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입 밖으로 낸 것도 같은데, 여전히 멍멍해선지 제가 한 말의 3/4밖에 못 들었다. 자신에게 꽃을 건내준 옛 기숙사 룸메이트는 때깔이 좋아보이는게, 적어도 스트레스 받으며 산것 같진 않았다. 그는 작게 미소지어주며 중운에게 회답했다. 그 후 들려오는 황룡 사감의 말에 잠시간 집중했다가, 듣지 않으려는 양 집중을 도로 꺼 버렸다.
황룡은 자신의 가치관과 철저히 반대되었다. 그는 英사감을 눈 온전히 뜨인 채로 멀뚱히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단상 쪽으로 돌렸다.
원하는 모든 것. 이라 함은 중운에겐 쓸모 없는 것이다. MA를 알현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삶의 목표이자 제 존재의 궁극적 의미이니. 거기다 자고로 도사라 함은 불필요한 탐욕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개성을 밝힌다라, 본인이 재미 없는 인간상임을 알고 있지만 굳이 그걸 고쳐 나갈 정도로 문제 삼지는 않고 있다. 이것 또한 불필요한 것이, 제사장 후보가 개성 있어 뭣 하리. 제 주인만 잘 섬기면 그만인 것. 이빨은 달아야 쓸모 없을 터. 그는 지금에 흡족했다.
변화는 완전함에 있어 독이다. 둘은 공존할수 없으니, 중운이 거절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였다.
저 기숙사의 영향을 아직 받지 않은 파릇파릇한 신입생들. 마치 5년 전의 내 모습과 같구나. 저 아이들이 5년 뒤에는 어떻게 변할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구나. 누군가는 훌륭한 도술사로 성장하거나, 갈피를 못 잡고 방황을 하거나, 범죄자의 싹을 보이는 아이도 있겠지. 혹은 전부 해당되거나.
성하는 신입생들을 보고 온화한 미소를 조용히 지으며, 섞여 있는 인파들의 가운데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
입구에서 들리는 폭팔음으로 조용히 귀와 고개를 돌리는 성하. 아, 그분이구나. 빗자루를 타는 학생들..역시 마법을 부리는 자들인 것인가. 거기다가 우리 사감.. 청룡답게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이래서 미워하기 싫다니깐?
그리고 황룡 사감은 여지 없이 자신의 기숙사로 학생을 뽑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자.'
'자신만의 개성.'
사실 이름 한 번 거하게 남긴다거나 원하는 걸 얻는다는 건 성하에게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과 자신만의 개성에 집중한 성하. 마법을 배우는 황룡 기숙사. 현재 성하는 자신을 구속할 누군가나 집안도 없었다. 평소 의욕이 없어보이는 성하지만 여러 곳을 방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성향을 생각해본다면..
"크흠..."
잠시 가볍게 기침을 하여 목을 풀어준 뒤, 조용히 손을 드는 성하였다. 내년이면 졸업이었다. 하지만..한 번 겪어보고 싶어. 저 황룡이란 곳을 말이야. 물론 굉장히 크게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잃을 것이 있어야 하는 후회이지. 나는 제사장, MA의 알현, 이름 높은 도사..다 목표가 없어. 무엇보다 내 직감이 저 곳을 가르치는데 어떡해.
니오는 한 번 더 입가를 닦고는 '웃지마라' 하고 말하며 조금은 느긋한 자세로 고쳐앉았다. 저게 마법이렷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지팡이로 주문을 외워서 사용하는 것들. 이미 새로운 환경에 한 번 내던져져서 여기서 적응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니오를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모두에게 너희가 옳았다고 증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지금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고 있지만 귓가를 간질이는 소리가 들렸다.
