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으스스한 짓을 한 건 맞다. 그렇지만 말이다, 이쪽으로 올 생각 않고 그렇게 단호하게 나가버릴 것처럼 굴면 안 되지! 얘, 관심 좀 주려무나! 사에라면 공포영화에 등장하더라도 초반부터 현명하게 행동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는 올 생각도 않으니 말이다. 좋은 판단임은 확실하지만 그렇게 나오면 이렇게 열심히 부르는 귀신 섭섭하지 않나! 못된 장난질 한 건 본인이면서 외면당하니 왜인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단다. 염치도 없지. 그는 창 바깥쪽에 딱 붙어서는 성냥팔이 소녀라도 된 심정으로 사에의 뒷모습을 은은하고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또 유리를 쳐댄다. 똑똑 두드리는 노크가 이제는 쿵쿵거리는 우악스런 소리가 되고, 후에는 아예 열고 들어가려 문을 미느라 창틀 덜걱거리는 소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나 창은 안쪽에서 잠겨 열리지 않았다. 오늘은 시원한 바람도 불지 않는 무더운 여름날이니 당연했다. 그러잖아도 괴이한 상황이 한층 더 공포스러워졌건만, 유감스럽게도 놀래켜주겠다 마음먹었던 처음 속셈과는 달리 문전박대 당할 위기에 처한 그는 정말로 별 생각이 없는 상태로 이 짓을 하고 있었다. 급기야는 이런 수를 쓰기까지 하는 것이다. 사에가 바라보던 복도의 바닥에서 무언가가 꾸물거리다 먹으로 쓴 듯한 검은 글씨가 떠올랐다.
어 디 가 ?
눈에 안 보이는 각도에서 글씨를 쓰려니 필체며 간격이 영 들쑥날쑥했다. 그나저나 신의 힘을 문 열고 들어가는 데 쓰면 될 것을 엉뚱한 용도로 쓰고 있지 않나. 하지만 후에 회상하기를, 비량은 관종이었기에 제 쪽에서 열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존재감을 어필하는 편이 더 좋았단다…….
문 좀 열어 봐
창문 밖의 기이한 무언가 역할에 제대로 심취했다 착각할 법한 짓거리였다. 마지막에 붙은 되도 않은 그림과 문자만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그랬을 거다.
PLZ🙏🏻
……사람 해치러 온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이런 없어 보이는 멘트를 치지는 않을 테니까. 아마도. 뒤를 돌아 창문을 본다면 낯익은 술꾼이 한껏 하찮고 불쌍한 표정으로 눈 반짝거리고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돌아봐 주지 않았다면 이윽고 이런 그림이 추가로 떠올랐을 것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허나 고등학교 3학년의 여름방학이 어떻게 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 와중에 이제 토모시비 마츠리라는 커다란 마츠리가 코앞이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준비도 있어서 치아키는 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숨 쉴 시간은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아무튼 신사에서 주로 입을 듯한 진한 남색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치아키는 집에서 나와 크게 기지개를 켰다. 바깥 공기도 마시고 신사 일도 조금 돌볼겸 나온 것이었다. 하루종일 집에 앉아 공부를 하기보다는 역시 한번씩 밖으로 나와 신사를 둘러보고 정리할 것을 정리하는 것이 그의 성미에도 맞았으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어쨌건 장차 이 신사는 그가 물려받을 예정이었으니까. 그게 유일하게 인간으로서 태어난 그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의무이자 책임이었다.
아무튼 새전함이 있는 곳 근처로 다가가자 누군가가 눈에 보였다. 누가 참배를 하러 온 것일까. 일단 말이라도 거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꾸벅 나름대로 예의를 갖춰 상대에게 인사를 올렸다.
"키즈나히메님을 모시는 이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키즈나히메님에게 인사 올리실건가요?"
이곳에서 모시고 있는 키즈나히메에게 참배를 하러 오는 이도 있었으나 가끔 신기하다는 이유로 구경을 오는 이들도 있었다. 어느 쪽이어도 별 상관은 없었기에 치아키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필요한 점이 있으면 얼마든지 불러주세요. 소개가 필요하다거나 부적이 필요하다거나, 혹은 그 외 기타 요소가 필요하다거나. 아. 하지만 너무 안쪽으로는 들어가주지 마세요. 몇 주 후에 있을 마츠리 관련으로 이것저것 있다보니."
