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웅성거리며 옆에서 진짜 가는거냐고 물어보는 말과 이런 식으로 가버리는 법이 어딨냐고 말하는 친구들까지 생긴 탓에 니오는 더욱 머리가 아파지려고 했다. 그 와중에 적룡님이 자신을 기억하고 '여우같은 학생'이라고 평을 내렸다는 것에 내심 기뻐하며 어쩌면 이미 유명인일지도? 하는 생각에 내심 미소가 지어졌다.
" 놔, 뒤지기 싫으면. "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방긋 웃으면서 손을 잡아 끌자 니오는 강하게 손을 뿌리치고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며 눈을 무섭게 떴다. 그리곤 또 금방이라도 달려들것마냥 으르렁 거리며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가 친구들에 저지당했다.
" 건드리지마라. 한 번만 더 건드리면 죽일거야. "
어찌됐든 이미 저질러 버렸다. 옆에서 니오-! 니오-! 하고 부르는 통에 니오는 머리 울리니까 닥쳐봐 좀. 하고 말하며 의자에 앉아 머리를 헝클었다. 완전히 혼자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이럴 때 둘째 언니가 있었다면 언니야- 언니야- 하고 가서 어떻게하면 좋을지 물어봤으련만. 니오는 깊게 한 숨을 내쉬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지원을 한 학생은 나를 포함해서 두 명. 청룡 기숙사인 나와 체구가 작고 드세보이는 적룡의 여학생. 같은 학년은 아니니 나보다는 후배겠지. 이렇게 둘은 앞으로 새로운 길을...잠시만?! 이렇게 간단히 뽑아되 되는 거야? 쿨해도 너무 쿨한데?
지원이 곧 합격 = 사람이 없음 = 인기 없음 = 사람이 많이 필요함 = 그래도 지원 적음 = 마치 상하차 = 초하드하드 라이프
아잇 시X, 잠시만. 이제 와서 취소한다고 빠꾸를 칠 수도 없잖아.
지원하고 1분도 안 지나너 순식간에 후회의 늪에 빠지기 시작해서 침울해지는 성하. 황룡의 학생들이 성하를 잡아서 데려가려고 한다. 성하의 눈에는 "흐히히~ 이번 기수에도 바보인 녀석이 있구나." 라고 말하며 잡아가려는 마녀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알아서 갈게요.."
성하의 말과 동시에 황룡의 사감의 말에 손을 떼는 학생들.. 이제 와서 하기 싫다고 하기에는..이미 많은 이들이 봐버렸다. 후우..입학식이 끝나고 항상 즐기는 만찬에서 생각을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겠어.
지원하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심란해지는 성하. 성하는 갑자기 자신의 기숙사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사람들의 앞임에도 눈가에 눈물이 조금씩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 자신의 사감을 향해 지금까지 가르쳐주어 고맙고, 이제는 떠난다는 의미로 정중한 목례를 하였다. 남들 다 들리는 종소리를 못 들은 채로 말이지.
황룡 기숙사로 갈 사람들이 전부 정해진 모양이다. 저 기숙사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이 뚜렷해서 좋아. 저런 모습들을 포용하고 수용하는 것 역시 자신이 해야 할 일들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는 가현은, 가는 사람 미련없이 보내주며 남은 사람 차별없이 아낄 뿐이었다.
입학식이 무르익고 이런저런 맛난 것들이 앞에 놓인다. 뭘 먹을까. 마침 배도 조금 출출한 참에, 앞에 놓인 달달한 과자류 하나를 답삭 집어서 입 안에 야무지게 집어넣었다. 일단 뭘 먹든 두 볼이 톡 불거지도록 한번에 입속 가득히 채워지도록 넣고 입안 가득 퍼지는 맛을 한껏 음미하는 것은 가현이 가진 습관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달달해.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차도 한모금 마시던 찰나였다.
"뭐였지."
갑작스러운 이변은 익숙함을 잠재웠으며, 무르익은 분위기에서 빠져나와 무언가 더 있음을 알려왔다. 행동을 멈춘 채 주위를 살핀다. 아직 이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도사님이 더 있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묵이 보기에 퍽 친근하게 구는 황룡 기숙사 학생들과 그들에게 손을 잡힌 이들-성하, 니오-을 바라보다 상황이 일단락되는 듯하자, 묵 또한 관심을 끄곤 자리에 앉았다. 상다리 부러질 듯 차려진 음식들은 모양새도, 향도 훌륭했지만 식욕이 원체 없던 터라 연신 물이나 주스만을 들이켰다. 여섯 번째로 접하는 입학식인 만큼 재미보다 익숙함이 더 컸던 탓에 일이 진행되는 과정보다 늘 주제가 바뀌는 주변의 대화가 더욱 흥미를 돋궜다. 이 순간만큼은, 또 상을 앞에 두었으니 예의상 부채를 소맷자락 안으로 넣어 보관했다. 보기 힘든 묵의 비구와 턱이 드러났다.
