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구분 못 한다는 건, 완전 똑같은 사람이 하나 더 있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법사라고는 말 했지만 신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신, 혹은 마법사라도 아니면 구분 못할 똑같은 사람은 없을 것 같은걸요. 쿠로사와 씨를 바라보면 곧 웃고 있었습니다.
“됐거든요. 놀리면 무시할 겁니다.”
2년째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교무실 가는 길을 모를 리 없잖아요! 믿음직스럽다는 말이 진담이든 농담이든 부끄러워서 삐죽거리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바래다준다고 멋대로 생각해버렸는데, 주번이라서 가는 거라는 설명까지 들었어요. 쿠로사와 씨가 친절하더라도, 저처럼 삐딱하게만 말하기만 하면 굳이 더 도와준다거나 상냥하게 행동하고 싶을 리가 없어요. .........가는 길이 같으니까 엇갈릴 수는 없고, 최대한 복도 끝쪽으로 붙기로 합니다.
그 차가운 눈 속에 있었으니, 몸이 얼마나 차가울까. 인간의 몸이니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할 것이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미유키의 얼굴엔 만족을 담은 미소가 떠오른다. 1년째라. 인간의 몸으로도 1년일지는 모르겠지만. 미유키 그 말을 듣고선 처음 가미즈나에 왔을 때의 자신을 떠올린다. 당신에게 가미즈나에서의 사계절은 어떠했을지. 마지막 십이월을 통과하는 건 어떤 기분일지. 미유키 당신을 따라 고개를 들어낸다.
"종종, 북쪽에서나 볼 수 있을, 춥고 힘든 날이 찾아올 때도 있더군요."
눈을 일제히 쏟아 낼 것만 같은, 마치 제 고향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유키 그리 말한다. 그러니까 더더욱, 기온이 영하를 넘나드는 지금 당신이 왜 삽을 들고 이 공터에 있던 것일지 궁금해지는 것일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당신이 시작하기 시작하면 미유키는 조용히 들으며 알게 된다. 당신이 말하던 모종의 사정이 무엇인지를. 거대하니 기댈 수도 있었을 당신이 다시 땅으로 돌아감에 있어, 무엇이 당신을 붙잡는 것일까. 눈더미 발끝으로 차는 것을 보다 미유키는 묻는다.
“어머, 정말로?” 하기야 겨울이 되자마자 눈이 이렇게 쏟아지는 것은 긴 세월을 살고 수많은 길을 떠돈 키구치 요이카에게도 익숙하지만은 않은 풍경이다. 하늘과 땅이 백색으로 탈색된 설원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적도 있고 북해 가까이에서 수평선 가까이 둥둥 떠다니는 유빙을 발견한 적도 있지만⋯. 대개 겨울에는 숲의 일원답게 겨울잠을 잤다. 다람쥐도 개구리도 폭포수도 겨울에는 잠을 잤으니까.
회색 보도가 드러난 길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블럭 틈새로 숨어 있던 눈이 바람에 날려서 발자국 위에 다시 하얀 층이 쌓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고개를 옮겨 쌓아 놓은 눈더미를 본다. 방금 전 몸을 빼낸 자국이 제 무게를 못 이긴 벽과 함께 무너지고 있다. 요이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번뇌는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다. 아니, 번뇌는 눈보라처럼 겨울마다 찾아왔다. 수백 년 전에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지 올해는 요이카가 눈이 녹을 때까지 오래 잠들지 못하고 있을 뿐.
“당신은 어때?” 요이카는 대답을 아끼고 막막하다는 목소리로 되물으며 말을 이어 갔다.
“번뇌라고 하면 잊어버리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잊어버릴 수 있는 것. 왜냐하면 그건 산이나 태양, 그리고 인간처럼 세상에 있어서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 속에 이는, 내 마음이 들떠서 생겨나는 헛바람일 뿐이니까⋯. 그렇게 믿고서, 그런 생각은 모두 열매를 떨어뜨리고 낙엽을 털어 버리듯 잘라내 왔어. 마음은 늘 고요했지. 지금도⋯.”
동요 없는 눈동자가 미유키 쪽을 향했다. 요이카는 퍽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다지 중대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동요하게 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이제 와서 목숨이 끝나는 건 두렵지도 않아. 이 낯선 거리가 그렇게 갑자기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도 아니야⋯. 당장이라도 지하가 나를 부른다면, 씨앗이었던 때 이전으로 걸어서 돌아갈 수 있겠지. 하지만⋯. 정말 모르겠어, 이토이가와. 왜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올이 자꾸만 이곳에 묶여 있으려고 할까? 당신은 어때? 학교에 다녔다면 당신도 「시험」을 쳤겠지. 문제가 적혀 있지 않은 시험지에 답안을 쓰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표정은 그대로이면서도, 요이카가 내뱉은 긴 사설의 말투의 끝에는, 아주 조금, 초조함이 들러붙어 있었다⋯. 재앙과 길상⋯, 화복의 경종을 올빼미 신에게 간구해 마지않는⋯ 여느 신도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