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하자마자 끝내주는 음주부터 달렸던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다. …그치만 술은 봄 동안 잘 참은 포상으로 금주했던 만큼만 마시고 치우려고 한 건데! 속으로 변명을 해 보지만 그 포상이 하루이틀로 끝나지 않았으니 문제였지. 폐인 같은 생활은 맞았던지라 정말 말하지는 못하고 필요한 말부터 하기로 했다. "그래도 불편한 일 하나 정도는 있지 않겠어. 하다못해 벌레 잡아달라는 소리라도 좋으니 필요하면 꼭 말해야 한다?" 혹시나 해서 눈에 힘 빡 주고 당부한다. 사람 속마음은 잘 모르는 그라지만 하네가 좀처럼 손을 빌려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생각나는 한에서 가장 사소한 일로 예시를 들었으니 들어준다면 좋으련만.
시무룩하던 기색 슬슬 털어내고 이제 말짱해질까 하던 때였다. 반성했냐는 말에 퍼뜩 고개가 돌아간다. 이 흐름은… 용서해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앗, 기대감 드러내면 안 되지. 일관적으로 불쌍한 얼굴 유지해야 한다. 반짝 신나서 치고 나오려는 탄성을 꾹 눌러 참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나가 빠져서 텅 비었던 자리에 스티커가 돌아오자 시들거렸던 게 언제였냐는 듯 그는 다시 쌩쌩하게 팔딱거린다. 이로써 비량은 오늘 교훈을 하나 얻었다. 잘못하면 빠르고 순순히 반성을 하는 게 맞는 모양이다! 유치원생도 아는 당연한 상식을 오늘 처음 배운 사람처럼 생각하는 게 우습게 보이지만, 그간 머리로는 알았어도 오늘만큼 마음에 와닿은 적은 않았어서 말이다. 처음부터 잘못 안 할 생각은 끝내 하지 않는다는 게 괘씸해도 깨달은 점이 있으니 다행이라 봐 주자.
"바보는 감기도 안 걸린다는데 아프면 외려 지성을 증명한 셈 아니냐!"
이렇게 말하면 건강한 평상시의 자기 자신을 바보라고 인정한다는 뜻이 되는데. 하는 짓을 보면 바보 맞는 것 같으니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지금처럼 사람을 한 번만 물어보자며 들이대는 짓거리가 충만한 지성이 느껴지는 광경은 아니니까……. 그는 수월하게 한 입 하는 데 성공했다! 제대로 물었다기보다는 '와앙'이나 '냠' 같은 표현이 어울리게 입만 대고 마는 정도였지만. 정말로 팔을 내어줄 거라곤 생각 못해서 바보짓을 한 당사자도 꽤나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정말 깨물려 주면 어떡해!" 그대로 몇 초간 멍청하게 있던 것도 잠시, 그는 입 떼고 제 허벅지까지 팍팍 쳐 가며 크게 웃었다.
"나도 모르지! 그래도 네 덕에 진정 즐거웠으니 된 것 아니야."
덕분에 즐거워서…… 아마도 행복한 것 같다. 바로 이 순간도 그러하고 이제껏 언제나 그래 왔다. 행복이니 인연의 소중함이니, 그런 것이 무엇인지는 여태 잘 알지 못했고 지금도 사실은 막연하다. 하지만 이렇게나 사소하고 바보 같은 짓, 서툴지만 다정함이 드러나는 행동만으로도 진정 기쁜 마음이 들게 하니 이것을 행복이라 일러도 좋으리라. 그렇기에 이런 망종마저도 하네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는 하네의 미소를 보고 짓궂은 소리를 하는 대신 천연스레 말했다.
"저기에서 하는 것 같은데? 얼른 가자!"
