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변명조차도 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헌팅하는 사람이잖아? 그런 이미지가 생기는 것은 싫거든. 하핫."
그녀의 말대로였다. 오히려 변명을 하면 더 이상하게 보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변명조차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흑심 가득하게 헌팅하는 이가 되지 않겠는가. 자신은 키즈나히메를 모시는 신사의 아들이자 키즈나히메의 손자였다. 그런 이미지가 생기면 나중에 엄청난 잔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는지 정말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으며 치아키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튼 문제는 없다더니 끙끙거리는 그녀의 표정에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더니 왜? 그러다가 아! 탄성을 내더니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서 곧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이 은근히 재밌다고 생각하며 그는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묘하게 귀엽기도 하고. 물론 실제로 입으로 내뱉거나 하진 않았다.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으면서 치아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자와 치아키가 맞아. 오다가다 들은 것이라고 해도 대단한데? 보통은 학생회장 이름 같은 것은 잘 모르고 듣기도 힘들텐데. 중학생 때만 해도 난 학생회장 이름은 외우지도 않았거든. 아. 물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학생회 일을 시작해서 자연히 외우게 되었지만 말이야. 학생회 임원이었는데 회장 이름도 모른다고 하면 엄청 혼날 거 아냐. 하하."
괜히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치아키는 이어지는 날씨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안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훨씬 더 발랄한 아이네.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곧 들려오는 질문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전혀. 고3이어도 마츠리는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긴 한데 유감스럽게도 방금 전까지 일하다가 나온거거든. 키즈나히메님을 모시는 신사에서 주최하는 마츠리인건 알지? 모르면 이번 기회에 기억해두면 좋고! 아무튼 난 거기 사람이라서 말이야. 정확히는 아들. 아무튼 그래서 좀 전까지 등불을 나눠주는 일을 하다가 이제야 마츠리 첫날인데 그래도 즐기고 오라는 말을 들어서 나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사루와타리 양을 만나서 인사를 하러 온 거야."
참 우연이 신기하지 않아?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치아키는 정말로 가벼운 어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안즈를 바라보면서 그는 이번엔 자신 쪽에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는 사루와타리 양은 어때? 등불 띄웠어? 친구랑 같이 오면 등불 주는데 말이야. 그런 것치고는 혼자인데. 혹시 잠시 친구랑 떨어져 있는 중이야? 아. 물론 꼭 등불을 띄워야 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키즈나히메님의 축복이 담겨있을지도 모르는 등불은 오늘밖에 주지 않으니까. 뭐, 사실 정말로 축복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신사의 아들이니까 있다고 칠게. 아무리 그래도 신사의 아들인데 신 같은 건 없어! 그런 것은 다 거짓부렁이야! 라고 할 순 없잖아?"
그렇게 살며시 영업 및 홍보를 하면서 치아키는 미소를 머금었다. 과연 눈앞의 이 여학생은 무슨 대답을 할지 살짝 궁금해하면서.
아저씨가 어디까지 장난을 칠 수 있는지 제가 알 방법은 없어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장난을 당하게 되면 그 때는 알게 되겠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유도 있는 믿음이에요. 아는 척하지 말라는 말을 꼬박 한 학기동안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저씨가 제가 싫어할 만큼의 장난을 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애초에 지금 장난들도 부끄러울 뿐이고요, 귀찮지도 않아요. 애초에 어린 제가 아저씨를 귀찮게 한 것보다 아저씨가 저를 더 귀찮게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 아저씨를 붙잡고서 한국 가겠다고 말한 것도 조금은 기억나고요, 머리카락을 잡고서 안 놓았던 것도 같고요......... 아저씨가 그런 어린 애처럼 떼쓰지는 않으니까요. “아.” 아저씨가 꼬집었습니다. 떼는 안 쓰지만 장난을 치는 정도는 뭇 어린 아이들과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저도 꼬집을 줄 압니다! 꼬집지는 않고 찌를 생각이지만요. 아저씨의 볼을 콕 찌르려고 합니다.
“비 씨?”
