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보다는 더 복잡한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자와」의 안내를 받아 가미즈나의 수원(水源) 샘에서 물을 얻고 돌아와서, 숙소에서 뻐근한 다리를 쭉 뻗고 TV의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을 때였다. 같은 방의 여학생 둘이 이른 저녁인데도 별안간 유카타를 입고 커다란 연등을 들고 나서는 걸 보고, 요이카는 “어디 가?” 하고 물었다.
“토모시비마츠리! 소원 빌러 가.” 분홍 유카타가 말했다. “요이카 짱은 안 가게?” 노랑 유카타가 덧붙였다.
“그게,” 요이카는 고개를 기울이고 고민하는 시늉했다. 팸플릿을 주의 깊게 읽었으므로 토모시비마츠리가 어떤 행사인지는 잘 알았다. 그렇다고 솔직히 ‘연등은 좀, 불 붙은 걸 들고 물에 내려놓는 동안 머리카락이 홀라당 탈 것 같아’라고 어떻게 말할까? “오늘 샘까지 갔다 오느라 다리가 너무 아파서⋯ 나중에 가려고.”
두 사람이 명랑하게 손 흔들며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요이카는 문득 그들이 손을 맞잡고 소원을 빌면서 그들 사이에 마구잡이로 늘어져 있던 붉은 실의 존재를 눈치채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상념에 깊이 빠져 있던 탓인지 이윽고, 고민 없이도 하품 같은 한숨이 나왔다. 「잘해 보라」고 잎사귀 하나 선물해 줄 수 없다니.
이즈모에 안 간 지가 오래되었다.
시월상달, 간나즈키(神無月)에는 거의 모든 신들이 이즈모에 모여 사람들의 연을 맺기 위한 회의를 연다. 물론 키구치 요이카도 원래는 참석해야 한다. 허나 인간의 이름이란 대단히 외우기 어려우면서 그 수효도 어마어마한 것이라, 혼슈 섬을 북녁 끝 아오모리로부터 시모노세키까지 이을 만큼 긴 두루마리를 가득 채운 이름들 사이에 거미줄처럼 얽힌 실들을 비틀고 꼬아 한 해의 인연을 정한다는 것이, 요이카에게는 스트레스 폭탄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때 가모아시야마에서 신령 노릇 하던 시절에는 억지로라도 끌려갔지만, 자기가 신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서는 발길을 끊은 것이 기억을 되찾고 나서까지도 은근슬쩍 이어져 오고 있었다.
이런 습성이 인간 사이에 섞여들고 나서도 계속되어서, 누가 누구를 좋아하며 누가 누구한테 진심 초코를 주었다더라,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흘려넘기는 지경에 다다랐다. 요이카는 연애 불구자였던 것이다. 그러니 남의 연애에 참견할 깜냥은 전혀 되지 않는다. 자기 연애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신체가 살아 있던 시절 꽃가루가 날아오면 열매를 틔우고 묘목이 자라면 바람을 보내면서도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전혀 없었다.
낮에 떠 온 샘물이 여전히 물통 속에서 정한 기운을 발했다. 혹시라도, 한 모금 마시면 이즈모로 가는 길이 다시 기억날지도 모른다. 겸사겸사 옛 친구도 떠올리고 대관절 사랑이 무엇인지도 좀 알아차리고, 사람이나 신령이나 껌뻑 죽을 만한 고백 멘트를 몇 가지 생각해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용없다는 생각이 물빛보다도 깊게 일렁거려서, 요이카는 물통을 배낭에 도로 넣어 버렸다. 간나즈키는 무슨 간나즈키인가,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바보 쑥맥. 요이카는 강가로 떠나간 두 사람 생각에 잠깐 얼굴을 붉혔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이 돌아왔다. 노랑 유카타는 콧잔등부터 귀까지가 빨개진 채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고, 분홍 유카타는 어딘가 들떠서 평소보다 더 어색하게 조잘조잘댔다. 요이카는 분홍 유카타에게 스마트폰을 빌려서, 유명한 OTT 서비스에서 『벽난로 4K』를 찾아 재생했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전자 화상(畫像)의 난롯불을 바라보며, ‘인간들의 사랑은 불꽃 같구나’ 하고, 조금 몸서리치며 생각했다. 결국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이카는 토모시비마츠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단순한 호의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역시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건 영 내키지 않았는지 조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수확이라는듯 미련없이 총을 내려놓는 모습에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도 뒤이어진 그의 말에 조금 집중했으려나,
신이 자신에게 미소지은 적은 없는것 같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그럭저럭 웃어준것 같다는 언행은 단순히 신을 믿지 않는 것과는 달랐다. 아무렴, 믿지 않는 쪽이었다면 자신이 신직가문의 딸이라는 것에도 신기해하는 것이 아닌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을 테지만... 무엇보다 마츠리 자체도 별로 내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아, 그렇네요. 슬슬 그럴 때가..."
