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마찬가지로 고개를 쳐박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을 땐 모든 사람들이 눈을 감고 탁자에 엎어져 있었다. 갑자기 수면가루라도 맞아서 잠들었는지 아니면 기절했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렇게 엎어져 있었다. 니오는 에? 하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지팡이를 건네주며 해보라는 말에 '제가요?' 하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단은 일어섰다.
" 갑자기 해보라고 하셔도.. 이런걸 해봤어야 알지.. 그냥 때리면 안되려나 "
니오는 일단 받은 지팡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을 툭툭 쳐보았다. '일어나.' 라는 말과 함께 몸을 흔들어보고 그 다음엔 머리채를 잡아 일으켜세웠고 그럼에도 안 일어나자 손을 들어 짝! 소리가 나게 뺨을 후려쳤다.
" 이래도 안 일어난다 이거지? 짜증나게 만드네. "
그리곤 여전히 잠들어있는 듯한 사람의 몸을 발로 밀듯이 차서 넘어트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니오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 곳에 꽂히는 시선을 느낀 니오는 또 으르렁 대며 눈을 사납게 떴다.
" 뭘 쳐다봐. 뒤지고 싶어? "
안 그래도 머리아파 죽겠는데. 니오는 후- 하고 깊게 심호흡을 하곤 지팡이를 겨누었다. 해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는데 이게 한다고 되려나. 일단은 본대로 따라하는 게 우선이다.
드문 감정이 심장께까지 차오른다. 자연스럽지 못한 감각에 소맷자락에 넣은 손이 부채를 콱 쥐었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힘이 빠졌다. 선책하러 나가던 중 쓰러진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이겠는가. 그러나 묵은 기어코 버티지 못하고 정신줄을 놨다. 아니, 정신줄은 지금도 놓고 있을 지도 몰랐다. 자각몽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이건 뭐야. …호박?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주위를 보다가 고개를 제자리로 돌리묜 정면에 떡하니 차지한 호박밭. 손을 뻗어 호박을 한 번 콕 찔러보고는 조금 황당한 낯으로 그것들을 빤히 바라보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요상한 꿈인지, 어떤 도술인 건지, 누가 벌인 건지.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당장에 해야할 게 무엇인지는 알았다. 뭐든 처음에는 무식하게 시작하는 법. 묵은 정보 수집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방울소리의 근원을 찾다보니 몸이 무거워지는게 느껴지고, 갑작스런 행복감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눈을 한번 감았다 떴을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넓다란 호박밭. 도화에 이런 장소가 있었나 싶은, 처음 보는 장소에 윤하는 기시감을 느꼈다. 애초에 입학식때 단 한번도 이랬던 적이 없지 않았는가.
' 허. '
속으로 짧게 탄식한 윤하는 천천히 호박들 사이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지나치게 평화로운 장소에 본능이 기시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음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나아갈뿐. 애초에 미련조차 없으니.
방울의 딸랑임, 이리로 오라는 양, 사람 홀리듯이 청명한 소리에 온전히 정신 맡기지 아니하고자 발버둥 치듯 감은 눈에 점차 힘을 주게 된다. 행복함 몸 감쌀 적에는 그 본능을 밀어내고자 했다. 다만 인간의 삶이란 무상하며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절대적인 힘 존재하니.
암전.
바람 소리 제하고는 일절 생명의 소리 들리지 아니하며 코 스치는 것은 산해진미 아닌 다른 내음이라. 아회 본 것과 더불어 세상과 단절하게 되었음을 깨닫고는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는다.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푸르고 광활한 대지…….
"……하."
웃음소리 퍽 힘빠지는 듯싶다. 살아가며 몽중을 헤매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나 그 선명함으로 인해 엄습하는 불쾌함이 몸을 휘감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왜?
연은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찾아오는 고요를 누린다. 눈앞의 산해진미보다 이 잠깐의 잠을 더 음미하고 싶은 것이었으니. 그렇게 부드럽게 잠에 빠져들었을까. 잠깐 눈이 뜨이면 연은 갑자기 변해버린 풍경을 마주한다. 불어오는 바람 따라 파도치는 풀들, 초록의 땅 위로 자기 머리보다 큰 호박들이 자라고 있다. 분명 꿈일 거라 되뇌지만 어딘가 모호하다. 그에 연은 짜증을 느끼다가, 아무도 주변에 없음에 두려움을 느낀다. 허나 또 그 두려움도 금방 사라져버리니. 꿈에서 자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하며 눈을 감는다.