곰곰 고민하다가 하나를 골랐어요. 새로 짓는 건 지금 당장은 제 센스와 창의력이 부족해서 무리였고, 어릴 때 부르던 별명에서 아저씨만 떼어냈습니다. 아저씨가 이곳에서 쓰는 이름을 쓰면 편하겠지만, 숨기는 용의 이름이니까요. 원래 이름을 부르는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한글의 소리지만 소리내기 어렵지도 않으니까 괜찮을 것 같단 생각에 소리내보고요, 아저씨의 반응이 덤덤하길래 별로인걸까 싶어서 바라봤더니...... 귀는 왜 덮고 있고, 표정은 엄청 많이 감동받은 것처럼 보여요. ...어떻게 불러도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로 합니다.
“...믿을게요.”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아니라고 하니까요, 믿기로 합니다. 아저씨라고 비밀이 없으란 법도 없고 말하고 싶지 않은게 있는 건 신이든 인간이든 다를 바 없을 거예요. “그건 월급 없이도 할 수 있잖아요. 게다가 중복입니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내기를 드리기엔, 이미 오늘 아저씨가 재미있게 잘 노는게 목표인 하루이니까 겹치게 돼요. 다음에라도 아저씨가 원하는게 생겨서 말해준다면, 그때라도 드려야겠습니다.
“네에, 그러다 지옥에 잡혀가서 혼날 겁니다. 그럼 옆에서 놀릴 거예요.”
제가 유일하게 장점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게 있다면 편식이 없는 거예요. 호불호가 없어서 아무거나 잘 먹고요, 많이 먹을 수도 있습니다.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를 생각하면 단점일 수도 있지만요, 그래도 지금은 장점이예요. 아저씨가 먹는 속도를 쫓아갈 수 있습니다. 아저씨가 타코야끼 종이그릇을 건넬 때는 저도 똑같이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서 빈 손이었어요! 하지만 받아서 제가 먼저 먹지는 않습니다. 아저씨가 우선이예요. 나이로도 그렇고, 동갑이었다고 하더라도 아저씨가 즐거워야 하니까요. 작은 나무꼬치로 타코야끼 한 알을 찌르고 입바람으로 호 불어서 건넵니다. ...그런데 벌써 한 알이 입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저씨 빠르기는 아마 종족의 문제를 떠나서도 못 쫓아갈 것 같아요.
“등불을 받아서 강에 띄우면 예쁘대요. 불꽃놀이도 합니다.”
이래서야는 제가 아니라 마츠리가 아저씨를 즐겁게 놀아주는게 되는 것 같단 생각이 조금 들어요...... 그래도 즐겁게 느껴주신다면 다행일테지만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직이, 조용히 중얼인다 이 소박한 마을에서 얽은 인연의 실타래가 전부 제게 과분할 정도이기에 그래서 끊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욕심이다 감당하지 못할 파도거늘 어째서 놓아주지 않으려 하는가 지치고 상처입어 헤매던 이 소년은 누구보다도 타인의 정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 저라는 그릇 안을 온기로 가득 메우고 싶다 그게 훗날 독이 되어 흘러넘칠지라도
무언가를 이루고자 소망을 비는 행위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해보는 거 같았다 미카는 뭘 그리 생각하는지 잠깐 상념에 잠겨있다가 문득 시선을 옮겨 키리나즈메를 바라본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미야나기가 당황해서 머리카락을 쭈뼛쭈뼛 세웠다. 장난으로 한 말에 제가 되려 넘어가 당한 기분이다······. 앞으로는 이상한 농담 안 해야지. 신사로 가는 길목은 이미 적지 않은 인파가 모여 작은 물살 같다. 강가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손에 하나둘 들린 등불이 노란 물감으로 점묘한 반딧불처럼 거리를 총총 밝혔다. 고개까지 한껏 기울여가며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 구경한 그녀가 토리이를 지날 때쯤 말했다.
“신사에 와보는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여기, 혹시 오미쿠지도 할 수 있으려나!”
일본에 살면서 신사를 안 가보기도 참 힘들 듯한데, 미야나기는 당연히 노력해서 열심히 피해 다닌 쪽에 속했다. 별개로 오미쿠지는 한 번쯤 해보고 싶었나. 잔뜩 반짝거리는 눈으로 종이를 묶어둔 나무가 있는지 찾았다. 물론 운세고 나발이고 일단 등불이나 먼저 받는 편이 좋겠다!
