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크아아아아아악~ 😈 아, 여름 하면 담력체험이지~ 흉흉한곳 좋지만 아무데나 들어가면 안된다구~ 그러고보니 동굴탐험을 하다 이상하고 좁은 공간이 보이면 억지로 들어가지 말라던데... 분명 그 경계를 넘어가면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동굴에서 영원히 헤메는 존재들이 있다고... 🥶
"요컨대 선신(善神)이라는 거군요. 저도 수호신이지만, 지켜보기만 할 뿐인데. 당신은 관장할 것이 많아 보이니 고생일 것 같네요."
장황하니 그 이명이 몇 개나 있을지, 그 개수만큼이나 고생이겠다 싶은 것이다. 당신이 오답이라 하면 미유키의 얼굴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 표정을 굳혔을까. 그 장난에 매서운 눈초리를 하고 노려보는 것이니 그 눈빛이 무섭다. 이어지는 물음에는 눈을 크게 떠내며 깜빡인다. 그림자 하나 지지 않은 밝은 얼굴이라, 당신은 쾌활한 성격으로 보이는 것이니, 이 타국에서도 잘 녹아들었겠지 싶을까. 미유키는 "응."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모쪼록 즐거움만 가지고 돌아가기를. 생각하며 시선을 피하는 당신을 끝까지 쫓다간 이내 답이 돌아오면 후후, 소리 내어 웃는다.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라고 하더군요. 누구는 심장을 관통하는듯한 고통이라고도 하고요."
【신】이라고 해서 길을 잃지 않는다는 법은 없었다. 말하자면 이곳은 후루토에게 있어서 3중외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첫 번째는 이곳이 넓게 펼쳐진 바닷가라는 것. 두 번째는 모처럼 익숙해졌던 가미즈나 고교가 멀어졌다는 것. 세 번째는 이 세계 자체가 이승이라는 것. 그런 이유로 3중외지. 이맘때의 뜨거운 바다는 생각보다 무섭고 사람들 삼킨다. 일단 필멸자들과 어울리겠답시고 바다로 나온 것은 좋지만 끽해봐야 평소 명계 아니면 혼을 머금은 꽃들이 피어나는 저승의 정원 정도밖에 돌아다니지 않는 사신에게 있어서 이곳, 가미즈미는 미궁과도 다름이 없는 곳이었다. 수영복 차림으로 태양 아래 홀로 바닷가를 떠도는 여자. 놀러온 사람들이 한창 들뜨는 성수기의 해변에서는 너무나 쉬운 사냥감이다. 헤매인지 5분조차도 지나지 않아 어느 한 무리가 나타나 후루토의 앞을 그림자와 함께 가로막았다. 그것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짧게 친 금발에, 탄 피부를 한 남자들이었다. 인간 유니폼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우효~☆ 저기 반반한 언니~ 어디 고등학교? 우리랑 같이 놀지 않을랭? 어디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시다가 같이 서핑이나 하자구. 같이 놀아주면 금액도 전부 우리가 지불..." "......가 아닙니다..." "응?" "언니가 아닙니다..."
중간에 목소리를 내어 말을 끊은 후루토는 고개를 들어서 눈 앞에 나타난 또 하나의 필멸자를 올려다봤다.
"...【사신】이에요..."
하여간 이상한 곳에서 프라이드만 높은 사신이었다. 정정해야 할 부분은 그런 곳이 아니지 않은가? 막상 후루토를 헌팅하러 온 상대도 이게 뭔가 싶은 눈이 되어서는 벙찐 얼굴을 해버리고 말았다.
"...하하하, 그래그래! 그럼 사신언니쨩인걸로 괜찮징? 그래서 방금 제안, 어떻게 생각해?"
당연하지만 그런 말을 진지하게 받는 사람은 이미 이승에 없고. 그들도 이대로 물러나긴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다시금 재촉하는 겸 하여 물음을 던진다.
"음..."
후루토는 잠시 눈을 끔뻑이며 소리를 내어 생각에 빠지는 듯 하더니.
"죽어주시면 생각해 볼지도......"
이쯤 되어서야 '이거 맞나'하는 시선이 후루토를 두고 남정네들 자기들끼리 걱정스럽게 오갔다. 그들 사이에 말은 일체 없었지만 시선만으로 '머리 이상한 여자인 거 아니야?' 라든가, '나도 어느정도 컨셉은 좋은데 이건 좀 과한 것 같기도...' 하는 의견이 실시간으로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잠시, 결국에는 역시나 '그래도 얼굴은 좋으니 데려가자'라는 의견으로 귀결되었다.
"우, 우효~ 럭키~ 그럼 사신언니쨩, 오케이 한 거다?"
제아무리 명계의 왕이라 하는 사신이라 한들 이곳은 이승. 여름의 가미즈미 바다란 전쟁터!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던 후루토는 금방이라도 손목이 채여서 금발남들에게 맥없이 끌려가려 하던... 때였다.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빛 속을 지나 미야나기는 발길 가는 대로 골목을 따라 걸었다. 몽환에 취한 것처럼 자꾸만 정신이 가물거리는 건 그저 착각일까? 모든 감각이 아주 느리게 느껴져 두 눈을 몽롱하게 끔뻑였다. 어느새 달이 너무 저물어 금세 밤 깊어버렸나 보다. 머나먼 이 길목도 곧 끄트막에 다다르는 듯하니 비로소 마법에서 풀려나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녀는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뒷모습을 유령처럼 흐릿하게 뒤따랐다. 순간 거리에 수놓아진 모든 조명들이 성냥 붙인 샹들리에처럼 새하얗게 길을 훤히 밝혔다. 오래된 꿈에서 막 깨어난 듯, 눈가에서 아물대던 어스름도 순식간에 걷혔다. 동시에 머릿속이 또렷하게 맑아졌다. 칠흑같은 물 속에서 풀썩 건져 올려진 왕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문득 뒤돌아 걸어온 발자취를 확인했다. 말도 안 되게 짧은 길이 원래 제자리인 양 떳떳히 지키고 있다. 잠깐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있던 그녀는, 겨우 입술을 열어 떨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 내뱉었다.
“나, 완전 홀려버렸네······.”
커튼콜이 끝나 차츰 객석에 불이 들어오면 꿈결같던 환상들도 모두 휘발되어 소실한다. 마술사의 탈을 쓴 신은 관객을 향해 야살스레 인사를 건넸다. 끝을 알리는 레베랑스révérence다. 그녀는 무대를 향해 너른 박수를 보내는 대신 조용히 허리 숙여 경례했다. 그러고는 바람에 안개꽃 같은 어렴풋한 미소를 띄워 작은 꽃다발처럼 보냈다. 어느덧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자상한 인삿말에 미야나기는 손을 흔들어 대답하며 이내 밤바람에 얼굴을 묻었다.
situplay>1596760093>929 우옷 짧지만 대충 마무리지어봤어…!!! 나야말로 중간에 장르 크툴루or전설의 고향으로 한 번 바뀌고… 전개 난리낫는데 같이 수습해줘서 넘 고마웟다.. ㅠ ㅇ ㅠ 린 젯따카와이해서 음흉 모브아재 소프트웨어 조절하느라 죽는 줄 알앗네(?)
>>31 으음... 상황... 사에 씨 학교에서 케이 센빠를 젤 좋아하고 잇으므로 만나기만 한다면야 뭔들 반가워서 좋아 죽을 것 같은데...(엥) 리조트에서 만나까 바다에서 만나까...??! 아니면 샘 보러 가기 콜??? 흑흑 아직 정하는 중이지만 혹시 선레는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 잠깐만 쉬엇다가 커피 사러 가고 싶어서........ ㅇ>-<
>>36 뭐라곳...?! (정체를 알게 되면 가장 무서워 할 사람 일순위가 될 예정임) 여기까지 왔으니 리조트보다는 바다나 샘을 보러가는 것이 좋을 것 같지! 왠지 여우님 해수보다는 담수를 더 좋아할 것 같으므로 샘 보러 가는 길에 서로 마주쳤다고 해도 좋을 것 같아! 선레는 내가 써올 수 있지~~
케이주, 캡틴, 사에주 좋은 저녁이에요! 수요일이 공휴일인 주라니 너무 좋네요 (ˊ•͈ ˓ •͈ˋ) 페어 이벤트는 진짜진짜 하고 싶지만 하필 3월 중순에 저 때 잡혀 있는 일정이 있어서⋯. 페어 신청은 책임질 자신이 없구먼유⋯. 흐엉 요이카주 일상 열려 있어요! 이번 주도 역시나 텀이 좀 마않이이 길 텐데 괜찮을까요?
>>40 어. 그건 맞을지도 (다시 전설의 고향으로 장르 바뀜)(?) 으악 여우님이라서 담수 좋아하는 거냐 넘 귀엽다고...!!! 젠장~~~ 혹시 어디서 마주치는지까지만 미리 정해도 댈까??! 이 녀석 아무래도... 자발적으로 혼자 샘 보러갈 것 같진 않구... 물론 흔쾌히 따라는 가겟지만... 😇 맞다 그리고 이번에는 레스 좀 짧게 짧게 써도 괜찮을까..??! 이 사람 선레도 부탁하는 주제에 주문사항이 너무 많구만 홀홀..
아. 그리고 공지에서 말하긴 했지만 일단은 2기 배경이기도 했던 그 마을이긴 하지만..딱히 2기 MPC나 샘을 관리하는 가문이라거나 거론되거나 그쪽 사람들 만날 일은 없으니..(물론 자리를 누군가는 지키고 있겠지만!) 굳이 2기 위키보면서 공부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여러분들.
그냥 물이 엄청 맑고 좋고 시원하고 물 관련 산업이 크게 발전해서 여름피서지로 짱 좋은 곳에 다들 수학여행(이라는 명분의 바캉스)를 왔다고 생각하고 그냥 자유롭게 즐겨주시면 되는 거예요!
>>46 ㅋㅋㅋㅋㅋ 사에가 따로 샘을 보러 갈 일이 없을 것 같으면 둘이 각자 다른 친구들이랑 해수욕 or 워터파크 갔다가 서로 어찌된 이유로 다른 무리와 떨어지게 되었는데 둘이 우연히 마주쳐도 괜찮을 것 같아. 이런 상황이라면 물에 푹 젖어있는 케이를 볼 수 있음(희귀함) 그리고 레스는 길든 짧든 상관 없으니 편하게 줘도 오케이야~
>>54 일단 요이카에게 짠물은 천적이기 때문에, 아마 족욕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지 않을까 싶은데요! 시냇물⋯은 에바인가? 수영장의 얕은 유수풀 아니면 옷을 입고 들어가는 노천탕이겠네요. 역시 최종 목적지는 관광버스 안에서 힐끔 주워들은 신성한 샘 구경이겠지만, 길치 요이카는 아마 거기를 찾아가려다가 중간쯤에서 헤매고 있을지도요⋯.
>>63 인간의 형태라고 한다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그래도 짠물은 여러모로 꺼려질 수밖에 없는거군요. 하기사 원본이 식물이었으니. (흐릿) 그렇다면 중간에 헤매고 있는 요이카를 발견하고 신성한 샘으로 같이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치아키는 한번 독백으로도 쓴 적이 있지만 사전탐사를 온 적이 있어서 대충 위치는 알고 있긴 하니까요!
>>65 으음.. 바다라면 낚시 하러 갈 건데 너도 가요?(?) 나올 것 같구.. 리조트라면 같이 게임하는 일상일 수도 있고.. 샘도 좋고... 샘은 입 멍하니 벌리고 있을 것 같은데.. 흐으으음.. 일단 이렇게 예시를 들어보긴 했는데 혹시 예시중에서 끌리는 거 있을까?🤔
해가 길어짐과 동시에 습하고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과 더불어 수학여행이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인 일일까. 더운 여름에는 해가 떠 있는 낮에 움직이기를 삼가는 케이였으나 여행까지 와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조금 웃긴 일이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시기에 1학년 때도 2학년 때도 가지 못한 수학여행을 이 시기에 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내재된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아서 거의 이 수학여행을 최대한 놀면서 즐겨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친구들 사이에 케이는 졸지에 끌려다니게 된 것이었다. 물론 케이 또한 고등학생 신분으로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노는 것이 싫지 않았고 오히려 좋았다. 이게 바로 휴가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으나 바닷가 까지 왔으면 해수욕을 즐겨야 한다는 친구들의 주장에 끌려온 그는 무작정 바다로 던져져 짠물을 왕창 먹고 만 것이었다. 물론 그도 이래 저래 친구들을 들쳐 업고 바닷물에 무참히 던져 넣었지만.
이래저래 물을 끼얹다가 케이는 잠시 쉬겠다는 명목으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으, 역시 바닷물은 끈적하고 짜긴 했다. 그리고 짠물을 몇 번 삼키는 바람에 목이 마르기도 했고. 케이는 사람들을 피해 이곳으로 오는 길에 어딘가에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팔았던 것을 생각하며 북적북적하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그 눈에 띈 것은 노점이 아니라 미야나기 사에였다.
‘신기하네. 말 걸어도 되나?’
케이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맨발에 허벅지만 덮는 검은색에 흰 가로줄이 포인트로 들어가있는 비치웨어 반바지, 검은 티는 물에 푹 젖어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사에의 뒤에서 사에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후배님, 안녕. 놀러 왔어요?”
이내 부르고 나서야 자신이 안경도 쓰지 않고 머리카락도 축 늘어진 채 이마를 덮고 있음을 깨닫고 한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여전히 머리카락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채였지만........
가미즈미 마을. 이곳은 물 산업이 상당히 유명하고 물이 맑고 깨끗하고 좋은 곳으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역시 여름하면 이곳이지. 이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누군가는 좋아하고 누군가는 별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교사진들과 협상해서 자유시간을 가지면서 즐겁게 놀고 휴식을 취하고 혹은 학습을 하고 싶은 이들은 하게 했으니 아마 여러 방향으로 만족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그가 맨 처음에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북쪽에 있다는 성스러운 샘이었다. 평소에는 막혀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개방하는 기간이 잘 맞아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던가. 낡은 신사 근처에 있던 곳이라고 했으니 아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자신이 들었던 길, 그리고 근처까지 갔던 그 길을 떠올리며 발을 옮겼다. 그때는 막혀있어서 들어가지 못했지만 아마 오늘은 들어갈 수 있겠지.
조금은 경사가 있는 산길에 들어서며 등산로를 걸어가는 와중, 그의 눈에 저 앞에 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그 여학생은 저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좀 더 가깝게 가서 보니 인상이 꽤 날카로운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또 묘하게 공허한 느낌이 있었고 그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 사람인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일부러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실례합니다! 아. 이상한 사람이거나 헌팅하려는 사람은 아니고.. 뭐랄까. 여기에 수학여행을 왔거든요. 조금 먼 곳에 있는 가미즈나 고등학교의 사람인데 혹시 여기 사람인가요? 별 건 아니고... 제가 전에 여기에 온 적이 있는데 성스러운 샘...에 가려고 하면 이쪽 길로 쭉 가면 되는 거 맞을까요? 아하하. 원래 제가 알기로는 맞긴 한데 혹시나 해서!"
그냥 여기 사람이라면 꽤 유명한 장소인 것 같으니 아마 확실하게 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사람 좋은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모든 일은 15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래 바닷가 구석에서 낚시를 할까 했지만 귀찮음이 앞서버린 탓에, 이노리는 리조트 안에서 얌전히 간식시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과자 중에 하나인 프링글스에 손을 쑥쑥 집어넣어 감자칩을 꺼내던 중이었건만, 이노리의 기민한 청력에 게임센터 얘기가 내리 꽂혔지 뭔가요? 세상에, 그야말로 행운이었습니다. 재밌는 유흥거리가 가득하고, 거기다 귀찮음에게 패배한 사람.. 아니, 신을 위한 것처럼 가까운 곳에 있기까지 하다니. 얼마나 멋진 조건인가요? 먹던 프링글스의 덮개를 끼우지 못한 채 손만 물티슈로 박박 닦고, 조그마한 지갑을 쥔 채로 뛰어 내려갔더랍니다.
물론 처음엔 즐겁게 노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노리는 지금 곤경에 빠졌습니다! 지금껏 마음이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살았기에 불합리함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간혹 세상이 예상치 못하게 이노리를 곤란하게 만든 적이 있었지요. 바로 지금처럼요. 틱택틱택 재밌는 소리가 난다는 에어하키 앞에 도달했지만, 막상 목석처럼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기만 할 뿐입니다.
"으응, 이노리 친구 없는데."
네. 중대한 문제입니다. 같이 할 친구가 없었던 거죠. 다른 게임을 한다는 선택지도 있겠지만 이노리는 하나에 꽂히면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니, 에어하키 앞을 도무지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노리가 누군가요?
"저어기이, 당신- 혼자에요?"
직성을 풀기 위해선 자존심이요 뻔뻔함까지 가진, 신 중에서도 유독 제멋대로라 소문이 났던 존재 아니던가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리고 혼자 있는 사람에게 뽀르르 다가가려 했습니다. 저기, 저기!