잠깐의 즐거움과 사색에 하마터면 본목적을 망각할 뻔했을까, 손을 내미는 그를 따라가다 살짝 고개를 기울이는 모습에 따라서 반대편으로 갸웃거렸다.
"지금의 결과도 물론 좋지만 어느 하나만 가져간대도, 만만치 않은 인형의 내공에 두손두발 들어도 그것만의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못내 아쉬웠다면... 반대로 제가 도전해보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죠."
다만 이번은 그에게 길조가 와닿은 것일테지.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항상 나쁜 일만 일어나리란 법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쁜 일만 일어난다면 인간은 진즉에 신이란 존재를 증오하고 내쳤겠지.
인생은 마치 가파른 언덕 내지 롤러코스터 같아서 언제 올라가고 언제 내려갈지는 그 길을 꿰고 있지 않다면 쉽게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자신은 모르는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는건 썩 내키진 않겠지만... 두렵다고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 또한 인생이었다.
"만약 오늘 아무런 수확이 없었대도, 다음번엔 다른 곳에서 보상이 있을지도 모르구요. 노력은, 쌓아올린만큼 뒤늦게라도 돌아오는 법이니..."
제 섬기는 이의 긴 귀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 들으며 보고 있는 한 노력하는 이에게 반드시 응당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라고 믿고 있으니까.
아저씨의 실없는 웃음을 보고 한숨을 쉽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아저씨가 그렇죠, 뭐.’ 그런 느낌의 한숨으로 보였을 것 같지만, 안도의 한숨이었어요. 하셨던 말씀대로 내일부터 달라지겠다고 건실하게 다니셨다면 낯을 가렸을 지도 몰라요. 17년동안 보아서 익숙할 대로 익숙한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행동이 너무 달라지면 어쩔 수 없습니다......
“혼자 알아서 잘 합니다.”
잘 시간에 괜히 깨어있는 짓은 안 해요. 할 일이 있으면 모를까, 밤을 지새우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혼자 있으면 밤이 유달리 길고 어둡게 느껴지니까요. 가족들이 워낙 시끌벅적한 탓도 있는 것 같아요. 한 명이라도 같이 집에 있으면 조용할 새가 없는데, 저만 있는 집은 차분하게 가라앉아있습니다. 물론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어요. 애초에 외로움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가족들이 괜히 신경쓰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걱정할만한 일은 안 만드려고 노력했는데도 아저씨가 일본에 와서 같이 교복을 입고 다니고 있으니까요... 괜히 신경쓰게 만들고 싶지 않은 건 아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들도, 아저씨도, 앞으로 많은 시간이 있으니까요.
“정말 반성했어요?”
아저씨가 스티커를 반납해야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갯수를 줄일 생각은 없었어요. 아저씨가 즐거운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하니까요. 원래 아저씨한테 붙어있던 스티커는 제 손등 위에 붙여뒀지만, 새로 스티커를 꺼냅니다. 아저씨의 모습이 꼭 몇날며칠 햇빛도 받지 못 하고 물도 받지 못 해서 시들어가는 화분 같아서,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다시 스티커를 붙입니다. 제 손등으로 떼어온 스티커가 붙어있던 자리에 다시 꼭 붙여요. 계속 시무룩해하며 저를 쳐다보기만 했다면 다음부터 그러지 않기로 약속이라도 받아내고서 새 스티커를 붙여주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먼저 반성한다며 이야기를 해주어서 오히려 의외였습니다.
