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여름의 끝무렵이었다. 이제 조만간에 여름방학이 끝이 나고 자연히 2학기. 즉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딱히 보충수업을 받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나 그래도 학교 풍경이나 구경할까 싶어 치아키는 신사에서 나와 학교로 향했다. 학교 앞마당은 보충수업을 듣기 위한 이들을 위해서 열려있었으나 지금은 한적한 것이 아무도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 하기사 이미 들어갈 이는 들어간거겠지. 혹은 땡땡이를 치고 있거나.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괜히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사실상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은퇴인가. 나도."
차기 학생회장 선거가 있을테고, 거기서 뽑힌 이는 새로운 학생회장이 되고 겨울 시즌에는 자신에게 인수인계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과연 다음 학생회장은 누가 될런지. 기왕이면 아는 이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치아키는 잠시 같은 학생회 멤버들을 떠올리며 그 중에 회장감이 있을지를 잠시 생각했다. 물론 당장 떠오르는 이는 없었다.
"아무렴 어때. 나야 선거 결과가 나온 후에 인수인계하고 졸업 준비하고 줄업하면 되는건데!"
가볍게 넘기면서 치아키는 이내 제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했다. 그러다가 날씨가 더운지 슬쩍 그늘 안으로 들어가며 그는 숨을 약하게 내뱉었다.
그렇게 미카는 대충 원예부실을 기억 한구석에 쑤셔넣고 가방 메고 교실을 나와 학교 정문까지 나선다 그냥 집에 갈까 싶었지만 마침 여름도 끝나가는지라 더위도 심하지 않으니 밖에서 좀 더 시간을 때워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서 미카는 교정 앞마당 한구석으로 쪼르르 걸어가서 그늘 아래 벤치에 자리잡고 앉는다 그대로 멍 때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문득 아는 얼굴이 걸어들어오는 게 보여서 말을 걸어볼까, 약간 고민한다 지금 보충수업 땡땡이 치는 중인데 괜히 아는 척 했다가 잔소리 들을 수도 있겠지만...
"...안녕하세요, 학생회장님."
그래도 무심한 낯을 하고서 결국 인사해버리고 만다 그건 여름 마츠리 때 등불을 나눠주던 학생회장의 모습이 생각났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일이 잘 풀린 게 온전히 등불 덕이라곤 할 순 없어도 아주 사소한 영향 정도는 끼치지 않았을까 싶어서
낯 익은 목소리를 듣고서 치아키는 바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은 낯이 익은 이였다. 삼고초려를 시도했지만 거절했고 정말로 의외의 인물과 함께 토모시비 마츠리에 참여했던 바로 그 인물이 아니던가. 반갑게 인사를 할겸 손을 흔들면서 치아키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어 빤히 바라보면서 그는 짓궂은 웃음소리를 냈다.
"이거. 이거. 후배 군. 묘하게 마츠리에는 관심이 없어보이더니 말이야. 여자애랑 같이 오고. 제법인데? 응?"
물론 여자애랑 같이 온다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었으며, 친구끼리 오는 이도 많았기에 그 자체가 특별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허나 지금 치아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이 후배를 놀릴 수단이 생겼다는 것.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기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장난스럽게 쿡쿡 웃었다.
"그건 그렇고 그 후배 양이라. 의외라면 의외네. 그 후배 양이라면 절대로 마츠리에 안 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둘이 친한 사이야? 그렇게 물어보면서 그는 얄궂은 미소를 유지하면서 빤히 미카를 바라봤다.
키득키득. 일부러 웃음소리를 내는 것이 꽤나 얄밉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치아키는 얄미운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에 말을 더듬는 모습이라던가 얼굴이 빨개진 모습이라던가. 그런 모습 등을 보면서 치아키는 절로 오- 소리를 내면서 가만히 미카를 바라봤다. 설마 이런 반응이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면 이 후배는 그냥 태연하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할 후배가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지금 보이는 이 반응은 꽤나 흥미로웠다.
시선을 피하는 미카를 빤히 바라보며 치아키는 일부러 그의 시선을 따라가듯 발걸음을 옮겼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일부러 쿡쿡 웃는 모습이 쉽사리 놓아주진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 후배 양이? 그 귀차니즘에 푹 빠진 후배 양이? 대단하네. 후배 군과는 그 귀차니즘을 벗어나서 같이 있고 싶었던 거려나?"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치아키는 이내 다시 한 번 얄궂게 쿡쿡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같이 온 이들 중에서 아는 이들 중.. 이성끼리 온 이도 조금 있었는데. 다른 이들도 만나면 살짝 물어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괜히 어깨춤을 추면서 신이 난 표정을 지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길고 긴 여름 더위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물론 바로 더위가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신선한 가을 바람이 불고 하늘이 맑고 높은 풍경을 보이는 계절이 찾아왔다.
