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선배가 부르면 외국에 있다가도 한달음에 달려갈 건데. 아니면 저 그냥 계속 일본에 있을까요?”
우호적인 눈빛을 잔뜩 담아 반짝반짝 바라보는 게 순 농담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여러 가지 문제들만 해결한다면야 고국에서 사는 것도 썩 나쁜 선택만은 아닐 테다.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앗, 근데 여우 때문에 안 되겠네. 단념! 굳은 표정으로 음료를 입에 가져다 물자 붉은 액체가 빨대를 타고 한없이 빨려들어간다······ 폐활량이 한계까지 다다를 때까지······ 숨찬 얼굴로 푸하! 하고 풍선처럼 호흡을 가득 채운 미야나기는 문득 “마츠리이?” 하고 되물으며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모든 기분이 표정에서 즉각 드러나는 게 참 알기 쉬웠다.
“정말요? 우와, 저 그거 강에 등불 띄우는 거 진짜 해보고 싶었는데. 완전 갈래요!”
물론 그 다음 주가 콩쿨이긴 한데 으레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원래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라고 이미 속으로 정신 승리까지 마친 후였다. 지난 마츠리 때 본의 아니게 제대로 된 대접도 못 했으니 이번에 만회하는 것도 좋겠다!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신경쓰지 않기로 합니다. 제가 계속 신경쓰여하면 선배님도 부담스러울 거에요.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신경쓰지 않기 위해서 신경을 써야하는 거라고요. 꼬이고 꼬이고 꼬여버립니다. 선배님의 신사는 분명 키즈나히메님을 모시는 신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제 가족들이 부탁을 했을, 누군지 모를 신님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키즈나히메님의 가족분들일거예요. 설마 키즈나히메님한테까지 찾아가서 부탁을 했을 거라는 상상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수학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꼭 물어봐야겠습니다. 도대체 누가 한 부탁이느냐고요. 심부름시켜도 안 들어줄 거고, 연락은 무조건 단답으로 할거에요!
“앗착.”
선배님이 두 손에 물을 받는 모습은 보았어요. 뿌리려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보처럼 멀뚱히 있어버렸어요. 그렇지만 선배님이 갑자기 제게 물을 뿌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멍하니 있다가 당해버린 겁니다. 그래도 오른쪽 눈에는 렌즈를 끼고 있으니 황급히 고개를 돌리기도 했고, 뒤늦게라도 손을 올려 막아보려고 했으니 바닷물로 세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반사적으로 차가운 물에 닿아버리면 놀란 소리를 내버려서 입을 막아야했어요. 소리도 잘 삼켜내고 얼굴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면 선배님을 바라봅니다. 왜 갑자기 물세례를 맞았는지 의문이라서 가만 쳐다보게 돼요. 괜찮다거나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사실 예의상 한 말이었고 본심은 그게 아니었던 걸까요? 말도 모나게 하고 제대로 감사 인사도, 사과도 하지 않는 후배가 괘씸해서 그런 걸까요?
“...필요없어요. 사과도, 등불도요.”
놀래켜서 미안하다는 사과는 정말 들을 이유 없는 사과이고, 등불은 더욱 그렇습니다! 선배님이 띄울 등불까지 뺏어버리면 안 돼요. 선배님의 등불은 선배님이 띄워야합니다. 애초에 마츠리에 같이 갈 친구라니 잘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재밌고, 착하고 마츠리에서 같이 놀기에 좋은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굳이 절 데려갈 이유는 없고, 제가 누군가에게 염치도 없이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아요. 이런 이야기까지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절대 안 된다는 뜻을 담아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네? ........................싫은 거 아닙니다.”
사람이 얼마나 상냥하고 친절해야 제가 까칠하게 구는 것을 알고도 친구하자는 말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좋다던가 싫다던가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물론 저라는 사람보다는, 같은 처지라는 공통점 덕분이니까 괜히 들뜨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저도 신이었다던가, 가족들이 인간이었다던가 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도 역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은 기쁜 말이고, 선배님에게 답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겨우 얼굴이 식은 것 같은데 부끄러워서 그랬다는 말은 할 수 없어요.
"...사과는 그렇다고 쳐도 등불도 필요없는거야?! 토모시비 마츠리 참여 안 하는 거야? 아니. 물론 참여 안하는 것은 자유긴 한데... 아니. 하지만 찾아온다면 꼭 이야기해줘. 우리 부모님과 만나면 무슨 이야기 나올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내가 그런 일 없도록 살짝 등불을 줄테니까. 어차피 나도 신사 사람이라서 등불을 나눠주는 일을 해야하거든. 그러다가 적당히 타이밍보고 중간에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일이니까! 하하."
