쯧... 혀를 찬다. 그가 얼굴을 밀며 웃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여과 없이 나타낸다. 필요 선이고 필요 악이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비록 내 입에서 나온 방법이 상인으로써의 방법이더라도 행동은 사람으로써 하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상인도 사람인데 그리고 난 아직 상인이 아니고 헌터인디 거참..
"내는 사람인지라 사람다운 행동거지를 하고 싶을 뿐인디 고게 악의 씨앗이가? 참말로... 그리고 옛날에 만났다고 해도 내는 여 안 먹었을기다. 커다란 거 먹어서 탈나는 거 보단 남 먹는 거 옆에서 한입씩 얻어 먹는게 제일 좋지."
소망을 잔뜩 담은 말.
대학원생을 발견한 듯한 프로페서는 이제 신경 끄자. 그가 제시한 방법을 생각하자. 넷 다 악이라고 그는 말하지만 토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똥 묻는 건 변함없지만 그나마 덜 묻은 깨끗한 쪽은 남겨두고 싶다.
" 단순히 왕의 자리를 내려놓는단 개념이어선 안돼. 아이의 신앙을 부정하고, 이 아이를 단순한 인간의 아이로 격하시켜야만 한다. " " 그를 통해서 신앙이 아닌 인간의 영혼을 일깨워야만 한다. 단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가 되어야만 하지. 그리고... "
천천히, 그 눈길이 아이의 볼길을 쓰다듬습니다. 부드러운 손짓에 거부하듯, 아이의 토라진 울음이 들려옵니다. 도라는 그 토라진 울음에 웃음을 짓습니다.
" 그 신앙을 깎아내리기 위해선, 누군가는 기꺼이 죽음을 맞아야 하지. "
죽음을 맞아야 한다. 그 이야기까지 꺼냈을 때. 시윤은 그가 하려는 일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더 멀리 도망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죽음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내려놓게 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신성을 대가로 아이에게 삶을 선물하려 하는 것입니다.
[ 영감. ]
아쥬르는 굳은 표정으로 도라를 바라봅니다.
[ 영감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신이야. 영감이 죽으면 이 곳에... 온기의 봄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 " 그렇군. " [ 그렇군이 아니잖아!! 이 영감아!!! ]
순식간에 악귀처럼 거대한 불꽃이 되어 피어오른 아쥬르는 도라를 집어삼킬 듯 분노를 토해냅니다.
[ 인간의 삶이라 해봐야 찰나의 시간에 지나지 않아. 그 찰나의 시간을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신 주제에 노망이라도 난 거야!??? ]
그 분노에도 도라는 별 대답을 이어가지 않습니다. 짐짓 평온하게 아쥬르의 대답을 들으면서 그는 아이의 볼깨를 쓰다듬으며 미소짓습니다.
" ... 괜찮네. 내가 아니라도 봄이라는 존재는 분명 다가오는 존재라네. 혹독한 겨울이 오고 나면, 잎사귀게 고개를 내밀듯. "
시윤은 문득 도라의 표정을 바라봅니다. 그 표정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니,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 결국 봄이 올테니 말일세. 하지만, 만약에 아주 잘 풀려 이 아이가 겨울 왕관을 계승한다 하더라도 말일세. "
" 이 아이는 봄이라는 것을 볼 수 없지 않은가. "
고신古神. 단순히 오랜 시간 살아왔다는 것으로는 그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울 삶.
" 그리고 난... " " 난 이만 죽음을 맞고 싶네. 매 겨울의 죽음을 내 두 손으로 알리고 싶지 않네. " " 단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죽음을 맞는 왕의 사형수가 되고싶지 않네. " " 그들은 언제나 나를 두려워했다네. 왜? 내가 그들을 만난다는 것은 봄이 온다는 이야기니까. 그들의 운명이 내 손으로 끝내야만 한단 것을 알리러 가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
아이를 바라봅니다. 작습니다. 겨우 숨을 뱉어내고 그 작은 운명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아이입니다. 만약 계승자가 된다면 왕의 자리에 올라 결국 죽음을 맞겠고, 아니라면 왕이 오르는 순간 이 야이의 운명은 끝이 납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삶. 당연한 죽음에도 덤덤히 왕관을 써야만 하는 존재.
신神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
천천히 아이는 눈을 뜹니다. 그 눈이 도라를 담습니다. 거대한 덩치, 흰 수염과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눈, 겨울의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손, 숨결에 닿음에 따라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존재. 아이는 방긋 웃습니다. 도라를 바라보며 웃습니다.
" 나는 이 아이를 위해 죽고, 이 아이에게 운명을 선택할 권한을 줄 걸세. "
아이의 손길이 도라의 볼에 닿습니다. 겨울을 닮은, 차가운 손길에 도라는 자신의 손으로 아이의 손을 가볍게 덮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처럼 무거운 신의 힘이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운명과 업무에 지쳐버린 고신은 심로한 노인과도 같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경계심에 위압을 발하던 신의 앞에 섰을 때 보다. 바로 지금, 아이를 위해 희생할 각오를 마친 노인의 앞에서. 더욱 더 떨리고, 가슴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아쥬르님의 말씀대로. 이것은 무척이나 불합리한 일일 것입니다. 봄의 신의 신성을 대가로 바쳐, 언제 끝날지 모를 지독한 겨울이 찾아오고...그걸로 구해낼 수 있는건, 그저 찰나의 목숨 뿐.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나는 조금은 약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객관적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저 한 아이의 생을 위해, 한 신의 존재가. 그로 인한 기나긴 겨울의 도래에. 천칭으로 올려놓을 가치조차 없다. 아쥬르의 말은 지극히 객관적이다. 눈동자는 조금 떨렸다. 나는 바보는 아니다. 저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런대로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하지만."
나는 이내 떨리는 손의 주먹을 쥔다. 이것이 세계에 이로운 선택인지는 모른다. 아니, 사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찰나의 목숨을 살아가기 위해, 그 찰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줄기 섬광처럼 빛나던 것들의 가치를."
나는 이성적인 척 하면서도, 결국엔 감성적인 녀석이다. 언젠가 알렌을 신랄하게 비판했음에도 마지막엔 눈감아주었던 것과 같이. 나라는 녀석은 중요한 기로에서는 늘. '무엇이 합리적인가' 가 아닌, '어떻게 하고 싶은가' 에 따랐다.
그로 인해 어리석은 짓도 하고, 손해도 볼 지언정. 어째서 그러는가 하면.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의지와도 같은 것! 위대한 힘을 가진 신도, 연약한 인간도, 살아가는 방식만은 자신이 고를 권리가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불합리 하다. 강해질 수 있는 녀석, 부유한 녀석 모두 정해져있다. 어쩔 도리 없는 악의와 폭력의 운명 또한 있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그것만은, 본인의 권리다.
"그러니까 찰나의 삶은 덧없으면서도, 무엇보다 찬란하게 빛난다고...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가슴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소리치듯 얘기하며
"이 대답을 듣고도, 가 아니에요. 이 대답을 들었기 때문에, 저는 도라 어르신을...돕고 싶어요!"
나는, 대답한다.
그 누가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이게 나의 대답이다. 이게, 내가 살아가고 싶은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