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치고는 그때 주저앉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말을 굳이 해봐야 좋을 것은 없었기에 치아키는 간질간질한 입을 겨우 막으면서 웃음을 애써 참았다. 이어 뭘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지는 하네의 모습을 바라보며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사진을 추가해서 메시지 하나만 보내면 될텐데. 혹은 사진만 보낼 수도 있고. 라인을 못 다루진 않는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치아키는 일단 가만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편 들려오는 물음에 치아키는 딱히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녀의 입장에선 자신이 신에게서 태어난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은 알고 있었기에 행할 수 있는 망설임이 조금도 없는 행동이었다. 이어 고개를 끄덕이며 치아키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괴면서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만 이대로 계속 유지하는 것도 조금 불공평하려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치아키는 이내 결심을 끝냈다. 이 정도면 괜찮겠거니 생각을 하며.
"생각해. 누구보다 강하게."
그 목소리는 장난 어린 목소리가 아니라 꽤나 진지한 목소리였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확신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 단순히 신사의 아들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며 방금 막 보냈다고 하네가 말한 사진을 치아키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낸 후에 확인했다. 사진은 총 두 장이었다. 원본으로 보이는 것 하나. 그리고 푸른 보정을 넣은 것 같은 사진 하나. 둘 장 다 마음에 들었기에 치아키는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핸드폰에 저장했고 이내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 쪽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나름 앉아있는 위치를 잘 조절한 후에 치아키는 또 다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확실히 굳이 생각할 사안은 아니긴 하지. 하지만... 역시 이대로는 조금 불공평한 것 같으니까 후배 양에게는 내 비밀 하나를 말해줄게."
이어 오른손 검지를 들어올리며 치아키는 숫자 1을 표시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내리고 팔짱을 낀 후에 그는 가볍게 두 발을 움직이며 물장구를 치면서 물을 앞으로 튀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나는 너하고 같은 부류의 사람이야. 그러니까 솔직히 방금 물음은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어떻게 답할까 싶어서 궁금해서 물어본거야. 딱히 답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 하핫. 원래대로라면 이런 것은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것 같지만 일단 먼저 접촉한 것은 저쪽이니까. 그것도 우리 부모님을 통해서 말이지. 그러니까 너무 캐려고 하지만 않는 이 정도면 세이프. 이전에 살짝 확인한거기도 하고. 아. 참고로 이거 농담이 아니라 진짜야."
그러니까 다른 이들에겐 쉿. 소리를 내면서 치아키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다시 물장구를 쳤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뭘 해주거나 챙겨주거나 한 적은 없지만 말이야. 네잎클로버도 포함해서 말이지. 그런 것을 해봐야 서로서로 껄그러워질 뿐이고 부담이 될 뿐이고. 아무튼 나만 아는 것은 슬슬 불공평한 것 같으니 내 비밀 하나만 공개하는 느낌으로 서프라이즈! 려나. 알아달라는 것은 아니고 그냥 불공평한 것을 남기긴 애매해서. 단지 그 뿐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진 말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떤 말이 더 적절한지에 대해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좀 더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확실히 전례가 있다보니 금방 납득할 수 있었을까? 상당히 원초적인 본능이라 할수 있으나 애당초 신들 역시 하나의 객체, 자신에겐 없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대가, 시기가 지나도 여전히 여러 방법으로 신들은 '공물'을 원하겠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또 무언가가 있는지, 그녀가 별안간 엄청난 집중력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지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하는 마음에도 마주보기 시작했다. 표정이라던지 그런걸로는 그 내막이 뭔지 맞추기 힘들었지만... 애초에 억지로 맞출 생각도 없었다. 대강은 보이는 걸지, 아니면 맞춰보기도 전에 상대방이 직접 설명해주는 덕분인지...
"음... 마치 '당신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습니까?' 같은 질문이네요?"
별안간 불어오는듯한 차가운 기류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스스로 즐기고 있다 말했듯, 미소도 무표정도 진중함도 오롯이 담겨있었다.
"질문의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는 것도 나쁜 버릇이지만... 반대로 마주하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인지요?"
목소리는 꽤나 진지하게 깔려있었지만 역설적으로 표정만큼은 평소보다도 온화했다.