// 아아앗… 슬프게도 놀러 간 건 아니라서… 대충 답레 올라오면 이 아빠.. 끝내주게 쉬고 잇나 보구먼.하면 댄다..🫠 아무튼 기다려 줘서 늘 고맙다구 ㅠ ㅇ ㅠ 〰️
미카는 신호와 함께 등불을 강 위로 띄워보낸다 둥실둥실 떠내려가기 시작한 등불은 곧 다른 무리에 섞여들어간다 물살을 따라 잔잔하게 흘러가는 등불들이 노을과 함께 해 지는 풍경을 수놓는다 무척이나 장관이다 이렇게 성대한 축제를 즐기는 것도, 친구라는 이와 함께 나란히 있는 것도, 셀 수 없을 정도의 인파 속에 섞여보는 것도 전부 생소한 경험이라 왠지 감상적인 기분마저 든다
"...키리나즈메 씨는,"
강물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던 미카의 눈빛에 문득 이채가 어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쉬이 알기 어렵다
"앞으로도 내 친구로 있어줄 거야?"
허나 인연의 지속성을 묻는 그 어조는 평이하고 온화하기 그지없다 그저 평범한 일상 대화를 하는 것마냥
케이는 사에의 당황하는 모습에 작게 웃으며 일부러 보란듯이 주머니 속에 구슬을 챙겨넣었다. 신사를 가는 길목을 지나며 라무네를 마시다보니 남은 빈 병은 지나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신사로 가까이 갈 수록 등불을 든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짙은 푸른색의 하늘 아래 노란 불빛들이 반짝이는 모습은 꽤나 운치있는 광경이었다.
"오미쿠지라...... 아, 저기에 있는 것 같은데요?"
우미쿠지 자동판매기가 있다. 아마 간단하게 동전을 넣으면 운세가 적힌 종이가 나오는 식인 듯 하다. 주변 나무에는 종이들이 잔뜩 묶여있다.
둥실둥실 떠가는 것이 장관이라고 생각하는 사야카이다. 저 멀리멀리 나아가는 것이 부치고 흐려지고 사라져버린대도. 끝은 그리 안타깝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감상적인가. 라고 한다면 그러겠는데, 본래 두려운 것은 감상적이고 주관적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깨닫게 된 이후로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게 되기도 했지마는.
"음?" 미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보다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합니다. 친구...
"친구라면 예스이긴 함..." 평이하고 온화한 일상대화인 것인가? 의미를 쉬이 알기 어려운 듯한 말에 친구라면 예스이긴 하다고 답을 돌려줍니다.
"관계나 인연이라는 게 다양한 법이긴 하긴 함." 아까의 금붕어들도 우리랑 만났지만 다시 돌려줬으니까 잠깐 닿았다 떨어진 인연인 것임. 이라는 가벼운 말을 합니다.
리오는 굳게 마음을 먹고 옷장을 열었다. 지난 번 마츠리때 하네와 함께 입었던 후리소데가 눈에 들어왔다. 가진 옷 중에 가장 비싼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시즌에 새로 나온 명품 옷 따위가 아니라 이미 산 지 몇 년이나 된 전통의상이었다. 처음 샀을 때 분위기에 취해서 이것으로 하겠다고 고른 이후로 축제날이 아니면 빛을 보지도 못하고 있다. 더 안좋은 점이라면 이번 축제에도 아마 옷장안에 갇혀서 하루를 보내버리고 1년에 한 번 오는 여름의 축제도 보내버릴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래선 안된다. 멘헤라도, 의존증도, 친구가 없는 것도 고치려면 결국 변해야하는 것은 자신이었고 마음을 먹어야하는 것도 자신이었다. 누가 손을 잡고 끌어주지도 않고, 등을 밀어주지도 않는다. 문제를 고치는 첫 번째 단계는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었으니 이미 첫 번째 단계는 넘어간 셈이다. 그래서 굳은 마음을 먹고 옷을 갖춰입고 밖으로 나섰다.
" ... "
그리고 곧장 후회했다. 여기도 저기도 함께 나온 사람들 천지에 여름의 따스한 공기에 약간 시원한 바람까지 모든게 살아있었다. 이렇게 모두가 어울리고 밝은 분위기만을 풍기는 곳에 있어도 되는걸까. 긴 소매에 가려 보이지 않을 자기파괴의 흔적이 아릿하게 아파오는 느낌이 들어 리오는 살짝 인상을 구겼다. 그리곤 정처없이 걸었다.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나진 않을까, 혹시라도 무언가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는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기약없는 기대를 걸고 정처없이 걸었다. 두 명이, 세 명이, 네 명이 함께 걸어가는 사이로 혼자서 묵묵히 걸었다. 괜히 나왔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냥 돌아갈까 싶었지만 이미 꽤 걸어나와서 이대로 돌아가기는 무리였다.