“바보라고 놀려야하니까 오지 말래도 갈 겁니다.”
오지 말래도 가겠다는 말 빼고는 전부 거짓말이에요. 제가 하는 말 중에 거짓말이 얼마나 많은지 계산하고자 하면 50%는 확실히 넘습니다. 늘 거짓말로, 단순한 거짓도 아니고 날 서고 모난 말로 마음을 숨겨요. 하지만 차라리 그런게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말로 애써 에둘러 감싸지도 못하고, 정말로 마음과 반대로 대답해야 할때요. “네.” 아프거나 힘들 때 아저씨를 찾지 않을텐데, 그렇다고 대답해버렸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아예 아저씨를 보지도 않고 말했어요. 거짓말을 하는 동안 눈이 마주치면 양심이 따끔거려서 거짓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잠, ...”
‘잠시만요!’ 라고 끝까지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아저씨가 정말 깨물려는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물릴 거라면 최대한 물려도 괜찮을 곳을 물리자고요. 그래서 생각한 곳이, 제일 내밀기 쉬운 곳이 어디었냐고 하면 오른팔입니다. 저는 왼손잡이니까요, 왼쪽을 물리면 안 돼요. 아저씨의 얼굴 앞에 오른팔을 내밀고서 두눈을 꼭 감았습니다. 고개도 휙 돌렸어요. 흡혈귀 같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신에게 물린다고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죠? 몸에 너무 힘이 바짝 들어가서 떨리는 것도 같아요. 겁 먹었다거나 무서운게 아닙니다, 절대로!
“아저씨는 이미 웃고 있었잖아요. 뭐예요, 그게.”
문장 자체는 핀잔 주듯이 느껴졌지만, 그러니까요, 웃어버렸으니까요. 행복이란게 이렇게 간단하고 쉽게 이루어지는 건지, 이미 웃고 있는데 굳이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찌를 필요도 없잖아요. 일부러 저를 따라하고서야 소원 성취라고 하는 말도 그렇습니다. 제가 만든 건 가짜로 만든 웃음인데 소원 성취일 리가 없잖아요. 어이없다는 말도 생각나고, 우습다는 기분도 드는데 나쁜 느낌은 아니어서 웃음이 나요. 그렇게 웃다가, 뒤늦게 활짝 웃어버린 것 같아서, 뒤늦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뒤늦게 손으로 입가를 가렸어요. 괜히 다른 곳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한 마디를 해요. “...불꽃놀이도 보러 가야 해요.”
동거를 시작한지 일주일째, 나도 그 아이도 어느새 서로에게 익숙해진 것인지 제법 자주 말을 나누게 되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부드러워지는 말투에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그 아이가 직접 말 할 때까지 묻지 않도록 했다.
아이는 식욕이 적은 편이었다. 또래 아이들처럼 단 것이나 화려한 것에는 흥미가 적었고 때때로 간식을 준다면 거부하지 않고 먹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먹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부분은 나와 닮은 건가. 나 역시도 식욕은 적은 편이라 가게의 재료로 적당히 해먹는 정도였으니까. 보면 볼수록 그이와 나의 아이처럼 느껴진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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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체를 깨달은 것은 그 사람이 나를 주운 뒤로 반나절이 지나서였다. 그래, 길지는 않아. 이렇게 따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도 나도 안다. 정확히는 기절했다가 일어나서, 검 집을 벗기고 내용물을 본 순간부터. 그래도 대략 두시간 정도 밖에 차이 나지 않아.
그건 솔직히 중요하지 않은 일이야.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이렇게 지내게 되었느냐 하는 일. 거기에서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혜를 진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보은을 해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이지. 막연하게 무슨 축복 같은 걸 내리면 되는 걸까 하기도 했지만, 생각해봐. 신사는 없지, 신앙도 없지. 남의 신앙에 빌붙어서 근근히 먹고 살고 있는 검신이 줘봐야 뭘 할 수 있겠어. 그래서 일주일정도는 가만히 있었어. 정말로 식객이 된 것처럼 [아직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라던가 [속이 안좋아]라던가. 누가 보면 기절할 광경이었지만 계속 그렇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나는 뭐라도 하고 싶어서 후미코 씨에게 상담 했어. 그랬더니 혹시 학교에 갈 생각은 없냐고 그러더라. 잘 쳐줘도 갓 초등학교 졸업한 수준의 몸이었으니까… 뭐 그런거겠지.
