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아는 척해도 된다고 말한 뒤부터 이런 일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다! 떠들썩하게 문 열어젖히자 1학년에게는 낯선 교실의 풍경이 그를 반겨 주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모여드는 시선 중 아는 얼굴이 있을까 제대로 살피려 하던 차, 무얼 하기도 전에 서둘러 다가온 하네를 보고 그는 문가에 기대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럴 줄 알고 도망갈 길 없는 장소로 찾아왔지!"
이내 하네가 복도로 나가려 하자 그는 갑자기 팔다리 쭉 뻗어서 문틀을 틀어막고 버텼다. "히히." 의기양양한, 아니 바보 같은 웃음소리도 빼먹지 않는다. 뭘 먹고 다니는지 힘만 세서는 억지로 치워내려 해도 꿈쩍도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시시껄렁한 장난보다는 더 중요한 용건이 있었기에 그도 얼마 안 가 자세를 풀고 복도로 따라 나왔다. 무슨 일이라면 있었다. 그것이 무어냐 하면 바로!
"그냥 심심해서?"
고개도 살며시 기울이며 그가 으레 하듯 그 눈빛 반짝반짝 빛내었다. 그게 '무슨 일'이라고 할 만한 것인가 싶어도, 이 양반한테 심심하다는 건 엄청나게 중요하고 심각한 상황이다. 봐라, 똘망똘망하게 쳐다보던 눈이 잠깐 생각하는 사이 푹 죽어버렸지 않나. "아니, 들어 봐. 나 요즘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까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아……." 이제까지처럼 괜히 핑계 대면서 불쌍한 척하려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진짜다……. 앉아서 책 읽는 짓은 어린 신이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적성에 안 맞는다. 답지 않게 진심으로 비실거리던 그는 돌연 두 손으로 하네의 손을 꼭 붙잡으려 하며 불쑥 얼굴을 들이대었다.
"그래서 그런데 지금 한가해? 그리고 하는 김에 볼 한 번만."
앞은 그렇다 쳐도 뻔뻔한 소리 뒤에 잘도 갖다 붙인다……. 당당하게 말하면 묻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라도 하는지 이상한 소리 한 적 없다는 양 모르쇠 중이다.
오늘도 그저 지루하기만 한 수업이 전부 끝났다 방과후 시간이 되어 미카는 곧바로 교문을 나섰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을 떠돌다 멈춰선 곳은 마을 광장에 차려진 코코로오카시 마츠리가 진행되는 부스였다 축제라기보단 기념 행사에 더 가까워서인지 이전 마츠리들보다는 덜 북적이고 있다 고작해야 몇 사람만이 지도를 받고 있는 정도 동시에 팥 냄새 따위의 것들도 은은히 새어나온다
그래서 여긴 무슨 용건인가 하면 사실 저는 이미 첫날에 들렀기에 이제 볼 일은 없는 곳이다 달리 화과자를 보낼 만한 사람도 더 없건만 근처를 괜히 맴돌게 된다 어쩌면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은 걸지도
꾸짖은 거였는데도 아저씨는 오히려 길을 가로막고 섰어요! 이래서야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나갈 수가 없게 됩니다. 물론 교실에는 앞문과 뒷문이 있어서 문이 두개 있긴 하지만요...... 아저씨가 막고 선채로 버티려고 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복도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요. 무사히 나오고 나면 흘겨봅니다. ‘장난치면 도망갈 거라니까요.’ 말로 하지 않아도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많으니까요, 한 번 더 장난치기만 하면 정말 도망가버리겠단 뜻으로 쳐다본 거였어요.
“.........그런 건 라인으로 보내도 됩니다.”
꼭 교실까지 와서 이렇게 소란스럽게 절 찾지 않아도 괜찮잖아요! 소란스럽게 찾지만 않는다면 교실로 찾아왔어도 이렇게 얼굴 붉힐 일은 없었을 겁니다. 바보냐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참고, 휴대폰은 장식이냐는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아저씨가 시들거려서 입을 꾹 물었어요. 소리내지 않았습니다. 한껏 장난칠 기세로 눈 반짝이다가 이렇게 순식간에 풀 죽어버리면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심지어 그게 공부 때문이라면, 아저씨는 원래 공부할 필요가 없었는걸요. 심지어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일본어로 공부하는 겁니다. 제 탓이라는 생각도 들어버려서 더욱 말할 수 없어졌습니다.
“웬일로 허락을 받아요?”
한가하고 말고요. 집으로 돌아가려던 중이니 당연히 한가합니다. 짧게 고개를 끄덕거려서 답하고는 불쑥 가까워진 아저씨를 쳐다봐요. ‘볼 한 번만’ 의 뜻이 설마 아저씨의 볼을 꼬집어달란 뜻은 아닐 겁니다. 제 볼을 이야기하는 걸텐데, 허락을 구하는게 의외라서 깜빡거리고 있다가 잠시 주변을 둘러봤어요. 남들이 볼 수도 있는 공간에서는 절대 싫은걸요. 아저씨야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조그만 시절부터 하던 장난에 불과하겠지만, 이제 저는 그런 장난을 칠 나이도 받을 나이도 아닙니다! 다 커서는, 남들 보이는데서 그런 장난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