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직이, 조용히 중얼인다 이 소박한 마을에서 얽은 인연의 실타래가 전부 제게 과분할 정도이기에 그래서 끊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욕심이다 감당하지 못할 파도거늘 어째서 놓아주지 않으려 하는가 지치고 상처입어 헤매던 이 소년은 누구보다도 타인의 정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 저라는 그릇 안을 온기로 가득 메우고 싶다 그게 훗날 독이 되어 흘러넘칠지라도
무언가를 이루고자 소망을 비는 행위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해보는 거 같았다 미카는 뭘 그리 생각하는지 잠깐 상념에 잠겨있다가 문득 시선을 옮겨 키리나즈메를 바라본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미야나기가 당황해서 머리카락을 쭈뼛쭈뼛 세웠다. 장난으로 한 말에 제가 되려 넘어가 당한 기분이다······. 앞으로는 이상한 농담 안 해야지. 신사로 가는 길목은 이미 적지 않은 인파가 모여 작은 물살 같다. 강가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손에 하나둘 들린 등불이 노란 물감으로 점묘한 반딧불처럼 거리를 총총 밝혔다. 고개까지 한껏 기울여가며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 구경한 그녀가 토리이를 지날 때쯤 말했다.
“신사에 와보는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여기, 혹시 오미쿠지도 할 수 있으려나!”
일본에 살면서 신사를 안 가보기도 참 힘들 듯한데, 미야나기는 당연히 노력해서 열심히 피해 다닌 쪽에 속했다. 별개로 오미쿠지는 한 번쯤 해보고 싶었나. 잔뜩 반짝거리는 눈으로 종이를 묶어둔 나무가 있는지 찾았다. 물론 운세고 나발이고 일단 등불이나 먼저 받는 편이 좋겠다!
// 아아앗… 슬프게도 놀러 간 건 아니라서… 대충 답레 올라오면 이 아빠.. 끝내주게 쉬고 잇나 보구먼.하면 댄다..🫠 아무튼 기다려 줘서 늘 고맙다구 ㅠ ㅇ ㅠ 〰️
미카는 신호와 함께 등불을 강 위로 띄워보낸다 둥실둥실 떠내려가기 시작한 등불은 곧 다른 무리에 섞여들어간다 물살을 따라 잔잔하게 흘러가는 등불들이 노을과 함께 해 지는 풍경을 수놓는다 무척이나 장관이다 이렇게 성대한 축제를 즐기는 것도, 친구라는 이와 함께 나란히 있는 것도, 셀 수 없을 정도의 인파 속에 섞여보는 것도 전부 생소한 경험이라 왠지 감상적인 기분마저 든다
"...키리나즈메 씨는,"
강물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던 미카의 눈빛에 문득 이채가 어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쉬이 알기 어렵다
"앞으로도 내 친구로 있어줄 거야?"
허나 인연의 지속성을 묻는 그 어조는 평이하고 온화하기 그지없다 그저 평범한 일상 대화를 하는 것마냥
케이는 사에의 당황하는 모습에 작게 웃으며 일부러 보란듯이 주머니 속에 구슬을 챙겨넣었다. 신사를 가는 길목을 지나며 라무네를 마시다보니 남은 빈 병은 지나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신사로 가까이 갈 수록 등불을 든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짙은 푸른색의 하늘 아래 노란 불빛들이 반짝이는 모습은 꽤나 운치있는 광경이었다.
"오미쿠지라...... 아, 저기에 있는 것 같은데요?"
우미쿠지 자동판매기가 있다. 아마 간단하게 동전을 넣으면 운세가 적힌 종이가 나오는 식인 듯 하다. 주변 나무에는 종이들이 잔뜩 묶여있다.
둥실둥실 떠가는 것이 장관이라고 생각하는 사야카이다. 저 멀리멀리 나아가는 것이 부치고 흐려지고 사라져버린대도. 끝은 그리 안타깝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감상적인가. 라고 한다면 그러겠는데, 본래 두려운 것은 감상적이고 주관적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깨닫게 된 이후로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게 되기도 했지마는.
"음?" 미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보다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합니다. 친구...
"친구라면 예스이긴 함..." 평이하고 온화한 일상대화인 것인가? 의미를 쉬이 알기 어려운 듯한 말에 친구라면 예스이긴 하다고 답을 돌려줍니다.
"관계나 인연이라는 게 다양한 법이긴 하긴 함." 아까의 금붕어들도 우리랑 만났지만 다시 돌려줬으니까 잠깐 닿았다 떨어진 인연인 것임. 이라는 가벼운 말을 합니다.
