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까지 길게 늘어뜨려가며 호소하는 꼴이 몹시 억울해 보였다. 그치만 진짜 봤어! 어떻게 생긴지는 대충 봤어! 실제로도 미야나기가 건네 받은 장신구는 척 봐도 양품이라 제법 값이 나갈 것 같았다. 고작 여름 축제 정도에 평범한 고등학생이 일회적으로 착용할 급이 아니라는 것쯤은 곧바로 눈치챘다. 자신이 가진 좋은 물건들과 견줘도 비슷한 만듦새였으니까. 이런 걸 정말 함부로 받아도 되는 건가 싶긴 했지만······. 아무튼 케이 또한 선뜻 막대 사과를 받아들자 그녀는 살짝 안도했다. 정작 미야나기는 한 입 베어무는 대신—아무래도 한창 몸 부기를 빼야 할 시기라— 귀여운 소품처럼 들고 다니는 게 목적인 듯했다. 저거, 저러고 다니면 나중에 짐 되는데. “등불! 그거 완전 라푼젤 같은 거 맞죠? 연등은 아니지만.” 미야나기가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마침 요즘 꼭 이루고 싶은 소원도 생긴 참이니 무조건 필수 코스에 넣어주기로 했다. 그래도 모처럼 참가한 축제인 만큼 조금 더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어어······ 해보고 싶은 일······ 앗, 사격이다! 저 총 되게 잘 쏘는 거 아세요? 말 타면서도 할 수 있는데!”
손을 뻗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길목에 보이는 작은 노점을 가리켰다. 난 옛날에 태어났다면 틀림없는 다이묘였을 거야—하며 으스댔지만 당연히 과장이다. 보나마나 잘 조련된 서러브레드 위에서 구보하며 물총 놀이 한 걸 저렇게 포장한 걸 테다. 물론 죽고 싶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한 손으로 고삐 쥐는 패악질 따위 절대 따라하지 않는 게 좋겠다······. 미야나기는 빨려 들어갈 듯 코르크 총알과 공기총이 세팅된 가판대를 하염없이 응시했다. 그러다 이내 노점과 케이를 도리도리 번갈아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홀랑 사격 부스로 새버릴 것 같은 눈빛이다.
사에가 억울해하며 봤다고 하는 말에 케이는 쿡쿡 웃으면서 알겠다며 받아 주었다. 등불을 말하며 눈을 빛내며 하는 말에는 "아마도...?" 하고 애매하게 대답한다. 라푼젤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는 것은 알지만 찾아보진 않은 탓이다. 그렇다. 이 신은 꽤나 취향이 옛스럽다. 나이가 반천년에 가까우니 말이다.
"정말로요?"
말 타면서 총을? 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장난어린 말이라고 생각하고는 웃어버린다. 승마를 한다거나 사격을 한다거나 따로따로는 생각해도 승마를 하면서 사격이라니, 몸을 아낀다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다. 총소리에 말이 놀라기라도 한다면...... 어쨌든 사격 노점을 향한 사에의 간절한 시선을 느끼며 케이는 웃으며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재미있을 것 같으니 내기라도 할까요? 더 많이 맞춘 쪽이 소원 들어주기라던가."
장난스러운 제안이었다. 소원 내기라고 하면 분명 흐지부지되거나 작은 부탁같은 것으로 돌아올테니 그리 부담스럽지도 않다. "자신 만만한 후배님이 먼저 시도하는 건 어떤가요." 하고 묻는다. 손을 뻗는 모양새가 사에가 사격을 할 동안 링고아메를 들어줄 모양이다.
워낙에 솔직한 성격이니 곧장 즉답부터 돌아온다. 좋으면 좋다는 티 한눈에 보이고 반가우면 반갑다고 방방 뛰니 정말 개 같다고 해야 하나……. 비속한 뜻이 아닌 비유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행동만 보아선 이쪽이 훨씬 애 같건만 들떠서인지 애매하게 문어적인 말투가 참 모순적이다. 그러다 이어지는 말에 열심히 빛내던 눈이 또 습관처럼 잠시 허공 엉뚱한 곳을 향해 돌아간다. 돌아갔다가, 퍼뜩 정신 차리고 다시 하네를 똑바로 보았다.
그래, 주책맞은 짓 안 할 수는 있는 건 사실이라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장난치고 싶은데 그런 말 안 하고 어떻게 배기라고! 비록 할말은 없어도 얼버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은 있었다. 그는 하네의 양쪽으로 땋아 내린 머리카락을 잽싸게 집고 하네의 하관 위에 X자로 교차하려 했다. 아, 이 아저씨스러운 장난 정말! 머리 못 쓰다듬으니 대안으로 금세 다른 장난질 생각해 내는 것 봐라. 이 양반이 어떤 고충을 겪는지―과연 정말로 겪을지는 차치하고―는 말을 안 하니 하네로서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이 순간을 참 만족스럽게 보내는 있으리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에이, 그게 왜 그렇게 돼. 찍히는 실력도 있어야 모델이지."
