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일장연설을 하시기도 하셨고. 말한 당사자가 얘기하니 웃기긴 하지만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니까요."
일전에 속했던 길드 멤버들이 몰살당한 이후로 마츠시타 린의 일정한 부분이 죽어 없어지기는 했지만 그 전이라고 해서 그녀가 그렇게 다른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시윤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소리를 여러번 들은 입장에서 고지식한 어른이나 정의감 넘친다고 주장하는 청년들이 어느 타이밍에 눈살을 찌뿌리는지 정도는 능숙하게 알 수 있었다.
"제가 얘기드리지 않았었군요. 네 맞아요. 저는 신을 모시고 있으니 그 분께 세상의 영광을 돌릴 사명이 있어요."
그녀의 성장환경 자체가 건전한 사고방식을 함양하기에 좋은 편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그녀는 모두를 짊어져야하는 가디언이 아닌 무언가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한 헌터였다.
"어차피 제가 그리 바른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시고, 바로 들통날 어설픈 연기를 할 필요도 없잖아요."
"글쎄, 내가 보기엔 스스로에 대해 꽤 위축되어 있는 것 같은데. 마치 나는 나쁜사람이다 라고 단정지어 둔 것 같아."
얘기를 곰곰히 듣다가 나는 솔직한 감상을 얘기했다. 이 쪽에선 아직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미 혼날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치 자기 내심속에서 '난 나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라고 되뇌이는 것처럼.
첫만남때에 비해 확연히 친숙한 태도니까 가식은 아니겠다마는. 그럼 그게 그녀의 본성에 가깝단 말인가. 그리 생각하니 나는 조금 안타까워서, 달래듯 목소리를 더 부드럽게 했다.
"듣기 좋은 올바른 이상론은 아니지만, 별로 틀린 소리도 아니잖아. 혼란과 공포는 전염되는 법이니까 방치해두면 집단은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지. 그렇게 절박하게 몰린 사람들이 말 몇마디로 온전히 이성을 되찾을거란 기대도 하기 힘들고. 그렇지 않나?"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자세히 보면 자신의 의견에 몹시 신랄하게 구는 그녀에게 동의했다. 혼란과 공포를 조금 강경하게라도 신속히 제압해야 한다는건, 그다지 틀린 얘기도 아니다. 애초에 굳이 따지자면. 그녀보다 내 전생의 험악했던 군인 시절에 그런걸 훨씬 더 많이 겪었겠지.
일단 바위 뒤에 숨긴 했지만...아무래도 방금의 일로 지나치게 시간을 허비한 것일까. 허공에 만들어지는 형상을 보고 강산은 놀라 엉덩방아를 찍으면서도 황급히 물 속성 마도를 다시 시도하려 하지만 놀란 참이라 잘 되지 않고, 그러거나 말거나 진자 형상의 불덩이는 떨어진다. 실전이라면 떨어졌을 것이다. 이것은 대련이기에 어느 새 다가온 심판에 의해 무효화되었지만.
"와...."
강산은 대련이 끝나고도 몇 초간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 한다.
"형님 이렇게 보니 은근 무서운 사람이시네요."
그래도 엄지는 들어보인다.
"마도 실력도 느셨고, 마도로 안 되면 부상을 감수하기까지 하시다니...그에 비해서 저는 아직 멀었군요."
강산은 아주 잠깐 빈센트의 시선을 피한다. 조금 허탈하다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강산 쪽이 물러서 대련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것은 맞으니까.
"실전에선 적의 안위를 걱정할 겨를도 그럴 이유도 없을 텐데 말이죠..."
//17번째. 그렇게 합시다... 역시 결과 정해놓고 하는 건 저한테는 안 맞는 것 같아요.😅 결과를 계속 의식하면서 돌리니까 그거대로 신경쓸 게 많아서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요...
한창 흥이 올라 제가 만들어낸 극에 몰입하다가 집중이 깨져 열의가 식어버린 배우처럼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본심이 들켜서 기분이 저조해진 것인지 아니면 제가 예상하던 바가 틀려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그렇게까지 훈계를 듣지 않을 것을 무의식적으로는 짐작했으면서도 곧이곧대로 되자 이 상황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인지 린 본인도 알 수가 없었다.
아, 그래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나를 더 알지 않기를 원했다.
"교관님께서 시윤씨 같으셨다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에요."
가볍게 투덜거리면서 힐긋 어이없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로봇을 바라본다. 로봇 교관은 이제 아예 여러의미로 글러먹었다는 표정을 만들어내며 반은 안쓰럽다는 듯이, 반은 심각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거 참 고맙군.
"인간을 넘어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온전히 기댈 수 있을 초월자를 원하기 때문이죠."
아니, 그가 나를 택했고 구해줬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일부러 연기하는 것처럼 시건방진 태도를 보이던 것을 지우고 다시 평소의 미소로 돌아온 린은 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