리오는 굳게 마음을 먹고 옷장을 열었다. 지난 번 마츠리때 하네와 함께 입었던 후리소데가 눈에 들어왔다. 가진 옷 중에 가장 비싼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시즌에 새로 나온 명품 옷 따위가 아니라 이미 산 지 몇 년이나 된 전통의상이었다. 처음 샀을 때 분위기에 취해서 이것으로 하겠다고 고른 이후로 축제날이 아니면 빛을 보지도 못하고 있다. 더 안좋은 점이라면 이번 축제에도 아마 옷장안에 갇혀서 하루를 보내버리고 1년에 한 번 오는 여름의 축제도 보내버릴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래선 안된다. 멘헤라도, 의존증도, 친구가 없는 것도 고치려면 결국 변해야하는 것은 자신이었고 마음을 먹어야하는 것도 자신이었다. 누가 손을 잡고 끌어주지도 않고, 등을 밀어주지도 않는다. 문제를 고치는 첫 번째 단계는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었으니 이미 첫 번째 단계는 넘어간 셈이다. 그래서 굳은 마음을 먹고 옷을 갖춰입고 밖으로 나섰다.
" ... "
그리고 곧장 후회했다. 여기도 저기도 함께 나온 사람들 천지에 여름의 따스한 공기에 약간 시원한 바람까지 모든게 살아있었다. 이렇게 모두가 어울리고 밝은 분위기만을 풍기는 곳에 있어도 되는걸까. 긴 소매에 가려 보이지 않을 자기파괴의 흔적이 아릿하게 아파오는 느낌이 들어 리오는 살짝 인상을 구겼다. 그리곤 정처없이 걸었다.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나진 않을까, 혹시라도 무언가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는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기약없는 기대를 걸고 정처없이 걸었다. 두 명이, 세 명이, 네 명이 함께 걸어가는 사이로 혼자서 묵묵히 걸었다. 괜히 나왔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냥 돌아갈까 싶었지만 이미 꽤 걸어나와서 이대로 돌아가기는 무리였다.
이왕 나온거 거리의 끝까지 만이라도 가볼까 싶어 잠깐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오래 걸으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슬슬 다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적당한 벤치를 찾아 앉으려 해도 두 명이, 세 명이, 네 명이 앉아있다. 저 사이에 혼자 앉아있으면 그거만한 궁상도 없겠다 싶어 금세 관두었고 저 사이에 앉아있을 생각을 하니 아팠던 다리도 아프지 않아졌다. 그리곤 다시 조금을 걸었다. 목표는, 신사를 찾아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디에 있는지 따위 알 게 뭐야.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걸을 뿐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더는 참지 못하겠다면 그 때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렇게 생각없이 걷던 것이 미유키와 부딪힌 이유였다. 눈이 먼저 마주쳤고 어라- 하는 사이에 툭 하고 부딪혔다.
" ...미안. "
눈을 들어도 얼굴이 보이지 않아 살짝 당황했고 뒤이어 고개를 들어 그 노란 눈동자와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마치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듯 보는 그 눈동자에 리오는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하고는 올빼미 앞에 놓인 토끼마냥 몸이 굳어버려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뭐라고 해야할까. 부딪혀서 미안해. 죽을까? 라던가, 앞을 제대로 못 봐서 죄송합니다. 죽을까요? 라던가 그도 아니라면 그냥 죽을게. 하고 자리를 떠버릴까. 하나하나가 최악의 답변이다. 소매 안에 감춰진 자기파괴의 흔적이 다시 또 저릿하게 아픈 느낌이 들었다. 리오는 말라버린 입술을 핥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미야나기가 그 앞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체득하는 데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진작 알아놓고도 머저리처럼 쫄린 티내다가 또 남 좋은 일만 시켰으니 말이다! 이제부터는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무조건 포커페이스다······. 어쨌거나 그 말대로, 과연 그녀는 열받을 일이 너무 많아 마침 골머리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그쵸?” 하며 하소연하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려는 척 애썼다. 하마터면 그대로 휘말려서 나불나불 다 털어놓을 뻔했다.
“······어쩜 수업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것만 궁금하세요? 시선은 항상 손끝을 따라가게 하거나 객석에 둬요. 남의 얼굴이 아니라.”
그러니까—지금처럼 매트 위에 앉아있을 때는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어야 할 테다. 있는 힘껏 험상궂은 표정을 지은 미야나기가 얼른 전면 거울을 가리켰다.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불상사가 재차 일어나기 전에 미리 선수 쳐 막으려는 심산이다. 물론, 올바른 시선을 지키지 않는 건 연기자로서 결격 사유이니만큼 영 생뚱맞은 트집은 아니다! 그런 것 치고는 본인도 행여나 눈 마주칠까 천장만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러면 둘 다 결격이다.