“사칙연산은 할 수 있니?” “그게 뭔데?” “이건 힘들 것 같구나.”
뭐 그 뒤로 그 정도는 극복했어. 이렇게 당당하게 중학교에 들어올 정도로는 말이야. 1년정도 걸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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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은 중학교 입학시기! 아직 야생성이 남아있던 시기의 카즈에입니다! 입학하고 세달도 안되서 지금의 성격이 되어버리니까요! 흑역사라는 거겠네요!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대강이나마 아는 것뿐이니까요. 물론... 둘이서 어떻게든 물어물어 가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라 할 수 있겠지요?"
애써 웃어보이는듯 했지만 느껴지는 분위기 자체는 조금 어둑했을지도, 혹시나 자신이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명쾌한 답변이라거나 알맞은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한낱 축생이라 해도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으려 하는 법, 그렇네요... 겉으로는 갖은 장난을 치는 사람이라고 해서 속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으니까요.
인간의 노력이란건 별게 아니랍니다. 호의를 호의로 돌려주는 것, 당연하지만 대부분이 지키지 않는 것들을 몸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야말로 노력의 일부인 셈이지요. 혼자서는 지루하다. 이곳까지 안내하는 것도 도움이다 하셨지만 그것을 호의로 여겨 보답하려는 선한 마음이 있을진대, 어찌 그것을 지나칠 신이 있겠나요?"
세상엔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이들 천지이며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들도 허다하다. 이런 세상에서 도리어 자신이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베푸는 이는 분명 흔치 않기에, 어쩌면 신들조차 그 품성에 시기질투를 하기에 억하심정으로 그들에게 시련을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이전에 늘 하던 버릇이 튀어나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자신이 인형을 안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었을까? 그렇게 빠른 발걸음으로 나서다보면 어느새 하나둘씩 등불을 들고서 어디론가 향하는 풍경이 보였다.
"신사에서 강가까지 향하는 행렬인가 보네요? 저희도 서두르도록 해야겠네요."
물론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까지야 시간이 남아있겠지만, 기왕이면 불꽃놀이의 초연을 보고 싶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아올 수 없다.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내일이 기록된 역사의 마지막 글자에 다다를 때까지 살금살금 걸어 날마다 다가오고 있을 테니까. 이 또한 시간이 흐르는 자국을 따라 점차 무뎌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는 이 순간만큼은 기뻤다. 멀리서 별이 흐려지고 있다. 검은 머리카락은 어느새 금빛 은하수에 흠뻑 젖었다.
“일본에서 행복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어요. 다만 그런 척했을 뿐이죠. 그런데 오늘은 정말 즐거웠어요! 여러 가지 처음 해보는 것들도 많았어요. 좋은 기억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야나기의 눈속에 잔잔한 물살 위로 일렁이는 불빛이 불그스레 고였다. 소원! 등불을 띄우는 일도 해보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한 가지 염원을 위해 그녀는 이 자리에 서있다. 스스로조차 속여가며 열망하던 바람을 이제서야 깨달았는데, 아직은 나약해 혼자 힘으로는 이룰 수 없다. 물론 등불을 떠내려 보내는 것 정도로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 믿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을 위로할 제사에 가까웠던 것 같다. 너무 늦게 알아차려버린 것에 대한 사죄처럼. “네, 빌어야죠!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손을 놓아 촛불처럼 강물을 밝힌 희미한 달빛에 등불을 흘려보냈다. 희미한 물너울이 여명의 끝자락까지 소원을 데려다 주길 바라면서—물결 따라 곤히 잠들렴. 불빛이 사그러들 듯 멀어질 때쯤 미야나기가 입을 열었다.
“아! 선배에게 들어달라고 할 소원은······ 무려 집 가기 1분 전에 공개됩니다.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