재학 중 단 한 번뿐인 수학여행이라지만 미야나기는 휴양지를 만끽할 생각은 없다. 일단 도착하면 객실에 누워 있다가······ 나가서 밥 먹고. 누워 있다가 마사지 받고······ 대충 리조트 시설에 누워 있다 또 마사지 받고······ 방에 가서 룸서비스 시켜서 조금 먹고······ 다시 누워 있다 학교로 돌아올 훌륭한 계획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수학여행이란 3년 만의 특별한 이벤트 따위가 아닌 유일한 휴식 기간, 혹은 자유 시간에 가깝다. 아마 다른 무용부 학생들도 맨 비슷한 생각을 했겠으나 미처 입시에 쩌들지 않은 싱싱한 1학년들의 의견은 달랐다. - 언니, 우리는 놀러 안 가요? 바다 완전 예뻐 보이던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람! 누워 있기만 해도 바빠 죽겠는데 바다는 뭔 바다? 수학여행이 그렇게 좋으면 집구석에서 수학 문제나 풀었으면 한다. 하지만 웬 걸.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미야나기는 자신이 해변에 나와 있음을 깨달았다.
“미오카······ 우리 왜 여기 있어?” “나도 모르겠다······. 빨리 가서 누워야 되는데······.” “아······ 나 잠깐 가서 음료수나 사올래. 여기 있으니까 갈증나서 괴롭다.” “내 건 사오지 마······. 다음 주에 체성분 검사야.“ ”저런······.“
맥 빠지는 대화 후에 그녀는 홀로 해변을 나섰다. 주변은 인파로 북적거려 벌써부터 체력이 쭉쭉 방전되는 기분이었다. 무더위에 종잇장처럼 힘없이 나풀대던 미야나기는, 문득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뒤돌았다. —앗! 넋 놓은 마리오네트는 어디 가고 금세 온 얼굴에 화색이 만발했다. 머리에는 밀짚으로 짠 보터햇을 깊숙히 눌러써 햇볕을 피하고 있었지만 케이가 미야나기를 알아보기까지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녀 외에 누가 짐머만Zimmermann의 맥시 캐미솔 원피스를 입고 수학여행을 갈 엄두를 낼까! 챙 밑으로 짙게 그림자 드리운 얼굴이 곧바로 환하게 펴지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하시모토 선배! 우와, 이런 곳에서 뵐 줄은 진짜 몰랐어요. 잘 지내셨어요?“
소금기 대신 기쁨이 온몸에서 묻어나 잔뜩 들뜬 목소리다. 얼른 모자를 벗어 고개 숙이자 까만 폭포가 이따라 어깨 밑으로 죄 쏟아졌다. 미야나기는 갈증과 괴로움도 잊은 채 생글생글 웃으며 케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선배도 이 근방에서 놀고 계셨나 봐요! 참,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선배도 뭐 사시려고요?“
수학여행, 결국 와버렸다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좀 고민했지만 사실 집구석을 합법적으로 나가있을 수 있다면 손해는 아닐 거란 생각에... 방에 짐을 풀고 설렁설렁 내려온 미카는 버릇대로 발걸음을 옮겨 리조트 이곳저곳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게임센터로 보이는 곳에를 오게 됐는데 잠깐만 둘러보고 다시 나가려던 미카를 누군가가 불러세운다 ...다짜고짜 모르는 사람 붙잡고 같이 게임 하자니 당황스러운 탓에 뭐라 대답할 말을 찾느라 입만 벙긋할 뿐이다
"...할 줄 모르는데."
겨우 내뱉은 말이 그거다 상대가 가리킨 에어하키 테이블은 조금 생소한 물건이었기에 그래도 완전한 거절의 뜻은 아닌지 매몰차게 등을 돌려 떠나거나 그러진 않는다 약간 고민하는 거 같기도
돌연 수리검처럼 재빠르게 날아든 모자가 금발태닝남의 미간에 보기좋게 꽂혔다. 후루토를 데리고 가려던 가장 중앙에 있던 그가 모자를 맞고 모래사장에 맥아리 없이 풀썩 쓰러진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들도 그를 보며 어쩔줄 몰라하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순식간에 그런 소란이 발생했지만 정작 후루토는 아직도 현재를 쫓아오지 못한 건지 저혼자 멍한 얼굴로 머리 옆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그들을 향해서는 옆에서는 토끼 머리를 한 야차가 다가오고 있었으니. 방금 날아왔던 모자의 주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자리에있던 그들은 동시에 직감적으로 그렇게라도 느낀 것인지 쓰러져있던 금발태닝남도 몸을 벌떡 일으켜서는 코피를 철철 흘리는 얼굴을 숨기지도 않고 허우적대며 알아서 사리기 시작했다.
"우효~ 사, 사신언니쨩 설마 같이 온 일행이 있었다는 이야기? 말하지 그랬어! 하하하 이것참 실례가 많았넹?! 그럼 오빠들은 이만 갈게 빠빠잉~!"
한 바탕 변명같은 말들을 급급하게 쏟아낸 후, 그들은 문자 그대로 골뱅이(@)처럼 다리를 말아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고 떠나버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자리에 남게 된 것은 토아와, 후루토와, 그들이 일으킨 모래폭풍뿐밖에는 없게 되었다...
"인번국의 이름을 가진 필멸자여..."
...모래가 어느정도 걷히고 나자, 와중에 후루토는 바닥에 떨어진 비치햇을 주워올려서 모자에 묻은 모래와 피(?)를 손으로 털어내고는 당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스스로, 물건은 소중히 하는 것이 좋아요..."
그러면서 분위기 파악 못하는 신답게 감사인사보다는 그런 설교 아닌 설교같은 말을 건네는 것인데. 토아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저런 YOLO족과 시간을 보내게 됐을 자기가 할 소린가, 싶으면서도. 당초 그녀가 주장하길 자기네는 '사신'이라 했으니 별로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보다도 그녀는 살아있는 동안에 물건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말을 건네는게 더 중요한 일이었을지도. 그렇게 원래 주인에게 모자를 건네는 후루토의 눈은 전에 만났을 때와 같이 여전히 가련하고, 깊은 것이었고. 등교는 제대로 하는 건지 한동안 학교에서 같은 1학년이었던 당신에게도 따로 모습을 보이거나 좀 처럼 마주친 적이 없는 그녀이기는 했지만. 변한 것은 없다. 그런 식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에어하키가 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한때 유흥을 위해 신관과 함께 영화관에 가봤을 적, 상영 시간을 기다리며 인간들이 툭툭 치는 걸 본 적이 있었으니까요. 대충 따라 하면 재밌는 결과가 나올 겁니다! 같이 해줄 사람도 구했으니까요. ..아직 확답은 못 받았지만요.
"안 돼요..?"
눈앞의 친구를 물끄러미 올려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입니다. 이노리, 뻔뻔해요! 할 줄 모른다는 말에 이노리는 히- 하고 웃었습니다.
"괜찮아요-?"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착한 사람이야, 좋은 사람! 인간은 좋은 존재야! 이노리,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고민하는 모습에 당당히 허리를 쭉 폅니다.
잘, 잘 지냈던가? 미야나기는 봄의 끝자락에 있었던 섬짓한 일을 떠올리며 슬며시 시선을 돌려 회피했다. 평범한 인간이 일생 중 겪기에는 지나치게 쇼킹한 대사건이 있었기에······.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녀가 가장 호의를 갖고 따를 선배—팬—에게까지 굳이 언급할 일도 아닌 데다 비밀을 지켜야 했으니 조용히 묻어두기로 했다.
“에이! 저는 물론 너무 잘 지내서 탈이죠. 아무튼 이렇게 뵈니까 반갑네요. 아하하하하······.“
연극을 하는 것처럼 과장된 톤으로 말했다. 케이는 물 속이라도 들어갔다 나온 건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였다. 비치 타월이라도 내줬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물에 들어갈 예정이 없었으니만큼 마땅히 가진 게 없다.
“바다 구경 온 건 맞는데, 여기 사람도 너무 많고. 계획이랑도 완전 어긋나고. 음료수나 살까 싶어서 나왔어요. 선배랑 찌찌뽕이다.”
말하면서 문득 자신의 처지가 떠오른 건지 점점 시무룩해진다. 아아, 내 이불. 내 방. 내 마사지. 내 계획······. 전부 이글거리는 햇빛에 녹아 사라졌으니 망연자실했다. 그러다 말고 다시 눈에 별을 밝히며 또랑또랑 케이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음! 일단 수학여행지니까.. 리오가 폐쇄공포증이니까 아마 동굴은 가지 않을 것 같고...라기보다 사실 이미 요이카와 동굴로 가는 일상을 할 것 같아서 치아키가 특별한 일이 있는게 아니면 동굴은 가지 않을 듯 하니.. 리오와 딱히 접점이 없기도 하고... 선관이나 없으니.. 그전에 일상을 돌린 것도 아니니.. 리오가 있을 법한 장소에 치아키가 지나가다가 말을 거는 것이 가장 무난하지 않을까 싶어요. 수학여행을 즐기기는 하지만 아마 자기 학교 학생들 관리하는 일도 분명히 할테니까요!
빠르게 날아간 모자는 그녀를 잡아 이끌던 남자의 미간에 정확히 꽂혔고 그 충격인지 아니면 저도 모르게 몸이 쏠린 건지 그대로 풀썩 쓰러져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귀면은 여전했으니, 뒤늦게 상황파악을 한 남성진들이 마치 파란 고슴도치처럼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망쳐 아직 맹한 표정으로 물음표를 그리는 이 한명만 우두커니 서있을 때가 되어서야 헛기침을 하며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흠흠... 좀 과격했던 것 같군요."
부리나케 도망간 이들이 자욱하게 남겼던 모래먼지가 가라앉자 바닥에 떨어진 비치햇을 줍고선 손으로 털어내며 약간의 설교를 얹은 그녀의 말에 머쓱한듯 잠깐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가 다시 바라보았다.
"그 부분은 조심하도록 해야겠네요~ 아무리 '맞추기 좋은 표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말마따나 끝에 흡착판이 달린 장난감 화살이 있다면 활 없이 던져도 맞췄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모자를 돌려받고서 다시 머리 위에 얹었을까, 묘하게 축축하고 비릿한 것이 묻은 부분이 있던것 같지만 티가 날 정도도 아니었으니 '나중에 제대로 세척해야지.'라는 생각만 한 채로 그녀에게 웃어보였다.
"혹시라도 아는 분들이셨다면 결례를 범한 것이겠지만... 말 하는걸 보아하니 아마 초면이었던 것 같군요. 하이디네씨도 저런 분들이 주변에 다가올 때는 적당하게 거절해서 돌려보내는 법을 배우셔야 한답니다? 최근엔 저런식으로 무리를 이르는 헌팅꾼들이 많은 모양이니까요. 특히나 이런 시기에는 더 그렇죠."
일단은 본인도 나름의 관광지가 있는 마을에서 온지라 저렇게 불량한 차림과 인상을 하고 돌아다니는 이들을 자주 접했었다. 극소수는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어울리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태반은 흑심을 품고 다가오는 법이었으니까,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을런지도, 하지만 이전과 다를 바는 없는 인상이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깊은 눈동자, 그 시선만큼이나 고요한 모습, 어쩌면 익숙한 인상 그대로이기에 조금은 다행일까.
"그건 그렇고... 바다구경이라도 하고 계셨던 건가요? 아니면 기다리는 분이라도?"
라고 말하긴 했지만 머리속에선 설마 인파에서 길을 잃어 헤메고 있던건 아닐까 하는 예의 그 생각이 들었다. 일단 수영복차림인걸 보아선 확실히 바닷가에서 놀려고 한 것 같지만...
언제부턴가 다이스를 굴리면 제가 계속 걸리는 것 같은데. (갸웃) 리오가 수학여행에 와서 있을 법한 장소와 뭘 하고 있을지 정도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그러면 치아키가 말을 걸어볼수도 있을테니까요! 물론 같은 학교 아이인줄은 모르겠지만 어쨌건 말은 걸 수도 있는 거니까!
“음, 이게 아무래도 제가 세운 계획은 아니라. 말이 구경이지 다들 바다에 들어가는 게 목적일걸요.”
정말 힘도 넘쳐난다. 호캉스 하는 데 몽땅 써버려도 아까운 시간을 맘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물놀이 따위에 허비하다니! 고작 1년 학교 더 다녔을 뿐인데 신선도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버린 거다. 이거 빨리 졸업하고 입단을 해야지 원······.
“그거 완전 동의합니다. 젖은 채로 모래사장? 정말 생각만 해도, 으으······.”
뭐, 사실 그녀도 물놀이나 바캉스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유일한 휴식 시간을 또 체력까지 소모해가며 힘들게 보내는 게 문제지! 어차피 바다에 안 들어가도 씻기는 해야겠지만, 공용 샤워장에서 소금기나 털어내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사양이다. 질린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 젓던 그녀는, 케이가 선뜻 던진 제안에 화색을 띄우며 흔쾌히 답했다.
“어? 좋죠! 안 그래도 바로 이 근처에 이런저런 노점상들이 좀 있던데요. 가격은 엄청 바가지 씌웠겠지만.“
리조트에서 나온 치아키는 쭈욱 두 팔을 뻗었다. 수학여행도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제대로 즐기기 위함이었다. 물론 딱히 계획을 잡은 것은 없었다. 사실 학생회인 이상 계속해서 놀수는 없기도 했고. 그렇다면 바다로 산책이나 잠시 가볼까. 아니야. 이왕 이렇게 된거 발이나 담그면서 놀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다시 올라간 후에 수건만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이 정도면 혹시나 몸이 젖더라도 수건으로 몸을 닦을 수 있으니 딱히 위험할 것이 없었다. 돗자리야 가서 하나 구입하면 될테고.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섰다.
막 건물 밖으로 다시 나온 후 앞으로 가려는 찰나 한 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은회색빛 머리카락이 꽤나 인상적인 이였다. 아무래도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우리 학교 학생이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잠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뭔가 두리번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거기. 그쪽의 여학생 양은 뭘 찾길래 그렇게 두리번거릴까? 길 찾는 중이야?"
그렇게 태연하고 가볍게 말을 걸면서 치아키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그녀의 근처에 섰다. 그리고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손에 쥐고 있는 수건을 제 목에 감아서 건 후에 말을 이어나갔다.
"그럴 땐 학생회 쪽에서 여러모로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여기에 사전조사도 나왔고 말이야. 하핫. 아니라면 쏘리! 하지만 뭔가 두리번거리는 것 같아서."
아니라면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꽤나 가벼운 어투였다. 이어 치아키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며 일단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사에는 물놀이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젖은 채로 모래사장을 뒹구는 건 역시 모래가 잔뜩 묻어서 싫지.
“확실히 요즘에는 수영장이나 워터파크 같이 깔끔한 물놀이 시설이 많아서 그런가, 해수욕장보다는 그런 곳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마 일행의 템포에 맞추다보면 워터파크도 갈 것 같긴 한데.......”
케이가 막 에너지 넘치는 스타일은 아닌데 친구들은 꽤나 하이텐션인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케이의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인세의 여러가지를 경험해볼 수 있으니 좋은 것이기도 했고. 하긴 신계에는 워터파크 같은 거 없으니까. 응.
“뭐, 원래 휴양지가 그러니까요.”
가격 바가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 이런 곳에서는 비싸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이전에 대화 내용이 생각났다는 듯 함께 걸음을 옮기며 케이가 물었다.
“전에 말했던 검은 여우, 주변에 물어봤었어요?”
만약 사에가 주변에 검은 여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면 뒷정원에서 검은 여우가 나타난다더라, 아니다 그건 그냥 검은 고양이를 착각한 것이다, 목격자가 많다더라, 사진 찍힌 건 하나도 없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좀 더 깊게 조사했다면 검은 여우가 소원을 들어주는 여우신의 심부름꾼이라는 소문이나 후정 으슥한 곳에 있는 장난같은 돌탑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소문은 이전부터 케이가 은근슬쩍 흘린 것들이었지만.
수학여행에 와서 일정대로 조금 움직이고 난 뒤에 한 것은 숙소에 멍하니 앉아있거나, 일기를 쓰거나, 노래를 듣거나, 자는 것이었다. 고맙게도 큰 맘 먹고 먼저 다가와서 같이 놀자고 제안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워낙에 사납게 생긴데다가 사람 대하는 것이 익숙치 않은 리오는 본의 아니게 자기는 피곤해서 쉬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속으로는 같이 나가서 놀자! 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쉬이 입 밖으로 나오지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자기같은거랑 같이 가봐야 재미도 없을 것이라고 속으로 위안삼고는 잠들었다가 이제 막 선잠에서 깨어난 참이었다. 멍하니 앉아서 아무도 없는 숙소에 앉아있던 리오는 주섬주섬 가방을 풀고 이 날을 위해 준비한 수영복을 꺼내보았다.
" 입어나 볼까.. "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 털어서 산 것이니 입어는 봐야겠다 싶었는지 리오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서는 이리저리 혼자 포즈를 잡아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럼 조금 밖에 나가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에는 사에도, 미야도 없다. 혼자서 해야한다.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어린아이마냥 리오는 큰 맘을 먹고 입은 수영복 위에 폼이 큰 스웻셔츠와 돌핀팬츠를 챙겨입었다. 조금 더울지도 모르지만 바다니까 괜찮겠지. 겉으로 봐선 수영복을 입은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 ... 출정이다! "
작게 말하고 밖으로 나와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바다는 어디에 있는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설명할 때 제대로 들을걸 그랬지. 이동할때 자지 말 걸 그랬지. 친구들이 나갈 때 혹시 바다는 어디 쪽에 있냐고 물어볼 걸 그랬지. 리오는 타박타박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반짝반짝을 찾고싶은데, 그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길을 찾는 중이냐는 물음에 리오는 언제나처럼 피어싱과 검은 마스크 그리고 조금 째려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에서 나온 말은 조금 의외의 것이었다.
