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여름을 지나 가을, 그리고 가을. 늦가을은 곧 겨울을 부를 것인데. 이렇게 흘러가버리면, 이다음 가을 찾아올 때에는 자신은 어디에 있을 것인지. 자리 잡고 지켜볼 것이 여전히 없음을 생각하며 가을 햇빛 속을 거닐 때. 스쳐 지나가며 네 모습을 보면,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거리를 두고서 멈춰 서게 된다. 저와 같은 기운을 가진, 내 마니또님. 이제는 멀리 숨어서 지켜볼 필요가 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먼저 말 걸지 못함에 망설이고 있으면 네가 자신을 발견하고 인사를 걸어오는 것일까. 그에 미유키는 작은 미소와 함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 안녕하세요."
하고서 제 건네었던 봄 팔찌를 여전히 차고 있을지. 살피며 벤치로 다가가던 미유키는, 너와 눈을 마주하고는 설핏 웃는다.
미움 받을 걱정이라면 하지 않아도 좋은데. 그리 생각하면서도 말 곧장 내뱉기보다는 잠시 지난날의 대화를 돌이켜 보았다. 일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가 봄이었던가? 설혹 못되게 군다 하더라도 너는 내 눈에 언제까지고 어여쁠 테니 널 미워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그때에도 요 꼬맹이는 왜인지 달갑게만 듣지는 않는 눈치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늘 그래왔듯 너라면 전부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는 대신, 감상에 보다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도 그런데, 이심전심이로구나! 당초에 미움이 없었으니 걱정할 나위도 없는 것이었어."
약속한 바도 없으면서 똑같이 생각해 버렸다는 게 무엇이라고 이렇게나 우습다. 머리칼 거칠게 휘적거리던 손길은 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약해지더니, 손을 뗀 그가 슬그머니 하네의 표정을 살폈다. 아슬아슬하다가도 끝으로는 웃는 듯하기에 그제서야 마음 놓았다. 아니 마음 놓다 못해, 몰래 잡아 둔 긴장이 탁 풀려서 하네의 볼따구니 잡고 양쪽으로 쭉쭉 당겼다. 허락도 받았는데 주저할 까닭 있겠나! "으이구, 요놈 가시나야. 꼴랑 이거 갖꼬 씽퉁하면 우야노." 시무룩한 얼굴 보고 있자면 왜인지 마음이 싱숭생숭해 가만히 못 있겠어서 이런다. 말만은 핀잔처럼 들릴지도 모르는 탓에 알아듣기 힘들도록 일부러 한국말로 잽싸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잘할 거라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뭘 잘한다는 거야, 볼 꼬집기? 무슨 말인가 싶어 이제까지의 대화를 천천히 맞춰 보고서야 그는 마침내 말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러브레터 받은 게 누구였더라? 힘은 나 말고 네가 내야지, 요 깜찍하고 맹랑한 꼬맹이야!" 에잇, 그러고 보니 선물 얘기하다 이렇게 흘렀었지. 갑자기 괘씸해져서 볼 늘리다 말고 복어처럼 꾸욱 눌러주었다!
이런 엉뚱한 장난질도 조금 뒤에는 소강에 들었을 테다. 괜찮다는 확답 듣고 나서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먼저 벌떡 일어났다. 신도 오래 쭈그려 앉으면 다리 저리더라. 아직 앉아 있을 하네에게 잡고 일어나라는 듯 손을 내민 그는, 이어서 능청스레 묻는다.
"머리 정리해줄까?"
오늘은 너무 주책맞게 굴기도 했고…… 내내 장난질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름대로 보이는 반성의 표시다. 하네를 바라보는 두 눈이 쾌활하게 반짝인다. 재미없을 걱정은 말라는 듯이. 계절을 닮은 쾌청하고 푸르른 호언이었다.