오학년 때엔 무얼 배웁니까? 하고 물어오는 후배의 말에 답하려 입을 열었을 참이었다. 딸랑, 하고 들려오는 방울소리에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데, 어째서인지 귓가에 뚜렷하게 박혀왔다. 잠시, 하고 후배에게 양해를 구한 묵은 일어나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여섯 번째로 반복되는 입학식의 새로운 전개일 지도 모르겠다며. 계속해서 앉아있기도 지루하고 뻐근하니, 소리의 근원지를 찾지 못한다면 산책이나 할 셈이었다.
황룡에 지원한 자는 꽤 있는 양 하다. 그가 관심 가질 일은 아니니, 적당히 침묵을 지켜 주며 운명이 그들이 원하는 결과와 같은 방향이길 바래본다. 운명의 일을 두고 MA께 기도를 올리자니 여간 몰염치한 것이 아닐 터, 그는 적당히 자신의 속으로 짤막한 응원을 되뇌인 채 갈무리 지었다.
그대들이 원하는 것이 새로운 터전이든, 확신이든. MA께서 자비 베풀어 그 운명에 섞어주셨길.
온갖 산해진미로 도배된 식탁이지만, 그가 먹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양에 넓지 못한 폭이였다. 푹 익은 유부주머니를 한 입 베어물면 느껴지는 것은 유부 특유의 연한 가죽 찢는 식감도, 베어든 국물의 맛도 아닌 청력의 당찬 존재 과시였다. 그는 희미하게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에 젓가락을 조심히 내려 놓고, 두 손을 주먹 쥐어 무릎 위로 올렸다. 그대로 자신의 양 손에 시선을 가한 채, 자신의 신체로 시야를 봉한 것이 되었다.
혹시라곤 해도, 이 방울 소리가 방울뱀의 것이면 그는 제대로 된 예를 갖추어야 한다. 만약 애꿎은 퇴마 의식에 착각한 것이라면 볼 조금 발개지겠지만, 신을 못 알아보았다는 추태는 아니니 후자여도 잃는건 없을 터. 아니... 조금 쪽팔리겠지만...평판 좀 깍이겠지만...
황룡 기숙사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표정이 다들 신나보였기에 예전엔 부러웠던적도 있었다. 하지만 매년 학생들을 모집할때 그가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은 그럴만한 사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하니까 말이다. 손을 든 학생들을 데려가려던 황룡의 학생들은 사감의 말이 들리기 무섭게 자리로 돌아간다.
' 딸랑 '
그리고 어디선가 방울소리가 들려온다. 꽤나 소란스러운 이 연회장에서 귀에 꽂히듯이 들려오는 방울소리의 정체. 윤하는 방울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 누가 도술로 장난치는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디에나 생각이 다른 이들은 있는 법이다. 소란에 연은 감았던 눈을 떠내며 황룡 기숙사를 택한 이들을 본다. 한 명 한 명 그들의 얼굴을 살피다가는 금세 관심을 잃는다. 독특한 사람들. 나중에 후회하는 일만 없기를. 연은 하품하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다. 눈앞에 차려진 산해진미들을 보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방울 소리가 귓가에 굴러가면 손을 들어 귀를 막는다.
고향을 떠나고 좋은 점은 더이상 해산물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어촌 마을들이 으레 그렇겠다만 성율의 고향은 야채가 귀했다. 풀이 귀하니 자연스럽게 가축도 귀했다. 그러나 이곳에 오니 외려 해산물이 귀하고 야채와 소, 돼지따위의 음식이 쉽게 식탁에 오르더랬다. 역시 출세하고 봐야한다니까. 꾸준히 체력을 단련하려면 음식도 많이 먹어줘야한다. 입맛이 전혀 까다롭지 않은 성율은 제 접시 위에 이것저것 옮겨 담았다. 수북해진 접시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법도 한데, 성율은 신경도 쓰지 않고 차곡차곡 위장에 음식을 쌓아 올리는 중이었다. 종소리만 들리지 않았더라면 그 접시를 모두 비워내고 다음 음식을 담아내고 있었을 터였다.
"..."
제사장 가문에서 몸종 노릇 6년이면 눈치 깨나 볼 줄 안다는 소리다. 성율은 먹던 것을 잠시 멈추고 다소곳 자세를 바로 잡았다. 뭐, 이 아둔한 종년이 뭘 아는 건 아니지만 명망 있다는 자재분들께서 긴장하는 게 뻔히 보여서. 성율은 씹던 움식을 마저 목구멍 너머로 넘기고 혀로 입안을 정리했다.