이건 혹시 꿈이었을까? 연습하다 잠깐 선잠에 드는 일도 종종 있는 편이니 일리 있는 추측이다. 만약 이게 꿈이 맞다면 얼른 잠에서 깨어나야 할 텐데. 온몸의 솜털과 머리카락이 죄다 닭살처럼 삐죽삐죽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아까는 그저 평이하게 두드리는 수준에 불과했던 소음이 점점 요란스레 쿵쿵거리다가는, 이제 꼭 누군가 창문을 열려 시도하려는 양 덜컹거리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애써 지나가는 바람 소리라 스스로를 속일 수도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도망가자! 그나마 잠가뒀던 창문의 걸쇠가 애처롭게 버텨주고 있는 듯해 아직 늦지 않았다. 미야나기는 다 무른 토슈즈의 밑창을 세게 짓밟으며 황급히 줄행랑을 놓으려 시도했다.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했나, 도망길마저 곧바로 막혀 완벽히 실패했다. 그녀는 대리석 위에 들쭉날쭉 적히는 글씨를 말도 안 된다는 듯 빤히 관망했다. 일반적으로 유령이, 저, 저런 일까지 할 수 있었던가? 잘못 걸렸다. 이 정도면 단순 잡귀 수준이 아니라 틀림없는 악령이다. 웬만한 제령술로는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PLZ’라는 황당한 글씨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비량 님이에요?”
미야나기가 맥빠진 투로 휙 하니 뒤돌아 섰다. 머리카락을 망으로 감싸 올리지 않았다면 신경질적으로 휘날렸을 몸짓이다. 아니나다를까, 창문 뒤로 보이는 건 익히 봐 아는 얼굴이니 그제야 식도께를 치밀고 토할 뻔한 심장을 도로 삼킬 수 있었다. 깊은 안도감에 짜증 반쯤 섞인 한숨을 푹 내쉬며 얼른 창문을 벌컥 열었다.
“아······ 진짜 놀랐잖아요! 제발 이런 짓 좀 안 하시면 안 돼요?”
창문 밑 발레 바에 툭 걸어뒀던 타올로 젖은 땀을 닦으며 그녀가 투덜거렸다. 그러는 김에 창틀에 놓인 리모컨을 들어 에어컨도 켰고.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인공적인 냉기가 폐부로 천천히 밀려들었다. 미야나기는 거듭 작게 한숨 쉬다 말고 이내 고개를 사선으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외부인이 무단으로 들어오는 것도 안 돼요. 얼른 돌아가세요.”
당연히, 들어오는 건 물론이고 밖에서 함부로 구경하는 것도 안 된다······. 애초에 커튼을 내리지 않은 그녀의 잘못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강하게 반발할 힘—깜냥—도 안 되었기에 미약하게나마 째려보는 것 정도에서 소심하게 그쳤을 것이다.
당신의 말에 소녀의 얼굴은 확 밝아졌다. 말로만 하지 않을 뿐, 생긋 휘어진 눈매나 올라간 입꼬리 등으로 제 말을 싫어하지 않아 다행이라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좋아! 그럼 내가 먼저 들어간다?"
말을 마친 안즈는 당신에게 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벌컥 문을 열었다. 그나마 본인이 앞장서 당신이 조금이나마 가려질 것이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쌤들, 안즈 왔어요오~!!"
쾌활한 목소리가 교무실을 채운다. 저 오늘도 심심해서 놀러 왔지요! 다들 바쁘세요?? 하이톤으로 와다다 말을 쏟아내는 게 정신없을 법도 한데, 얼마나 자주 그랬는지 다들 익숙하다는 반응이다.
"정말로 심심하기만 해서 놀러 온 거 맞아?"
장난스러운 질문에 안즈는 헤헤 웃었다. 에, 어떻게 아셨대요~? 쌤들 간식 좀 얻어먹고 싶어서 왔는데!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답하는 모습이 능청스럽기 그지없다. 다소 뻔뻔한 말이지만 다들 기분 좋게 웃어넘기고 만다. 뭐 먹고 싶어서 왔냐는 말부터 우리가 간식 자판기냐는 말까지, 여러 답으로 교무실은 순식간에 소란해진다. 자, 판은 깔아졌다. 다들 안즈에게 눈 돌리고 있는 지금이라면 당신에게 관심이 쏠릴 일은 없지 않을까?
사람들은 이노리를 보면 선배라기엔 1학년, 그도 아니면 어린아이로 생각하곤 하지요. 아마 눈앞의 친구도 그런 것 같습니다만, 조그마한 건 사실이니까요. 이노리는 이번의 신관이 죽고 다음 대가 이어지는 순간, 쉽게 말해 유희가 끝나기 전까지는 언제나 조그마한 모습을 유지할 겁니다. 꽃과 나비, 해와 구름,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며. 의외라는 눈빛에도 생글생글 웃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지요.
