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응, 하지만 하네는 해달라고 하면 해줄거잖아- 에헤, 나는 알고있는걸. 하레하네는 해줄거잖아 "
그리고는 웃었다. 리오는 늘 그러했다.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서 가면을 쓰는 것처럼 매 번 다른 표정과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학교에서라거나 모르는 사람과 있을 때는 다가가기 어렵게 차갑고 무서운 인상을, 카페에서 일 할때는 '아리스'양의 제법 활발한 인상을 그리고 지금처럼 오래 친한 친구와 있을 때에는 제법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인상을 띄우곤 했다.
" 우... "
안가냐고 역으로 질문하고 시시하다고 자기도 안 갈것이라는 말에 리오는 우물쭈물 하면서 조금 수그러들었다. 애써 사왔을 텐데 시시하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리고 리오는 그 잠깐 사이에 수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아 말하자면 폭풍같은 상태에 놓여버렸다. 다른 친구와 가려고 했던 것인데 초를 쳐버린 걸까 아니면 애초에 다른 친구랑 갈 생각이 없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친구랑 가려고 했던 약속이 깨져버렸을까. 어떤 것이던 결과는 하나 뿐이다 '안 간다.' 라는 것.
" 하레하네, 음, 그러면, "
리오는 일단 운을 띄우고 다음 고를 말을 신중히 선택했다. 괜히 말했다가 '왜 나서?' 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가장 친한 친구인 하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있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까. 다른 친구와 가려다가 취소된 것 이라면 그 자리를 내가 대신해도 되지 않을까. 리오는 음, 으음... 하고 한 동안 우물쭈물 하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천천히 그리고 삐걱거리며 입을 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선 먼저 문을 열어제끼고 들어가는 상대방을 긴장된 눈빛으로 지켜본다 곧 각자 업무를 보던 교사들의 시선이 한데 쏠렸으니 이건 좋은 징조다 미카는 스리슬쩍 눈치를 보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때맞춰 교무실로 들어선다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여학생 덕분에 이쪽을 잠깐이라도 흘겨보는 선생은 없었다 그대로 발소리를 죽이고 분실물 수거함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살펴본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되는 일인지 다행이도 제 지갑은 예상했던 대로, 수거함이 고이 놓여져 있었다 어떤 착한 애가 이걸 주워다 갖다놓은 건지는 몰라도
지갑을 챙기고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교무실을 빠져나온 미카는 여학생도 교무실을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물건을 무사히 찾았으니 감사인사라도 해야지
아무래도 신의 머릿속은 미물과 달라 건물로 들어온 뒤 문을 두드린다는 선택지가 없는 듯했다. 그나마 눈치 보는 시늉이라도 해주시니 이거 참 황송해서 바짝 엎드려야 할까. 미야나기는 창문을 훌쩍 넘어 들어오려는 모습을 보며 한 발 물러나 비켜 섰다. 로미오가 저런 걸 할 줄 알았더라면 <발코니 파 드 되>를 추느라 그 고생을 안 해도 됐을 텐데! 의외로 빙 둘러가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걸 깨달은 그녀는 금세 고분고분해졌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말에 짧게 한 마디 되물었지만. “진짜 무시해도 돼요?” ······그렇다면 당장 이분부터 내쫓아야 하는 거 아닌가? 미야나기는 너른 고민에 빠졌다. 물론 외부인 출입을 반길 부원도 없어 이러나저러나 돌려보내기는 할 참이었다. 신이 아니라 신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그렇게 쳐다보는 것도 금지예요. 앞으로 이러시면 안 돼요.”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강아지같은 낯짝에 대고 차마 매정하게 굴지 못 한 까닭이다. 부담스러운 시선을 애써 회피하며 활짝 열린 문을 닫아 잠그고, 복도 켠 커튼도 죄다 길게 내려버렸다. 내쫓을 수 없다면 잘 숨기기라도 할 심산이었다. 이내 홀 중앙으로 돌아온 그녀는 질문에 회답하듯 몸에 걸친 레오타드를 톡톡 가리켰다. “보시다시피?” 일단 불청객이긴 해도 손은 손이니 뭐라도 내야 할 텐데, 이미 짐을 정리하고 버린 뒤라 별다른 게 안 남았다.
“근데 지금 여기 뭐가 아무것도 없어서요······ 앗! 프로틴 드링크 드실래요?”
미니 바를 한참 뒤적이던 그녀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반갑게 꺼내들었다. 딱 봐도 맛없어서 아무도 안 먹은 거다.
여름방학이었다. 적어도 학기의 반 정도가 끝이 났고 아. 여름이었다. 라는 소리가 절로 나는 시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더웠으며 에어컨 바람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나날이었다. 와. 어떻게 이렇게 한 순간에 날씨가 더워지지? 그런 식으로 작게 중얼거리며 치아키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음료수를 하나 구입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1+1이 아니던가. 럭키! 그렇게 속으로 외치며 치아키는 시원한 이온음료를 1+1으로 두 개 구입했다. 이제 조금만 돌아다니다가 신사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걷는 찰나였다. 근처에 있는 나무 그늘에 누군가가 뻗어있는 모습이 보였기에 치아키는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보이는 낯익은 모습에, 그리고 지금 그녀의 모습에 치아키는 잠시 말을 망설이면서 시선을 회피했다. 왜 여기서 뻗어있는거야? 아니. 대체 여기서 왜? 모르는 척 지나가야하나. 그렇게 생각을 했으나 차마 그러진 못하고 치아키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후배 양. ...저기. 왜 여기에 뻗어있는거야? 날씨가 더운 것은 이해를 할 수 있긴 한데. 아. 그것보다 일단 안녕! 방학 잘 보내니?"