" .....반짝반짝을 찾고있어. "
아, 이게 아닌데. 리오는 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을 말해버렸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졌는지 손을 파닥파닥 젓고는 그런게 아니라-! 하고 조금 과하게 정정했다.
좀 더 가깝게 다가오니 피어싱과 검은 마스크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뭐지? 감기인가? 피어싱은 그렇다고 쳐도 마스크라니. 여름 감기에 걸렸나? 몸 아픈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자신을 째려보는 눈빛에 순간 치아키는 움찔했다. 말을 건 것이 실수였나? 순간 그렇게 생각하지만 자신이 말을 건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치아키는 이내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반짝반짝이라는 말이 들려오자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반짝..반짝?"
반짝 반짝 작은 별? 트윙클 스타?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다가 손을 파닥파닷 저으면서 바다를 찾고 있다는 말에 그는 아. 소리를 내면서 드디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확실히 바다는 반짝반짝하는 법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고개를 크게 다시 위아래로 끄덕였다.
"오. 알고 있나보네. 맞아. 학생회장이야. 가미즈나 고등학교의 학생회장이 바로 나!"
두 엄지를 세워서 자신을 콕 가리킨 후에 일부러 키득키득 웃는 모습이 오늘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상당히 가벼웠다. 이어서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두 어깨를 으쓱하면서 저 앞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바다로 가려면 저쪽으로 쭉 가다가 보이는 세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쭉 가다보면 내려가는 길목이 있는데 그 길목을 쭉 내려가면 있어. 아마 내가 알기로는 지금이라면 여름의 집도 있을걸? 참고로 나도 바다에 발이나 담글까 싶어서 가려고 생각 중인데 어때? 안내해줄까? 그건 그렇고 반짝반짝이라. 꽤나 예쁜 표현이네. 하핫. 멋진 표현이야. 정말로."
살짝 감탄했다는 듯이 그는 오른손 엄지를 위로 올렸다. 이어 그는 어쩔꺼냐는 듯이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온 것일까? 안즈는 말한 이후에서야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곧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니까."
취향 차이라는 마법의 말이 그를 납득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사야카의 말에 안즈는 어색하게 웃었다.
"...가끔은? 내 주관적인 평이긴 하지만."
저번에 윤리 선생님이 풀어주셨던 아내 분과의 일화라든지? 잠깐 생각해보더니 말을 덧붙인다.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
왜인지 모르게 의기소침해진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이유다. 물론 필기를 잘해주는 것이 시간 절약도 되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힘들다! 그리고 마음처럼 잘 안된다! 적어도 안즈, 본인은 그렇다. 그러니 필기를 성실히 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는 말을 들어버리면... 여러모로 찔리고 마는 것이다!
"헐, 진심이야? 진짜로?"
안즈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야카가 한 말의 진의가 의심되어 되묻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네가 노력한 건데 그렇게 막, 막 보여줘도 돼? 어디 가서도 이러다가 약아빠진 녀석들이 잡아먹을지도 모른다구, 키리나즈메 양!"
일방적으로 아는 사이인 셈이다. 속에서 내적 친밀감은 어느 정도 형성이 되었다지만 실제로 대면하여 말하는 것은 아직 영 어렵다. 리오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갈팡질팡 못하거나 손을 꼼지락대거나 하면서 계속 정신사납게 굴다가 여기까지 나왔을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렸다. 홀로서기. 그 홀로서기의 첫 걸음인 것이다. 메이드카페에서 알바할 때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제법 살갑게 굴 수 있는데 왜 밖으로 나와버리면, 아리스가 아닌 리오가 되어버리면 이렇게 힘든걸까.
" 반짝반짝.. 놀리면 죽어버릴거야. "
죽여버리겠다- 가 아니고 죽어버리겠다. 이런 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고 고쳐야 한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만 몸과 마음에 박혀버린 악의는 쉽게 죽지 않는다. 리오는 또 살짝 째려보듯 하다가 안내해줄 수 있다는 말에 눈가에 살짝 생기를 띄우며 바라보았다.
" 그래? 반짝반짝이 어딨는지 알아? "
바다, 반짝반짝을 찾고싶다. 생기를 잔뜩 품고 생명이 일어나는 곳을 찾고싶다. 그 자리에 한 무리인 것 처럼 어울리지는 못하더라도, 거기에 겉도는 이방인일 뿐이더라도 그 자리에 있어보고 싶다. 다들 노는 것을 구경만해도 좋을 것 같다는 기분이었다. 리오는 눈을 빛내며 마스크를 잡고 턱 아래로 내렸다. 마스크를 내리자 금세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한 리오는 뚝딱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그거야 모르지. 3학년 복도를 다니면서 본 기억은 없어서 말이야. 물론 내가 모든 3학년을 아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타학년도 다 아는 것은 아니라서. 영화나 드라마나 애니를 보면 말이야. 학생회장이 전교생 이름과 얼굴을 다 외우고 다니는데 역시 그건 가상이었어! 나도 시도해봤는데 반의 반도 못 외웠다구!"
큭! 소리를 내면서 치아키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털썩 주저앉는 것처럼 모션을 취했으나 이내 장난이라는 듯 키득키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실제로 시도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야 뭔가 그러면 멋질 것 같았으니까. 그러다가 도저히 이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포기했지만. 그때의 삽질을 떠올리면서 ㅡ정확히는 입학식이 있고 바로 다음날이었다.ㅡ 치아키는 곧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싱긋 웃었다.
"놀릴 생각은 없어. 진짜 예쁜 표현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난 네가 안 죽었으면 좋겠는데? 죽어버리면... 앞으로 느낄 수도 있는 즐거움을 더 즐길 수 없는 거잖아. 그게 무엇이 되었건 말이야. 네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 죽었으면 해. 안 놀릴테니까. 앞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나 추억을 저버리는 거 너무 아깝잖아."
정말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죽어버린다라는 말에 그는 장난스럽게, 가볍게, 하지만 약간은 무게를 섞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가치관이었다. 자신은 즐겁게 살아가고 앞으로 다양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삶의 목적이자 가치관이었으니까.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이더라도 딱히 치아키는 더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내 마스크를 벗으면서 말을 살짝 더듬는 것도 그렇고 똑딱거리는 것도 그렇고 꽤나 귀여운 면이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그녀의 손을 잡고 살며시 손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악수했다. 아마도 이런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그럼 이치노세 양이라고 부를게. 참고로 나는 아이자와 치아키. 여름의 마츠리인 '토모시비 마츠리'를 담당하고 있는 키즈나히메님의 신사 집안의 바로 그 아이자와야. 여름 마츠리인 토모시비 마츠리에도 참가해주면 베리베리 땡큐."
가볍게 자신의 집에서 할 마츠리도 살며시 홍보를 하며 치아키는 따라오라고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바로 옆을 걷기보다는 안내를 하듯이 조금 더 앞을 걸어가면서 그는 한번씩 뒤를 바라보며 리오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치노세 양은 물놀이 좋아해? 여기. 일단은 물로 유명한 곳이니 말이야. 워터파크도 근처에 있고 바다도 있고.. 혹은 온천으로도 유명하고. 스파로도 유명하고."
같이 노는 건 즐겁지요, 언제라도 즐거운 일이지요! 이 친구도 같이 놀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또 혼자만의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더니만, 이노리는 수락하는 모습에 활짝 미소를 짓습니다.
"정말-? 와아, 신나!"
드디어 바라던 것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거절했더라면 아쉽지만 혼자서라도 해봤겠지요. 아니면 다른 사람을 구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기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거절을 뒤로 정하는 사람은 대체품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나 뭐라나?
"으응, 괜찮아요? 뭐라고 하는 게 나쁜 거예요?"
종종걸음으로 에어하키 테이블을 향해 걸어가더니만, 맞은편에 서선 동전 투입구에 100엔 동전을 딸그랑 넣습니다. 판에 공기가 주입되고, 퍽이 떠오릅니다. 원래 그런 법이라지요? 어린 아이들은 잘 하는 것보다 그 자체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어른들의 말. 지금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는지는 해가며 배우고..
" 응. 오늘부터 기억해줘. 2학년 B반의 이치노세 리오야. 음- 그러니까 놀리면 안돼. 나, 놀리거나 하면 진짜 죽어버릴거라니까- "
습관처럼 나오는 말이다. 습관처럼 굳어진 악의는 혀 끝에서도 보이지 않는 모습을 드러내고 몸에도 흔적을 남겨놓았다. 추억이라던가 즐거움이라던가 하는 것들, 당연히 알고있고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 또한 알고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자신을 바라봐주는 것. 잊지않고 기억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리오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스스로를 상처내고 제 한 몸을 던지고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들 준비가 되어있었다.
" 아이자와.. 응. 그럼 아이자와라고 불러도돼? 선배님이라던가, 나 그런 호칭 익숙하지 않아서. "
메이드카페에서 였다면 '아이자와 주인님-' 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불렀을테지만 여기 있는 것은 아리스가 아닌 리오였다. 처음보는 사람과 살갑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치아키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갑게 인사하며 다가올 수 있는 '인싸력'이 충만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조금 물러서더라도 물러서는만큼 다가와주니 조금은 더 편했었다. 이 참에 저런 모습을 배워봐야할까. 리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차라리 눈 앞에 있는 아이자와라는 사람을 따라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
" 나는..! "
무리. 절대 무리. 나는 이치노세 리오-! 같은 말을 어떻게해. 리오는 순간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 부끄러워져서 이런저런 홍보를 해주는 것 조차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리오는 다시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아 조용히 마스크를 올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고 싶은 마음이 제일 먼저 들었고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살짝만 뒤로 돌릴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 좋아..한다고 할까.. 응. 많이 가본 적은 없어. 나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라서. 혼자서 갈만한 곳들은 아니잖아. "
사실 이 날을 위해 수영복도 샀지만 누구 앞에서 보여준 적은 아직도 없다. 다들 수영이니 선탠이니 하면서 해변으로 놀러나갔을 터인데. 그렇기 때문에 리오도 그 틈에 섞여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 아이자와, 선배님은. 어떻,게 그렇게 친하게.. 해..? "
물어보고 싶은 것은 물어보고, 모르는 것을 배운다. 다만 그러는 과정이 익숙치 않아 삐걱거릴 뿐이었다.
죽어버린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으나 두 번째는 장난으로 이야기한다기보다는 나름의 표현법이 아닐까라고 치아키는 판단했다. 그야 그럴 것이 아무리 그래도 죽어버린다..라는 표현을 연속으로 쓰는 것이 장난일 순 없을테니까. 특히나 친한 사이도 아니라 처음 보는 사이에는 더더욱. 물론 자신을 상대는 알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여학생이 자신에게 정말로 친밀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리가 없었으니 더더욱. 허나 일단 치아키는 굳이 그 부분에 대해서 뭔가 말을 하진 않았다.
"후배 양이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야. 딱히 이상한 별명만 아니면 호칭은 크게 신경쓰지 않거든. 아. 하지만 가끔 장난스럽게 각하! 이렇게 부르는 애들은 있긴 한데 그건 이상한 별명은 아니지만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아. 학생회장이라고는 하지만 딱히 큰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하지만 애들에게는 꽤 큰 권력으로 느껴지려나. 아무튼 결론만 말하자면 그런 것만 아니면 오케이!"
혼자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흔드는 것을 보아하니 정말로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나는이라고 말하는 것에 치아키는 고개를 돌려 리오를 빤히 바라봤다. 뭔가 말하려다가 만 것 같았기에. 하지만 말이 이어지지 않자 그는 고개를 괜히 갸웃하면서 다시 앞을 바라보며 슬슬 갈림길에서 옆으로 꺾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확실히 혼자서 갈만한 장소는 아니긴 하지. 가미즈나 마을에 있는 동네 수영장 정도라면 혼자 갈법도 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라는 것은 같이 갈 친구가 있다는 거잖아? 그러면 그런 이들과 여기서 제대로 즐기면 되겠네! 수학여행에서 추억도 쌓고 말이야. 나도 내일이나 다른 날에는 한 번 워터파크나 가볼까 싶거든. 하핫. 그때 거기서 만나면 인사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힘드려나?"
어쨌건 자신은 선배이고 그렇게 막 친근하게 다른 학생이 다가올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어쨌건 학생회장과 학생 사이에는 조금의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 자신과 그녀가 옆에서 걷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조금 더 앞에서 걷고 있는 것처럼.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치아키가 안내를 위해서 의도한 것이긴 하지만.
"어떻게..냐고 물어도 글쎄. 음. 글쎄. 믿거나 말거나지만... 사실 어릴 적의 나는 꽤나 말도 지지리 안듣는 말썽꾸러기였고... 조금 세상에 불만이 많았거든. 그 부분은 조금 가정사 관련 비밀이라서 자세히 말할 수 없긴 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 끝을 흐리면서 그는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뭔가 오해가 생길까 싶어서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고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이었다.
"아! 혹시 말하는 거지만 딱히 사랑을 못 받았다거나 학대받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야! 그냥 내 개인문제인데 아무튼 그런 것이 있어! 이건 프라이버시! 내가 입에 잘못대면... 하늘에서 우르릉 쾅쾅 천벌이 내릴지도 모르는 뭐 그런거야. 그러니까 적당히 패스하고.. 아무튼 그렇게 세상에 불만이 많고 진짜 지지리 말도 안 듣는데... 그런데 어느 날 문뜩 생각이 들더라고. 어차피 한 번 사는 삶인데 그냥 한번 내질러보자라는 느낌으로 말이야. 그래서 일부러라도 밝게 행동하고 오버액션도 하고 막 중간에 끼여서 이야기도 하고, 일부러 주목받겠다고 행동도 크게 해보고.. 하하핫."
뭔가를 회상하듯이 살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던 치아키는 이어 미소를 지으면서 몸을 뒤로 홱 돌리면서 그녀를 마주봤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정말로 천천히 뒷걸음질로 길을 안내하면서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되게 부끄럽고 이게 맞나 싶긴 했는데... 그래도 일부러라도 계속 이렇게 살다보니 이런 성격이 된 것에 가깝지. 그러니까... 음. 솔직히 물음의 답은 되지 않겠지만... 그냥 내 경우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후회없이 즐겁게 할 건 다 해보자. 그리고 내가 내키는대로 다 해보자. 라는 느낌으로 지르면서 살다보니까 이렇게 되었다에 가까워. ...솔직히 그것 때문에 무게감 참 없고 진중함도 없는 학생회장이라는 말도 듣는데.. 뭐 어때. 그게 나인데.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눈치보면서 살기보단 그냥 내가 원하는대로 살고 싶거든. 그러니까... 결론은 그냥 내가 원하는대로 지르면서 사는 것이 정착되었다...라는 것에 가까워. 하핫. 도움이 안 되는 답이지?"
면목이 없다는 듯 키득거리면서 치아키는 다시 뒤로 홱 돌아서 앞으로 걸었다. 조용히 불어오는 여름바람을 느끼며,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근처 건물이 만든 그늘 속으로 쏙 숨어버리면서 치아키는 조금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부끄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스스로도 오버액션 너무 많이 하나..라는 생각도 많이 들긴 하지만... 오늘도 적당히 말만 하고 가지 않고 질렀기 때문에 이렇게 이치노세 양과 이야기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어? 그러다가 이제 또 다음에 보면 인사라도 할 수 있는 인연이라도 생기는 걸테고.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플러스고 지른 보람이 있다고 생각해."
/...으아악! 설명을 해야 하다보니까 길어졌다. (털썩)
아무튼 이 답레만 남기고 저는 내일을 위해서 자러 가볼게요! 다들 좋은 밤 되시고 안녕히 주무세요!
응, 다행이지요! 이노리의 생기 없는 눈이 판이 작동될 때 잠시 반짝반짝 빛난 것만 같습니다. 와-아, 인간은 역시 신기하지요, 어떻게 이런 것을 생각했을까요? 이노리라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텐데. 인간은 신기하고 대단하면서도, 참 재밌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오너라!"
장난스럽게도, 짐짓 적군의 장수와도 같이 말했지만 이노리의 조그마한 체구 때문인지 위엄은 전혀 없었지요. 납작이가 스르르 미끄러질 때, 이노리는 그걸 또 신기하다는 듯 눈으로 열심히 쫓다 팔을 쭉 뻗어봅니다.
"아, 해냈다!"
본인도 놀랐군요, 이노리. 아직 어설프지만 톡, 하고 겨우 끝을 쳐내는 것에 성공한 퍽이 통, 벽을 한 번 튕기고는 살살 미끄러집니다. 이것도 막으려면 쉬이 막을 수 있겠지요! 이노리는 힘 있게 치지 못했고, 말 그대로 밀어낸다에 가까웠으니까요. 살살 움직이는 퍽이 큰 친구를 향해 갑니다.
당신의 입에서 나온 생소한 단어에 후루토는 고개를 기울이며 자신이 아는 지식을 지표삼아 추측해본다. 헌팅은 사냥을 뜻하고, 꾼은 필시 무언가를 전문으로 하는 자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헌팅꾼 = 사냥꾼'인 것이구나. 동양과 서양의 언어가 혼합되어 있으니 필시 이승에 유행하고 있다는 신조어라는 것일테다. 확실히 필멸자들은 항상 굶주림과 식량의 위기 속에서 어우러지며 살고있었고, 그렇기에 사냥을 업으로 삼는 자들은 언제나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라는 것들은 물론 어디까지나 수세기 전에나 있던 옛날 얘기에 불과하지만.
