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방의 부려지산(鳧麗之山)에도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농질(蠪蛭)이라는 짐승이 있었는데, 사람을 잡아먹는 여우와 유사한 짐승이었다. 단, 이 짐승은 청구지산의 여우보다 훨씬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꼬리뿐 아니라 머리도 아홉 개에다가 호랑이의 발톱을 갖고 있다. 이 짐승 역시 아기 울음소리를 낸다고 한다.
개의 귀는 앞서도 나온 적이 있어서 이젠 익숙했다. 하지만 그 때는 동생들에게 시달렸다면 이번엔 조금 다른 위기가-
"수 오라비. 왜 그렇게 보는게요?" "앗, 그, 내가 언제 봤다고!" "아까부터 힐끔힐끔 보고 있잖소. 오라비 설마-" "아냐! 널 본게 아니라 네 귀랑 꼬리를, 아." "오- 어?"
맞다. 그랬지. 수일은 털이 복실복실한 개과라면 아주 환장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온화에게 돋은 귀와 꼬리는 크기도 크고 털도 복실하고 아주- 취향저격일 터. 그리고 온화는 느꼈다. 지금은 도망쳐야 한다는 걸!
"야 그 내가 이런 부탁, 어어 어디가!" "어디긴 어디요! 오라비 없는 어딘가지!"
수일이 수줍게 한 번만 만져보자는 부탁을 입에 다 담기도 전에 온화 잽싸게 날랐다. 두루마기 벗겨질새라 꾹 쥐고서 성큼성큼 뛰어가는 모습 날래기도 해라. 아무 건물이나 그늘진 곳으로 달려가 나름대로 눈에 안 띌 만한 곳에 몸을 숨긴 온화는 숨도 돌릴 겸 때마침 거기 있던 만쥬를 집었다.
"휴!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으이."
혼자 고개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곤 상자 열어 만쥬 꺼낸다. 따끈한 그것을 한 입 딱 물자 세상에 이 맛은 어째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아. 만쥬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벽에 기대 길게 늘어졌다. 이대로 소동이 끝날 때까지 낮잠이나 한 숨 잘까.
4학년이면 자신보다 2살쯤 아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아직 자신들에 대한 적대감이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을 때니까 이런 반응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6학년이었으면 자신이 흑룡이라고 밝히자마자 지금 같은 반응은 보이지 않았을테다. 허나 시간이 지나 이 소녀가 자신에게 강한 증오를 드러내도 상관은 없었다. 그것 마저 포용해줄 수 있으니. 어쩌면 모두를 사랑해줄 수 있지 않을까.
" 과찬이세요. "
자신이 만든 요리나 과자를 먹는 이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맛있다는 칭찬이 뒤따라왔고 그도 자신의 실력에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건 별개의 일이다. 때론 그 자부심을 드러내야할 때도 있는 법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이 만든 것에 입맛이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반응을 보니 그러진 않은 모양이다.
" 마음껏 드셔도 괜찮아요. "
쿠키가 담겨있는 봉지를 상대방쪽으로 더욱 밀어주며 얘기한 그는 살짝 웃어준 뒤에 앞을 바라보며 손에 들고 있던 따뜻한 차만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자기가 먹으려고 만드는 양보다 나누어주려고 만드는 양이 훨씬 많으니 이런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달라는 사람들에게 다 주지는 않았지만.
" 모 윤하에요. 당신의 이름은? "
여전히 친절 가득한 표정을 지은채 이름을 되물은 윤하는 상대가 이름을 말해주면 곧장 머리에 넣을 예정이었다. 통성명한 상대방의 이름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사람들을 만날때의 전략이었으니까 말이다.
... 저번에 먹은 만쥬는 평소에 먹던 것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동물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언가. 마치 누군가의 시점에서 어떤 상황을 체험하는듯한 느낌이었다. 동물귀가 자라나는 것만 있는게 아닌건가. 하지만 겉으로 보았을땐 아무런 표시도 되어있지 않아 모든 만쥬가 같게 보였다.
방학 제외하면 간만에 가족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 가현은 제 집에 들렀을 적의 모습 그대로 곱게 단장하고 다시 학당을 향한다. 학당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제법 가벼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와 어울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더 큰 탐욕을 노리는 뱀새끼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언제 그런 흉흉한 대화를 나누었냐는 양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은 그렇게까지 선인이 아니다. 꿈꾸는 목표가 그저 한없이 이타적이고 밝은 부류의 것이었다면 자신은 당주 자리에 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성을 버리고 그 과정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으로썬 그저 제 부모가 꿈꾸는 이상적인 당주이자, 신의 은총을 독점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는 똑같은 뱀새끼일 뿐이다. 사람으로 남지 않고 그들과 같은 길을 선택한 것. 남에 대해 더 많이 알아오라는 무언의 눈빛과 압박을 받았음에도 태평할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아, 여기도 이게 있었네~"
그렇게 학당으로 돌아온 가현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다름아닌 만쥬 주워먹기였다. 집에 들렀을때도 이 만쥬 맛이 그리워서 한참 목말라있었더라지. 귀가 돋아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상자를 열고 만쥬를 먹는다. 달달한 맛이 입안 가득 기분 좋게 퍼진다. 그래. 이 맛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