가을. 그것은 곧 2학기의 시작이었으며, 학교 축제 준비 등으로 상당히 바빠지는 시기였다. 그리고 입시를 준비하는 이들은 더욱 더 바빠지는 시기였으며 입시에 관심이 있는 2학년진들은 빠르게 준비를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물론 즐겁게 노는 이들은 즐겁게 놀 것이고 청춘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즐기고 있을 것이다.
붉은색 가을 단풍. 노란색 은행잎.
그리고 곳곳에서 풍기는 맛있는 음식향기.
가미즈나에 가을이 찾아왔고 그 분위기는 여름의 열기를 식히며 조금씩 주변을 시원하게 식히고 있었다. 한 해의 반이나 지나갔고, 남아있는 반을 맞이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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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렇게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하면서 우물쭈물할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생각보다 훨씬 더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치아키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터트리고 말았다. 이 후배. 왜 이렇게 귀엽지. 아. 탐난다. 뭔가 데려가서 기르고 싶어.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당연히 그런 생각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짐작은 가고 있었기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대신 나름대로 축복 비슷한 것을 내려봐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그는 신이 아니었기에 직접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기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연의 신. 키즈나히메님이 언제나 지켜봐주시고 지켜줄거야. 그 소중한 인연."
연인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이렇게까지 말을 안할 정도라면 적어도 이 후배에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진심으로 그 두 사람의 인연이 오래 가기를 기원했다. 이 기원이 할머니에게 닿는다면, 키즈나히메도 조용히 축복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보이기도 하면서.
"그건 그렇고... 후배 군은 이 시기에 학교는 왜 온거야? 동아리 활동은 안하지 않았어?"
이전에 학생회에 권유할 때 그 관련은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떠올리면서 치아키는 괜히 궁금하다는 듯이 미카를 빤히 바라봤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산책 나갔다가 들린 것인지. 여러가지 가능성을 손가락으로 세던 그는 결국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만 작게 지을 뿐이었다.
다들 안녕하세여!!! 그, 그래도 괜찮아요!!!! 왜냐면! 왜냐면!!! 내일 쉬니까요!!!!(눈물) 이제 본격적으로 제가 공부의 늪에 빠지는 거는 다음달이고... 공부해야 하는 게 하루 더 늘어서 일하는 걸로만 따지면 일주일에 두 번 갈리지만 공부하는 걸로 따지면 일주일 내내갈리는 묘한(???) ㅇㅇㅇㅇ아 맞다! 저 31일부터 1일까지 스레에 못 와요!
어쩌지. 너무 귀여운데. 이 후배. 처음엔 되게 까칠한 줄 알았더니 그냥 귀여운 고양이잖아. 치아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쓰다듬어줘도 되려나? 쓰다듬을까? 그렇게 생각하지만 겨우겨우 그 충동을 그는 가라앉힐 수 있었다. 손을 올려서 머리카락에 대려고 하면 훅 피할 것 같았기에. 괜히 멀리 도망치게 두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보충수업이라."
지금 시간. 보충수업 시간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가만히 핸드폰을 꺼낸 후에 시계를 바라봤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아직 보충수업 중이라는 시간임이 핸드폰에 표시되어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건... 이내 치아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씨익 웃었다. 그리고 치아키는 이내 천천히 다가가더니 그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최대한 몸을 그늘 쪽으로 바짝 붙였고 그 상태에서 미카를 바라봤다.
"학생회장님 앞에서 땡땡이를 친다고 대놓고 말하면.. 내 입장에선 붙잡아갈 수밖에 없는걸. 하하핫. 어쩔까. 후배 군."
어찌되었건 자신은 학생회장이었고 학생의 규칙이나 규율을 지키게 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선도부만큼은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면서 치아키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봤다.
"음. 어쩌면 지금 학생회장님은 하늘을 보고 있어서... 미처 땡땡이를 치는 못된 아이는 못 보고 있을지도?"
괜히 그렇게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내면서 그는 양다리를 앞뒤로 천천히 흔들면서 오로지 하늘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도망칠거면 어서 도망치라는 듯이. 물론 그 자리에 계속 남아있어도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