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며 좋은 쪽으로 이야기 해주는 것이 친절하다. 물론 저야 사에의 좋은 무대를 보는 쪽이 좋지만, 인생은 짧고 그 때마다 겪을 수 있는 일들은 한정되어 있기에 놀 수 있을 때 실컷 노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말로 내뱉기에는 너무 노인같은 말이라 하지는 않았지만.
"보지도 않고 예쁘다고 하는 건, 내 안목을 믿어주는 걸로 해석해도 되겠죠?"
눈을 접으며 웃는 모습은 꽤나 장난기가 묻어 있다. 거울이라도 보지 않는 한 생김새를 가늠하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선물을 주고 빈 손으로는 링고아메를 받아든다.
귓가에 꽂힌 머리장식은 사에와 꽤나 잘 어울렸다. 누가 만들었다는 이름은 없어도 허투루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고급진 수공예품으로 보일 터였다. 케이는 이런 저런 반짝이는 물건들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에의 오늘 모습을 보고 가장 잘 어울리겠다 싶은 것을 집에서 불러내온 것에 불과했다.
"나도 잘 먹을게요."
둥글고 반짝거리는 사과, 셋 다 좋아하는 것들이라 취향에 맞는 선물이었다. 링고아메를 한 입 베어물고는 북적거리는 축제를 한바퀴 휘 둘러보았다.
"전에 등불 띄우는 거 해보고 싶다고 했었죠? 그것부터 먼저 할까요? 아니면 그것보다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다시금 사에를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미소가 띄어져 있다. 내어준 귀한 시간을 허투로 보낼 순 없으니까 말이다.
우다다 빠르게도 달려온 그는 마지막 걸음에 훌쩍 뛰어 땅에서 발 떼고 아예 나무늘보처럼 착 달라붙어 있다 떨어졌다. 역시나 무겁지는 않았겠지만, 비록 짧은 순간에 불과했지만, 186cm의 덩치가 자기보다 작은 여자애에게 만화처럼 폴짝 매달리는 광경은 여러모로 주목을 끌기에 딱 좋은 장면이다. 하네의 사회적 체면이 과연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래그래, 반갑구나! 좋은 오후야!"
낮술했냐는 말 정도면 안부인사 아니겠나! 구겨진 옷매무새 정돈하며 싱글싱글 웃는 얼굴은 속없게만 보인다. 그래도 눈치는 보이는지 슬그머니 옆에 서는 모습이 처음보다는 얌전했다. 넘치는 기운을 다 죽이지는 못해서 여전히 어깨가 들썩거리기는 했지만. "아니, 사실적시인데 어떡해! 못났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아니나다를까 가만히 못 있고 주먹 꽉 쥐며 단단하게도 피력하고 있다. 마음같아선 머리라도 호되게 쓰다듬고 싶지만 기껏 예쁘게 입고 나온 아이 머리를 헤집어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 반가운 마음이 지나치게 앞선 나머지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꾸몄다고 하니 뒤늦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다. 시선이 하네가 입은 유카타에 닿았다가 다시 하네의 얼굴로 향한다. 다행히 그는 이제는 시끄럽게 굴지 않고 활짝 웃으며 평범하게 말했다.
"옷 예쁘다! 파란색도 잘 어울리네. 음, 역시 모델다워."
……그래, 안 시끄럽기만 할 뿐 부담스러운 소리 안 한다고는 안 했지. 의도라곤 전혀 없이 순수하게 주책맞은 소리 하고는 하네가 말 하다 말자 갸우뚱 고개를 기울인다. "뭐가 아닌데?" 그건 그렇고, 만났으니 이제 놀러 가야지! 그는 하네의 소매를 슬며시 잡아끌려 하며 장난스레 걸음을 재촉했다. 나란히 걷는 걸음의 끝은 아직 멀리에 있다. 아직까지는 한적한 길목을 걸으며 그가 옆으로 넌지시 몸 기울였다.
"자, 이 어르신과 어떻게 놀아주려고 했는지 계획 있으십니까?"
그 '어르신'도 준비 만반이다! 무계획이 계획이라 그냥 발 가는대로 갈 생각이 다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힘낸 건 사실이다. 그는 넉넉한 검은 여름용 셔츠에 흰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상의는 자세히 보면 좌우로 여미는 형식에 고름까지 달린 현대식 한복이었다. 적당히 기분은 내면서도 심하게 눈에 띄지는 않는 차림이 누군가를 신경썼음이 뻔했다. ……그랬음에도 행동이 눈에 띄어 버리는 것만큼은 불가항력에 가까워서 어쩔 수 없다. 그보다 이 아저씨, 달리느라 붕 뜬 머리 정리하는 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이마 훤하게 까진 모습이 나쁘지는 않지만 스타일링과 바람 맞은 머리는 엄연히 다른 법이지 않나. 말해주지 않으면 내내 저러고 다닐 테니 약은 사람이라면 이를 복수의 기회 삼을 수도 있었겠다.