소매를 끌면서 빨리 가자며 난리다. 걸음을 빠르게 옮겨서 탁 트인 강가에 멈추어섰을 무렵 먼 하늘 건너편에서부터 가느다란 불줄기가 느릿하게 솟아올랐다. 새까만 하늘로 오른 그것은 점차 흐릿해져 반짝 사라지더니, 펑! 시원한 굉음과 함께 한껏 부풀어 하늘하늘 떨어져내렸다. 불꽃놀이의 서막이 이제 막 올랐다. 화려한 불길이 연이어 밤하늘에 솟아오르는 동안, 그는 하네에게 슬며시 몸 기울이고 속닥거렸다.
"안 보이면 목말 태워 주랴?"
정말이지 한시라도 안 놀려먹는 때가 없다! 얼른 눈 찡긋거리며 그가 히히 웃고는 덧붙였다.
케이주도 어서 오세요! 그러니까 음. 가급적이면 이제 빨리 마무리 작업을 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목요일 0시가 되면 정말로 얄짤없이 끊어버릴 생각이거든요. 그리고.. 다음 이벤트부터는 조금 기간을 변경하는 것으로 할게요. 그렇다고 막 월요일 0시에 끊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너무 길게 하니까 약간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보니.. 화요일 0시에는 마무리를 하는 쪽으로. 그러니까 하루 정도의 기간만 더 주는 쪽으로 바꿀까 싶어요.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하고, 젓지도 못하고 가만 있습니다. 긍정하기에는 칭찬에 그렇다 고개 끄덕이기 민망했고, 부정하기에는 아저씨보다 더 살뜰하게 지낸다는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약속부터가 아저씨가 술 마시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해버려서, 술 마시지 않는 대신이라는 조건을 걸어서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부정해버리면 아저씨가 더 살뜰하단 게 되고, 그럼 또 술 마실 지도 모릅니다. 학생 신분으로 있는 동안은 안 된다고요! “......신을 벌레 잡아달라고 불러도 되는 거예요?” 고작 벌레 잡아달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요......? 아저씨가 눈에 힘을 꼭 주고서 말하니 되려 눈을 깜빡거리며 당황하게 됩니다. 목소리를 낮추고서 물어봤지만, 된다는 말이 나와도 아저씨를 부를지 모르겠어요. 아, 아니면 역시 부탁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학교에 같이 다녀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아저씨는 부탁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은 것 같아 내심 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우선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쉽고 간단한, 하지만 불편한 일이 있을 겁니다.
“거짓 반성이면 다시 뺏어갈 거니까요.”
그래보이지는 않지만요. 아저씨는 정말 닮고 싶을 만큼 감정에 솔직하시니까요. 아까 그게 전부 거짓이었다고 하면 아저씨는 지금 학교에 다닐 때가 아니라 인간계에서 대배우로 거듭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주는 스티커가 뭐라고, 이 스티커 하나하나에 희비가 오가는게 고맙기도 하잖아요. 저야 이 스티커를 모으는 의미가 있지만 아저씨한테는 무슨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르겠고요.
“그러면 지금 바보됩니다. 그리고 지성의 증명은 그런 걸로 하는게 아니거든요!”
아프지 말라는 말을 직접 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이러다간 문안 받고 싶다고, 지성을 증명하겠다고 한 번 앓아 누우실까봐 걱정됩니다. 신에게 인간들이 먹는 약이 통하는 지도 모르겠는데 정말 아파버리면 어떡해요. 증상만 감기같이 보이지 다른 큰일이면 더욱 안 됩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바보가 낫잖아요. “......끝이에요?” 물리겠다 싶을 때 딱히 통증은 없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느껴지지 않는걸까 싶어서, 조심스레 눈을 뜨고서 제 팔을 보면 물려있긴 했어요. 깨무는 시늉 정도였습니다. 아저씨의 장난에 크게 당한 모양이예요. 겁 먹었던게 무색하지만 저 말을 아저씨가 할 건 아니잖아요! “팔 안 내밀었으면 다른데 물렸을 지도 모르잖아요! 아저씨가 물어놓고!” 정말로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입술도 삐죽거리고 맙니다.
“...제 덕이에요?”
