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이렇게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하면서 우물쭈물할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생각보다 훨씬 더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치아키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터트리고 말았다. 이 후배. 왜 이렇게 귀엽지. 아. 탐난다. 뭔가 데려가서 기르고 싶어.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당연히 그런 생각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짐작은 가고 있었기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대신 나름대로 축복 비슷한 것을 내려봐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그는 신이 아니었기에 직접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기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연의 신. 키즈나히메님이 언제나 지켜봐주시고 지켜줄거야. 그 소중한 인연."
연인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이렇게까지 말을 안할 정도라면 적어도 이 후배에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진심으로 그 두 사람의 인연이 오래 가기를 기원했다. 이 기원이 할머니에게 닿는다면, 키즈나히메도 조용히 축복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보이기도 하면서.
"그건 그렇고... 후배 군은 이 시기에 학교는 왜 온거야? 동아리 활동은 안하지 않았어?"
이전에 학생회에 권유할 때 그 관련은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떠올리면서 치아키는 괜히 궁금하다는 듯이 미카를 빤히 바라봤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산책 나갔다가 들린 것인지. 여러가지 가능성을 손가락으로 세던 그는 결국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만 작게 지을 뿐이었다.
다들 안녕하세여!!! 그, 그래도 괜찮아요!!!! 왜냐면! 왜냐면!!! 내일 쉬니까요!!!!(눈물) 이제 본격적으로 제가 공부의 늪에 빠지는 거는 다음달이고... 공부해야 하는 게 하루 더 늘어서 일하는 걸로만 따지면 일주일에 두 번 갈리지만 공부하는 걸로 따지면 일주일 내내갈리는 묘한(???) ㅇㅇㅇㅇ아 맞다! 저 31일부터 1일까지 스레에 못 와요!
어쩌지. 너무 귀여운데. 이 후배. 처음엔 되게 까칠한 줄 알았더니 그냥 귀여운 고양이잖아. 치아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쓰다듬어줘도 되려나? 쓰다듬을까? 그렇게 생각하지만 겨우겨우 그 충동을 그는 가라앉힐 수 있었다. 손을 올려서 머리카락에 대려고 하면 훅 피할 것 같았기에. 괜히 멀리 도망치게 두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보충수업이라."
지금 시간. 보충수업 시간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가만히 핸드폰을 꺼낸 후에 시계를 바라봤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아직 보충수업 중이라는 시간임이 핸드폰에 표시되어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건... 이내 치아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씨익 웃었다. 그리고 치아키는 이내 천천히 다가가더니 그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최대한 몸을 그늘 쪽으로 바짝 붙였고 그 상태에서 미카를 바라봤다.
"학생회장님 앞에서 땡땡이를 친다고 대놓고 말하면.. 내 입장에선 붙잡아갈 수밖에 없는걸. 하하핫. 어쩔까. 후배 군."
어찌되었건 자신은 학생회장이었고 학생의 규칙이나 규율을 지키게 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선도부만큼은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면서 치아키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봤다.
"음. 어쩌면 지금 학생회장님은 하늘을 보고 있어서... 미처 땡땡이를 치는 못된 아이는 못 보고 있을지도?"
괜히 그렇게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내면서 그는 양다리를 앞뒤로 천천히 흔들면서 오로지 하늘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도망칠거면 어서 도망치라는 듯이. 물론 그 자리에 계속 남아있어도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 소극적인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게 만드는 그런 미소라는 것을 넌 알까. 그러니 지금처럼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인데. 눈길 마주치자, 네가 시선을 피해버리면 아쉬움을 느낀다. 그렇지만 널 다시 미소 짓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게 되니. 그때에는 네가 더 환하게 웃어주었으면 하며 바라게 된다. 미유키는 빗물 고인 물웅덩이를 조심히 피하며, 두 명 정도 있다는 네 답에 고개를 끄덕인다.
"후배님은, 선배들에게 인기가 많나 봐요?"
조금은 짓궂게 들리진 않을까. 조곤조곤 말한 미유키는 생각에 잠긴다. 그 두 명이 누구인지, 너와는 어떤 사이일지, 네 밝은 표정을 보았을지 하는 생각을. 그러다 들려온 부드러운 네 불만에 미유키는 말없이 널 건너다보며 여전히 다정한 미소를 띤다. 그 말이 진심일지도 모르는 것이었지만, 어쩐지 그 말과 마음이 서로 다를 것만 같다고 멋대로 생각한다.
"그래도, 혹시 생각나면 놀러 와요."
마지막까지 조금의 여지를 남겨두며 말하고, 미유키는 편의점이 있을 골목을 향해 돌아서기 위해 잠깐 걸음을 늦췄다가 너와 맞추며 다시 걷는다. 타닥 탁,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조금 그 간격이 넓어졌을까, 천천히 걷는 걸음마다 물웅덩이에 반사되는 검은 하늘이 일그러진다. 조금만 더 걸으면 편의점이 보일 테니. 우산 아래서 너와 걷는 것도 곧 끝일게 미유키는 아쉬웠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묻고 말았어요.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는 선배가 두 명 정도 있다는 대답에서 어떻게 선배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결론이 나와요! 선배님의 질문에 얼마나 당황했으면, 일부러 피했던 시선이 다시 위로 향하게 됐습니다. 진심일지, 농담일지 말투로는 알아챌 수 없어서 눈을 깜빡거립니다.
“우연입니다. 선배님처럼요.”
말도 안 되잖아요.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데, 학생회장 선배님도 하시모토 선배님도 이 자리에 없어서 다행입니다. 너무 실례되는 말이라서 끊어서 잘라내듯 말하지만, 이미 귀가 뜨거운 것 같아요. 남들이 알면, 들으면 분명 절 이상하게 쳐다볼 말이니까요. 이런 오해는 꼭 풀어야만 하는데 풀릴 지 모르겠습니다...
“......공부 안 해요? 3학년이잖아요.”
혹시 생각나면 놀러오라니, 그럼 선배님 생각이 나서 반으로 찾아간게 됩니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어요. 답례를 위해서 3학년 교실을 찾아가는 일도 큰 맘 먹고서 해야하는 일인데,선배님 생각이 나서 놀러간다니, 절대 제가 그럴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상냥하신 만큼 친화력도 좋으신 것 같아요.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거나 서있는게 아니라 걷는 중이라 다행입니다. 정신이 환기되는 기분이니까요... 선배님과 발을 맞춰 걷다보면 편의점이 보입니다. 선배님을 잠깐만 붙잡아둘 방법이 무엇이 있나 고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