뻣뻣하게 굳어버린게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굳어서 버티고 있지 않았다면 둘 다 지금쯤 바닥에 넘어져있을게 뻔해요. 하지만 아저씨가 매달렸는데도 안 무거웠던 걸 보면 무얼 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신의 힘이라는 건 신기한게 맞지만, 제 가족들과 아저씨만 그런건지, 아니면 신들은 다 그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왠지 장난치는데 많이 쓰이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기보다는 쓰지 말아달라는 생각만 듭니다. 혹시라도 정체가 들통날까봐 조마조마한 건 저뿐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가 힘이 엄청 센 것처럼 보이길 바랍니다. 차라리 그게 나아요.........
“왜 이렇게 신났어요? ...네에, 좋은 오후입니다.”
이상하게도 많이 신난 것 같아요. 마츠리에 가는 일이 그렇게 기대가 되고 신나는 걸까요? 아저씨가 방학에 술을 마신게 단순히 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보통 술은 으레 힘든 일이 생기면 마시고는 합니다. 아저씨도 힘든 걸지도 몰라요. 매일 잘 웃고 다닌다고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될지도 모릅니다. 혹시 몰라요, 향수병이라던지, 향수병이 아니라더라도 아는 얼굴이라고는 몇 없는 외지살이는 충분히 고된 일입니다. 술도 못 마시게 해버렸으니까, 오늘 약속에 기대가 많이 쌓이는 건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재밌는 하루를 만들려고 많이 힘내야만 해요.
“말을 안 할 수는 있잖아요.”
...못된 말은 재밌는 하루에 방해될 것 같지만, 그렇지만, 어울리지도 않는 칭찬은 낯간지럽습니다. 그런 칭찬이 아니라 부지런하다는 칭찬 정도는 들을 수 있다고요. 아저씨는 칭찬이 헤픈 것 같아요. 보세요, 칭찬이 끝나기 무섭게 또 칭찬입니다. 하지만 이건 옷에 대한 칭찬이니까 괜찮아요. 옷이 예쁘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일부러 아저씨 눈 색이랑 맞춰 잘 고른 것 같아서 조금 뿌듯해졌습니다. 모델답다는 건 조금, 아니, 꽤 부끄럽지만 그저 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단 걸 알고 계시니까 흘러나온 말일 겁니다. 애초에 파란색이 잘 어울리는게 모델답다면...
“그럼 아저씨가 모델입니다. 아저씨 색이잖아요.”
확실히 아저씨는 키도 크고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는 일도 꺼려하지 않으니까 정말 모델 일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아저씨가 오늘 입고 나온 옷도 예쁘기만 합니다. 고름 매듭도 유니크하고, 한국의 전통 복장이 현대에 맞춰 조금 개량된 것 같아요. 사장님이 아저씨를 본다면 좋아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아저씨가 고개를 기울이며 무언가 물어옵니다. 일부러 얼버무린 거였는데, 역시 재밌게 논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말하는게 맞는 것도 같아서 고민이 돼요. 소매를 잡아끌면 걸음을 떼고, 이 틈을 틈타서 말해요. “들어올리는 거...... 재밌어하는 거면 해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었어요.” 우물쭈물하게나마, 조그맣게나마 얘기했습니다. 못 들었다고 해도 두번은 얘기 안할 거예요!
“...많이 먹이기?”
계획이라기에는 조금 이상할 것도 같지만, 한국에서 식사는 안부 인사로 쓰일 만큼 중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원래도 잘 드시니까 이것저것 다 사먹일거예요. 제가 재밌게 놀아드릴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음식으로 승부합니다! 노점상분들을 응원해요. 그리고 아저씨가 몸을 기울인 김에 손을 뻗습니다. 아저씨가 몸을 기울였는데도 뻗은 손이 모자르면 발꿈치도 들려고 해요. 별 건 아니고요, 머리가 흐트러진 걸 모르는 것 같아서 정리하려는 것 뿐입니다. 다시 또 방방 뛰어다니시면 금방 흐트러질 것 같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