이왕 나온거 거리의 끝까지 만이라도 가볼까 싶어 잠깐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오래 걸으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슬슬 다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적당한 벤치를 찾아 앉으려 해도 두 명이, 세 명이, 네 명이 앉아있다. 저 사이에 혼자 앉아있으면 그거만한 궁상도 없겠다 싶어 금세 관두었고 저 사이에 앉아있을 생각을 하니 아팠던 다리도 아프지 않아졌다. 그리곤 다시 조금을 걸었다. 목표는, 신사를 찾아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디에 있는지 따위 알 게 뭐야.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걸을 뿐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더는 참지 못하겠다면 그 때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렇게 생각없이 걷던 것이 미유키와 부딪힌 이유였다. 눈이 먼저 마주쳤고 어라- 하는 사이에 툭 하고 부딪혔다.
" ...미안. "
눈을 들어도 얼굴이 보이지 않아 살짝 당황했고 뒤이어 고개를 들어 그 노란 눈동자와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마치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듯 보는 그 눈동자에 리오는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하고는 올빼미 앞에 놓인 토끼마냥 몸이 굳어버려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뭐라고 해야할까. 부딪혀서 미안해. 죽을까? 라던가, 앞을 제대로 못 봐서 죄송합니다. 죽을까요? 라던가 그도 아니라면 그냥 죽을게. 하고 자리를 떠버릴까. 하나하나가 최악의 답변이다. 소매 안에 감춰진 자기파괴의 흔적이 다시 또 저릿하게 아픈 느낌이 들었다. 리오는 말라버린 입술을 핥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미야나기가 그 앞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체득하는 데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진작 알아놓고도 머저리처럼 쫄린 티내다가 또 남 좋은 일만 시켰으니 말이다! 이제부터는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무조건 포커페이스다······. 어쨌거나 그 말대로, 과연 그녀는 열받을 일이 너무 많아 마침 골머리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그쵸?” 하며 하소연하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려는 척 애썼다. 하마터면 그대로 휘말려서 나불나불 다 털어놓을 뻔했다.
“······어쩜 수업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것만 궁금하세요? 시선은 항상 손끝을 따라가게 하거나 객석에 둬요. 남의 얼굴이 아니라.”
그러니까—지금처럼 매트 위에 앉아있을 때는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어야 할 테다. 있는 힘껏 험상궂은 표정을 지은 미야나기가 얼른 전면 거울을 가리켰다.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불상사가 재차 일어나기 전에 미리 선수 쳐 막으려는 심산이다. 물론, 올바른 시선을 지키지 않는 건 연기자로서 결격 사유이니만큼 영 생뚱맞은 트집은 아니다! 그런 것 치고는 본인도 행여나 눈 마주칠까 천장만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러면 둘 다 결격이다.
“어······ 아마 해부학적으로도 그게 맞을 텐데. 등근육을 써서 최대한 흉곽을 좁히려고 해보세요.”
‘횡격막이’, ‘진짜로’, ‘있어’······? 난생 처음 듣는 단어의 조합인 탓에 그녀는 조금 당황했다. 횡격막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게 없을 수도 있는 물건이었던가? 물론 신께 횡격막이 있다는 말 역시 처음 들어보는 건 매한가지이긴 했다. 와, 있는 것도 이상하고 없는 것도 이상하고······. 직접 만져 보면 뭔가 알아낼 법도 한데 하필 그럴 수 없는 부위라 안타깝다. “······그냥 안 하는 게 좋겠어요. 어렵다.” 미야나기가 단념했다. 인간을 티칭하는 것도 힘든데 첫 학생이 인간조차 아닌지라 웬 고행이 따로 없다. 곧 시범 보이느라 세우고 있던 를르베도 풀고 내려와 그 자리에 쪼그려앉았다.
“그래도 처음인 걸 감안하면 무지 잘하셨어요. 진짜로 한 번도 안 해본 거 맞아요?”
그저 입바른 말은 아니었다. 그야 보통은 초보한테 흉곽이니 횡격막이니, 어려운 말을 꺼낼 일 자체가 없다! 상체는커녕 일단 무릎 붙이고 앉는 것부터 엄청난 곤욕이지 않겠는가. 짜증은 나지만 굉장히 탐나는 재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