무턱대고 칭찬하려는 게 아니라 이건 사실이지 않은가! 사소한 일에도 툭하면 우쭐거리기 좋아하는 그로서는 하네가 더 자랑질 하고 다녀도 좋을 것 같다 생각하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도 자신이 오면서 눈에 띄는 짓 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수상쩍게 보인다 해도 저게 사람이 맞는지 의심 받을 행동까지는 아니니 뻔뻔하게 굴 뿐이지. 하지만 이대로 제자리에 계속 있다간 하네의 낯부끄러움만 더해질 테니 가는 길은 솜씨 좋게 사람 적은 곳만 찾아서 향하기로 한다. 시절이 여름이라 햇빛 가장 뜨거울 시간이 지났음에도 열기는 군데군데 남아 후끈거린다. 이 나라 참 덥군그래…… 저녁 때 열리는 행사가 메인이라 다행이다 싶다. 잠시 딴생각 하느라 스쳐지나가는 소리 못 들을 법도 하지만 원래는 뾰족귀였던 양반답게 반사적으로 귀가 쫑긋거렸다. 입이 떡 벌어지는 소리다. 아니, 요 녀석 너무 귀엽게 굴면 큰일 난다고 전에도 말했는데! 애초에 그건 재밌어서기도 하지만 좋아서 괴롭히고 싶은 귀여운 공격성 같은 거다. 그런데 또 이렇게 나오기가 어딨어! "오늘은 할일 많으니까 비행기는 참아 드릴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손이 근질거렸는지 그는 두 손 뒤로 돌려서 슬쩍 감추었다.
"오, 감당 가능해?"
하네의 재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 정말 원대로 먹었다가는 지갑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가뜩이나 축제 노점은 비싸면서 양은 적게 주기 마련이다. 먹기만 하러 온 건 아니니까 전심 다할 생각까지는 없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데 우야, 과연 네가 나보다 빨리 값 치를 수 있을까?"
한국인, 아니 아시아인 특징: 상대방이 계산하기 전에 선수 쳐서 약삭빠르게 결제해 버리기! 그는 어디선가 지갑을 척 꺼내들고 간악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 곧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노점으로 급습하듯 뛰어갔다. 보자, 옆에 세워진 입간판의 내용으로 보건대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 같다. 그렇게 먼저 뛰어가 버리면 자기는 그렇다 쳐도 하네가 할 주문은 어쩌려고. 어쩌면 적어도 자기 건 자기가 먼저 사 버리겠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 치사한 양반!
토모시비 마츠리의 첫날, 아마 가미즈나로 오고나서 축제를 제대로 즐기기 시작한건 이번이 처음이었을까? 봄 축제때의 낭패를 또 다시 겪고 싶진 않았기에 이번엔 유카타의 사이즈도 제대로 맞춰왔으니, 준비만전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보통 자신이 축제를 즐기던 방식이라 하면 한참 전부터 축제를 진행할 장소의 동향을 살피고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고민하는 것이었을 텐데... 이번엔 정 반대인, 진행자가 아닌 위치에 서있었다. 물론 다른 곳에서의 경험 정도는 있만큼 흐름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지만, 세상 모든 마츠리가 전부 같을 수는 없으니 생소한 것 또한 많았을 것이다.
"......"
특히 자신의 고향보다 더 많은 음식 판매대, 이미 그 마수에게 휘어잡혔는지 손에는 여러가지가 들려있었다. 그나마도 자신에게 익숙한 것만 골라 집었을 뿐, 아직 도전할 엄두조차 못내본게 많았지만... 의기소침해져 있자니 스스로가 시골 촌구석 아이라고 보여질 것만 같았기에 홧김에 집어온 것들일지도 모른다.
누가 보면 먹을걸 어지간히도 좋아하나보다, 할 정도의 양이었지만 얼마 안 걸어가서 그나마도 동이 났을까? 하는수 없이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시선에 어딘가 익숙한듯 조금은 생소한 인물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분명 본 기억이 있다는건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것이고, 그럼에도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는건 분명 선배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어라... 이런 때에 뵙다니, 우연이라고 해도 될까요?"
마치 아는 사람과 재회한듯, 살짝 올라간 입꼬리로 웃어보였다.
/어떻게 스타트를 해야할지 몰라서 고민을 좀 했어! 그래서 늦어버렸지 뭐야! 🤣 그래서 다른건 없고 잘 먹는 김토아씨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대똥꼬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