"그렇습니까... 사냥꾼들이 제게..."
어느새인가 제 안에서 멋대로 그렇게 납득해버린 사신은 사뭇 진지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본디 악한 업을 가진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이 검게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더니 이내는 또 그들의 입장을 변호하듯이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아니, 변호라고 할까. 오히려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그저 자신이 꿰뚫고 관철한 것을 그대로 진술하는 것에 가까워보였다. 그러니까 그런 '영혼을 봤다'라고 하는 인간적이지 않은 발언부터가 이상한 것일텐데도. 하기사, 이미 첫 조우에서부터 자신을 사신이라 자칭하며 축복을 내린 시점에서부터 이런 발언들은, 신을 모시는 당신에게 있어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걱정 섞인 말을 건네는 당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던 것이다.
"...음,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저..."
후루토는 그런 당신의 물음에 자신의 손 끝을 서로 마주치며 시선을 조금 아래로 숙였다.
"필멸자들은 태양 아래의 파도치는 바다에서 서로의 연을 다진다고 들어서......"
그래서 일단 사람들이 흔히 한다는 것처럼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와봤다, 라는 것일까. 이상한 쪽으로 행동력이 폭발하는 신이다. 터무니 없다. 또, 터무니 없을 정도로 공부를 너무 잘 해온 건 아닌지. 짚으로 엮은 챙넓은 모자를 머리 위에 얹은 사신. 새하얀 비키니가 육감적인 몸을 받쳐 고운 선을 과시했다. 와중에 핏기 없는 피부와 길게 내려오는 흑발이 몸을 감싸 평소 뿜어내던 특유의 음침함을 청량하게 바꿔놓는 것이다. 어쩌면, 방금 토아가 쫓아낸 그들이 당연한 행동을 하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까지 사뭇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 지금의 모습만 보자면 이 해변가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완전히 한 여름의 바다를 100% 만끽하러 온 자의 그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혹시, 신이 가볍게 나설 자리는 아니었던 걸까요? 필멸자여..."
문제라고 한다면 신이냐 인간이냐의 문제는 아닐텐데. 그렇다고해서 사면부지의 타인과 자연스럽게 부대끼며 노는 것도 이 신의 성미를 생각해서는 결코 못할 짓이다. 상대쪽에서 접근하다고 하더라도 방금처럼 또 죽느니 마느니하는 생사결단의 화두로 흘러갈 임에 있어서 조금의 오차도 없다... 그러니 그런 바라마지 않는 이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음에도 생각처럼 연이 쌓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자신이 마냥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것처럼, 신경쓰이는 눈초리로 자신을 살피며 그 히키코모리 사신은 확신에 차지 않은 목소리를 하고서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헌팅, 즉 사냥. 아무래도 그녀는 누군가를 유혹하거나 꼬드겨서 다소 불건전한 만남을 가지려는 의미의 헌팅보단 문자 그대로 생존을 위해 먹거리를 소탕하는 사냥의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넖은 범주에서 보면 전자나 후자나 그 성격과 목적이 일맥상통하긴 하지만...
"...그런가요? 그럼 역시 제가 과한 행동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본래 악한 업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영혼이 검은 빛을 띄진 않았으니까. 라는 그녀의 말은 아무래도 그 무리들을 옹호하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으로서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투영해 설파하는 것에 가까운듯 싶었다. 절대자인 당사자가 그렇게 보았다 하니 감히 필멸자가 무어라 할수 없기도 하고, 또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믿어야 하긴 하겠다만...
"그래도 그 행동이 강제성을 띄고 있었단 것에서 마냥 좋게 볼수만은 없군요."
살짝 고개를 돌려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들도 그저 이 시기를, 이 상황을 즐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물론 정말 그들이 외견만 그리 보일뿐, 순수한 목적으로 다가갔대도 자신의 입장에선 손목을 잡아 끈다거나 적절한 설명도 없이, 그것도 한 명이 아닌 한 무리가 그랬다는 것은 어느쪽으로든 퇴로를 차단해 사냥감을 확실하게 포획하려는 말 그대로 '헌팅'의 의미가 다분히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드디어 찾았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 어서 타.'라던가 '이쁜이, 우리랑 저기 가서 같이 놀래?'같은 상황극은 어디까지나 허구이기에 가능한 개념이니까, 현실에선 어딜 봐도 평범한 납치유괴였다.
"서로의 연이라... 뭐, 절기상으로 봐도 가장 적절한 때가 여름이긴 했더랬죠."
특별한 목적이 있어 혼자 있던 것은 아닌, 그저 인세에선 다들 그리 하기에 자신도 '연'이란걸 쫒아가려 해보았다는 그녀의 말에 다시금 시선을 고정시켰다. ...확실히 그런 말을 꺼낸만큼 본격적이었다고 할수 밖에, 자신처럼 열사를 가려줄만한 넖은 챙모자, 이런 때이기에 볼수 있는 뽀얀 살결을 살며시 덮어낸 비키니 같은 과감한 의상이 그와 대비되듯 검은 머리칼로 가릴듯 말듯한 분위기를 주었기에 누가 봐도 뇌쇄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당장 자신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끌릴 정도인데 남자라면 오죽할까, 참새가 방앗간을,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여전히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웠기에 그저 '수영복'을 입었다라는 그 자체가 이미 과감한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제 치수보다 큰 셔츠로 몸을 가리려고 노력했던 것이니까, 물론 그런 행위조차 자신의 독특한, 또래는 물론이요 그 이상에서도 보기 드물만큼 인지를 넘어서려 하는 실루엣을 완전히 가리진 못하는듯 싶었지만...
"...딱히 그런건 아닐테지만요..."
신이 가볍게 나설 자리는 아니었느냐며 확신이 서지 않는듯한 목소리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말을 꺼내는 당신을 보며 일순간 복잡한 미소를 비추다가도 그런 분위기를 해소하려는듯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아까 그 분들은 아웃이지만요."
살짝 비죽이는 표정으로 보아 미약한 질투심이 비춰지기도 했다. 설령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보살이라 하더라도 그 속마음은 야차인 것이 평범한 일본여성의 초상일테니,
"축제, 관광지 등등은 으레 말하는 인연을 쌓는데에 적법한 장소임엔 틀림없지요. 허나 그것이 적법한지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른 법이랍니다. 게다가..."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금 바다쪽을 바라보았다. 청량하게 부스러지는 파도와 맑은 물빛, 은은하게 반짝이는 물가와 저 먼발치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수평선, 어디에서 봐도 그 풍경은 묘한 이끌림이 있었다.
"꼭 그런 곳에서만 연을 맺으란 법도 없으니까요. 하늘은 노력하는 이에게 그에 합당한 축복을 내리는 법, 이 경우엔 인연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만... 필시 만날 것이었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 또한 그 인연이니 말이지요."
물론 그 인연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가 실이 되는가는 또 나중에 알 일이었다. 게다가 사람은 변덕이 죽끓는듯 하여 어제 만났던 사람이 오늘은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자신 역시 무난한 인간관계를 가지는가 하면서도 여전히 겉돌고 있었으니 역시 인세란건 신도 신이거니와 인간 역시 어려워하는 법이다.
"뭐, 인간들은 언제나 그랬듯 저마다의 답을 찾겠지만요. 지금의 하이디네양도 다르지 않을 거구요."
“와, 워터파크! 이 근처에 있는 워터파크에도 어트랙션 있으려나?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보고 가는 게 좋죠. 저는 그 정도 체력은 안 돼서······ 부러워요.“
어쩐지 케이가 워터파크에 가는 장면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는가, 미야나기는 잠깐 얼굴을 갸우뚱 기울이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봤다. 아무래도 평상 시의 이미지와 워터파크는 너무 대조적이다! 물론 지금도 예전의 단정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젖은— 모습이기는 했다만. 멋대로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저었다 고갯짓을 반복하던 그녀는 웬 날벼락같은 소리에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선배는, 나하고 할 얘기가 무슨 여우 얘기밖에 없나. 가만 보면 여우 되게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낭패다! 심신의 안정을 몰빵 투자해도 모자랄 소중한 시간에 도리어 불안을 가증시키는 말을 들어버렸다. 주변에 구태여 여우에 대해 물은 적도 없으니 마땅히 대답할 거리 또한 없다. 근 한 달 만에 난데없이 온 신경과 관심사가 영 다른 곳으로 옮겨간 탓이다. 확실히, 그녀는 팔자 좋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여우 따위에 전전긍긍하기보다 눈앞의 귀신부터 걱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보다 선배는 다른 걸 더 궁금해하셔야 해요. 예를 들면, 음······ 이 중에서 어느 가게를 들어가고 싶으신지! 라든가. 어때요?”
머잖은 곳에 있는 걸 봤다는 말마따나, 얼마 걷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노점이 밀집된 구역에 다다른 듯했다. 미야나기는 도처를 향해 펼친 손을 휘두르며 가게들을 가르켰다. 일단 그들의 목적이었던 음료 부스 정도는 이미 사방에 널려있는 것처럼 보이니 안심해도 좋겠다.
물론 워터파크 라는 것이 가고 싶을 때 가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힘들 수도 있는 것이고 또 그 때가 되면 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같이 갈 사람이 마땅찮을 수도 있고, 이런 저런 변수가 많이 생길 수 있다. 자신으로 따지면 일에 복귀를 해야한다거나.......
어쨌든 지금 있는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나 이런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다. 물론 다시 휴가를 내서 이번에는 다른 모습으로 다른 지방의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는 있겠지마는. 그 때는 지금과는 다르겠지.
“그냥 전에 이야기 꺼냈을 때 후배님이 신경쓰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여우 좋아하기도 하고.”
여우 이야기에 낭패어린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가문에 여우에 대한 안 좋은 전승이라도 내려오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꽤 우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하지만 굳이 사에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들춰내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그 가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굳이 중요한 점은 아닐 터였다.
“음, 어느 곳이 좋을까요.”
케이도 노점을 둘러보던 중 한 곳에 시선을 빼앗겼다. 생과일 주스를 파는 곳이었는데, 그 과일 주스에 넣어주는 얼음이 각얼음이 아니라 동글동글한 구형의 얼음이었다.
“그래요? 저는 여우보다 개파인데. 앗! 그러고 보니 선배, 약간 여우상이신 것 같기도 하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검지를 치켜세우더니, 이내 과장된 몸짓으로 케이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는 체했다. 안경 벗은 맨 얼굴은 마냥 순한 인상은 아니니 여우상이라 결론지어도 부족함 없겠다. 그러다 말고 미야나기는 문득 케이의 시선을 따라 한 음료 매대로 눈길을 돌렸다. 알록달록한 컵들이 디피되어있는 걸 봐서는 틀림없이 생과일 주스 노점 되겠다. 게다가 이 가게, 컵에 평범한 빨대가 아니라 무려 모양 빨대를 꽂아준다! 바가지 엄청나겠지만 귀여워!
“생과일 주스! 그게 마음에 드세요?”
미야나기는 가게 앞으로 척척 걸어가 메뉴를 빤히 노려봤다. 애플페이 되겠지? 맞다, 학생증 내면 할인해준다 그랬는데 현금만 받으려나. 빨대 하트 말고 곰돌이 모양도 있으면 좋겠다. ······미야나기는 메뉴보다는 다른 데 정신이 팔린 것 같다. 하지만 음료를 고르는 것도 잊지 않고 착실히 결정하고서 의기양양하게 서있다.
제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며 하는 말이 여우상이라는 것에 케이는 작게 웃었다. 여우가 맞으니 여우상인 것은 퍽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이내 제가 보고 있던 것에 같이 시선이 갔던 터인지 생과일 주스가 좋으냐며 눈치 빠르게 말을 걸어온다.
“음, 네. 여기서 살까요?”
가까이 가서 보니 신경을 쓴 것은 얼음만이 아닌 듯 컵의 모양새나 빨대라던가 이런 것들이 꽤나 앙증맞고 귀여운 느낌이었다. 동글한 얼음에 시선이 끌렸던 건, 본능적으로 여우구슬이 생각났기 때문일까. 메뉴를 빤히 쳐다보는 사에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메뉴를 결정한 것에 케이도 싱긋 웃으며 메뉴를 정했다.
“그럼 체리콕 하나하고 청포도 주스 하나 주세요.”
이내 케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꺼내며 값에 맞는 동전들을 주어 계산했다. 물론 바가지가 꽤 있었음에도 이정도 쯤은 몇백년 일을 했던 것에 비하면 아주 푼돈이었으니.
물론 주머니에 동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가져오는 것은 어느정도의 신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종업원이 주문을 받아 음료를 준비하는 동안 케이가 사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여우 이야기 말고 할 만한 이야기로는...... 다음 공연은 언제인지 라거나, 학교 생활은 어떤지 라거나, 혹은 요즘 별 일은 없었는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요?”
>>230 음. 은근히 무른 부분이라. 그건 이제 앞으로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요!! 아닛...ㅋㅋㅋㅋㅋㅋ 자기 스타일에 맞추게 하는 거예요? 아니면 저 물음표는 떡밥인가! 가려진 무언가인가!! 그리고 고여있는 물을 좋아하는군요. 이건 여우의 특성이 분명하다! 여우다! 여우!!
수학여행이 한창인 때 미카는 드디어 바닷가로 나와보았다 헌데 반팔 티셔츠에 가디건, 청바지 차림인 걸 보면 딱히 물놀이를 즐기려고 나온 건 아닌 듯하다 그냥 리조트 안에만 틀어박혀있기 심심해서 온 거에 가까운... 불어오는 바람이 꽤 후덥지근하지만 물기가 서려있어서 심하게 덥지는 않았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아는 얼굴이 보인다 저 애도 수학여행을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어, 음, 안녕."
종종걸음으로 다가가서 어설프게 아는 척 해본다 남한테 먼저 말거는 건 영 어색한지라 그래도 하는 것 없이 가만히 있긴 싫었다
"...잘 놀고 있나보네."
수영복까지 제대로 차려입고 말이지 ...왜 보는 사람이 더 낯부끄러운지 모르겠지만 갈 곳 잃은 시선이 허공을 맴돈다
" 응. 수영장 있지. 그런데 나 집 밖에 잘 나가지.. 음, 나가기는 하는데. 혼자서 돌아다니는거 잘 못해서. 그런데 혼자 가는거 조금 무리거든. 그래서 워터파크도 혼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나게 된다면 인사해줘. 음- 그렇네. 먼저 인사해주라고 했으니까, 내 인사 안받아주거나 하면 나 죽어버릴지도- "
스스로가 생각해도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몇 번이나 죽어버리겠다고 말하는건 정말 최악이다. 리오는 정말 이런거 고쳐야한다고 생각을 한 번 더 다잡고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홀로서기를 시작하려고 했으니 이왕 할 거 제대로 해야하니까. 그리곤 들려오는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땅만 보고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 아이자와 선배, 말 많다. 말 잘하는거 부러워. 나는 그런거 안되거든. 노력은 하는데 잘 안돼. "
말을 많이 하려고 들면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아이자와처럼 적당한 자신의 프라이버시라던가 주변에 대한 설명같은 것들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할 뿐이다. 악의가 가득찬 말을 하며 또 죽어버리겠다던가 하는 이야기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리오는 몇 걸음 앞서 나가서는 뒤를 돌아 치아키를 가만히 바라보고는 '부럽네' 하고 한 마디를 더하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 반짝반짝- 멀리있네. 더워서 죽어버릴지도.. 아직 한참이야? "
수영복이 조금 거슬리기 시작했지만 리오는 딱히 티를 내진 않았다. 바다에 도착해서 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가볼 수 있을지 어떨지는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잠깐 말 없이 타박타박 걷던 리오는 뭔가 생각난듯 고개를 휙 돌려 치아키를 바라보곤 마스크를 살짝 내렸다.
" 여기서 긴급 퀴-즈. 내 이름은? 나는 몇 반? "
메이드카페의 아리스양 도와줘! 조금 뜬금없지만 그래도 리오 입장에서는 꽤나 과감한 어프로치였다. 잊어버렸다고 한다면 죽어버릴테다.
"아하핫. 놀리는 것은 아니고 뭔가 작은 토끼 같다는 소리 한번씩 듣지 않아?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아서 말이야. 기분 탓일수도 있지만."
놀리면 죽어버린다. 인사를 안 받아주면 죽어버린다. 약간 다른 이가 주는 관심을 원하거나 혹은 친분을 원하거나 혹은 인연을 원하거나. 대충 그런 느낌이 아닐까 치아키는 추측하면서 가볍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토끼는 외로우면 죽는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죽어버린다는 말의 페턴을 생각해봤을 때 살짝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자신을 무시하거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거나. 대충 이런 느낌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완전히 이 '죽어버린다'는 일종의 말버릇이나 특유의 표현법이라고 인식했다. 아니라면? 아니라면 어쩌겠는가. 아니면 아닌거지.
"꼭 나처럼 살아가는 느낌이 아니라도 괜찮지 않아? 후배 양은 후배 양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말 많은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야. 정신없다는 말도 엄청 듣거든. 나중에 수학여행 끝나고 학생회 건의사항에 들어가면 또 무슨 말들이 있을런지. 상관없지만. 아무튼 결론은... 당장 노력의 성과를 보려기보다는 그냥 천천히 걷다보면 뭐라도 되지 않겠어? 그 어떤 일도 결국엔 처음 한 걸음을 딛고 그 한 걸음이 이어져야 성과가 나오는 법이니까. 단지 너는 그 걸음 폭과 속도가 조금 느릴 뿐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걷다보면 결국 목적지는 가까워지고 골인을 하는 법이잖아? 꼴찌로 달린다고 해도 결국 달리다보면 골인점과의 거리는 좁혀지니까. 사실 그것을 떠나서... 다른 골인점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 적어도 난 그래."