“어······ 아마 해부학적으로도 그게 맞을 텐데. 등근육을 써서 최대한 흉곽을 좁히려고 해보세요.”
‘횡격막이’, ‘진짜로’, ‘있어’······? 난생 처음 듣는 단어의 조합인 탓에 그녀는 조금 당황했다. 횡격막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게 없을 수도 있는 물건이었던가? 물론 신께 횡격막이 있다는 말 역시 처음 들어보는 건 매한가지이긴 했다. 와, 있는 것도 이상하고 없는 것도 이상하고······. 직접 만져 보면 뭔가 알아낼 법도 한데 하필 그럴 수 없는 부위라 안타깝다. “······그냥 안 하는 게 좋겠어요. 어렵다.” 미야나기가 단념했다. 인간을 티칭하는 것도 힘든데 첫 학생이 인간조차 아닌지라 웬 고행이 따로 없다. 곧 시범 보이느라 세우고 있던 를르베도 풀고 내려와 그 자리에 쪼그려앉았다.
“그래도 처음인 걸 감안하면 무지 잘하셨어요. 진짜로 한 번도 안 해본 거 맞아요?”
그저 입바른 말은 아니었다. 그야 보통은 초보한테 흉곽이니 횡격막이니, 어려운 말을 꺼낼 일 자체가 없다! 상체는커녕 일단 무릎 붙이고 앉는 것부터 엄청난 곤욕이지 않겠는가. 짜증은 나지만 굉장히 탐나는 재목이다.
하네의 대답에 그는 눈 가늘게 뜨고 자그마하게 앓는 소리 낼 뿐이다. 하네가 저렇게 대답하는 게 당연했다. 정말로 하네에게 못된 짓 해 버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지 않나. 미움 받을 정도의 선은 넘지 못한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다. 스스로 초래한 당착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러니까 시답잖은 짓 더 할 거다, 뭐! 이 말랑말랑한 감촉을 봐선 역시 꿈은 아니구만! 자기 볼 찔리면서도 뭐가 좋은지 싱글거리는 얼굴에 웃음 지워질 기미가 없다. 몇 번을 더 쭉쭉 잡아당기고 나서야 손을 놓고는.
"넵, 부르셨습니까!"
앞에서 이대로도 좋다고 점잖은 척했던 신은 죽었나 보다. 척 봐도 좋아하는 티 훤히 드러나지 않는가. 꼬리가 있었더라면, 아니 보는 눈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장소였다면 없던 꼬리도 만들어서 흔들 기세다. 조금 미심쩍은 구석 들킨 것도 같았지만 다행히 무사히 넘겨 줄 생각인가 보다. 그는 하네에게 안 보이도록 몰래 한숨 내쉬고는 다시 뻔뻔함을 되찾았다.
"음, 잘 모르겠는데. 그러면 일단 나중에 생각해 보는 걸로 할까?"
턱까지 괴어 가며 잠깐 고민해 봤지만―자기한테 필요한 상황이 아닌데도 생각을 5초 이상 할 마음 먹은 건 정말 진지한 거다!― 정말 모르겠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물욕은 없는 편이라 여긴다. 술을 좋아하긴 해도 그것은 물욕과는 조금 결이 다르고, 그는 자신이 아끼기나 마음에 들어하는 상대에게는 무엇이든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 돌아오는 이익이 없더라도 오히려 이것저것 가지라며 내놓고 싶은데, 엊그제까지만 해도 무릎까지밖에 안 오던 녀석이 어느새 자기가 번 돈으로 선물을 주겠다니……! 우리 꼬맹이 사회인이야! 주책이 또 튀어나오려는 걸 입 틀어막아서 간신히 참았다. 아,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하나 스쳤다.
"물건 아닌 걸로 받아도 돼? 돈이랑도 상관 없긴 한데… 상담권 하나 줘."
난데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장난은 아닌 모양이다. "으응?" 고개까지 갸웃거리며 재촉하는 걸 봐서는. 언제나 희희낙락 잘 다니는 이 양반한테 고민할 거리가 과연 있을까? 어쩌면 말만 고민 있다며 이름 붙여놓고서는 막상 만나면 밀린 숙제 도와달라면서 바짓단 붙잡고 드러눕기나 할지도. 앗, 갓 꺼낸 음식 냄새에 홀려 버린 그는 선수를 치고 말았다! 하지만 두 알 들어갈 공간도 있어! 말을 못 하고 시선으로 무어라 주절거리더니 내민 손에 힘 빠지기 전에 얼른 받아 먹는다. 그도 질 수 없다는 듯 새 꼬치로 얼른 하나 집어서 하네에게 척 내밀었다. 몇 번쯤 우물거리다 입에 든 것을 삼켜내고는, 고개 끄덕거리며 열심히 대답했다.
