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고는 슬쩍 눈을 돌려 그를 바라본다. 사람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정이 안 가는 건지 토고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에 딴 사람들에게 아름아름 들어온 것이 많지만 토고는 직접 그의 입에서 듣고 싶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이걸 고대로 말하면 싸움날 것 같기에 토고는 애써 분위기 좋게 말해본다.
"일단 좀 앉아라. 요새 많이 바쁘제? 특별 의뢰인지 뭔지 와서 내는 죽겠다. 마카오 갔다가 이리 고생하고 저리 고생하고.."
크크.. 하고 토고는 실 없이 웃다가 차를 한 모금 마신다.
"운동회 때랑은 다르게 다들 어울릴 시간도 없제? 니는 어떻게 지내는데? 엄한 짓 하고 있는 건 아니제?"
토고는 이대로 침대에 눕고 싶다는 욕망을 억지로 떨쳐내며 눈을 뜬다. 온 몸이 쑤시고 이대로 삐용삐용 하고 병원에 가고 싶은 마음 투성이다. 하지만 해야 할 게 있어서 억지로 눈을 뜨고 기절하기 전 상황을 떠올려본다. 분명... 폭발하는 격류가 터지고.. 살인경을 맞고... 둘 다 쓰러졌는데.. 마지막에 신성이라면서 내가 이긴 건 기억난다.
>>398 분명 님 연성이었는데 왜 갑자기 스킵으로 바꼈는지 이해?안?되는?// 저릿한 느낌이 듭니다. 솔직히 표현해보자면, 여전히 그 광기가 한 번씩 준혁의 기억 속에 떠오릅니다. 마치. 조금만 잘못 뒤틀렸다면 그 곳에 자신도 발을 들였을지도 모른다고. 그 생각이 흐릿하게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손에 힘을 꽉 주면서, 준혁은 정신을 차립니다. 이정도 공포에는 덤덤해져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무너지고 말테니까요.
>>399 " 응. 괜찮아. "
에브나는 고개를 톡, 톡, 끄덕이곤 시윤의 부러진 신체를 만져봅니다. 손이 닿을 때마다 끼야아아악 하는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는군요!
>>404 두 팔이 저릿거립니다. 아니, 착각인가 하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습니다. 검끝이 반짝이고 크게 두 번을 휘둘러 넘기면서 분명 알렌의 손에는 베었다는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무거운 무언가를 베어넘긴단 감각, 그리고 떨어트리는 듯한 감각이 손에 느껴졌던 것을 거짓이라고 하듯.
주위 풍경에서, 아주 미미하게 소리가 줄어듭니다. 뼈마디가 맞춰지는 듯한 소리가 들고, 떨어진 머리가 천천히 한 줌 핏물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마치 진흙이 주물러지듯 광기로 번득이던 남자는 다시금 몸을 일으킵니다.
" 아직...! 아직입니다!!! "
그는 목에 남은, 검상의 자국을 손으로 쓸어넘깁니다. 그 행동과 함께 흔적을 메우는 듯 상처는 사라집니다. 코트에 묻은 피를 털어내면서 전쟁스피커는 히죽 웃습니다.
" 아아, 이 얼마나 간만에 느끼는 죽음이란 말입니까. 아니! 말이 잘못되었군요. 전쟁에서, 얼마만에 내 눈을 감아본 기억이란 말입니까. 내 전쟁을 헛된 망상 취급한 나폴레옹. 그 개년의 깃발에 목을 잃은 후 얼마만에! 피가 튀며, 살을 얼얼케 하는 전쟁이란 말입니까! "
그는 코트에 묻은 피를 털어내면서 다시금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공격에 죽었던 것 같았는데. 녀석은 다시금 멀쩡하게 일어나 알렌을 향해 걸어옵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도끼가 들려 있습니다. 그의 왼손에는 군용 칼 한 자루가 쥐여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핏덩이가 뭉쳐, 피를 뚝, 뚝, 흘려대고 있습니다.
" 자아, 전쟁을 계속합니다. 무너져선 안 되지 않습니까. 아직 끝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좀 더 나를 죽여도 좋습니다. 내 피가 땅에 흐르고, 당신의 칼이 무뎌져 무너지는 날이 오더라도!!!!! "
그는 한 순간, 도끼를 집어던집니다.
푹,
궤적 그대로 날아들어 알렌의 팔에 도끼가 박힙니다. 고통을 호소하려 하기도 전에 그런 알렌을 막아세우며 카티야가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 그대의 차례입니까? 피차 마찬가지의 운명인 존재이지 않습니까. 나는 이 기나긴 전쟁의 끝을 보기 위해 그 아이에게 읍소했습니다. 다시 숨을 쉬게 해달라, 이 전쟁의 끝을 보고. 그 아이에게 이 전쟁의 피를 주겠다고 했지요. 당신은 무엇을 바랐습니까? "
캉,
대거를 막아섬에도 카티야는 순식간에 뒤로 밀려납니다. 너무나 큰 차이입니다. 알렌보다도 조금 뒤떨어지는, 지금의 카티야로는 버틸 수 없는 격차일겁니다.
카가강. 촤학!!!
검에 베여 피가 흐름에도 카티야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습니다. 마치 도망치라는 듯.
이번에는...
그 처절한 움직임에 알렌은 흐릿한 시야를 다시금 짓켜뜹니다. 눈이.. 흐릿해져갑니다.
이번만큼은...
어떤, 먼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하지만 아주 먼 듯한 곳에서. 무어라 웅얼이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지금은 그걸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 도주해야 하네! 이 전투는 이어갈 수 없어. 아무리 운명을 읽더라도 그대들의 패배란 말일세. 대체 왜 고집을 부리는 건가!!! "
무당은 무너지려 하는 두 사람의 정신을 억지로 붙잡으면서 허공을 유영하는 검을 통해 전쟁스피커를 압박해나갑니다.
" ... 이런, 젠장!!!!!! "
이제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으려 할 때쯤. 무당은 날아드는 칼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습니다. 그 순간, 한쪽 눈과 팔이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백색의 거인이 전쟁스피커가 선 땅을 후려칩니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짊과 동시에 무당은 알렌을 붙잡고 카티야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소리가 무엇인진 모르지만. 아마 도망치라는 이야기일겁니다.
곧 알렌은 정신을 잃습니다.
천천히 눈을 뜹니다. 온 몸은 고통스럽습니다. 아무래도 망념의 한계인 듯 각성자의 특권이라고 할 법한 의념의 보호도 받지 못한 몸은 주인에게 고통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 일어났군. "
고통을 어느정도 다스렸을 때야. 알렌은 무당을 바라봅니다. 한쪽 눈에는 안대를 차고, 한 팔이 있던 곳이 텅 비어있는 무당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