조금 뜻밖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이상할 것은 아니었다. 그야 마츠리를 참여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였으니까. 그렇다면 눈앞의 이 후배는 안 온다고 봐도 좋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렇게 말을 해두면 마음이 바뀌어서 참여를 할 때 자신이 살짝 등불을 줘서 괜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안 나오도록 할 수 있을테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의 누나에게는 절대로 걸리지 않게 해주겠다고 치아키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어디까지나 이 후배가 그 날 참여를 할 때의 이야기지만.
"...그럼 지금까지의 말은 그러니까... 사춘기 뭐 그런 거야? 후배 양과 대화하면서 한번도 호의적인 말을 들은 기억이 없는데."
뜻밖의 말이 나오자 치아키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잘못 생각을 했나 싶어서 두 손으로 물을 뜬 후에 자신의 얼굴에 약하게 뿌렸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이어지는 말에는 더더욱.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서 비밀을 알려주지 않겠다는 그 말에는 절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내가 후배 양의 비밀을 알아서 뭐하겠어. 그냥 내 비밀을 말한 것 뿐이야. 그러니까... 너하고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는 거 말이야. ...아니아니. 비밀이 있다면 궁금하긴 하지만 딱히 꼭 알아야겠다 그런 것은 아니고 말이지. 필요없어. 그런 거."
적어도 자신은 그녀의 비밀을 캘 생각이 없다는 듯,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어 치아키는 다시 물살을 가르면서 근처에 있는 바위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어 고개를 살짝 내려 제 발을 담근 맑은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두 발을 천천히 앞뒤로 흔들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덧붙여서 마음대로 하세요...보다는 후배 양이 어쩌고 싶은지 듣고 싶은걸. 나는. 안될까?"
...잘못 이해했어요! 선배님 몫의 등불을 준다는게 아니라, 등불을 받아간다면 그때 선배님이 등불을 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티내면 안 됩니다. 놀라면 안 돼요. 바보같이 말도 제대로 이해치 못 하고 싫다는 말이나 해버리고 한심해서 다시 숨고 싶어집니다. 모래사장 아래로 숨지도, 바닷속으로 숨지도 못 하니까 숨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마츠리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으니까요, 필요없다는 말이 크게 틀리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등불을 같이 띄우고서 기도를 하면, 등불을 같이 띄운 사람들의 인연이 깊어진다는 말이 있으니 더욱이요.
“꼭 하란 법 없잖아요.”
아마 마츠리에 가게 되어도 등불을 띄울 생각은 영영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때 선배님을 마주하게 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선배님은 그저 저를 배려해서 선배님의 가족들 중 신인 분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건넨 친절이었는데, 제가 바보인 탓에 이렇게 돼 버렸어요. 책을 많이 읽어야겠어요......
“마츠리에서는 수상한 사람같이 구셨잖아요. 화단에서는 이놈한다고 하셨고요. 호의적인 말 들을 일은 없었니까 당연합니다.”
호의적인 말 들을 일은 많아요! 많습니다. 수상한 사람같이 구셨단들 그저 같은 학교 학생이 반가워서 인사하려고 했던 것 뿐이고, 이놈한다고 하신 것도 제가 많이 놀라버려서 그렇지 단순히 웃어넘길 수 있는 장난이었어요. 사춘기라는 말에 괜히 선배님 탓을 해버립니다. 선배님이 아까 하셨던 친하게 지내고 싶었단 말이나, 비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같은 말을 전부 취소하더라도 제 잘못입니다.
“저도 선배님 비밀 필요없거든요?”
이런 유치한 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비밀 이야기를 한 건, 선배님이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을 해준 것에 괜히 들떠버리니까 스스로 찬물을 쏟은 겁니다. 저와 친해지고 싶을 리가 없다고, 처지가 같아서일 뿐이라고, 비밀 이야기를 캐내려고 그러는 것 뿐이라고 멋대로 곡해하고 멋대로 모난 말을 한 거에요. 곡해한 것 뿐이니까 선배님이 제게 그럴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 비밀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단 건 저도 잘 압니다.
“......상관없단 뜻이잖아요.”