" 이름 한 번 거하게 남길 사람이라고? "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말도 귓전을 간질였다. 과연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마음 속 깊이 원하는 것은 둘째 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서 모두에게 다시 인정받는 그런 것을 원하고 있다. 더 이상 괴물이라고 불리지 않을 정도의 사랑과 애정. 한 때 결핍되었던 것들에 대한 것들. 표면적으로 원하는 것은 강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의 중심에 서는 것이었다. 모두가 바라봐주고 모두가 좋아해주는 것. 지금의 지랄맞은 성격으로는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 그래도 나는 좀 그렇다. 너희도 그렇지 않아? 지금까지 하던걸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거잖아. 니오도 그렇지? 저런건 좀 무섭잖아. 저런건 아무리 니오라도 무리일지도~' " 에? "
옆 친구의 말에 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 쪽으로 갸웃했다가 반대쪽으로 갸웃했다.
" 병신새끼가, 지가 못하니까 나도 못 할거라고 생각하네. "
그 말을 끝으로 니오는 손을 번쩍 들고 일어섰다. 조용한 자리에서 주목받는 것은 최고지. 포기하기 힘든 아찔함이야. 니오는 손을 들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 야, 잘봐라. 여기요! 적룡의 쿠즈노하 니오입니다! 저 해볼게요! "
그 말을 하자마자 온 시선이 꽂혔다. 이름 한 번 거하게 남기고 정말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걸어볼만한 도박이다. 그 댓가로 잃는 것은 그 동안 지켜온 이념과 생활과 기억과 신념이겠지만 한 번 쯤은 걸어볼만한 도박이렷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있다. 두려움과 긴장이 하반신부터 시작해 온 몸을 휘몰아치고 알 수 없는 설렘이 뱃 속을 간질인다.
" 아이씨..... 사실 별 생각 없는데... 옆에서 도발하니까 해본건데 역시 괜히했나.... "
모든 사감들의 반응이 심드렁하니 큰 소리와 달리 분명 잡담거리도 되지 않을 일일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러니 놀랐던 마음은 금방 가라앉고, 이내 조금은 지루함까지 느끼게 되는 것일까. 소리 난 곳을 보면 꽃나무 같은 이가 서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청소도구를 타고 들어오는 아이들이 연의 눈에 들어온다. 한때는 같은 기숙사였지만 이질적이라 꺼려지는 아이들. 명백히 싫다는 얼굴로 연은 날아온 비둘기를 손짓하며 쫓아낸다. 그리고 좀 더 편하게 잘 수 있을 자세를 찾아 몸을 뒤척이다가, 들려오는 말에 고갤 돌려 그를 바라본다. 모두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건 원치 않았기에 연은 그 말을 무시하고서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는다.
아회 사감이 소리칠 적에 느릿하게 고개 숙인다. 큰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탓이요, 그 모습 퍽이나 적룡 기숙사의 인간답지 않았다. 그렇게 내려오려 시도하고 만일 내려올 경우엔 제 자리 겨우 찾아내어 앉았을 터고, 붙잡혔다면 덤덤히 "위신을……."하고 읊조렸을 터다.
다행스럽게도 폭음은 단순한 소란일 뿐이요 황룡 기숙사의 작은 사고였던 것 같으니, 아회 지팡이 손으로 느릿하게 매만진다. 기숙사의 학생, 올해도. 새로운 것과 이름을 남길 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아회 길게 뻗은 손가락 무릎 위에 얹어둔 지팡이 위에 올리더니만 토도도독, 하고 가볍게 친다. 손가락 파도치듯 너울거린다. 정녕 그대가 줄 수 있다 생각하는지. ……천지신명이 내게……. 내 이때가 아니면… 안다. 기억하거라.
아회 천천히 고개 돌려 아예 피해버린다. 멀리하라. 욕심이란 내어서는 아니되는 것. 욕심은 마음을 흐리게 하며 사람을 뒤흔든다. 무릇 내려두고 초연해야만 한다. 제물이든 제사장이든 그런 자리를 위해 예비함이 아니다. 그저. 내 욕심 하도 커서. 바라는 것이 없으니 유감스러울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