황룡에 가느니 마느니 하는 말들로 연회장 시끌시끌한 내내, 온화의 팔은 참으로 든든히 아회를 붙잡고 있었다. 놓아달라 내려달라 하면 아이고 도령 이것 참 맛있소 하나 먹어보오 하며 입에 다과 하나 물려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정말로 끝까지 붙들고 있을 건 아니었던가. 그 소란이 잠잠해질 즈음 슬그머니 아회를 내려주어 그의 자리로 돌아가게끔 해준다. 소란에 휩쓸리지 않게 해주려는 배려였는지, 아니면 그저 내킨대로 행동한 것인지는 온화만 알 것이다.
자세 편히 고친 온화는 옆에 앉은 수일과 말을 나누며 차려진 음식에 조금씩 손을 대고 있었다. 그래봐야 과일 몇 점 과자 몇 개, 마실 것 조금 마신 정도다. 그러나 조금 뒤에는 그마저도 손에서 내려놓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음식은 참 맛있는데, 아까부터 영-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마찬가지로 고개를 쳐박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을 땐 모든 사람들이 눈을 감고 탁자에 엎어져 있었다. 갑자기 수면가루라도 맞아서 잠들었는지 아니면 기절했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렇게 엎어져 있었다. 니오는 에? 하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지팡이를 건네주며 해보라는 말에 '제가요?' 하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단은 일어섰다.
" 갑자기 해보라고 하셔도.. 이런걸 해봤어야 알지.. 그냥 때리면 안되려나 "
니오는 일단 받은 지팡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을 툭툭 쳐보았다. '일어나.' 라는 말과 함께 몸을 흔들어보고 그 다음엔 머리채를 잡아 일으켜세웠고 그럼에도 안 일어나자 손을 들어 짝! 소리가 나게 뺨을 후려쳤다.
" 이래도 안 일어난다 이거지? 짜증나게 만드네. "
그리곤 여전히 잠들어있는 듯한 사람의 몸을 발로 밀듯이 차서 넘어트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니오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 곳에 꽂히는 시선을 느낀 니오는 또 으르렁 대며 눈을 사납게 떴다.
" 뭘 쳐다봐. 뒤지고 싶어? "
안 그래도 머리아파 죽겠는데. 니오는 후- 하고 깊게 심호흡을 하곤 지팡이를 겨누었다. 해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는데 이게 한다고 되려나. 일단은 본대로 따라하는 게 우선이다.
드문 감정이 심장께까지 차오른다. 자연스럽지 못한 감각에 소맷자락에 넣은 손이 부채를 콱 쥐었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힘이 빠졌다. 선책하러 나가던 중 쓰러진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이겠는가. 그러나 묵은 기어코 버티지 못하고 정신줄을 놨다. 아니, 정신줄은 지금도 놓고 있을 지도 몰랐다. 자각몽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이건 뭐야. …호박?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주위를 보다가 고개를 제자리로 돌리묜 정면에 떡하니 차지한 호박밭. 손을 뻗어 호박을 한 번 콕 찔러보고는 조금 황당한 낯으로 그것들을 빤히 바라보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요상한 꿈인지, 어떤 도술인 건지, 누가 벌인 건지.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당장에 해야할 게 무엇인지는 알았다. 뭐든 처음에는 무식하게 시작하는 법. 묵은 정보 수집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방울소리의 근원을 찾다보니 몸이 무거워지는게 느껴지고, 갑작스런 행복감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눈을 한번 감았다 떴을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넓다란 호박밭. 도화에 이런 장소가 있었나 싶은, 처음 보는 장소에 윤하는 기시감을 느꼈다. 애초에 입학식때 단 한번도 이랬던 적이 없지 않았는가.
' 허. '
속으로 짧게 탄식한 윤하는 천천히 호박들 사이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지나치게 평화로운 장소에 본능이 기시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음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나아갈뿐. 애초에 미련조차 없으니.
방울의 딸랑임, 이리로 오라는 양, 사람 홀리듯이 청명한 소리에 온전히 정신 맡기지 아니하고자 발버둥 치듯 감은 눈에 점차 힘을 주게 된다. 행복함 몸 감쌀 적에는 그 본능을 밀어내고자 했다. 다만 인간의 삶이란 무상하며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절대적인 힘 존재하니.
암전.
바람 소리 제하고는 일절 생명의 소리 들리지 아니하며 코 스치는 것은 산해진미 아닌 다른 내음이라. 아회 본 것과 더불어 세상과 단절하게 되었음을 깨닫고는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는다.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푸르고 광활한 대지…….
"……하."
웃음소리 퍽 힘빠지는 듯싶다. 살아가며 몽중을 헤매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나 그 선명함으로 인해 엄습하는 불쾌함이 몸을 휘감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