나름대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그는 언덕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점점 가까워지는 바다와의 거리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그는 저 앞쪽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걸어서 오 분 정도 걸릴까. 그 정도의 거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치아키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기의 언덕 보이지? 저 언덕만 넘어가면 바다야. 그러니까 여기서 아무리 느긋하게 걸어도 십 분. 아무튼 이름과 반? 이치노세 리오 양. 2학년 A반. 그럼 역으로 내가 물어볼까. 이 학생회장의 이름은 뭐게? 그리고 이건 가르쳐주지 않았지만...나는 몇 반이게? 하핫. 맞추면 상품으로 줄 것은 없지만... 음. 그래.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주머니 속에 있는 오렌지 맛 사탕 정도려나. 아. 이 더운 날에는 초콜릿 가지고 다니기도 참 애매해."
이름은 그렇다고 쳐도 반은 아무리 그래도 힘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언덕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점점 거리는 가까워졌을 것이고 완만한 언덕을 살짝 올라가면 또 다시 내리막길이 보이고 그 너머에서 찬란한 황금빛 해변과 바다가 눈에 보였을 것이다.
후루토는 당신의 말을 작게 중얼거리는 것으로 입 안에서 다시 되풀이시켰다. 인연이라거나 하늘이라거나, 한 쪽은 자신이 그걸 끊어내는 입장이고 다른 한쪽에게서는 그것이 두렵게 여겨진 모양인지 일찍이 세계의 이면으로 내쳐졌었다. 그러니 어느쪽이든 멀게만 느껴지는 말이었을텐데. 그것이 실로 그런가 그렇지 않은 가는 둘째치고서라도 살아있는 인간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되니 어쩐지 감회가 새롭다. 그런 그녀는 과연 이나바의 신관이었다. 후루토의 맹하고 가라앉은 눈이 그 소녀를 향해있었다.
"―인번국의 이름을 가진 필멸자여......"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후루토는 다시 한 번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사실 이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나, 겨우 색이나 외모로만 당신을 구분하던 전에 비해서는 확실한 발전이었다.
"그럼... 제가 이곳을 걸을 수 있게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뒤를 따라, 당신에게 건네진 것은 한 가지 요청이었다.
"실은, 꽤 오랜 시간 이 모래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만.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되어서... 곤혹을 치르고 있던 차였기 때문에......."
그렇다면 역시 결국 길을 잃고만 것이지 않은가... 사신은 펼친 제 손 끝을 서로 띄엄띄엄 마주치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미 교내에서도 당신의 도움을 받아 겨우 도서관을 찾아갔었던 그녀다. 계단과 복도를 오가면 될 뿐인 그런 간단한 건물조차 헤매는데 겁도 없이 이런 인파 한 가운데에 떨어지다니, 겁도 없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당신에게 첨언하길.
"......도와주지 않으면 방금같은 사냥꾼들이 또 올지도 몰라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건 또 다른 종류의 협박도 아니고... 후루토는 그렇게 말할 뿐으로, 멍하니 서서 당신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포도 주스 한 잔에, 체리콕 하나. 미야나기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지불할 값을 계산하며 작은 버킷백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미처 지갑을 꺼내는 사이에 순식간에 일이 벌어져버렸다! “어? 아니에요! 제가-” 그녀가 말릴 틈도 없이 케이는 결제를 마쳤다.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 절차를 밟을 그녀보다 비교적 간단한 제스처로 동전을 꺼냈으니 속도에서 밀린 것이다······. 애플페이 되면 더 빨리 낼 수 있었는데! 미야나기는 멋쪅은 얼굴로 얼른 고개 숙여 인사했다.
“선배한테는 매번 신세만 지게 되네요. 안 사주셔도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주문과 동시에 곧장 과일 가는 소리로 가게는 온통 소란스럽다. 기다리는 동안 스몰 토크를 하며 보낼 심산인지 문득 걸어오는 말에 그녀는 곰곰히 생각하는 투로 대답을 술술 나열했다.
“공연이라고 하면······ 무용 콩쿠르는 여름이 피크니까 사실 지금도 이렇게 놀고 있으면 안 되겠죠? 일단 이번 달은 도쿄에서 한 번. 예무제는 웬만하면 전부 가을에 올려요. 우리 학교는 9월에 해요!”
즐겁게 말하던 표정이 순간 복잡해져 약간 어두워 보였다. 괜히 품에 들고 있던 엄한 모자나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다 말고, 그녀는 은근슬쩍 화제를 케이에게 돌리려 시도했다.
“별일······ 아. 선배는 요즘 별다른 일 없으셨고요? 그러고 보니 선배는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듣고 싶어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을 받았다. 실제로 그 때는 부스에서 이야기하다가 헤어지긴 했지만, 그 이후로 혼자 축제 구경도 하고 꽃도 하나 사서 신에게 올리며 인사 및 소원도 빌었으니 거기까지 편하게 간 셈이었다. 그런 걸로 치면 케이에게는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었고 더 잘된 셈이기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연 일정을 머릿속으로 기억해두었다. 열심히 하네. 하는 생각을 하며 “기대할게요.”하는 말을 건넨다.
별일은 있었으나 말할 만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서로 속 이야기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니. 공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일이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하는 건 좀 정없나?
이번에도 들려오는 엉뚱한 소리에 저도 모르게 소심한 반박을 한다 생명체 뭐시기의 얘기는 또 묘하게 과학적이라 그렇구나 하고 납득했을지도
"익숙한...거였구나."
무미건조한 대꾸다 바다는 좋아하는데 물놀이는 귀찮다라 뭔가 요상한 거 같지만... 그러면서 미카는 받아든 캔음료의 한기를 느끼려는 듯 손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다 뚜껑을 따서 조금씩 들이킨다 그리고 아예 편하게 벤치에 기대버리기 바다의 풍경도 넋놓고 보게된다 공기가 약간 후덥지근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사람 좋아하는 고양이 같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토끼라는 말도 이해는 된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동물이니까 그 점이 닮았을지도 모르지. 리오의 경우에는 거기에 지독한 악의가 껴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었다. 그저 외로움을 많이 타서 '외롭네-'하고 말한다거나 누구랑 같이 있는 것이 좋은 정도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외로우니까 남들이 자신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 스스로를 상처입히고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일삼고 종국에는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들어버린다는 점들이었다. 고치고 있지만, 여전한 문제점들.
" 으, 아이자와 선배, 말 많아. 내가 힘들어하는 타입... 하지만 싫지않아. 나도 그런 점은 배우고 싶고.. 그런데 나, 1등으로 달리는 것 보단 꼴찌로 뛰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응. 1등으로 달려가면 아무도 보이지 않잖아. 차라리 뒤에서 모두를 보고싶어. "
이야기의 요점은 그게 아니었다만. 리오는 머리를 긁적였다. 날이 조금 더웠고 옷 안에 같이 입은 수영복이 조금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가도 어느샌가 아무런 생각이 없어졌다. 이런 사람들은 신기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대할 수 있고 인생조언까지 해주는 데다가 금세 친한 아우라를 잔뜩 풍기는 사람들. 가장 대하기 어려운 타입임과 동시에 가장 닮고 싶은 부류의 사람들.
" 정답. 아이자와 치아키. 3학년 B반. "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알아'라는 조금은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아우라를 풍기며 리오는 파치파치- 라는 효과음과 함께 작게 박수를 쳤다가 손가락을 척 하고 뻗어 치아키를 가리키곤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리고 의도치 않게 차갑게 바라보는 눈빛으로 인적사항을 읊었다. 학생회장이니까 지나가면서 많이 봤는걸.
"알고 있어. 나 말 많은 거. 그러니까 정신없다는 평을 듣지. 하지만 어쩌겠어. 이게 나인걸."
물론 어느 정도 의도하고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있으나 다른 이와 대화를 하는 것을 치아키는 좋아했다. 그렇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법이었고 지금같은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듣긴 하고 지금처럼 '으'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딱히 치아키는 상관없다는 듯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힘들어하는 타입이라는 말에 대해서 장난스럽게 자신의 가슴을 잡고 윽! 하는 소리를 내면서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진지하지 않은 가벼운 장난에 불과했다.
"꼴찌로 뛰어가는 것도 괜찮다고 느낀다면 그것도 좋아.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페이스가 있는 거니까. 오. 그런데 내 이름은 그렇다고 쳐도 내 반은 어떻게 알았대? 내 인적사항이 주변에 퍼져있나?"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이내 두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신기하다는 듯이 그는 오른손을 제 턱에 갖다대며 살짝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생회에 관심이 있나? 아니면 자신의 친구의 친구쯤 되는 포지션인가? 그것도 아니면 의외로 자신의 반이 크게 퍼져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어서 오라는 듯이 바닷가가 보이는 내리막길이 연결된 언덕 위에서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갈매기는 날아다니지 않았으나 소금기가 연하게 퍼지는 바다 냄새를 느끼면서 치아키는 앞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맞췄으니 미리 예고했던 사탕을 꺼낸 후에 리오를 향해 내밀었다.
"친구라. 글쎄. 나는 이름을 알고 얼굴 알면 바로 친구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거든.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알고 지내고 만나면 인사도 하고, 이렇게 대화도 하고 교류하면서 지낼거라면 그건 친구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너하고도 그렇게 지내고 싶어. 이렇게 알게 되는 인연도 난 좋아하거든."
이어 치아키는 두 손을 제 허리에 갖다대면서 몸을 완전히 돌린 후에 리오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 학생회장인 아이자와 치아키는 너와 친구로 지내고 싶은데. 이치노세 양은 어떠려나? 이 학생회장과 친구로 지내줄거야? 하핫."
리오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건네오는 사탕을 받아 손 위에 올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대로 포장을 까서 한 입에 넣곤 이리저리 우물거리며 사탕을 입 안에서 돌렸다. 언덕 위에 올라선 리오는 눈을 들어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바다냄새가 얕게 퍼져 코 끝에 걸린다. 여기서 봐도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 한 가득 보인다. 새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도 보이고 별모래처럼 떨어지는 햇빛도 보인다.
" 반짝반짝..! 찾았어..! "
리오는 처음으로 조금 큰 목소리를 냈고 이제까지 조금 차가워 보이는 무표정을 치우고 얼굴에 제법 큰 미소를 띄웠다. 이 반짝반짝을 찾으려고 여기까지 계속 걸어왔던거야. 리오는 그제서야 치아키가 하는 말을 듣고는 음- 하고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띄웠다. 학생회장인 아이자와 치아키하고는 친구가 될 수 있지만 학생회장이 아닌 치아키하고는 친구가 아니라는 말인걸까.
" 애매모호한건 싫어하는데. 음, 어쩌면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걸지도.. "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곤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서 또 다시 삐걱거리며 악수하자는 듯 한 손을 건넸다.
" 리오라고 불러,줬,으면, 해. "
항상 첫 만남은 삐걱거린다. 그 점을 리오는 잘 알고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자신의 편안한 울타리 안에서 살 수는 없는 법이고 이 이상한 성격과 악의를 고치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그 편한 울타리에서 뛰쳐나가 이것저것 맨 몸으로 부딪히며 알아보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리오는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손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었다.
되려 가벼운 협박따위와 같은 말로 당신을 부추기는 사신의 거만스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그런 태도마저도 호의스럽게 받아들여 그녀를 안내해주기로 한다. 그리고 한 편 후루토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당신의 말에 자신이 동의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왜냐하면 저, 【사신】이니까요......"
또 예의 그것인가? 목소리와 얼굴은 변함없이 얌전하기 그지 없는 것이지만 묘하게 올라간 콧대가 '이것은 분명 자기자랑'이다하고 반증하고 있었다. 도움이나 받는 주제에.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 과시는 오히려 명예의 실추를 불러오는 법일진데, 명계의 왕씩이나 된다는 존재가 바다에서 이러고 있다고 한다면 그녀를 쫓아낸 신들이 어떤 생각을 하려나. 다만 현재에 와서는 딱히 그녀를 섬기는 자가 없으니... 그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아니, 오히려 그 사실이 이승의 반대편에 도사리고 있다고 하는 '죽음'이란 것의 실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학생회장의 반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이 요즘 후배들의 기본 상식인가 싶어 치아키는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역시 수학여행이 끝나면 학생회 임원들에게 자신의 신상정보를 알리고 다니는지를 한번은 물어봐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반을 안다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한번 확인은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할 뿐.
아무튼 눈앞에서 펼쳐지는 바다를 보면서, 바로 근처에서 반짝반짝을 찾았다고 조금 큰 목소리를 내는 것에 치아키는 목에 감고 이는 수건을 풀어서 자신의 땀을 살며시 닦아낸 후에 다시 목에 감고 고개를 돌려 리오 쪽을 바라봤다. 목소리가 커지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기분이 좋다는 것을 그는 짐작할 수 있었다.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들려오는 그녀의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하지만 여기서 바로 우리는 이미 친구잖아! 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물론 내가 사교성은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에이. 말 나누면 친구지! 다 정도까지는 아니거든. 뭘 깊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뭔진 몰라도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거야. 아마도."
방금 전의 말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거라면 더더욱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이 그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냥 정말 말 그대로의 의미였으니까. 아직은 친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친하게 지낼 거라면 그건 친구가 아니겠는가. 보통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정말 말 그대로 얼굴과 이름만 알고 딱히 교류를 하진 않고 대화도 굳이 하지 않는 이들을 친구라고 평하지는 않는 것처럼. 치아키에게는 딱 그 정도의 감각이었다.
한편 손을 내밀면서 자신을 리오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에 치아키는 가만히 두 눈을 깜빡이며 그녀의 손과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치노에 양과 후배 양이라는 호칭 대신 리오라고 불러줬으면 하고 덧붙여서 자신 역시 아이자와가 아니라 치아키라고 부르고 싶다는 것일까. 이런 제안은 또 처음이라서 그는 오. 하는 소리를 내면서 두 눈을 다시 가만히 깜빡였다. 하지만 별 상관없을까. 허락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의 손을 턱 잡고 손을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면서 악수했다.
"알았어. 그러면 리오라고 부를게. 하핫. 아까는 이런 거 잘 못한다고 하더니 잘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치아키라고 부르고 싶으면 불러도 괜찮아."
조금 낯선 느낌은 있긴 했지만, 사실 살면서 통성명 처음 한 이를 바로 이름으로 부른 경우는 한 번도 없었지만 이 또한 경험이었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꽤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한 번 사는 인생. 이런 경험, 저런 경험. 다양하게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손을 살며시 놓으면서 리오에게 물었다.
"아무튼... 안내는 끝난 것 같은데 어쩔래?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까 조금 더 같이 걸을래? 물론 내 목적지는 저 에메랄드 빛 바다에 발을 담그는 거지만 말이야. 여기까지 왔는데 발도 안 담그는 것은 조금 아깝거든. 수영복을 챙겨오진 않았으니 본격적인 수영은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서도 어쨌건 나도 바다로 가는 거니 말이야."
단순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것은 깊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만나자마자 미움받을 건덕지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 일단은 고분고분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베스트라는 것이었다. 리오는 잡은 손이 위아래로 흔들리자 그에 맞춰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흔들었다. 홀로서기에 점점 성공해가는 기분이다. 다른 성별, 다른 학년, 다른 반, 다른 직무라는 엄청나게 높은 허들이 있었는데 이 정도면 반 쯤은 성공한 셈 쳐도 될 것 같았다.
" 치아키.. 선배? 음, 오빠? 으음, 그래도 그냥 '치아키'라고 부르는건 조금, 그렇잖아. 그러면 기분 나쁠 것 같아. "
잡은 손을 살며시 놓으려 할 때 리오는 한 번더 살짝 힘을 줘서 손을 잡고 두어차례 더 흔들면서 고개를 같이 끄덕였다. 그리고 나선 손을 놓고, 그 이후에 잠시 더 혼자만의 세계 빠져서 고민을 조금 이어나갔다. 그냥 대뜸 부르기에는 기분이 나쁠 수가 있으니까. 여기까지 왔으니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겠다, 리오는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선배라고 부르는 것은 거리감이 조금 느껴지니까 그 거리감을 한 번에 없애주기 위해서는
" 응. 치아키 오빠. "
그 편이 훨씬 좋아. 리오는 금세 부끄러워졌는지 마스크를 올려쓰곤 고개를 살짝 숙였다.
" 바다, 가고싶어. 반짝반짝,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걸. "
의존증의 안 좋은 점이라면 자신에게 조금만 잘해줘도 그 사람에게 마구 의지해버려서 힘들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은 바다에 가보는 것 정도였으나 나름 기합을 넣어서 옷 속에 수영복도 입고왔다. 리오는 어차피 바다로 갈 예정이라면 여기에 껴서 함께 이동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발을 맞춰서 타박타박 하고 걷던 리오는 문득 고개를 돌려 치아키와 눈을 마주쳤다.
