러했고, 각기 다른 삶은 그런 법이다. 아회의 침묵은 길었으니, 이대로면 잿더미에 불 피어오르는 건 아닐까 싶더니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아회의 착화점은 드높았던 것인지, 언제나 그렇듯이, 여상히도 군다. 가지런한 눈썹, 절대 뜨일 리가 없는 내리 감긴 눈, 긴 머리카락 너머에서도 다소곳한 자세. 굳었던 몸의 긴장은 자연스럽게 풀리고 이마를 툭 치는 손길은 언제 자신이 굳었냐는 듯 가볍다. 재미난 소리 툭 던질 적 아회의 무표정은 조금 변화를 맞이했다. 입매가 은은한 호선을 긋는다.
"그런 소리도 낼 줄 알았구려. 수일이에게 알려줘야겠어."
놀려주려는 의도 다분했다. 팔에 힘을 주어 붙들 적엔 벗어날 때를 놓쳤음을 직감하고 난감한 듯 미소 짓던 눈썹이 여덟 팔자 그린다. 놀리느라 덫에 걸렸구먼, 참으로 난감하이. 그렇다고 지금 몸 비틀면 또 실랑이 벌어질 테니, 얌전히 떡 하나 주고 벗어나는 것이 좋으렷다.
"놓아주면 어디 덧나나."
덤덤한 어조와 달리 아회 어깨 으쓱인다. 그래, 떡 주고 벗어나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 내려 간식 꾸러미 보니, 긴 머리 우수수 쏟아져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앞머리가 시야를 가리니 불편한지 손이 잠깐 헤맨다. 다른 손으로 앞머리 걷고 나서야 아직 따끈따끈한 절편 집을 수 있으니, "이번에도 손가락을 물면 경을 칠 것이요." 나긋하게 덧붙이며 입가로 가져다주었다.
"……머리를 말이오?"
아회 잠시 고민한다. 해낸 일이 있다 보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 이번 한 번만 더 믿어주자. 설마 머리를 서걱 잘라버릴 아이도 아니거니와 더 장난을 치면 부적을 태워서라도 어떻게든 도망칠 생각이니. 아회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밉보이기 싫다는 이야기에 가현은 방긋 미소지었다. 위기는 잘 넘긴 듯 싶어 안심이었다. 양날의 검을 쥐고 휘두른 격이었는데, 검날이 그 누구도 항하지 않고 안전하게 땅으로 박힌 느낌이 지금의 이 기분이지 않울까. 달콤하고도 짜릿한 거래. 위험천만한 감정의 교차. 모든 것이 너무나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그 말을 다르게 풀어본다면 제가 그 존재에게 있어서는 아주 눈꼽만큼이나마 예쁨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기분이 한없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아주 명확한 기쁨의 뜻을 담은 미소를 머금었다. 생각지도 못 하고 있던 횡재가 자신에게 굴러들어온 것만 같아 가현은 소파에 앉은 채 조금 튀어올랐다. 감히 인간이. 어찌 그 분을 더 알아가려 들 수 있겠냐만은, 그 죄의식에서 오는 배덕감이. 그리고 조금이나마 자신이 모시는 존재를 알아갈 수 있다는 희열이 한데 뒤섞이며 용솟음쳤다. 언제 그렇게 뻔뻔하게 굴었냐는 양 가현의 말투에 나긋함이 담긴다. 다른 사감님들의 정체? 다른 사감님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것이다. 급할 필요가 없지. 암. 그렇고 말고. 다시 그렇게 되도 않는 정신승리를 이어가는 가현이었다.
"많은 건 아니라도 제가 만족할 만큼 알려주신다면, 저도 약간이나마 도움을 드릴게요? 근데 태초의 어머니라. 혹시 그 분을 뜻하는 말씀이신가요~? 아핫. 만약 그렇다면, 꽤 기쁠 것 같은데 말이예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으나, 일단 만약 태초의 어머니가 MA가 맞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더 끝내주는 건 없었다. 제 어린 시절부터. 그 누구에게도 예쁨받지 못하던 그 시절부터 오직 한 존재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들기를 간절히 바래왔고, 그렇게 되기 위해 인간성을 포기한 자신이었다. 제 노력이 조금이나마 빛을 발하는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가현은 너무나도 황홀했다.
"음, 음. 그 어떤 의미는 뭘까요? 그리고. 태초의 어머니라고 하심이 아까 제가 말했던 것처럼 그 분을 의미하는것이 맞다면. 어째서... 인 것일까요."
애써 황홀경을 진정시키니 이제는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분명 제가 익히 보고 들어왔던 신은, 어머니라고 불리기에는 조금 가혹한 면이 없지 않았으니까. 어머니라고 함은 보통 무언가를 창조하는 자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만약 MA가 아니라면- 태초의 어머니가 누굴 의미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