"죽음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하지요. 무에서 와 무로 돌아가는 건 인간에겐 꽤나 엄숙하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당신과 가까이 있는게 즐겁지 않을 이유도 없는걸요? 사람은 늘 죽음이 조심스레 뒤를 쫒아온답니다. 하지만 그사람이 세상을 떠나는건 정해진 운명, 딱히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고 명이 단축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키득거렸을까, 푸스스 흩어지는 그 웃음은 상대를 비웃는 것이 아닌 도리어 안도감을 주려는 웃음이었다.
"무엇보다... 그렇다고 혼자 내버려두고 멀리하면 너무 가엽잖아요? 아무리 죽음을 인정하는 5단계에 부정이 있대도, 그렇다고 죽음을 터부시하는건 예의가 아니죠."
...상대방이 그 '죽음'이라면 적잖이 실례가 되는 말일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것이 또 자신만의 성격이었다.
진지한 목소리에 눈을 조금 동그랗게 떴어요. 신이 있다는 걸 굳게 믿고 있단 생각이 들어서, 방금 한 생각이 불경하단 느낌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사과를 해야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선배님은 조금 모르겠는 이야기를 해요. 비밀 하나를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불공평한 것 같으니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하시면 저는 표정이 굳고 말아요. 제가 갖고 있는 비밀이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겁이 납니다. 무슨 비밀을 알고 계신건지 몰라서 들고 있던 휴대폰을 두손으로 꼭 쥐었어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비밀을, 어떻게.........’
고민이,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시야는 발 밑만 바라보고, 그마저도 눈을 꼭 감아버립니다. 발을 적셨다가 쓸어내려가는 바닷물을 보고 있지 않아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지금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들과 말도 전부 바닷물에 쓸려내려가면 좋겠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머릿속을 비워버린 건 선배님의 목소리였습니다. 선배님과 제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말이요. 저의 무슨 비밀을 알고 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쉽게 골라낼 수 있었어요. 신의 이야기를, 신과 관련된 질문을 했었습니다. 선배님도 신과 가족이라는 뜻일까요? 숙였던 고개가 퍼뜩 들어올려지고 선배님을 바라보게 돼요. 놀란 기색을 숨길 수 있지 않아요. 그럴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럼, 선배님도 가족들이...”
먼저 접촉했다는 말에 느낌이 와요. 다른 신들에게 막내딸을, 막내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종종 하고 다녔다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그때 학생회장 선배님들의 가족들도 그런 말을 들은 모양이에요! 선배님의 가족들이 신이라는 이야기는 저도 그러니까 많이 놀라지는 않지만, 가족들이 그런 부탁을 하고 다녀서 그런 부탁을 받은 당사자가 눈 앞에 있다는게 한없이 놀랍고,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가족들이 그런 부탁을 해서, 선배님들의 가족이 선배님에게 그 부탁을 전달해준 게 분명해요. 얼굴에서 열이 펄펄 끓는 기분이 들어요. 아까까지는 여름 햇빛이 눈 부시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뜨겁습니다. 아까 전과는 전혀 다르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그만 제자리에 쭈그려앉고 맙니다. 바닷물에 옷이 젖을 수도 있다거나 그런건 모르겠어요. 제가 게였다면 모래 아래로 굴을파고 들어가 숨을 수 있었을까요? 고개를 무릎에 묻어버립니다.
“당연히, 당연히 안 챙겨주셔도 됩니다! ...어린애 아니에요.”
민망함이 차올라서 목소리가 조금 커졌어요. 선배님을 바라보고서 큰 소리를 내버린게, 저도 제 목소리에 놀라버려서 뒤늦게 목소리를 줄이고 다시 고개를 살짝 내려요. 애꿎은 선배님한테 이럴 이유는 없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말, 정말로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쳐도 나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말이야. 어릴 때는 이게 참 불만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것도 크게 나쁘진 않단 말이지."