웃는 모습 보이는게 어색해서 늘 숨겨왔던 건데, 숨기지 않아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이게 웃어도 괜찮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순간에 바뀌지는 못 하겠지만, 괜찮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입꼬리를 눌러두려고 힘을 주지도 않았고, 손으로 입가를 가리지도 않습니다. 손도 제자리에 있었고, 아까처럼 크게 웃는 것 같지는 않지만 입꼬리도 조금 올라갔습니다. 손가락으로 찔렀을 때보다도 작지만, 그래도... 뿌듯하잖아요. 히히 웃는 소리도 내버릴 것 같은데 그건 아직 조금, 부끄러우니까 참아요.
“됐거든요. 잘 보입니다.”
소매가 끌리는 대로, 아저씨가 가는 속도에 맞추어서 걸음을 떼다가 멈추면 불꽃놀이가 펑 터져오릅니다. 오늘은 별이 많이 보이는 날 같아요. 등불을 띄운 강가도 별 같았고, 불꽃놀이도 화려하게 하늘에 피었을 때는 마치 별 같으니까요. 또, 아저씨 눈도 그랬어요. 반짝반짝했으니까 별 같습니다. 물론 정말 불꽃이라도 일으킬까 싶은 모습은 두 번 겪고 싶진 않은데요.........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아저씨가 장난을 쳐와서 눈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가, 최종 평가라는 말에 눈을 깜빡입니다. 아저씨라면 또 칭찬 세례를 할게 뻔하니까 그렇더라면 말로 듣는 것보다는 스티커가 나아요! 별점 처럼요. 나쁜 말은 추후에 고칠 수 있게 제대로 듣는 편이 좋지만요. 아저씨에게 제가 갖고 있는 스티커를 건넵니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물어볼 걸 그랬나. 사에가 당장이라도 넘어올 것만 같아 귀를 활짝 열어두었다가, 수틀리자 수작 부리려고 했던 것 숨기지 않고 칫 혀를 찬다. 평소 같았으면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플랜 B로 넘어갔겠지만 수업은 계속 들어야 하니 거울을 바라본다. 물론 순순히 시키는대로 할 리 없지. 그는 거울을 통해 사에를 보려고 했으나…… 곧장 컷 당했다. 사에는 거울을 통한 시선까지 차단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나올지 벌써 예상한 거야? 내가 그렇게 알기 쉬운가."
그래. 기상천외한 장난질 나올 때만 빼면 대체로 엄청 알기 쉽다. 바뀐 설명을 듣고서는 그럭저럭 자세 교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엄청나게 쓸데없지만 신경쓰이는 궁금증이 그를 강타한 바람에 집중력이 반토막이 나 버렸다. 과연 나는 횡격막이 있는가? 겉으로 보이는 웬만한 것들은 다 있지만 그 안에 횡격막이나 쓸개 같은 비교적 사소한 장기들이 있을지는 생각 안 해 봤다! 그걸 느끼기도 무엇하고. 아니, 애초에 본형은 만져지지도 않는 모습인데 과연 '실체'의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딸꾹질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럼 역시 없는 건가……. 정신이 딴데로 팔려 버렸으니 더 이상 진행하기에 그른 건 그도 마찬가지다.
"생각해 봤는데 나도 진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
……확인할 방법이 뭘지는 구태여 묻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아무튼 그도 이렇게 저렇게 하던 자세 풀고 편하게 양반다리로 돌아왔다. "안 해봤다니까. 내가 원래 좀 잘해서." 잘난 체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기고만장한 소리다. 허세는 아니라도 프로 앞에서 건방지기도 하지. 양심도 없고 겸양도 없는 신이지만, 그래도 비량은 잘해준 데 대한 은혜만큼은 알았다. 그는 사에를 바라보며 예의, 아니 이번에는 감격의 뜻을 잔뜩 담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해 보였다.
"어쨌든 가르쳐줘서 고마워! 음, 기분 좋아서 그런데 뭐라도 해줄까?"
다시 말하는데, 그는 뭘 받거나 기분 좋으면 이것저것 갖다 퍼주기 좋아하는 신이었다. 물론 괜히 뭘 하겠다며 사고를 치는 것보단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보답이 될 것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