// 이걸로 막레!!! 중간에 엉뚱한 소리 하는 바람에 하네를 많이 부끄럽게 만든 것 같아서 나까지 미안해 이 할배가 잘못했어...!!! 이러고 나서 열심히 과자 만든 걸로 하자( •̀∀•́ )✧ 아무튼 수고했구~ 일상 정말 즐거웠어😊
더 일찍 만나지 못해 아쉬움이 쌓였던 만큼,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도 기쁜 것인데. 그 팔찌 여전히 차고 있다는 것에 미유키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느낀다. 네 권유에 미유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벤치로 다가와 앉는다. 멀리서 볼 때 보다, 가까이에서 볼 때가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 미유키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다니면서 보면, 같은 기운은 많이 느껴지는 것인데. 이렇게 마주 보는 건 힘든 일이네요."
조곤조곤 말하던 미유키, 네 봄 팔찌에 시선을 둔다. 은근슬쩍 물어보며 팔찌에 대한 네 마음을 알아보려 하는 것이다.
그 말에 미유키 옅게 웃는다. 같은 신 님이니, 인연이 된다면 이후에도 만나게 되겠지. 제 물음에 답하는 당신의 말에 미유키는 짐짓, 너무 기뻐하지 않는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제 마음을 보내었던 것이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야카와 눈을 마주하려 한다.
"회자정리는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음." 헤어지는 것을...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렇죠? 분홍색 포장지를 보낼 때 사야카가 어쩐지 굉장히 미묘한 표정이었는데. 그것을 처음 본 이들은 기분이 안 좋은 건가 싶었겠지만 사실은 어물어물함이나. 걱정에 가까웠을 테니까요. 미유키의 질문을 듣고는 마주하는 것을 들여다보이고 들여다보는 듯.
"이름은 알지만 만나지는 못한 것."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음.." 이라고 말하면서.
"명찰은 비슷한데." 이름을 읽는 법..이 비슷한 것 같지만. 소개는 직접 듣고 싶다는 듯한 말을 하면서 미유키에게 미미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사야카입니다.
헤어진다는 것에, 네 그 미묘한 표정에 미유키는 미안하다는 목소리로 말하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내려 달고 있는 제 명찰을 보고, 슬쩍 고개를 들어 마주 보고서 옅게 웃었을까. 숨기고 숨기다가, 인연이라는 게 이렇게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인데. 이미 다 알고 있던 것인지.
헤어짐을 미리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라니 더 파고들 것이 아니다. 미유키는 그에 고개만 끄덕인다. 이어지는 농담이 너무나도 재밌는 것이라, 듣고서 미유키는 그만 작게 소리 내어 웃는다. 그래. 키즈나히메님이 인연실을 이리저리 꼬아놓는 것을 푸는데 시간이 이만큼 걸렸구나. 어떻게 가위로 썩둑 잘라버린 것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 것인지. 그리고 인간으로서 이름이라도 자신을 호명하는 것은 언제나 듣기 좋은 것일까.
"사야카라 불러도 괜찮을까요?"
저도, 미유키라 불러도 괜찮으니까요. 이어 말하며 미유키는 이번에는 이름으로 자신을 호명하길 기대하며 당신을 본다.
>>863 마츠리 이벤트 끝나서 마음이 조급한데 하네가..... 하네야.... 🥹 서둘러 마무리 짓느라 우당탕탕 돗가비신님의 요리교실 직접 못 본게 아쉽지만 응, 그런 거로 하자. 오카시를 산처럼 쌓아버렸다고 하자. ☺️ 머리 정리도 잘 받은 거로 하고! 린주도 일상 수고 많았고 나야말로 즐거웠어. 🤗
엉켰다가, 풀렸다가, 감겼다가, 끊어지다가 다시 이어지기도 하는 인연이란 네 말처럼 신기하고 기이한 것이었으니.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는 네 답에 미유키는 눈에 띄게 기뻐한다. 애매하진 표정에는 그 이유가 무엇일지 살피게 되는 것인데. 여지를 놔두는 것이라 함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으니 인연실이 또 꼬이더라도, 언젠간 풀어 만날 수 있겠지. 생각하며 너에게 시선을 두던 미유키는 작게 웃으며 묻는다.
"맞아, 사야카를 만나면 늘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어떻게..... 봄이 개화하는 건 잘 보았나요?"
네가 쪽지와 함께 남겼던 분재의 사진은 여전히 제 방에 붙어 있으니. 보았으면, 그 감상이 궁금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