"와타누키- 잘 부탁해-!"
새 친구의 이름은 와타누키구나, 이름이 아닌 성씨일지도 모르지만 부르라고 하는 쪽에 맞추는 것이 좋을 테니까요. 나중에 이름을 알면, 새 별명도 지어줘야겠다 생각합니다.
"응! 물론 불러도 돼요! 대신- 누누-라고 불러도 돼요? 4월이, 라고 부르는 건 조금 그렇잖아!"
와타누키, 와타누키. 4월 1일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지요? 그런 말장난은 많이 들어봤거나, 싫어할지도 모르니까 와타누키의 누를 따서 누누라고 부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치아키는 키키, 와타누키는 누누. 좋은 작명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죠, 이노리..? 그 작명 센스, 끔찍하다니까요!
뒤돌자 보이는 광경은 한 뼘도 되지 않을 바깥쪽의 좁다란 턱을 받침대 삼아, 그 위에 손 짚고 매달린 채 창가로 몸 기울인 그가 활짝 웃으며 열심히 몸 들썩대는 꼴이다. 당연하게도 물리법칙은 무시한 모습이었다. 마냥 해맑은 저 낯짝 얄미울 지경으로 뻔뻔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맨정신이면서도 고의로 잘못했다는 걸 본인도 아는 모양이다. 사에가 다가올 즈음 그는 대책 없이 환하던 웃음 슬며시 지우고 눈치 보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불쌍한 표정 짓던 것도 잠시다. 창문이 열리자마자 식당 앞 길고양이처럼 사사삭 날래게도 들어와 척, 드디어 바닥에 발 붙이고 제대로 섰다. 그리곤 "헤헤."하는 바보같은 웃음소리나 내며 볼을 긁적였다.
"미안하구나. 지나가던 길에 네가 보이기에 인사라도 할까 해서 그랬단다. 한데 뒤도 아니 돌아보고 나가려 들기에 마음 급해 그만."
세상에 어느 누가 마음 급하다고 스릴러 연출을 하나 싶다만, 유감스럽게도 비량은 원체 어디로 튈지 파악하기 힘든 신이라. 보아라, 사과하자마자 또 엉뚱한 소리나 내뱉지 않나.
"……하나 좋은 판단이었다. 수괴한 일에는 얼씬도 않는 것이 옳아! 앞으로도 괴상한 것들은 먹금하거라, 알겠느냐!"
오늘은 술냄새 나지 않으니 분명 취하지는 않았을 텐데도… 맨정신으로도 이랬다 저랬다 헛소리 하는 걸 보아 주책맞은 것은 원래 성격인 모양이다. 에어컨 귀한 줄은 아는지 곧바로 알아서 창문 탁 닫고 잠금장치도 다시 잠가 둔다. 그리고는 창문 정리하느라 뒤돌았던 자세로 잠시 말이 없더니.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슬며시 돌아보며 또 같잖은 아양이다! 덩치도 큰 양반이 두 손 꼭 쥐고 얼굴에 가져다 대며 가련한 척을 하니 징그럽다. 어쩌면 제 간살이 어여쁘지는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역으로 이를 이용해 정신을 공격하여 원하는 답을 얻어내려는 치밀한 술수일지도. 째려보는 미미한 시선은 낯 두껍게 반짝반짝한 눈으로 맞받아친다. 그저 이 천육백살의 수준에 가슴이 옹졸해진다……. 한참 그러고 있다 퍼뜩 떠오른 생각에 그가 드디어 아양질 그만두고 물었다.
좋아요. 갱신이에요! 다들 안녕하세요! 그리고 금요일까지 찌르기를 하셔야하니 신청하셨던 분들은 참고해주세요! 물론 찌르기를 하지 않았어도 마츠리 참가는 가능해요! 다만 조금 마이너 느낌일 뿐.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펑펑 터트리는 불꽃은 없다던가 대충 그런 느낌이고.. 키즈나히메의 기운이 담긴 등불이라던가 그런 것은 못 받을 뿐. 셀프로 등불 만들어서 띄울 수도 있고 불꽃놀이 자기들끼리 소소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건 참고해주세요!
다시 말하지만 랜덤으로 하실 분들도 랜덤이라고 저에게 웹박수를 보내야 제가 잠수를 탔는지 아니면 지금 활동하고 있는지 파악이 가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