니오는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멱살을 잡았다. 이대로 몇 대 때려주면 깨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주먹을 꽉 쥐고 얼굴에 주먹을 꽂을까 하다가 혹시 이빨이 빠지면 곤란할테니 테이블에 깔려있던 손수건을 집어 돌돌 말아 이빨에 물려준뒤 주먹을 꽂으려는 찰나에 폭파주문을 쓰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 그러다 다 뒤지... 아니, 죽으면요? 신의 장난이니 뭐니해도 진짜 죽어버리면 어떡해요. 살인자가 되긴 싫은데. "
니오는 잡았던 멱살을 툭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그리곤 아~ 모르겠다~ 하고 말하며 지팡이를 다시 집어들었다.
" 뭐가 어찌되던 다 교수님 책임입니다. 난 몰라요. 봄바르다! "
아무래도 사람에게 대놓고 쏠 순 없겠는지 한 쪽 손으로는 한쪽 귀를 꾹 눌러 막고 벽에 대고 주문을 날렸다.
갑자기 나타난 호박밭도 이상하지만. 거기서 대뜸 등을 보이고 서서 숫자를 세는 아이도 적잖게 의심스럽다. 게다가 더하는 수도 아니고 빼는 수라니. 이건 뭐 숨바꼭질도 아니고-
응?
숨바꼭질. 그 생각을 딱 떠올린 온화는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았다. 헌데 허허벌판 호박밭에 숨을 곳이 있을까. 아쉬운대로 호박 몇 개 늘어놓고 쌓아서 낮은 담마냥 만들어 그 뒤에 드러누웠다. 딱 봐도 나 여기 숨었소 하는 꼴이지만 어쩌겠나. 모로 누워 팔로 머리를 받친 온화는 아이가 숫자 세는 소리가 아직 들리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으며 청력에 온 집중을 가했다. 뱀 특유의 고고한 움직임은 들리지 않는다. 질량 가진 물체가 넝쿨은 커녕 흙에도 스치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서늘한 바람 소리 뿐. 신은 저에게 모습을 비칠 의향이 없다는 것으로 판단되면 눈을 조심히 뜬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감겨져 있어 나른한 눈을 비비적 거리더니, 그 곳으로 발걸음을 조용히 옮겨본다. 자신이 세상에서 동떨어져 이 곳에 오게 된 것은 신의 뜻이니, 여기에 떨어진 이유를 찾아야만 온전히 그를 알현하는 것이다. 저 울음소리의 근원에 다가가면 뭐라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중생은 그리 생각하고 있다. 부디 자신의 운명이 옳은 곳으로 향하길. 다만 옳지 못하더라도 그것 또한 뜻이 있으렸다.
니오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차라리 이런 쪽이 적성에 맞다. 적룡에 들어온 것도, 이 지랄맞은 성격에도, 날 때 부터 이단아처럼 괴물 소리를 들으며 자란 것은 이런 주술이나 마법이 손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고 난 이후에는 그 위력에 감탄하며 '죽이는데...!' 하고 눈을 빛냈다. 위력이 감쇄되지 않은 것은 이 지팡이 덕이렷다. 눈치봐서 받아갈 수 있으면 받아갈 생각 한 가득이었다.
" 고치는데는 재능 없는데요- "
곡옥의 쿠즈노하라면 무너진 것을 바로세우고 부서진 것을 고치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주로 연마하는 가문이었으나 이단아로 태어난 괴물같은 막내딸은 그런 것엔 재능이 없었다. 전혀. 그렇지만, 해보라고 하니까 해보자면.
천천히 숫자가 0까지 거슬러 내려갑니다. 그리고 밝은 목소리로 누군가가 ' 찾는다!! '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 어디 숨었니! '
당신의 바로 지척에서 아이의 발소리가 들립니다.
[>숨을 내쉰다] [>숨을 참는다] [>신을 죽여]
>>68
당신이 점점 다가갈수록 비릿한 냄새가 짙어집니다. 검붉은 광경이 두 눈에 담기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그것'이.
안개와도 같은, 뱀과도 같은 그것이 히죽 웃으며 시체를 발로 툭 차며 놀다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너, 여기 인간이 아니구나?
그것이 소름끼치도록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습니다. 공기가 따갑게 느껴집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태고의 신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신을 죽여] [>신을 죽여] [>신을 죽여]
>>69
용을 닮은 네 발 달린 짐승이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목 놓아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 용은 점점 모습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그것이 인간의 시체를 갖고 놀며 재미있다는 것처럼 깔깔깔 웃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