" 학교에서 라던가 만나면 꼭 인사해줘야해. 꼭이야. 연락처..는 나중에 교환해도 좋으니까. 학교에서 날 만나면 꼭 인사해줘. 약속이야. "
생각같아선 당장에 연락처부터 교환하고 싶었지만 참을 때는 참을 줄도 알아야한다. 아, 이렇게 말을 하고 나면 또 그 악의가 스물스물 퍼져온다. 마음 속에 가시덩쿨이 자라서 목을 옥죄고 벼랑 끝으로 내모는 기분. 이렇게 말하면 싫어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혹시라도 버려지고 잊혀질까 두려운 마음. 나를 봐준다면 얼마든지 제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그 어리석은 각오가.
" 아니면 나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응. 치아키오빠가 받아주지 않으면- 나 죽을거야. 진짜로 죽을거니까, 꼭 친하게 지내줘야한다? "
"오빠라는 표현을 고른 거야? 아하하. 이것은 이것대로 조금 신선한 느낌이네. 나는 아이자와 집안에서 막내고 누나가 있다보니 누군가를 누나라고 불렀으면 불렀지. 오빠라고 불린 적은 한 번도 없어서 말이야. 조금 간질간질하네. 아. 동생이 있는 사람들의 기분이 이런건가. 물론 아니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느끼는 이 간질간질함은 필시 실제 남매사이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치아키는 확신했다. 어쨌건 자신 역시 누나가 있었으니까. 제 누나가 자신이 누나, 누나. 이렇게 부른다고 해서 간질간질함을 느낄리가 없지 않겠는가. 막내의 삶을 살다가 갑자기 동생이 오빠하고 부르는 것 같아서 신선한 느낌이겠거니 생각하며 치아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이것도 그리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좋아. 그렇다면 방향도 같겠다. 내려가보자! 여기까지 왔으면 보다시피 바로 앞이니까!"
저 파도에 발을 담그면 얼마나 시원할까. 날씨도 더운데 역시 파라솔도 따로 빌리는 것이 좋을까. 주머니에 있는 지갑에 지금 얼마나 있더라. 그래도 수학여행이라서 꽤 많이 챙겨오긴 했는데 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리오의 모습이 보여 치아키는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리오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어지는 말을 듣고서 역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가 아닐까하고 치아키는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말 없이 리오의 눈동자를 더욱 빤히 바라봤다.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죽을 거야. 진짜로 죽을 거다. 그런 표현을 그는 조용히 곱씹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말버릇일까 했지만 이 정도로 이야기를 들으면 거기서 이제 필사적인 느낌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뭔가 어릴 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일이라도 있었을까. 혹은 크게 마음 아픈 일이 있어서 조금 불안함을 느끼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어깨를 으쓱하며 리오에게 이야기했다.
"죽을 일은 없어. 앞으로도 쭉 말이야. 처음으로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이의 이름이나 존재를 금방 잊거나 하진 않을 것 같거든. 솔직히 말하자면... 어쨌건 삼학년이라서 입시를 준비하고 있긴 하니까 그렇게 엄청 자주 본다고는 약속할 수 없긴 한데. 일단 학생회장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도 만났는데 인사조차 안하는 그런 무신경한 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거기다가... 키즈나히메님을 모시고 있는 신사의 아들이니 말이지. 난."
인연은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거든. 나름대로. 그렇게 말을 덧붙이다가 스스로 말하고도 조금 무안했는지 그는 막 밟히는 모래 사장의 부드러움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콕 남기면서 파도치는 바다를 향해 걷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연락처 필요해? 라인 아이디 알려줄테니까 편할 때 등록하고 메시지 보내. 바쁘지 않다면 어지간하면 응답하니까 그건 걱정 말고. 그러니까... 죽어버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주기. 그럴 일은 정말로 없을테니까. 그건 약속해줄 수 있어."
이어 핸드폰을 꺼내는 행동을 하거나 한다면 아마 정말로 자신의 라인 아이디를 알려줬을 것이다. 나중에 받겠다고 한다면 그럼 나중에 하지 뭐. 그렇게 가볍게 넘겼을테고. 그렇게 말을 남기며 그는 저벅저벅 파도가 치는 곳까지 갔을테고 제 발을 담궜을 것이다.
일단은 답레가 올라와있기에 저도 달아야겠다 싶어서! 하지만 저는 슬슬 잘 시간이 되었기에 자러 가보겠어요! 음. 다음은 막레를 하셔도 좋을 것 같고 좀 더 할 이야기가 있거나 잇고 싶다면 더 이어도 괜찮아요! 그 부분은 자유롭게! 어쨌건 저는 자고 일어난 후에 확인해볼게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길안내라던가, 그렇게 자연스레 이어지는 대화라던가 하는 패턴엔 슬슬 익숙해지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상대가 신이라고 해도, 그리고 그 신이 거리낌 없이 본인의 정체를 피력해도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위치이기에 이렇게 무난한 행동을 보일수 있는 것이겠지.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상대방에게 이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선 그럭저럭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듯 했다.
"정말이지, 너무 당당하게 그리 말씀하시니 믿지 않는게 이상할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이미 무의식 속에선 그녀의 존재에 대해 믿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뇌라면 세뇌랄지, 아니면 너무 자연스럽게 어필하는 그녀의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된 건지 갈피는 잡히지 않지만... 아무렴 어떨까,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니 이젠 작게 소리내어 웃는 자신이 있었다. 와중에 자기자랑을 하고서 스스로의 존재가 뿌듯하다는둣 콧대가 높아진 모습은 위엄보단 엉뚱함이 먼저 와닿기도 했다.
사신, 혹은 죽음 그 자체. 명부의 주인 되는 이가 이정도로 인세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건 언뜻 납득이 가면서도 신선한 부분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죽음이란 본디 정적인 개념이어서 어딘가에 고착되어있는 법이라 하지만...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시어요. 부족한 몸일지도 모르나 당장 한명의 길잡이 정도는 되어드릴수 있으니..."
전에도 그러했듯, 한발자국 가까워진 그녀를 가볍게 인도하며 나아갔을까. 떨어지는 발걸음, 진중한 분위기는 마치 지금 걸어가는 길이 엄숙하게 느껴진다는 착각까지 주었지만 어떤 의미에선 진지할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신과 함께 해변가를 거닌다는 것은 결코 쉽게 일어날 일이 아니니까,
후루토는 당신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고 그저 담담하게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리며 당신 앞에 서 있었다. 묵비권같은 것이 아니고, 그저 당연한 것을 말할 필요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그저 누군가의 말마따나 설정에 사로잡혀 머리가 이상한 것뿐인 여자애인 것인지는 몰라도... 그 전에, 이미 당신의 안에서는 어느정도 이 괴짜에 대해서 나름의 상이 잡히기 시작했을테니. 그녀가 따로 무어라 대답한들 이제와 바뀌는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는 당신이 움직임에 따라 자신도 발걸음을 때어서 나란히 움직였다. 성수기의 바다. 인파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가미즈미의 맑은 바다와 햇살은 요동치고, 그것을 만끽하기 위해 모인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후루토의 어깨맡을 스쳐 지나갔다. 그저 성수기의 바다다. 허나 그런 사소한 것도 기이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후루토의 시선은 항상, 저번 교내의 복도와는 다르게 좌로 우로 느긋하지만 바쁘게 무언가를 쫓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묻자 후루토는 약간의 생각하는 시간을 동반하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 본래, 저와같은 신은 필멸자들과는 다르게 반드시 식량을 양분삼아 취할 필요는 없지만......"
당신은 시기가 늦는 것을 걱정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굶주림같은 것은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지침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당신이 이 사신을 적절한 시기에 발견해내지 못했다면 그녀는 이 바다의 끝까지도 걸어갔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지만. 후루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저같은 경우에... 이쪽 세상의 음식은 전부 명계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기에, 있으면 먹게 되는 겁니다......"
'있으면 먹게 된다'...라는 것은 물론 말 그대로의 의미겠지만, 비인간적인 뉘앙스라서 또 기묘하게만 들려오는 울림이다. 그렇지만 먹을 필요는 없는데 먹는다는 부분을 생각해보면 필멸자를 모방하는 것 같아 이것도 아리송하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가장 묘한 것은 역시 아까부터 그게 전부인 사실인 것처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해주는 자칭 사신이다.
"......그러고보면,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런 후루토는 당신을 따라 걷다가, 이번엔 문득 자신쪽에서 운을 틔웠다. 어지간히도 호기심이 드는 것인지 그녀의 시선이 허공으로 붕 떠있었다. 그녀는 묻는다.
"필멸자들은 보통 바다에서 어떤 일들을 하는 거죠...? 지정된 의복을 입고 적절한 시기에 장소에 모인다. 그리하여 저는 이것이 순례나 고행과도 일종의 같은 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왔습니다만... 막상 이곳에 오니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누구보다도 수영복까지 완전하게 차려입고 온 주제에 이제와서 그런 걸 묻는 건가. 그녀가 공부했다고 한 것은 단지 겉모습뿐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신의 입장에서, 이렇게 많은 물이라는 것은 수중호흡을 할 수 없는 필멸자들에게 있어서는 분명 독과 같은 것일텐데도 오히려 반대로 무르익어가는 해변가의 들뜬 분위기가 퍽 기이하게 여겨질 법도 하다. 그야 익사는 그다지 반가운 죽는 방법이 아닐텐데...
"그들은 왠지 즐거워 보여요..."
후루토는 파도와 함께 모래사장을 내달리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아무래도 그런것들이 신경쓰이기 시작한 것 같다.
이 시기의 바닷가라면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어느정도 예견된 상황일까, 제각각의 인물들이 하나의 장소에서 저마다의 행동을 보이는 그 모든게 생소한 사신만큼은 아닐지라도 자신 역시 어느정도는 그들에게 눈길이 갔다.
잠깐의 그런 여유로운 탐색을 즐기다가 차근차근 들려오는 그녀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을지... 무릇 신이라 함은 필멸자들과는 확실하게 궤를 달리했기에 때에 맞춰 식량을 소비해 양분으로 바꿀 필요성이 없기에 따라서 지치는 일 또한 없었으니, 다만 본디 자신이 있던 곳-그녀의 경우엔 명계-에선 볼수 없는 것들이기에 흥미가 동하면 답습하는듯 싶었다.
과연...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행동일까? 꼭 이상한 부분에서 사신으로서의 긍지를 강조하듯, 끌리는 것이 있다면 일단 나아가는 진취적인 모습은 확실히 본받을만한 일이었다.
"과연...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가 동하기에 체득하는 것일까요...?"
문득 제 섬기는 이가 생각났을까?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그들을 비교하는 것은 명백한 실례겠지만 당장 옆에 있는 신에 비하면 토끼와도 같은 이형의 모습을 취하는 그 존재는 꽤나 자유분방하고 신기하리만치 인간적이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말하길 얻은게 있는만큼 잃은 것도 많다곤 하지만, 여느 신들에 비하면 분명 인간친화적이고 그만큼 답습한 문명들도 많을테지. 아무렴... 자신의 위치에서만 충실한 것이 아닌 어딘가, 무언가, 누군가를 지키는 일까지 겸하는 수호신인만큼 인세의 지식이 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궁금한 것이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말씀해주시어요."
그럼에도 문득 궁금증이 생긴 것인지 먼저 운을 띄우는 그녀가 있었기에, 허공으로 시선을 향하는 모습에 자연적으로 시선이 갔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온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조용히 곱씹어보며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다가도, 그 생각이 끝에 도달한 때에는 여지없이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진 일련의 행동이었다.
"확실히... 각기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으로 도달했음에도, 지정된 의복을 착용하고서 마치 으레 있던 일인듯 활보하는 것은... 어쩌면 순례나 고행, 의식과 닮아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런 숭고한 행위와는 다르게 모두의 얼굴에 각자의 인간군상을 따른 표정이 담겨있으며 복장 또한 진중하지 못한 것은 분명 이질적일 것이라 생각된답니다..."
그럼에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들 역시 저마다의 자아가 있으며 가치관이 있기에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도 목적은 하나를 향해 있을 것이다.
"...아마 그리 거창한 이유는 아닐테지요. 당신이 보기에도 그들의 표정에 즐거움이 묻어나오듯,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거랍니다.
누군가는 바다의 삼켜질 상황에도 아랑곳않고 파도를 즐기며, 누군가는 느긋하게 모래에 몸을 묻어 안락함을 노릴 것이고, 누군가는 고운 모래알갱이들이 사실은 땅을 이루는 암석의 일부였음에 감탄할 것이며, 누군가는 얕은 물가에서 서로에게 물을 튀기며 웃을 것이고, 누군가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그런 분위기 자체를 마음 속에 담아두겠지요..."
잠시 숨을 고르다 말을 이어나가는 표정엔 이전에 그랬듯 오묘한 감정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필시 그 속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피어오르고, 당장이라도 발산할것 같지만, 종장엔 그 모든 것들이 함께 섞여들어가 지금처럼 미묘한 표정을 만들어내고 있듯... 그렇기에 그 무표정에 가까운 모습은 어쩌면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아우러져 도출된 결과였을 것이다. 마치 검은 단백석처럼,
"물론 바다라는 것은 필멸자들에겐 적잖이 위험한 장소임엔 틀림없으나, 그렇기에 더더욱... 예로부터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서라면 위험도 감수하며 나아간 인간다운 행동이 아닐런지요? 어쩌면 모두가 그런 '흥미가 동하는 것'에 각자 다른 이유를 들어가며 끌려오기에 하나둘씩 모여든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렇기에 즐거운 것이구요."
그러고선 가볍게 눈을 접어가며 그녀에게 웃어보였을까, 부던히 노력한 결과지만 누가 봐도 확실한 미소라 느낄만큼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꼭 그 즐거움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답니다.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그 모든 것을 사랑스레 바라볼 수 있다면, 곧 즐거움이 그 뒤를 따르는 법일테지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당신에게 있어 길잡이가 되면서도, 함께 발 맞추어 걷는 이 순간을 즐기는 저처럼요."
(뒹구르르)(척) 갱신이에요!! 오자마자 일상이라. 이번 수학여행은 정말 최대한 많이 돌려볼 생각이지만 요이카주가 언제 이을지 알 수 없어서 손이 하나 비기는 하지만... 다른 분들도 돌리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네주 입장에서 치아키는 본지 얼마 안된 이 같기도 해서 조금 애매하기도 하고...
배부르게 먹고 왔어. 이제보니 아침보다는 아점이었네. 😋 하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수학여행 갔으니....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 모처럼 아르바이트도 신경 안 써도 되고, 바다도 가깝고 하니까 조개껍데기 줍다가 사진찍다가 하면서 나름대로 쉬고 있지 않을까~! 🤗
대나무들이 지어낸 이야기 중에 그런 것이 있었다. 벼락을 맞고 전도되어 버린 수천 년 수령(樹齡)의 고목이 깊은 샘에서 퍼 올린 정화수 부음을 받고 되살아났다거나 하는 이야기. 키구치 요이카는 그런 말을 아예 믿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죽어 버린 고목을 되살려 놓을 만한 강한 신통력이 서린 샘물이 실존한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한때 자기가 뿌리를 의탁했던 카모아시야마의 지하수가 그러했고, 또⋯.
『신의 신성한 기운을 품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관광 팸플릿에 의하면 이곳의 샘물도 분명히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관광 팸플릿의 약도는 井, 㐄, 升 이런 글자가 쓰여 있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도저히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왜 지도라면서 땅이나 나무, 바위의 모습은 전혀 나와 있지 않는지도 모르겠고⋯. 같은 모퉁이를 다섯 번째 돌아 나왔을 때 요이카는 길의 모습이 다 똑같은 게 아니라 자기가 똑같은 곳을 돌고 있다는 것을 겨우 알아차렸다. 내려가는 방법은 더더욱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여기서 발바닥을 땅에 묻고 여생을 다시 나무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할 즈음에 풍경에 생긴 변화를 하나 감지했다. 그것은 인간이었다. 인간? 신 같은 향기는 나지만 신의 기운은 전혀 없다. 인간이다. 인간이 지나다니는 길이라는 건 적어도 요이카 자신이 길이 아닌 곳까지 들어오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저쪽도 길 잃은 사람이라면 큰일이지만, 만약 이곳 주민이라면 저번 하루노하나마츠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안내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산을 내려가는 길도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막상 같은 학교 학생임을 알게 되자 횡재는 아닌 것으로 되었다. “⋯ 그런데 나도 그 샘을 찾는 중이야. 왜냐하면, 나도 가미즈나 고교 학생이거든⋯.”
요이카의 표정에 변화는 없지만 조금 시무룩해진 듯한 모습이다. 아니, 시들시들해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전에 여기 왔을 때라면 혹시 몇 년 전이야? 시간이 많이 지난 게 아니라면, 길이 갑자기 방향을 틀거나 하는 일은 잘 없거든.” 여기서 ‘많이’란 한 100여 년쯤을 의미하지만, 입 밖으로 굳이 내지는 않았다.
>>342 사진을 찍으러라. 샘이 있는 곳도 가지 않을까 예상을 해보겠어요! 물론 동굴 안이라서 사진이 잘 찍힐지는 모르겠지만! 혹은 근처에 낡은 신사도 있긴 하니! 와. 조개껍데기! 맞아요! 바다에 가면 조개껍데기 줍는 재미가 있는 법이지! 아무튼 잘 쉬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아요!
