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부류라는 말이, 가족들이 신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혼자 인간이라는 것까지였나 봐요. 선배님도 혼자만 인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보다, 지금이 조금 더 저 혼자 인간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립니다. 신이 되고 싶다거나 신이 아닌게 불만인 건 아니지만요, 같은 부류라고는 해도 선배님한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고 다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아요. 입술을 물고서 침묵을 유지합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됐어요.”
불공평한 것 같다는 것까지 신경써주시다니, 이렇게 상냥하셔도 되는 걸까요? 분명 선배님의 가족들도 그만큼이나 좋은 신님들이라서, 가족들이 부탁을 했는 지도 몰라요. 저만, 제가 민망한 것만 빼고는 좋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민망한게 큰일이지만요! 얼굴에 오른 열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질 않아요. 겉보기에도 빨갈 것 같아서 정말, 차라리 바닷속으로 빠지고 싶습니다. 분명 열은 금방 가라앉을 거에요. 바닷물이 아무리 햇빛을 받아도 제 얼굴보다는 시원할테니까요!
“전 여벌 있거든요.”
그렇다고 선배님이 계속 무릎 굽혀 불편한 자세를 하도록 할 생각은 없습니다. 선배님 보고 사라지라고 할 생각도 전혀 없고요. 그러니 쭈뼛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하지만 여전히 고개는 들지 못합니다. 선배님이 특별대우해줄 일은 없다고 해주셔서 다행이지만, 여전히 민망한 건 민망한 거고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겁니다. 그런 부탁을 해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선배님한테도 선배님의 가족들에게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도요. 무시해도, 거절했어도 괜찮았을 부탁을 기억해준 거니까요. 이미 부끄러울 만큼 부끄러워진 거, 지금 하는게 나을지도 몰라요. 심호흡을 소리없이 하고, 숨을 삼켰다가 말과 함께 내뱉습니다.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도 감사인지도 제대로 말하지 못 했어요! 이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어서 목소리를 잦아들고 말았지만요. 괜히 딴청을 피웁니다. 옷을 확인해보는 거에요. 다행히 다 젖지는 않았지만 남방 끝자락이 젖어 버렸습니다. 남방자락은 길게 떨어지니까 바닷물에 금새 닿았던 모양이에요. 휴대폰은 바지 주머니에 잘 넣고, 남방 끝자락을 비틀어서 물을 꾹 짜냅니다.
의자도 덜컹덜컹, 화면에는 가공의 괴물들이 득실득실, 인간의 무기인 화기를 통했으나 실제의 살상이 없는 건전한 오락거리. 이노리가 좋아하는 건 모두 모였지만 사람만 모이지 않던 마법의 상자! 이노리는 활짝 웃고는 쫄래쫄래, 경쾌한 발걸음으로 마련된 자리를 향해 달려갑니다.
동전을 투입했을 적, 이노리는 요란한 효과음과 화면이 바뀌는 모습이 그리도 신기했는지 와아, 작은 탄성 내봅니다. 난이도와 맵도 총을 발사해야 정할 수 있군요! 이노리는 활짝 웃으며 어떤 것이 좋겠냐는 듯 당신을 쳐다보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입니다.
"으음- 놀이는 다 좋아요? 게임도, 재밌는 것도 다 좋아! 그러니까 게임도 좋은 걸로 할래-"
천진난만하게 답하곤 되묻습니다.
"친구는요? 게임 좋아해요?"
이렇게 재밌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지만요.
// 갱신하고 갈게.. 곧 출근(ㅋㅋ)...이라........ 나중에...보자....ㅠ...ㅠㅠ...
떨떠름한 목소리로 반문하는 듯하면서도 냉큼 키패드를 켠 핸드폰을 건네 쥐어주려 했다. 이거 한창 바쁜 3학년이나 닦달해서 괴롭히는 민폐 후배 되는 거 아닌가 몰라······. 번호를 받은 기쁨과는 별개로, 눈치 없이 귀찮게 굴다 비호감이 되는 일만은 절대 없게 하도록 다짐했다! 핸드폰을 돌려받은 미야나기는 저장된 번호로 제 이름을 담은 문자 한 통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유 날 때 말씀해주시면 제가 최대한 맞춰볼게요. 저야 유동적으로 일정 조정할 수 있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절반은 거짓이다. 실제로 스케줄을 임의로 변경 가능한 건 맞지만, 그랬다가는 지도자한테 맞아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시모토 선배가 만나자는데! 까짓 거 화끈하게 맞아 죽지 뭐!
"물론 그렇게 해도 상관없었겠지만 내 성격이 그러지 못하는 그런 성격이라서 말이야. 하하하. 그러니까 후배 양이야말로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돼."
