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고 싶지 않아요. 욕심이었다. 가진 것 없던, 그런 소년이기에 가능할 법한 말이다. 단지 오늘을 살기 위한 먹을 것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소년의 욕심이었다. 거리에서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른을 기준으로 뜨거운 술 반 잔, 빵 1/6조각, 쓰다 버린 담뱃 조각을 모아 만든 담배 하나. 그런 것들이었다. 그마저도 아이들에겐 제대로 돌아갈 수조차 없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더더욱 치열해졌다. 살기 위해 친구의 머릴 차고, 물건을 뺏고 도망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우정이니 친구니 따윈 물건을 등치기 위한 핑곗거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소년은 이런 환경에 분노를 토해냈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순간, 소년이 선택한 것은 이 거리를 불태운단 선택이었으니 말이다. 불길을 만들어내고, 타올리고, 폭발시키다가. 죽기 직전에야, 소년은 구원받았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이름은 카티야 지마였다.
피가 흐르는 혈관으로부터 분노가 치솟습니다. 그 혈관 하나하나, 아주 미세한 것들 하나까지도 지금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으로만 느껴집니다. 고통은 익숙합니다. 거리에서 살아왔고 헌터로써 살아오기 때문에 당연한 것입니다. 단지 그 환경에서 벗어나고, 강해지는 것으로 고통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옷, 좋은 곳에 살게 되었음에도 남들이 충분히 우러러볼 레벨에 도달했음에도 여전히 이 고통은 새롭게 다가옵니다.
왜?
그 질문이 흐릿하게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왜 아픈 거였더라. 왜 이렇게 화를 내야만 하는 거였더라. 그 질문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알렌은 천천히 자신을 그려냅니다. 정확히는, 알렌의 검 위에 알렌이 비춰지고 있습니다.
『 패배자 녀석. 』
검 속의 자신은.. 비웃고 있습니다.
『 인정해. 원래 넌 그런 녀석이잖아? 』 『 카티야라는 선을 따라하려 하는, 뒤틀린 녀석. 』 『 제 구원을 따라하려 한 거짓 구원자. 』 『 그게... 알렌이란 녀석이잖아? 』
비웃음은 비수가 되었고, 부정은 불편이 될 뿐이었습니다. 단지 지금까지. 내가 도달한 모든 것들은.. '카티야 지마'라는 구원에 대해. '알렌'이라는 모습에 카티야를 덧씌웠을 뿐.
하지만 그럼에도 알렌은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검은 알렌을 비춘 채로 수많은 분노들을 토해냅니다.
『 길거리의 부량아 자식이 힘이 생겼다고 그 본성이 바뀔 것 같아? 』 『 거지새끼마냥 썩은 빵조각이나 씹어대면서, 각성자니까 괜찮다고 하는 녀석이 평범함을 알기나 할까? 』 『 니가 뭐라도 되는 것마냥, 카티야는 그랬으니까. 그녀라면 그랬을 거니까. 』
뚝,
『 네가 카티야를 죽였어. 』
가라앉고 있습니다. 주위로는 수많은 기억들이, 추억들이 생각으로 방울을 만들어냅니다.
- 내 이름은 카티야 지마. 가디언 후보생! ... 이었어.
불꽃 속을 뚫고 들어와, 망념화 직전의 알렌을 진정시켰던 카티야의 모습이.
- 이거라도 드시겠어요? 아까 저는 많이 먹었거든요.
갓 만든 빵을 얻었음에도, 내일도 배 굶주릴 이들에게 빵을 내밀었던 카티야의 모습이.
- 힘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을 어떻게 쓰는지도 중요해. 강한 힘은 사람들이 너를 괴롭히지 않게 하지만, 강한 힘에 취해 목적을 잃을 수도 있거든.
알렌의 성장에 따라 교육을 이어가던 카티야의 모습이.
방울, 방울, 맺히고, 맺혀서, 떠오르고, 표현해서, 그렇게.
알렌을 만들었습니다.
