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거래라니 무슨 이야기일까. 거래라면 무언가의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일터다. 그 사감과 거래를 했다면, 그리고 그 이야기를 굳이 니오의 앞에서 한다면, 그리고 굳이굳이 건드리지 못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쉽게 귀결된다. 기숙사와 기숙사간의 어쩌면 사감과 사감 사이의 거래였고 그 거래 품목은 '학생'이었으며 이 경우에는 니오 자신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래대상이 되어 이리저리 넘겨졌다는 이야기. 그건 조금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네.
" 아-뇨. 패는것도 죽이는것도 제가 직접 합니다. 남의 손을 빌리는 취미는 없어요. "
니오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한 대 맞으면 다섯 대를 패주는 것도 물론 좋은 방법이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확실하게 밟아놓는것이다. 다시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다시는 감히 자신을 내려다보지 못하도록 달려들어서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려서 이러다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 까지 때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진짜로 반 죽여놓으면, 그러면 대부분의 문제들은 해결된다.
" ...오면, 저는 다시 거기로 돌아가는거겠죠? "
황룡 기숙사. 두 번째 떠나서 도착한 곳. 그곳은 아직 '도착'한 곳이지 '정착'한 곳이 아니다. 집을 떠나서 적룡을 찾아 이 곳에 '정착'했다. 그리고 잠깐의 도발에 넘어가서 기세좋게 넘어가겠다고 말해서 황룡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넘어간 곳은 딱히 좋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계속해서 겉도는 느낌. 누구와도 친해지기 어려운 느낌이 계속 들었고 그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원래 있던 곳에서 찍힌 배신자라는 낙인. 그것이 자꾸만 괴롭게한다. 우리와 너는 다르다는 그 느낌이 속을 어지럽게 만들어버리고만다.
" 그러네요. 이젠 완전히 딴 집 새끼가 되어버렸네요. "
두 주먹을 꼭 쥐었다. 힘이 들어간 탓에 멎었던 피가 다시 조금 흐르는게 보였다. 니오는'붕대 써도 되죠?' 하고 물으며 붕대를 집어 손등에 가볍에 감아주었다. 금세 빨갛게 물드는 것이 퍽 보기 좋았다. 딴 집 새끼라. 니오는 그 말을 한 번더 곱씹었다. 적룡에 있을 때는 이상하리만치 다른 기숙사 것들이 싫었는데 이제 본인이 그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니오는 '다른 기숙사'를 싫어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싫어한 것이었다. 자기 맘에 거슬리는 그 사람들을 싫어했을 뿐이다. 내심 사람이 좋고 사람이 그리워서 또 자기랑 잘 맞는 사람들은 좋아했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게 행동할 뿐이지.
" 아- 진짜 적응하기 힘들거든요 여기.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느낌이랄까. 그러면 안되는거 저도 아는데 어제는 처음 본 녀석이 자꾸 친한 척 하길래 한 대 때렸어요. 자꾸 들러붙지 말라고. "
그러다보니 점점 더 겉도는 것일지도 모르지. 가시를 잔뜩 세우고 다가오지 말라고 온 몸으로 어필하고 있으니까.
" 나중에 사감님 오시면 말씀좀 해주세요. 잘 좀 돌봐주라고~ 딴 집 새끼라고 너무 미워하진 마시고. "
표정이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분명 이 이야기는 싫은 거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임씨 가문 사람이었고, 그 규칙들과 딱딱하다 못해 조금은 답답한 단어들을 수없이 듣고 자랐다. 그것들 앞에 어떠한 저항도 없었다. 그저 그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여학생의 표정이 풀리자, 가현도 따라 웃었다. 그래도 너무 싫어하지는 말아줘. 입으로 꺼내는 말은 싫겠지만, 나라는 사람까지 싫어하지는 말아줘. 나는 모두가 좋은걸?
"음~ 근데 그 분께서 흔쾌히 받아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이야기는 이쯤 하고, 과자나 마저 고르자."
정말 말 그대로였다. 그 분의 입장에서 자신이 그릇으로써 재미가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연히 무슨 짓을 하든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가? 여지껏 그런 것에 한해서는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을 만큼 MA에게 진심인 사람 아니던가. 이야기를 급하게 마무리지은 것은 행여나 그 말중에 조금이나마 그 분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였다.
아무튼 늘 하던 대로 과자류를 양 볼이 볼록해지도록 한가득 우겨넣고 입 안에 잔뜩 감돌던 달달함을 만끽하던 가현은, 여학생의 말을 듣고 과자를 한 번. 그리고 여학생을 한 번 번갈아 보다가 방긋 웃는다.
"으응... 그래도 이렇게 먹는게 맛있는걸."
씹기는 조금 버겁기는 하나 그것보다는 달달함이 한가득 들어차있다는 그 느낌이 좋았다. 물론 이렇게 먹어대면 나중에 입이 바싹바싹 말라오기 때문에 기숙사에 돌아가거나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마실걸 하나 사서 입가심하면 딱이라고 느끼며 지갑에서 과잣값을 꺼내려던 가현의 동작이 멈추었다.
"..."
여전히 입에 과자 한가득 물고서 갈 곳을 잃은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축 내리고, 여학생에게 불만 한가득 담겨있는 시선을 주었으나 진심은 아니라 금새 표정이 풀린다. 어찌 되었든 자신의 호의를 받고 안 받고는 이 여학생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학생이 어떤 방향을 택하든 전부 받아들여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잘 생각해보니 이렇게나 포용력 넓고 이해력 넘치는 사람이라면 우리 흑룡기숙사에 들어와도 딱 안성맞춤일 것 같은데. 아쉬워라. 그래도 다른 곳에서 비슷함을 느낄 수 있다는것만 해도 어디일까. 그저 지금에 감사하며, 여학생의 그 친절한 면모 또한 포용할 뿐이다.
"자. 여기야. 아까 전보다는 뭐가 좀 더 많지? 내가 직접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겪어본 결과로는, 천부에서 과자가게 하면 아까 그 집이랑 이 집이 최고라고 장담할 수 있어~"
언제 급했냐는 양 다시 느려터진 발걸음으로 아까전의 과자가게에서 한참 떨어진 다른 과자가게로 도착했다. 진열되어있는 것들의 종류 면에서 훨씬 다양했으며, 그 양 또한 많았다. 아까 전까지는 차를 마시며 살 것 위주로 골랐다면 이번에는 그냥 간단히 입 심심할때 집어먹을수 있는것 위주로 골라볼까. 분명 과자가게를 알려주는 입장인 가현인데 어째 자신이 더 신나있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