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생선 비린내 따위는 나지 않고, 비늘로 덮여있지도 않지만 내심 이런 동굴에 그런게 있을거라 생각한 것이리라. 어찌 되었든 마구 난동... 까지는 부리지 않고, 갑작스레 내뱉은 비명 이후에 다시금 정신을 차려보니 앞에 있던 인물은 전혀 물고기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생...선이 아니네. 아니, 이런 어두운 데서 불도 안 켜고 뭐하고 있던거야?"
깜짝 놀란게 멋쩍기라도 했던건지, 상대에게 묻는다. 물론 자기가 할 말도 아니긴 하다. 대충 어디서 본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어찌되었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눈앞에 있는 상대가 먼저 반말을 했으니 거침없이 반말을 하기로 했다.
수학여행은 꽤나 큰 행사였다. 반의, 학교의 모든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간다는 그 거대한 테마에 제법 타이트하게 짜여져있는 일정에다가 충분히 보장된 자유시간들. 이미 친구가 많은 사람에겐 또 다른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였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어쩌면 새로운 인연이나 만남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바꾸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조금이나마 홀로서기에 도전할 수 있는 도전의 장이기도 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리오는 홀로서기로 학생회장과 친구-적어도 리오는 그렇다고 믿고있다.-가 되기도 했고 반짝반짝을 찾으러 나가기도 했으며 남 몰래 사온 수영복을 입고 그 생기가득한 무리 사이를 걸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선 조금 흥이 올라서 바다에 발도 담궈보고 허리까지 올라오는 깊이까지 천천히 걸어가보기도 했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혼자 놀았지만 제법 괜찮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방 안에 가만히 앉아있다.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시간이다. 방 밖에서는 웃음소리라던가 이야기소리들이 많이도 들려왔다. 저 문 하나를 기준으로 저 밖은 생기가 돌고 이 안은 새카만 악의가 가득차버려 조금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리오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이부자리를 펴놓고는 다시 그 위에 앉아서 지금까지 있던 일들을 회상했다. 반짝반짝을 찾으러 나간 일과 학생회장과 친구가 된 일, 그리고 생기 넘치던 바다에 들어가 봤던 일. 생각해보면 또 미소가 지어졌다. 제법 훌륭한 홀로서기의 시작이라고 생각돼서 하레하네를 만나면 잔뜩 자랑할 생각이었다.
사실 지금은 혼자서 궁상을 떨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반짝반짝 아니, 바다에서 여기까지 들어오는 길에는 '같이 놀래?' 하고 말해주는 이들도 몇 몇인가 있었다. 자신도 누군가와 함께 있었더라면 그 분위기를 타서 그러자고 말한다던가 지금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벼운 일탈행위에 참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리오는 혼자였던 탓에 의도와는 다르게 아무 말도 없이 검은 마스크를 쓰고 꽤나 사나운 눈동자로 마주보곤 했다. '싫어'라던가 '그래' 라던가 같은 말을 쉬이 꺼내지 못하고 머릿 속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최선일지르 계속 생각하다보면 '미안, 이치노세양.' 하는 말이 들리고 멀어진다. 그들이 멀어지고 나면 리오는 나직이 '나도 갈래' 하고 조용히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지금 현재.
방 안에 얌전히 앉아서 조금은 멍하니 있었다. 마치 주인이 돌아오길 바라는 강아지처럼 문을 응시하거나 방 이리저리를 돌아다녀보며 '이런게 있었네-' 하고 말해본다거나 조금 높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밤에도 바다가 제법 잘 보인다는 것에 감동하거나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수학여행은 '제법' 완벽했다. 생각하고 있자면 혀 끝에서 단 맛이 도는 느낌이 들었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하늘하늘한 솜사탕 같은 단맛이 퍼지는 느낌. 잠깐 눈을 감았다 떠보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조금 휑한 방에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앉아있는 모습. 혀 끝에 살짝 쓴 맛이 퍼지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소꿉친구와 한 방이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잠깐 밖에 있는지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아무튼 같은 방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평소에도 가끔 저의 집에서 자거나 친구의 집에서 함께 자곤 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또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 '색다른' 경험은 아니겠으나, 누구의 영역도 아닌 새로운 곳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많이, 달랐다. 그러고보면 지금의 이것도 홀로서기라고 볼 수 있겠다. 평소였으면 어디있냐고 잔뜩 라인을 보내거나 밖에서도 꼭 달라붙어서 남들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질투를 느꼈을 것인데 지금은 그런 마음을 꾹꾹 눌러담고 방에서 얌전히 앉아 기다리고 있다.