생각의 공허 속으로 빠져들면서 알렌은 편안하다는 생각을 느낍니다.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나는, 그냥 『 카티야의 모조품일 뿐이니까. 』
- 정말.
그렇게, 깊게 떠내려가던 알렌에게.
- 너는 그런 녀석일 뿐이냐?
누군가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 오빠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
보육원의 소녀와 신부님은 인자한 표정으로 알렌을 바라봅니다.
「 작은 도움일지도 모르나, 저희에게는 큰 도움입니다. 」
'카티야'를 닮기 위한 수련에서 도와주었던, 작은 마을의 인사가 알렌을 바라봅니다.
「 덕분에 오늘 아이들은 배를 곪지 않아도 되겠어요. 」
나이가 꽤 있는 수녀님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그리고.
" 많이 멋있어졌네. 다행이다. "
그렇게. 그렇게 웃습니다. 그녀가.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그녀가.
감은 눈을 뜹니다. 눈을 뜨고, 알렌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가 만나온, 도움을 받은, 도움을 준, 인연을 쌓은, 모든 것들이 저 곳에 있습니다. 손을 뻗고 있습니다.
그를 향해 손을 뻗습니다.
『 모조품 』 『 거리의 거지새끼 』 『 잠재적 범죄자 』
그 말들이 알렌의 두 다리를, 몸을 붙잡습니다.
「 알렌. 」 「 알렌 오빠 」 「 알렌 씨. 」
그 이름들이 알렌의 팔을 붙잡습니다. 위로, 아래로 잡아당겨지면서. 알렌은 묻습니다. 나는, 나는.
" 나는, 구원자 따위가 아냐. "
거칠게 몸부림치면서. 바닥으로 집어당기는 그 모든 것들을 향해. 알렌은 손을 뻗습니다.
" 버리지 않아. 도망치지 않아. "
미련하게 손을 뻗으면서도, 알렌은 손을 붙잡습니다. 그것들은 당연히 바닥으로 끌어당기고. 알렌을 추락시키려 할 것이 분명한데도.
알렌은 미련하게 손을 뻗습니다.
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착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옳기 때문에?
그딴 개같은 이유가 아니라, 그런 허무한 이유가 아니라!
「 영원한 것은 없어. 조금씩 깎이고 달라질 뿐이지. 」 " 영원한 것은 없어. 조금씩 깎이고 달라질 뿐이지. "
저것마저도. 알렌의 것이었기에.
부정하지 않고 알렌은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로 하여금. 그걸 통하여.
단순히, 착한, 좋은 사람인, 알렌이 아니라.
좋지 않은 길에 빠질 뻔 했지만, 도움과 노력을 통해 올라온, 그를 통해 희망을 본. 그렇기에 '선'을 동경하는.
빛이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은 비어갑니다. 비춰지던 검의 모습도, 들려오던 목소리들도, 분노도, 비웃음도, 물음도, 모두 사라집니다.
이 곳에서 알렌은 검을 붙잡고 있습니다. 단지 검의 울음소리가, 알렌에게 말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것은 지독하게도 걱정하는 목소리입니다.
지금까지. 다른 곳에 눈을 돌렸기에 들을 수 없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듣습니다. 그 순수한 걱정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해합니다.
알렌,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왜 영웅이 되려 하나요?
" 빛이 되고 싶으니까. "
알렌은 검을 붙잡고 눈앞의 전쟁 스피커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 잠시 잘못된 길에 들어도 괜찮다. 혼자 버려진 것이 아니다. 부족한 하루가 전부가 아니다. 그런, 말 대신. "
다른 결과를 맞을 수 있다고. 그 운명이 끝이 아니라. 하기에 따라, 다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밝게 빛나는 빛이 되어서. "
그것이. 영웅이 되고 싶은 이유라고.
알렌은 웃습니다.
가슴 속, 답답함을 내려놓습니다. 카티야가 아니어도, 구원자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빛이 되어 그들이 길을 걸을 수 있게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