"등불 좋지! 아, 나도 그건 들었는데. 그 뭐냐, 여기 어디 신사에 가면 된댔었나……."
이 동네에 온 지 몇 달이나 됐는데도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신사를 '여기 어디' 정도로 기억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한순간 늦으면 줄 밀릴지도 모르겠다는, 비행기에서 내리면 땅에 발 닿자마자 공항으로 질주하는 한국인다운 발상이 스쳐지나가기도 했지만 뭐. 여행은 그렇게 빡빡하게 즐기면 재미없다! 어찌되었든 여기에서 계속 서 있을 수는 없으니 또 다시 걸음 떼고 빨리 가자며 하네를 재촉했다. 처음 출발했을 무렵에는 중심지에서 먼 노점이라 제법 거리가 한산한 감이 있었는데, 안쪽으로 갈수록 필연적으로 길목이 점차 떠들썩하게 흥성이기 시작했다. 그쯤에서 하네에게 찰싹 붙어 어깨에 손 얹고 이렇게 말했다.
"길 잃으면 큰일이니까 나 잘 챙겨야 한다?!"
그러니까 하네를 애 취급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다고 어디로 뛰어가 버릴지도 모르니까 잘 챙겨달라는 거다. 자기파악이 잘 되니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하찮다고 해야 할지…….
꽤나 웃음이 많은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지, 아니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겉으로 비치는건 여전히 알수 없는 미묘한 표정이었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렴, 옛말에도 웃음이 많은 사람 옆에 있는게 좋다고 했으니까.
"음... 글쎄요. 단걸 특히 좋아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무언가 가리거나 하진 않았던듯 싶네요."
기본적인 기호식품이 대체적으로 단것임은 부정할수 없지만 그렇다고 설탕듬뿍의 단것은 아닌 은은한 단맛이었을까? 아무렴, 초콜릿이 너무 달아 싫다는 사람은 있어도 단맛 그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보다 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가 한 질문의 저의는 자신으로선 알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생소한 만남에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는 질문 정도는 꽤 무난하지 않던가,
"아, 그런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저 또한 혼자 왔고, 이렇게 관리자가 아닌 시점에서 바라보는 축제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돌아다니던 중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기왕이면 혼자보다 둘이 낫지 않겠나요?"
자신에게 있어선 겸사겸사라는듯 미묘하지만 나름 밝게 웃어보였다. 다른 지역의 마츠리를 탐방하는 것도,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함께 즐기는 것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일텐데 벌써부터 즐겁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친구, 인연, 관계 미카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좀처럼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긍정의 한 마디도, 작은 몸짓도 없다 미동조차 않는다
"..."
평소였다면 다행이다, 하면서 내재된 불안감을 가라앉혔을텐데 왜 이리도 마음이 술렁일까? 그건 아마도...
"친구 말고는 안 되는 거야?"
제가 욕심쟁이이기 때문이리라 그까짓 '친구'라는 말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은 생각할 줄 모르는 욕심쟁이
"난 언제부턴가,"
...이래서는 안 된다
"키리나즈메 씨가,"
하지만 심장을 비집고 올라오는,
"너무 좋아졌었어."
여러 감정이 뒤섞인 덩어리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감상에 젖어있는 흔치 않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잠깐이라도 특별한 관계였으면 했는데."
어느새 자리잡은 호감과 집착, 변덕, 욕망이
"너무 과한 욕심이었을까?"
제 사고를 진득하게 옥죄어온다
뚝뚝 끊듯이 이어가던 말을 끝내고 끝내 입을 다문다 여전히 강변을 응시하는 그 눈빛은 공허하기만 했다 ...반동은 곧 거센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미카는 그제서야 제가 무슨 헛소리를 했는지 깨닫고 얼굴을 화끈하게 붉힌다 쪼그린 몸을 황급히 일으키며 결국 머리색처럼 물들어버린 낯짝을 두 손으로 가린다
"...미, 미안... 쓸데없는 말을..."
부끄러워서 숨고 싶어졌다 아니, 아예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저 강에 뛰어들면 계속해서 뜨거워지는 몸을 식힐 수 있을까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창피했다 아까 한 말, 당장이라도 잊어달라고 종용하고 싶다 하지만 앙다문 입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어떡하지? 머리가 새하얗게, 새하얗게 물들어간다 이 현장을 벗어나고 싶어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건 매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