잘 참고있다. 정말 꾹꾹 눌러담아 참고있다. 이렇게 될 것 같아서 일부러 구급상자도 가져오지 않았고 스스로를 상처입힐 만한 자기파괴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악의가 가득 찬 무기들도 가져오지 않았다. 사실 눈을 돌리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다만 그러지 않았다. 오늘, 다시 하레하네를 만나기 까지가 오늘의 홀로서기 도전의 마지막이다. 지금 이렇게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것은 소꿉친구가 돌아왔을 때 오늘 있던 홀로서기의 무용담을 한껏 풀기 위함이었으리라.
최신 문화에 박식하신 도깨비께서도 마이너 지식에 통달하지는 못했다. 무슨 소리 하느냐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다가 그는 갑작스레 크게 웃으며 쿄스케의 등등 팡팡 후려치려 들었다. 맞는다면 아프면서도 엄살 부리기는 뭐한, 절묘한 강도의 충격이 전해지리라. 사람 놀래키기 좋아하는 그는 단숨에 기분이 좋아져서는 싱글싱글한 얼굴이 되었다.
"어른들한테 걸리면 혼날까봐 불 끄고 없는 척하고 있었지? 왜, 이런 덴 위험하다고 단속하는 사람들 가끔 있잖아."
짧은 말 한 마디에 거짓이 둘이다. 우선 첫째로 그는 동굴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인기척을 느끼고선 놀래켜주고자 가만히 없는 척을 하던 중이었고, 둘째는 처음부터 불은 켜지 않고서도 잘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빛이 없다시피 해도 밤눈이 밝은지라. 랜턴 조명에 잡혀 얌전히 서 있었던 것도 잠시, 린은 또 예고도 없이 불쑥 움직여 쿄스케의 어깨에 팔 올리고 어깨동무를 하려고 했다. 이 선객은 그저 우연히 생각이 통해서 같은 자리에 오게 된 사람에 불과한데도 과하리만치 거리감이 없다.
"자, 그럼 이름도 모르지만 아무튼 생각 통한 친구야. 같이 가보실까. 근데 여긴 딱히 볼 만한 것도 없는데 왜 왔어? 난 그냥 지나가다가 심심해서 들어온 건데 넌 꽤 준비하고 온 것 같다?"
바로 옆에서 종알종알대는 소리 떠들썩하다. 이래서는 미스터리의 ㅁ자도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되었지 않나……. 아, 물론 공포영화 같은 데서는 이런 캐릭터가 제일 먼저 죽곤 한다. 신이라서 만일 그렇게 된다 해도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치아키:.....(대체 나에게 왜 이러냐는 눈빛) 치아키:굳이 골라야한다면 못 당겨. 나는. 치아키:나는 이기적이라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보다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이 더 중요해. 치아키:인연의 신의 손자이니까.. 인연을 지키기 위해서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상관없잖아? (어깨 으쓱) 치아키:유감스럽게도 난 모두를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은 죽어도 되지 못하거든. 하핫!
안녕하세요, 타카나시 하네입니다. 조금 걸음을 빨리 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돌아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것은 아니고요, 검은 밤이라고는 해도 마냥 어둡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건물의 불빛이나 달과 별빛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조금 다른 이유가 있다면 불꽃놀이예요. 커다랗게 터지는 소리가 나면 하늘에 알록달록하게 화려한 불꽃들이 타올랐다가 사그라들어 떨어집니다. 낮의 바다도 충분히 예쁘지만, 밤의 바닷가에서 잇쨩과 같이 불꽃놀이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폭죽과 스파클라를 샀습니다. 불을 붙여야 하니까 라이터도요. 불꽃놀이는 예쁘고, 예쁜 풍경을 보면 잇쨩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녀왔습니다.”
리조트의 입구를 지나서 숙소로 머무는 방 앞까지 오면,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인사를 합니다. 갑자기 벌컥 들어가면 아마 누구라도 놀라고 말 거예요. 손목에 걸린 봉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신발을 벗어요. ...그러고보니 잇쨩이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을 안 했어요. 깨워야하는 걸까요, 아니면 조용히 저도 같이 자는게 맞는걸까요? 피곤해서 잠들었다면 깨우고 싶지는 않은데, 다음날 잇쨩이 아쉬워할까봐 고민이 커집니다.
“......자요?”
술을 마시고 또 마시다가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던 언니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조금 이해됐어요. 이런 기분으로 살금살금 집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잠들었다면 깨우지 않겠지만, 깨있다면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기분이요. 물론 저는 언니처럼 혼날 짓을 하고 들어오는게 아니니까 긴장해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라도 잠들어있다면 잠을 깨울까봐 떨리기는 해요. 연락이 온게 하나도 없었으니 오늘 재밌게 놀고서 잠들었을 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