샘을 찾는 중이라는 말과 함께 가미즈나 고등학교 학생이라는 말이 들려오자 치아키는 오. 소리를 내면서 상대를 가만히 바라봤다. 대부분은 바다에 가서 놀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성스러운 샘이라는 곳을 보려고 하는 이도 있구나. 그런 생각에 괜히 반가운 기분이 들어 치아키는 입가에 미소를 가득 지었다. 하지만 뭔가 기운이 없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분 탓인가 싶어 치아키는 굳이 그 사실을 입에 담진 않았다. 의외로 그냥 태연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그렇구나. 그렇구나. 가미즈나 고등학교 학생이로구나. 그리고 샘을 찾는 중이라고 하면 아직 못 찾았다는 이야기구나. 하핫. 아. 일단 소개 정도는 해두는 것이 좋을까. 학생회장인 아이자와 치아키야. 회장이라고 불러도 좋고 혹은 아이자와라고 불러도 좋아. 몇학년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학교니까 괜히 반갑네."
한편 들려오는 물음에 치아키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애초에 몇 년 전에 온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굳이 말하면 한 달 전 정도일까. 애초에 길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그냥 확인차 현지인이라면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 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태연하게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한 달 전이지. 그러니까 여기에 조금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김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탐방도 했거든. 그땐 성스러운 샘이 있다고 하는 그 동굴이 닫혀있어서 안을 보진 못했는데 지금 시즌에는 볼 수 있다고 하니까 한번 가볼까 싶어서. 좋아! 너도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면 같이 갈래? 방향은 같을 것 같은데. 아니면 길만 가르쳐줄 수도 있긴 하고."
그래봐야 어차피 가는 방향은 동일했으니 결국 그녀가 앞장서서 가고 자신이 뒤에서 따라가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제안을 했으나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진 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치아키는 일단 상대의 댑을 기다리며 두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그렇고 의외로 그 샘을 보고 싶어하는 이도 있구나. 하기사 신의 기운이 담겨있다고 하니까 괜히 호기심이 들 요소기는 해. 정말로 신의 기운이 녹아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자세한 것은 >>0을 참고해주세요! 정확히는 그냥 다른 이와 페어로 같이 마츠리때 노는 건데 지금은 참여할 이들의 리스트를 정하는 단계이고.. 다음주에는 그 리스트 내에서 같이 돌고 싶은 이를 웹박수로 찔러서 페어가 되어서 마츠리 기간 때 같이 마츠리를 즐길 수도 있고 그래요. 이른바 내 눈호관덕캐님인 이 캐릭터와 같이 마츠리를 즐기고 돌수도 있는 그런 이벤트랍니다. 물론 확정인 것은 아니고 제가 찌름 화살표를 보고 페어를 맞춰주는 형식이지만요.
꼭 신청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이번 주에 일상을 돌리면서 페어로 같이 돌고 싶은 캐릭터에게 마츠리 때 같이 돌지 않을래? 하고 신청해서 승낙을 받으면 확정페어가 될 수도 있고 그렇답니다.
휴가라는 것은 좋다. 왜냐하면 원래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신계에서 인세로 내려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사는 것은 여러 제약점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그것은 바로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마시는 행위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술을 마시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여우신이란 본래 속임수와 누군가를 홀리는 일에 전문적인 신이었기 때문에 외견을 조금만 바꾸는 것과 신력으로 조금만 속임수를 주어도 꽤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케이를 아는 이에게 들켜도 형이라고 하거나 혹은 다른 이들에게는 인상이 흐릿하게 남도록 인상을 조절할 수도 있고.
이 리조트에는 최상단층에 바가 하나 있었는데, 리조트가 바다 근처에 있는 만큼 밤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광을 자랑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술 한 잔 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울 것 같아 간단하게 한 잔만 마시려고 올라오게 되었다.
“잭콕으로 한 잔.”
살짝 단추를 한두개 푼 흰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바지와 벨트. 값비싸 보이는 시계와 왁스로 신경써 넘긴 머리는 역시........ 아무래도 휴가를 나온 직장인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그러다 자신을 힐금 보는 옆 사람을 보니, 신이었다.
“안녕하세요.”
옆자리에 앉은 것도 인연인데, 게다가 신이라고 하니 더 친근감이 들어 인사를 한다.
“혼자 오셨어요?”
누가 들으면 유혹하는 듯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케이의 어투는 꽤나 담백해서 전혀 그런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장난은 아니긴 함.." 장난 생각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누울 거임... 이라는 말은 대충 들어도 100% 진심입니다. 진심이에요.
"못 믿으면 비밀만 지켜주면 오케이임." "믿기 힘든 말인 건 나는 알고 있음." "....조금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그나마 본인 말이 신뢰도가 높기 힘든 말이라는 건 아나봅니다. 다행이야. 굳이 뭐 증거니 뭐니 그런 건 귀찮으니 할 생각 없다는 생각인가 봅니다. 증거를 달라고 했다면야 일어나서 미카와 함께 바다속 걷기를 시전했을지도 모르지만(?)
"호기심이 들도록 하는 건 나였지 않음?" "뭔가 비밀 있는 것처럼 굴고 있다는 건 자각하고 있음." 어째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 이라는 듯 미카가 다시 고개를 돌릴 때까지 빤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밤바다는 밤바다지." 그다지 뭐... 심드렁한 듯하지만. 나름 운치가 있긴 하니. 창 밖을 물끄러미 봅니다. 하긴. 밤바다가 완전히 새카만 색이 아니니만큼..
"아" 처음이라는 것이었구나. 단골인줄 알았네. 라는 표정은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본인은 잘 숨길 거라 생각한 것 같긴 하지만. 그나마 여우라는 것에 놀라는 거일수도 있을까? 그 와중에 사야카는 버진 피냐 콜라다를 한 잔 더 시킵니다. 두 잔 정도는 안전권이라는 거였을까?
"여우였음? 그렇군." 고개를 끄덕입니다. 여우라서 좀 능숙한가보지. 라는 생각도 덤이다. 미묘하게 사야카가 타인의 인식을 흐리면 사람들이 좀.. 두려워하는 느낌이 있다는 기분을 느꼈어서 자연스러움에 오. 한 걸지도 모릅니다.
"두개 시켜서 나눠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나는 요즘은 그다지 많이 먹지 않아서." 샤퀴테리 플래터와 치즈 플래터를 봅니다. 아니면 뭐.. 하나 내에서 섞는 거 되냐고 물어도 좋고? 라면서 바텐더에게 물어보려 합니다. 가능하려나? 같이 먹는 걸 승낙한 거라 그런가..
"낮이나 밤이나 빛이 못 닿는 곳은 똑같이 차가우니까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저 깊고 깊은 심해라던가. 라는 말을 덧붙이며 쉐이커와 믹서기에 갈려지는 것들을 보는군요. 시킨 것 둘 다 한 용량하는 것들인 만큼 느긋하게 마셔도 좋은 것들입니다.
"그러게. 뭐라고 부르도록 하는 게 좋으려나." "카미는 좀 그런데.. 그나마 미코토가 낫나?" 히메는 솔직히 애매해서 카미나 미코토중에 알아서 부르라는 듯 고개를 까닥입니다.
"물어보니 가능하다니 다행이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무알콜 모히토의 얼음과 그에 붙은 민트 잎을 입에 넣어 녹이듯 우물거립니다. 청량감이 흐리게 숨에 묻어나오는군요. 불을 붙이는 칵테일은 다른 손님이 시키게 두고 가볍게 바에서 만난 인연은 바에서만 놔두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려나.
"다 마실 때까지는 어울리는 걸로?" *그리고 학교에서 만나면 미묘한 감상이 들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아서." 혼란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평범하게 누워있습니다. 이런 것만 보면 평범한 인간 같다가도 한순간 이상해지면 정말 이상해지는 존재인 사야카.
"종교학적 설명을 하자면 하루종일 할 수 있지만 그건 귀찮고" 물론 그게 미카가 원하는 답이 아닐 확률도 높았지만.
"어떤 존재냐 라는 것에 중점을 두자면. 가벼운 비유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건" "수명의 제약이 적은 편에 속하며 인간형태를 취하는 게 가능한 자영업자...에 가깝다고 생각함. 높으신 분들은 좀 큰 기업 느낌이려나." 신사가 클수록 자금의 융통에 조금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는 아무래도 그렇다고 생각함. 이라고 말하는군요.
“하긴 빛이 닿지 않는 곳은 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죠. 그런 면에 있어서는 좋은 면이 있지만 가끔은 심해에서 나와 반짝이는 물결을 보면 이전의 심해가 조금 지겨웠을지도,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신계는 마치 심해와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많은 것들이 변화하기도 하지만 어느정도 일정한 일들이 반복되고 돌고 또 도는. 하지만 인세에 내려오니 이처럼 화려하고 반짝이며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이 잔뜩이다. 그 옛날 내려왔을 때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카미보다는 미코토가 좀더 평범하고 이름 같은 느낌이네요.”
작게 웃음을 지어 말했다. 잠깐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하룻밤 말상대 같은 느낌이었다.
“좋죠. 음. 초면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음.... 최근에 겪은 가장 인상깊은 일이라던가, 원래 있었던 곳에 비해 이곳에서 느꼈던 점을 이야기 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아니면 이곳에서 신기했던 점이라던가.”
그리곤 또 잠시간을 말없이 걸었다. 저 앞에 바다가 보이고 바다냄새가 점점 더 진하게 코 끝에 걸리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기넘치는 목소리가 귀에 조금씩 들려오고 있다. 그 냄새가 진해지고 소리가 커지는 만큼 조금씩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열기가 자신마저 덥게 만드는가 싶어 리오는 쓰고 있던 마스크도 슥 내려 턱에 걸쳤다.
피어싱이 마음에 안든다거나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마스크가 답답해보인다거나 그도 아니라면 뭘까. 표정관리를 못 했다거나 아니면 옷차림이 이상하다던가 옷 안에 입은 수영복이 비쳐보여서 이상했다던가 하는 것일까. 당황한 티를 잔뜩 내보이고 말았다. 리오가 생각하기에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일 중 하나는 상대가 누구이던 간에 미움을 받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건덕지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 노력이 걸어가는 방향이 잘못된 길이었지만.
" 아. 다른 이야기구나. 후.. 다행이야. 치아키 오빠가 어떤 사람이던간에 말야, 나는 상관 없-어. 나도 좋은 사람은 아니거든. 3학년이니까 내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음- 듣고싶다면 나중에라도 이야기해줄게. "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다. 듣고싶어-! 하고 이야기한다면 말하기 싫은 마음을 억누르고 말해줄 수도 있다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의존증이 있어서 상대방을 힘들게 한다던가, 관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주제에 사람이 다가오면 밀어내는 이상한 성격에 기꺼이 제 몸에 상처를 입혀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들어버리고 집착이 심한 멘헤라가 눈 앞에 있는 사람이야- 하고 말한다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테니까.
" 응. 그럼 라인 받아둘까- 꼭 답장 해줘야해. 나, 귀찮게 안하려고 노력할테니까 꼭 답장해줘야해. 꼭이야. 늦더라도 꼭- 꼭 해주기야. 그렇다고 너무 오래 걸리면 안돼고. 그러면 나 슬퍼져서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
그냥 슬퍼진다고만 말할 수 있었을텐데. 리오는 핸드폰을 꺼내 라인의 등록을 마치곤 '이제 조금 더 친구야' 하고 말하며 살짝이나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몇 걸음을 더 걷다보면 드디어 반짝반짝- 에 도착이다. 바다다. 발 밑에 모래가 밟혔다. 리오는 막상 여기까지 와서 온갖 사람들이 즐겁게 놀고있는 것, 즉 인싸력이 충만한 것을 보자 속이 울렁거리려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음. 바다네' 하고 덤덤한 척 한 마디를 하고 끝냈다.
"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아. "
여기까지 나왔을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알고있잖아. 리오는 입술을 꾹 닫았다. 여기까지 나온 것은 바다를 보고싶다는 생각과 함께 저 생기넘치는 곳에 배경으로 섞여들어도 좋으니 친한 친구들 없이 혼자 섞여들어가보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해야한다. 홀로서기를 해보겠다고 했으니까. 하레하네, 사에, 치리쨩. 지켜봐줘.
" 나..나도.. 바,다에, 들어갈,래..! "
신발을 벗었다. 양말을 벗어서 가지런히 신발 안에 정리했다. 침을 꿀꺽 삼킨 리오는 다시금 '할 수 있어' 하고 중얼거리면서 탈의를 시작했다. 안에 입고온 수영복이 처음으로 햇빛을 받았다. 검은색 마스크 뒤로 숨겨진 얼굴이 빨개지는 기분이다. 리오는 '바,다다. 와,아.' 하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바다로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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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레느낌으로 받아도 되고, 더 이어도 되고! 일부러 조금 여운있게 남겨두고 싶었어~~~ 엄청 느렸는데 돌려줘서 고마워 캡푸틴... 치아키 상냥해서 좋았다구~~~~
또 다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말. 방금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그렇고 조금 더 무게가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치아키는 생각을 바꿨다. 물론 그렇다고 딱히 멀리하고 싶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조금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보통 이런 것은 굉장히 무게감이 있는 내용일테니 지금은 패스하기로 그는 마음 먹었다. 놀러온 곳에서 즐거운 기억이나 추억을 쌓아도 모자랄 판국에 무게감이 있는 이야기를 굳이 지금 해서 뭘하겠는가. 그리고 그런 무게감이 있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들어서 좋을 일은 없었다. 언젠가 자연히 알게 되거나 묻게 되거나 말해주거나 그런 날이 오겠지. 그렇기에 그는 그 내용은 살며시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하며 태연하게 자신의 라인 아이디를 알려줬다. 연락하고 싶을 때 연락하라고 이야기를 하며.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그 말을 들으며 치아키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이내 살며시 고개를 돌려 리오를 바라보다 미소를 지으면서 한 마디를 굳이 남겼다.
"그렇게 각오를 하는 이가 세상엔 생각보다 상당히 적어. 그러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는 것 자체에서 이미 발전하는거야."
굳이 더 말을 하진 않으면서, 그 말의 의미를 굳이 캐묻진 않으면서, 오로지 순수하게 그 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만 이야기를 하며 그는 물 속에 제 발을 담궜다. 시원한 에메랄드 빛 파도가 제 발을 물들였고 발목에 허벅지까지 철썩였다. 엄청 시원하네. 이대로 저 파도 속에 몸을 담그고 싶었으나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아. 수영복 가지고 올걸 그랬나. 오늘은 가볍게 산책이나 발목만 담그고 다음에 제대로 수영하려고 생각했었는데 뭔가 아쉽네.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목에 감은 수건으로 다시 한 번 땀을 닦았다. 그러다 바다에 들어가겠다고 이야기하는 리오의 말에 치아키는 고개를 살며시 옆으로 돌렸다. 수영복을 압에 입고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본격적이네? 좋아. 그러면 기왕 수영복 차림이니까 조금은 그에 걸맞게 어울려볼까나."
이어 치아키는 두 손으로 물을 뜬 후에 리오에게 아주 가볍게 뿌리려고 했다. 피하려고 하면 피할 수 있을테고 맞으려면 맞을 수 있는 그런 느낌으로. 싫어한다면 사과를 했을테고 반격으로 물을 뿌린다면 피하려고 하다가 아마 풍덩하는 느낌으로 바다 속에서 무릎을 꿇어서 바지의 아랫 부분이 확실하게 젖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건 아마 잠시 동안은, 그리고 조금은 더 길게 그녀와 어울리지 않았을까.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인연을 기억하려고 하면서.
/그렇다면 이렇게 막레를 줄게요! 이후의 치아키는 이랬다..라는 느낌으로! 이후에 만약 반격을 해서 치아키가 물에 빠졌다고 한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라고 하면서 돗자리를 빌려서 깔아놓은 후에 그 위에 핸드폰과 지갑을 따로 빼놓고 아마 수영을 즐기지 않았을까하고... 이후는 돌아가는 치아키가 알아서 했겠지! (어?)
적어도 제가 생각한 것처럼 운명론이 강세인 건 아닌 모양이다 미카는 적당히 대꾸하고선 다시 입을 다문다 신이 존재하는 이유라던가 무엇을 관장하는 게 있는지 굳이 신씩이나 되어서 학생 행세를 하는 이유도 물어보고 싶은 건 많지만 꾹꾹 눌러담는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마음이 더 큰 탓이다
"...앞으론 키리나즈메 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네."
혼잣말처럼 허공에 흩어지는 중얼거림 제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신이란 건 너무 생소하고 심지어는 두렵기까지 해서 아직도 쉬이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설마 꿈인가? 아무튼 상대가 무언가 다른 존재란 걸 알아버렸으니 예전같은 시선으로 보기가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내뱉은 말이다 목이 타는지 미카는 남은 캔음료를 목구멍에 털어넣는다
"그래도, 말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충격적인 사실과는 별개로 이를 말해주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기뻤다 큰 비밀을 거리낌없이 말해주었으니 신뢰하고 있다고 보아도 괜찮으려나
>>482 앗, 나 혼자서 혹시라도 누구하고만 돌린다는 말 나올까봐, 최고 두번의 간격은 두자! 하고 있던 것뿐이라서....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 거야~! 킵하는 건 나도 내일 출근하니까 오히려 괜찮아. 🤗 방금 일어나긴 했지만 그런 시간이 돼 버리면 자야겠지......... 😴
공부와 대입 이야기에 그녀는 한 마디 덧붙여 대꾸했다. “아하, 한창 바쁠 때죠.” 무용수에게는 대학 입시란 실패나 마찬가지기에—물론 학사 수료 후 입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석적인 엘리트 코스는 아니다— 입시와는 거리가 먼 인생임에도 고통에 통감했다. 필수 과목만 공부해도 힘든데, 저들은 무려 여덟 가지 이상을 소화해야 하지 않은가······. 수험생을 데리고 수학여행 오는 이 학교 또한 참 일반적인 편은 아닌 듯했다.