말은 그렇게 하긴 했으나 사실 하네의 부모님이 어떤 모습이고 어떤 이인지는 치아키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신, 그리고 그 신과 혼인의식을 치뤄서 신이 되는 것이 확정이 된 자신의 부모님을 통해서 이런이런 신이 있었는데 그 신의 딸이 너와 같은 학교라더라. 만나면 좀 챙겨주고 그래라. 그렇게 말을 들은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그 와중에 눈앞에서 제자리에 쭈그러앉는 그 모습에 치아키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바닷물 위인데 저렇게 하면 옷이 다 젖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앉아있던 바위에서 천천히 일어났고 하네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괜찮아. 말을 듣긴 했지만 일단... 크게 신경쓰고 그러진 않아서. 오히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이 마을에 또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정도였거든. 알다시피... 이런 사정 아무에게나 쉽게 이야기하진 못하잖아? 나도 내 친구들 중 아무에게도 말한 사람이 없고. 네가 나와 같은 부류의 이가 아니었다면 굳이 이런 거 말할 이유도 없었고. ...정확히는 나만 일방적으로 아는 것은 불공평한 것 같아서가 크긴 했지만."
사실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과연 이 후배가 고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날지는 알 수 없었다. 괜히 말을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일단 당황하거나 그렇다기보다는 일단 치아키는 평소에 보이는 가볍고 경박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진지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래. 어린애가 아니지. 물론 우리 부모님에게 접촉을 해서 이것저것 말을 한 이들에게는 한없이 어린애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시선이고, 인간의 시선은 다르니 말이야. 그러니까 어. 특별히 뭘 더 해주거나 특별대우해주거나 그럴 일은 없으니까 슬슬 고개 들고 일어나주면 안될까? 뭐랄까. 그렇게 있으면 옷 다 젖잖아. 나중에 돌아갈 때 곤란해져. 내가 첫날에 바다에 옷 입고 뛰어들었다가 흠뻑 젖어서 꽤 고생하면서 들어갔었거든. 갈아입을 옷 없어서 말이야."
첫날, 바다를 안내했다가 그대로 물에 뛰어들고 만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치아키는 머리를 괜히 긁적였다. 뒤이어 그는 마찬가지로 무릎을 굽혀서 최대한 시선을 마주하려고 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말하기도 뭐하지만, 너도 여러모로 고생하는구나 싶어. 물론 나쁜 뜻으로 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후배 양. 어떻게 해주면 고개를 들어주고 일어나주려나. 내가 이 자리에서 사라져주면 일어날거야? 응?"
수학여행은 신문부원들에게 있어서, 부활동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학교신문에 기고할 칼럼을 위한 특종을 찾으러 탐방하는게 이번 수학여행에 신문부에게 내려진 히든 퀘스트니까. 그렇지만 다들 결국 진짜 기자가 아니라, 수학여행에 온 학생들이므로 허락된 행동반경 외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사실상 '누가누가 수학여행 후기 더 잘쓰나' 대회 정도의 느낌이다. 물론, 그에 맞게 상품도 있었다.
학교 신문에 올라가는 후기는 제한되어 있다. 신문부원 외에도 일반 학생의 후기를 모집하는게 있고, 또 지면의 한계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의 상품은...
패스트푸드 세트 쿠폰이었다.
정말 별거 아니지만, 또 그런 별거 아닌 공짜 음식에 목숨을 거는 것이 남고생인 법. 나는 평소대로의 방식답게, 위험하거나 남들이 잘 안갈만한 흉흉한 곳을 탐방하고 후기를 적고자 했다. 특히나 이, 해안에 있는 자연 동굴.
스마트폰 시계를 본다. 밀물이 들어오면 위험할수도 있으니, 여유 시간을 고려해서 탈출할 수 있도록 알람을 해 두고 동굴 안으로 들어선다. 사실 여기는 이미 조명만 안 설치되어 있지, 사실상 관광동굴이나 마찬가지였다. 넘어가지 말란 울타리도 설치되어 있고...
문제는, 그 울타리는 깊숙한 데 있고 그곳을 비추는 조명은 하나도 없어서 아무도 깊은 곳은 안간다는게 문제였다고 해야하나.
그렇기에 내가 들어가보기로 했다. 깊숙하고 어두컴컴한 해안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슬슬 햇빛이 사라지고, 암흑이 주위를 감싼다. 분명 이런 경험을 전에도 겪은 적이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야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때 쯤 랜턴을 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