바보냐는 말을 하지 않도록 힘냈습니다. 바보라는 말을 많이 해버리면 안 돼요. 상대방이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요, 또 그런 일을 만들지 않도록 힘낸 거예요. 아니, 앞으로도 힘내야합니다. 저도 친구라고 해준다면 좋은 친구는 못될망정 나쁜 친구는 되면 안 되니까 힘내도록 합니다. ......갈 길이 먼 것 같지만요.
"그렇긴 하지. 그래서 혹시라도 온다면이라는 조건을 건거고. 아무튼 확실히 생각해보니까 딱히 호의적인 말을 들을 이유가 없긴 하네. 우와. 이런 사람 아닌데 후배 양에게는 묘하게 장난을 많이 치긴 쳤나봐. 나."
하긴, 그랬는데 호의적인 말들이 나오면 그게 이상한거지. 그렇게 납득하며 치아키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 와중에 이놈이라는 말이 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게 가장 기억에 남고 여러모로 임팩트가 컸겠거니 치아키는 생각했다. 물론 말해도 또 부정할테니 굳이 말을 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는 다시 한 번 가볍게 두 발로 물장구를 쳤다.
"그래? 그럼 괜히 말했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말을 꺼낸 것을 역시 없던 것으로 하자! 라고 할 순 없으니 말이야. 적당히 잊어주면 될 것 같아. 나도 굳이 더 언급은 하지 않을테니까. 정말로 필요없다고 한다면 말이야. 아무튼 상관없다라. 그게 가장 어려운건데.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내 멋대로 해석하도록 할게."
물론 어떻게 해석하는지의 여부는 딱히 알려주려고 하지 않으면서 치아키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아이는 생각보다 새침떼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에 대해 싫어하는 점을 말해달라고 하니 싫어한다는 점은 없다고 하면서 묘하게 툴툴대고 지금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딱 그 표본이 아니겠는가. 조금은 이 후배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치아키는 가만히 하네를 바라보면서 의미모를 웃음소리를 냈다. 이어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다가 그는 다리를 굽혀 오른손을 물 속으로 쑤욱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얀색 조개껍데기를 잡고 손을 밖으로 꺼냈다. 겉면은 정말로 새하얀색이었으나 뒤집어보면 빛을 반사하며 무지개빛을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꽤 예쁘다고 생각을 하며 치아키는 하네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그럼 이건 서로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잘 지내보자는 나름의 선물이야. 우연히 이게 또 보이네. 하하하. 그럼 나는 후배 양이 쉬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슬슬 가볼게. 수학여행 잘 즐기길 바랄게."
다음에 어딘가에서 만나면 인사해주면 고맙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치아키는 바다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오며 모래사장을 밟았다. 그리고 주변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저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또 볼 수 있으면 보자. 후배 양. 아. 그 근처에 조개껍질 예쁜 거 많으니까 더 찾고 싶으면 찾고."
이내 그는 하네를 바라보며 가볍게 손을 저었다. 딱히 부르거나 더 이야기가 없으면 아마 그대로 밖으로 완전히 나가서 걸어가지 않았을까.
/슬슬 막레적으로 가도 좋을 것 같으니! 막레로 받아도 되고 막레를 따로 쓰셔도 괜찮아요!
외국에 있어도 한 달음에 달려온다니, 대화를 나눈 것이 이제 겨우 두번째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역시 빈말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기에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결국 웃어 넘긴다. 역시 사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외국으로 나가겠지. 한국어와 중국어는 조금은 할 줄 아는데 서양쪽 언어를 역시 배워두긴 해야 할 듯 하다.
“그래요. 그럼 그 때 만나요.”
눈을 접어 웃으며 이내 작별 인사를 건넨다. 처음 만났을 땐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원래 사건들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법이었다. 인사를 하고 사에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갈 것이었고 케이는 간이 샤워장 쪽으로 향해 갔기에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그 와중에 청포도 주스를 다 마셔 버렸고 이내 동그란 얼음만 남아버렸다. 여우와 신포도 우화가 생겨난 건 확실히 여우가 포도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지난 대화를 거슬러서 생각했다면 여름이 콩쿨 피크라서 지금도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했던 말을 기억했을텐데, 이 신은 휴가를 나온 직장인이라 미처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아마 마츠리 몇 주 전 쯤에야 콩쿨 일정을 알고 아차하지 않았을까.
/얍. 이걸로 막레 하면 될 것 같아. 일상 돌리느라 수고했어~ 마츠리 기간에 내한공연 보러 가는 구나....!!!! 접률이나 텀 같은 것 신경 쓰지 말고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해보면 되니까~! 어쨌든 잘 부탁합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