얼굴이 아직은 빨간 것 같은 하네를 바라보며 치아키는 아주 가볍게 물을 뿌려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딱히 얼굴이 빨개서 장난을 치고 싶다라기보다는 그 시원함과 차가움이 아예 신경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기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무슨 말이 나올지. 어쩔까. 어쩔까. 고민을 하는 와중 그녀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이자 치아키 역시 무릎을 펴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연히 바지의 젖은 부분에서 바닷물이 뚝뚝 떨어졌고 치아키는 두 손을 내려 바지 밑단을 쭈욱 짜면서 물기만 빼내려고 했다. 어차피 리조트로 들어가면 또 세탁기에 돌려서 세탁을 하고 탈수를 해야 할테니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였지만.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이 들려오자 치아키의 시선이 다시 하네에게 향했다. 여전히 고개를 잘 들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굳게 마음을 먹고 두 손으로 물을 받은 후에 그녀의 얼굴을 향해 아주 살짝 가볍게 뿌리려고 했다. 행동이 컸으니까 미리 알아보고 피하는 것도 가능했을테고 설사 피하지 않는다고 해도 얼굴의 뺨 부분에 바닷물이 찰싹 붙었다가 떨어지는 정도였을 것이다. 이어 치아키는 피식 웃으면서 제대로 허리를 편 후에 오른손을 제 허리에 올리면서 이야기했다.
"죄송할 일도 없고 고마울 일도 없어. 사실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거든. 딱히 네가 죄송할 일도, 그리고 내 쪽에서 감사를 받을 일도 없는걸. 굳이 말하자면 놀래켜서 미안하다..라는 말은 내 쪽에서 하고 싶은걸. 그러니까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토모시비 마츠리 때 친구랑 같이 키즈나히메를 모시는 신사로 온다면 특별히 눈에 안 띄게 내가 강에 띄울 등불을 줄게. 일단... 나는 이렇다고 쳐도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이야."
아마 어지간하면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자신이 전해줄 등불을 전해준다면 딱히 무슨 말을 할 것도 없이 바로 전해줄 수 있을테니까. 괜히 가족에게 붙잡혀서 이런저런 말을 듣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나 이 후배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할 진 자신도 알 길이 없었다.
"대신에 후배 양도 나에게 싫은 점이 있다면 얘기해주기! 뭔가 후배 양은 나하고 대화할 때 묘하게 까칠한 면이라고 해야할까. 아니. 심한 것은 아니고 약간 벽을 치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혹시나 내가 뭘 잘못했나...생각하는 것이 몇 번 있고 그렇거든. 일단.. 같은 처지의 사람인만큼 후배 양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기도 해서. 신이라던가 그런 이야기. 함부로 못하잖아. 어디 가서. 신에게는 할 수 있다고 쳐도 난 내 가족 이외에는 누가 신인지 전혀 모르거든. 그러니까 그런 비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라던가 있었으면 했어. 물론 후배 양이 싫다면 패스!"
수학여행! 그는 요 며칠간 꽤나 모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기획자의 의도에 잘 따라 준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학교에 갇혀 (비교적)얌전하게 지내다 넘치는 활동성을 정식으로 풀어낼 기회가 생겼으니, 모처럼 여기저기 죄다 찌르고 기웃거리며 아주 잘 놀았다. 보통의 남고생이나 동물이었다면 며칠 간 누적된 활동량으로 인해 어느 정도 체력이 빠져 쉬고자 했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일반적인 생물에 해당하지 않는 종이라서. 오히려 더 쌩쌩해져서는 더 할 만한 것 없는지 들쑤시고 싶은 마음 더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저녁에는 이런저런 시설들도 닫혀서 갈 만한 곳이 없다. 리조트나 그 주변 시설은 몇 번인가 가 보았기에 오늘도 거기서 놀기는 좀 지루하고. 할 만한 것 없나 싶어 혼자서 밖에 나와 이 동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그는 마침내 웬만해서는 들어갈 이유도 없을 동굴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쿄스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선객이 여기 있었던 사연이다.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인영은 어째서인지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굴 속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던 것 같다. 생긴 모습이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않았더라면 전형적인 호러 매체의 괴물에 어울리는 등장이었다. 아, 어둠 속에 서 있다 불 켜지자마자 갑자기 달려들기 시작했다는 점도 제법 호러 크리처 같기도 하다. 눈앞까지 순식간에 닥쳐온 누군가는 휙 손을 뻗어 쿄스케의 어깨를 붙잡으려는가 싶더니…….
"에헤이, 조심해야지. 이런 데서 넘어지면 큰일난다?"
제법 친절한 행동을 한다……? 깜짝 놀란 쿄스케가 넘어지거나 펄쩍 뛰지 않도록 어깨를 붙잡고 토닥거리려 한다. 놀래킨 주제에 본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