이어 산뜻하게 웃으면서 치아키는 싱글벙글 미소를 보였다. 일단 아는 후배인만큼 가볍게 인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와 동시에 설마 귀찮아서 여기서 지금 널부러져있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치아키는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기싫다..." 지금도 아무것도 안하지만 더 안하고싶다.. 할수있다면 한 이틀정도 여기서 아무것도 안하고싶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나뭇잎 사이로 흐늘거리는 빛을 보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쳐버렸습니다.
솔직히 사야카도 눈이 마주치면 조금은 찔릴까?
"@.+^×~-" 뭐라 중얼거린 것 같긴 한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말입니다. 뭐 해석해봤자 으으... 귀찮아. 이상도 이하도 이닐 것 같지만. 방학을 잘 보내냐는 것에 슬쩍 눈을 피하는군요. 대충 봐도 아무것도 안하고 뻗어있기만 하다는 걸 예상할 수 있는 눈피함인가?
"아... 자와.." "하이." 손을 흐늘흐늘 들어올려 인사를 한 다음 앉으라는 말에 어째서? 라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후배 양. 왜 눈을 피하는거야? 왜 이 간단한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눈을 피하는거야?!"
우리 전에 조금씩 바뀌어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어?! 라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입 속으로 삼켜버리며 치아키는 정말로 빤히, 너무나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보아하니 전혀 바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 이상의 추측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사실 그 이상의 추측을 하려고 한다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건 너무 실례되는 행동이었으니까. 그 대신 그는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사 사람이라는 것이 원래 쉽게 변하는 법은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그 표정은 무슨 의미인거야? 앉는게 싫은거야?"
아무리 그래도 문명사회인데 뻗어있는 것은 조금 애매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치아키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일단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좋을까 잠시 생각하며 이내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온음료 중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면서 이야기했다.
"일단 이거 마시면서 편하게 앉아있어. ...그리고 뻗을거면 집에 가서 뻗어야지. 이런 곳에서 뻗으면 어떡해."
아무것도 안한다는 그 말에 조금 미심쩍은 표정을 짓긴 했으나 쉬는 이들도 많을테니 일단 믿어는 보겠다는 듯이 치아키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도 일단 밖으로 나왔다는 것에 만족을 하기로 그는 마음 먹었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그녀라면 이런 시기엔 방 밖으로 절대로 안 나갈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히키코모리나 그런 부류는 아닌 것 같지만. 약간 시간이 아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이 후배라면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보통은 앉기 귀찮다고 뻗고 그러진 않아. ...조금은 귀차니즘 고쳐야지. 이젠."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순 없잖아. 나름대로 걱정어린 충고를 하기도 하면서 치아키는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와중에 예약품은 또 무엇인지. 절로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 사러 온 거야? 예약품이라니. 아무튼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구나. 아. 그리고 음료는 받아도 되지. 어차피 1+1이라서 우연히 얻은건지라. 먹어. 먹어."
정말로 상관없다는 듯이 치아키는 받으라는 듯이 더더욱 음료수를 내밀었다. 이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 소리를 내면서 그는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앞으로 몇 주 후면 여름 마츠리인 토모시비 마츠리도 있거든. 그건 꼭 참여해봐. 귀찮다고 방에만 있진 말고. 딱 방학시즌이니까 기왕이면 놀 수 있을 때 놀면 좋잖아? 올해에 즐길 수 있는데 괜히 미뤄서 내년에 즐겨야 할 이유는 없을테고?"
맛있는 디저트를 예약제로 판매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있으나 아이스크림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약제로 판매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늘 사는 것은 불가능할테니 나중에 시간이 되면 예약을 해서 구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치아키는 판단했다. 일단 지금은 알아만 두자고 생각하며 그는 머릿속으로 그 정보를 기억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1+1이라는 말에 치아키는 방금 전 자신이 음료수를 샀던 편의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응. 응. 저기서 1+1으로 팔고 있어. 꼭 저곳이 아니더라도 저 편의점과 같은 메이커 편의점은 다 그렇게 팔걸? 편의점 행사 뭐 그런 것일테니까. 하핫. 나도 운 좋게 구입했거든. 역시 여름에는 음료수지!"
이어 치아키는 슬슬 이온음료의 뚜껑을 딴 후에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목을 적시는 시원한 청량함이 마음에 드는지 그는 캬아! 소리를 내면서 일부러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 그렇다면 키즈나히메님을 모시는 신사로 와. 일단 뭐가 되었건 거기서부터 시작이니까. 아. 같이 올 이가 있을 때의 이야기! 없다면 와도 별로 뭐 없을테니까. 물론 키즈나히메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온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말이야."
어쨌건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을 정말로 좋아하니 이 후배도 필시 좋아할 거라고 치아키는 확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3학년 발언이 나오자 치아키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야 3학년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좋아지는 일은 없을테니까. 오히려 힘들면 힘들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사야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