”으음······ 선배는 꿈이라든가, 가고 싶은 학교라든가. 있어요?”
대학에 신경쓰는 편이라면 역시 가미즈나를 떠날 계획일까. 그렇다면 아마 얼굴 볼 수 있는 건 올해가 마지막일 테다. 그 이후에는 자신도 이곳에 남아있지 않을 계획이고. 짧은 인연이지만 친애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다. 잠깐 상념에 잠겨 있던 미야나기는 뒤따르는 말에 한숨 쉬며 열심히 고갯짓했다.
“맞아요. 더운 거 진짜 싫어요······. 물론 몸 쓰는 사람한테는 부상 때문에 겨울이 극악인데, 개인적으로는 여름이 더 별로예요. 머리카락도 자꾸 달라붙고.”
그러면서 그녀는 조금 고민했다. ······겨울이 더 싫나? 추운 날씨에 몸 풀고 웜업하는 건 장마 기간에 땀 흘리는 것 못지않게 아주 불쾌한 경험이다. 발등 포인할 때 쥐 나면 진짜 죽고 싶은데! 쓰잘데없는 생각은 그리 길어지지는 못해 금세 끊겼다. 카운터에서 이내 그들의 주문을 큰 소리로 호명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아.” 하며 인사한 미야나기가 얼른 준비된 음료들을 챙겨 케이의 앞에 섰다.
“자, 여기! 체리콕 진짜 잘 마실게요. 그치만 다음 번에는 꼭 제가 사게 해주세요.”
앗싸, 곰돌이 모양 빨대. 이왕이면 갈색이었으면 했지만, 체리색을 착실히 고려했는지 분홍색 곰돌이다.
관장할 게 많아 고생이라 말한 부분에서 그는 싱긋 웃고는 슬그머니 또 시선을 돌렸다. 주변의 풍경 구경하는 것처럼 눈 피했는데, 부디 어색한 데 없이 자연스럽게 보였다면 좋겠다. 사실 할일이 많기 때문에 그가 제대로 일하는 경우는 놀러 다니는 때에 비하면 적은 편이었다……. 아니, 어차피 요즘은 나 믿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이렇게 농땡이치면서 지내도 별 문제 없더라. 직무유기까지는 안 저질렀다만 아무튼 찔리는 구석은 있으니 또 눈 피하는 개처럼 굴고 있다. 장난질에 노려보는 표정도 그렇게 넘기려다, 그러다가도 곧이어 전환된 화제에 맞추어 턱 짚으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을 한다.
"오… 그러면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낫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고통을 자처하고 싶지는 않아서."
흡사 명쾌한 답을 깨달은 사람처럼 손가락 척 들고 아하, 하는 표정을 짓지만 아무래도 명답은 못 될 답변이다.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일은 싫다는 뜻 아닌가. 즐겁고 명쾌한 것만을 좇기에 그는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 불변하는 것이 늘 나쁘지만은 않다지만 이만하면 철은 좀 들고도 남아야 하지 않나……. 하지만 그런 만큼 그는 자기객관화만은 잘 되는 듯했다. "내가 알게 될 때라면 이미 네가 먼저 알고도 남지 않겠어?" 어깨를 으쓱하며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아하니.
"근데 안 자고 나랑 얘기하고 있어도 돼? 나야 뭐, 불량학생이라 여기서 수업 빠져서 자고 가도 상관없는데, 넌 왠지 수업시간 잘 지킬 것 같은 학생이라서 말이지."
>>484 음. 저도 정 돌릴 사람이 없는 상황이고 기다려도 사람이 없으면 괜찮지 않나...라는 입장이기에! 그럼 돌려보죠! 일단 선레는.. 맡겨도 괜찮을까요? 제가 잠깐 씻고 올 생각이라서. 하네가 있을법한 장소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괜찮아요!
>>486 일단 안녕히 주무세요! 미카주!
>>487 혼자서 개인적으로 준비해서 띄우는 것까지는 말리 수 없긴 한데 불꽃놀이가 있는 날에는 띄울 수 없어요. 불꽃놀이가 있는 날에 띄울 수 있는 것은 신사에서 제공하는 등불 뿐인데 이건 2명이 함께 와야만 신사에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게 페어이벤트로 신청했느냐 안했느냐의 큰 차이점이에요. 아무래도 신사에서 나눠주는 것이 조금 더 멋진 디자인이기도 하고 좀 더 신성한 느낌이 들고 약간 분위기가 있는 법이에요!
"해, 달? 둘 중에 어디?" 안즈: 질문이 좀 불명확한 것 같은데... 내가 둘 중에 어디에 가깝냐는 말이야,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쪽을 고르라는? 일단 이왕이면 해가 좋기는 해. 스스로도 반짝반짝 빛나면서 다른 것들도 빛나도록 도와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멋지지 않아?
"핸드폰 번호 좀 알려줄 수 있어?" 안즈: 음... 어떻게 할까, 내 개인정보는 비싼 데 말야?
"회전문을 본다면..." 안즈: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지만, 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들어가겠지??
>>500 안즈는 해를 좋아하는군요. 뭔가 해가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요! 느낌이! 그리고...ㅋㅋㅋㅋㅋ 핸드폰 번호는 비싸지만 라인아이디는..어떻게 안될까요? (굽신굽신) 그리고 보통 저건..회전문을 보면 어떻게 할거냐..라는 물음이겠지만 저것 또한 답이지요! 답!
안녕하세요, 타카나시 하네입니다. 지금 제가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는 수학여행으로 전교생이 가미즈미 마을에 와 있어요. 전교생이면 정말 많으니까요, 교복을 입고 있지 않으니까 알아보는 일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니라면요. 그래서 최대한 무난한 사복을 골랐어요. 여름 길거리에 자주 보이고, 바닷가에서도 자주 보일만한 옷들이요. 아무 무늬도 없는 깨끗한 하얀 반팔티와, 연한 청색 반바지 같은 거요. 그리고 짙은 남색의 여름 남방을 걸칩니다. 얇지만 그래도 햇빛을 피하는데는 충분해요. 그렇다고 썬크림도 바르지 않는 건 아닙니다.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는 수학여행을 와 있는 동안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군데 군데 타버린 채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사람이 엄청.........’
여름철이니까요, 바닷가니까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계속 발을 옮겼어요. 그래도 해변가 끄트머리로 걷다가 걷다보면 인적이 조금은 드물어질 거라고 생각했고, 정말도 드물어지는 것 같아요. 인적이 드물면 제가 발장난을 쳐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발을 벗어두고, 발만 살짝 바닷물 속에 담가봅니다. 모래사장에 발자국이 남는 감각이나 시원하고 맑은 바닷물에 물장구를 치는 정도는 렌즈를 껴도 상관없는 걸요. 기왕 바다까지 왔으니까 바다 사진도 찍어보고요. 그런데 왠지 휴대폰 카메라가 담고 있는 풍경 속에 익숙한 사람이 담겼던 것도 같습니다.
‘학생회장 선배님?’
찍었던 사진을 다시 살펴보는데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습니다. 작게 나온 거라서 확대를 해봤지만 긴가민가해요. 누가 됐든 몰래 사진을 찍는 파렴치한으로 오해당하면 안 될텐데요!
"?" 안즈가 하는 말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고개를 돌린 게 한계라는 듯 고개가 들어올려지는 일은 없었다...
"점심시간에 자면 5교시에 깨어있을수 있는 걸지도 모름." 아주 조금 진지하게 말하지만 그다지 진담은 아닌 것.
"그정도 이상의 의미는 없으니까...?" 그리고 귀찮음이 제일 성가신 거니까. 라는 말을 하는 사야카입니다. 그리고 밝게 웃음짓는다거나. 안하겠다는 것에는.. 조금 당황할까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는 "빌릴 거면 빌리고..." 라는 말을 웅얼거리듯 합니다. 필기에 관해서 자꾸 말을 하는 건 귀찮은걸요. 엎어져서 다음 수업 시간까지.. 그래도 말을 걸면 대답을 합니다. 인간이었다면 사야카는 진짜로 수업 시간에도 잤을거라 자부하지만!
인간은 정말 대단하고, 즐겁고, 또.. 멋집니다! 이노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재밌었어요! 재밌는 여흥을 즐기게 해줬으니 지금부터 새빨간 머리를 가진 키 큰 친구는 이노리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 반열에 들었습니다.
"진짜? 이노리 잘 했어요?"
음, 세상으로는 모자란 것 같기도 하고. 하얀 치열을 드러낼 정도로 환하게 웃던 이노리는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고민하듯 손을 모으더니, 그대로 자신의 입을 꾹 누르며 눈을 요리조리 굴립니다. 어느 것이 좋을까요? 꽃과 들판, 해와 구름처럼 몽글몽글하고 원초적인 것도 즐겁지만 게임- 이라고 부르는 이 장소의 체험은 그것보다 더 멋진 모험을 상정했으니, 어떤 것이 좋을지 여간 고민이 아니더랍니다.
"으응- 그러면 이노리 저거!"
아 저거, 슈팅 게임이군요. 두 명이 들어가 의자에 앉고, 화면에 총을 겨누어 괴물을 무찌르는 흔한 건 슈팅 게임. 저것도 보통 2인용이니..
해변가 조용한 곳에 서 있는 치아키는 근처에 있는 작은 자갈을 주워서 바다를 향해 던졌다. 이른바 물수제비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러 번 수면 위에서 튕기다가 물에 퐁당 빠지는 것을 바라보며 치아키는 살며시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보다 조금 잘 안되는 탓이었다. 평소에는 열 번도 가능한데 이번에는 열 번도 되지 않아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는 모습에 영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쳇. 소리를 내면서 괜히 모래 사장을 발로 긁으면서 치아키는 살며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앞으로 걸었다.
그러던 와중 뭔가 낯익은 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실루엣 정도였지만. 사복차림이라서 바로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가만히 바라보니 자신이 아는 후배의 느낌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어 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일단 가깝게 다가기로 하면서 익숙한 실루엣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고 이내 상대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로 좁혀지자 바로 상대가 누구인지 인식할 수 있었다.
"오. 안녕! 안녕! 후배 양! 이런 인적 드문 곳에서 뭐하고 있어? 산책 중이야? 혼자서 조용히? 하핫. 만약 그렇다면 평화로운 산책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서 미안한걸?"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치아키는 가만히 사람의 여부를 확인했다. 딱히 지금 이 자리엔 자신과 그녀 이외에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혹은 있는데 자신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아무렴 어떠랴.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살짝 이마에 걸치고 있는 선글라스를 아래로 내려서 자신의 눈을 덮었다.
"아무튼 즐겁게 즐기고 있어? 물로 유명한 마을 가미즈미. 와. 니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니까. 덕분에 좋은 곳 구경도 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있고. 그러다가 이렇게 또 아는 이도 만나게 되네."
>>515 (동공지진) 아니.. 하지만 전에 이나바님이 고기 좀 달라고 이야기를 토아에게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끌려감)(행방불명) 아무튼 정말로 태연하게 받아주는군요. 일단 분위기를 맞춰주는 그런 느낌일까요? 오. 그리고 저렇게 말하면 포옹도 해주는거예요? 뭔가 마음이..마음이 넓다!
오늘도 강아지 같은 선배님입니다. 그래도 몇 번 만나고, 몇 번 대화를 했다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긴장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네잎클로버를 선물해주는 많이 좋은 사람이신 것 같으니까요. 인사하면서 고개를 숙이자마자 산책 중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서 답하고요, 그러기 무섭게 산책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버려 바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선배님의 옷차림을 살펴봅니다. 사진 속의 사람과 옷이 똑같아요. 작게 나왔다지만 몰래 사진을 찍은 것처럼 됐어요!
“그럭저럭입니다. 물을 안 좋아해서요.”
즐기고 있어요! 사진도 찍었고, 더 찍을 거고, 조개 껍데기도 주울 거니까요. 남들 보는 눈만 없었으면 모래성도 으리으리하게 짓고 놀았을 거에요. 물을 안 좋아한다고 말 해버리는 건 거짓말이에요. 물에 들어갈 수 없는 탓에 줄곧 해오는 변명입니다. 물을 싫어한다고, 무서워한다고 하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대부분 이해해주니까요. 선배님이 작게 나와버린 바다 사진을 내려다보다가 눈을 깜빡입니다. 들어가본 기억이 흐릿해요.
“여기, 찍혔어요. 필요해요?”
무언가 했는데 이제보니 물수제비를 하는 중이셨던 모양입니다. 바다에 파문이 일어난게 찍혔어요. 파도가 치는데도 물수제비를 뜰 수 있다는 건 신기합니다. 타이밍이 좋아서 순간을 찍어버린 것 같아요. 조용히 몰래 삭제하려고 했지만요, 그래도 나온 사람이 눈 앞에 있으니까 물어봅니다. 혹시라도, 그럴 일 없겠지만, 잘 찍은 사진은 아니어도 본인이 나온 사진이니 받고 싶어할 수도 있으니까요. 몰래 사진을 찍은게 아니라는 해명도 필요하니까 들키는 것보다는 먼저 말해버리는게 낫고요.
"아차. 내가 아는 2학년 후배 군 중에서 마찬가지로 이런 곳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고 말한 이가 있었는데 그런 케이스려나. 아하하. 하지만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줘. 학생회 내부에서도 여러모로 회의를 많이 했고 물을 즐기는 이들도 많고 여름이니 말이야. 역시 유명한 신사를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이런 쪽이 조금 더 취향이지 않을까 했거든."
물을 안 좋아한다는 그 말에 치아키는 면목없다는 듯이 제 뒷머리에 오른손으로 올리고 무안하게 긁으면서 시선을 회피했다. 물론 여기로 수학여행지를 고른 것에 대해서 후회는 없었다. 물이 좋지 않더라도 다른 놀거리도 상당히 많을테니까. 일단 신사도 있고, 다른 볼거리도 있고, 가볍게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이제 그런 곳은 이 후배가 알아서 잘 찾길 바랄 뿐이라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이내 뻔뻔하게 웃으며 두 어깨를 으쓱했다.
"응? 찍혔어? 누가? 내가?"
하네의 말에 치아키는 가만히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일부러 숨어서 찍은 것은 아닐테고 우연히 찍힌 것 같은데. 뭐 어떠랴. 몰래 숨어서 악의적으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면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오케이. 기념이니까 받아둘게. 그럼 나중에 학생회실로 보내줄래?"
물론 라인 아이디를 알려주고 여기로 보내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제안했을 때 이 후배가 과연 그에 응할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뭔가 묘하게 자신을 조금 꺼려하는 분위기가 이전에 있기는 했으니까 ㅡ치아키는 아직 그때의 손에 대한 발언을 잊지 않고 있었다.ㅡ 굳이 연락처 교환이라는 것을 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면... 키즈나히메님을 모시고 있는 신사로 보내줘도 상관없긴 하지만 이 수학여행이 끝나고 방학이 되면 토모시비 마츠리를 준비해야 해서 좀 많이 바쁠 것 같거든. 손님으로 온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학생회실 쪽으로. 괜찮을까?"
...학생회장 선배님한테는 다른 변명을 할 걸 그랬습니다. 선생님들이 찾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학생회에서 회의로 수학여행 장소를 정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물을 안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면 장소를 정한 입장에서는 멋쩍어지고 말 거예요. 그리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선배님은 무안한 듯 해보이고, 시선도 피하셨어요. 차라리 겨울을 좋아해서 여름은 별로라는 말이 나았을텐데 후회해봤자 늦었습니다. 왠지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닿는 바닷물이 시원한게 아니라 차가워진 기분이에요.
“네. 물수제비할 때요.”
직접 찍은 사진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건 민망하지만, 선배님이 나왔으니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마음 속에 되새기고 긴장을 힘껏 참아서 화면을 보여드립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을 찍고, 찍히고, 남에게 보여주는 일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해도 적응되질 않으니까요...
“싫습니다.”
학생회실에 보내면 학생회가, 신사에 보내면 신사에 있는 모두가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선배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먼저 확인한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버려요. 누가 찍었는지 모르게 할 수 있으면 상관없겠지만요, 제가 보내면 당연히 누가 찍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사진을 보내줄 것처럼 필요하느냐고 물어놓고, 보내줄 곳을 이야기해주니 싫다고 해버린 이상한 사람이 됐어요.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을 슬금슬금 들어올립니다. 얼굴을 가리고 싶어졌거든요... 선배님이 지금 선글라스를 쓰고 계셔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세상이 어둡게 보일테니 제가 뚜렷하게 보이진 않을 거에요. 이상한 사람으로 남을 순 없으니까 한 마디만 힘내서 덧붙입니다. 선글라스 덕분에 조금 산 것 같아요. 선배님의 시선이 어딜 향하는지도 모르겠고, 저도 다른 곳을 봐도 잘 모르겠단 느낌이니까요.
싫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 말에 치아키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전까지 보내주겠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학생회실로 보내달라고 하니까 이건 또 싫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을 들어올리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어지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싫다는 그 말에 치아키는 멍하니 선글라스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다 결국 작게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핫. 후배 양. 찍은 사진을 다른 이가 볼까봐 부끄러운거야? 그럼 나에겐 괜찮은거야? 그렇다고 한다면 내 입장에선 꽤 영광이긴 한데... 하지만 그게 아니면 나에게 사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라인 아이디 교환밖엔 없지 않아? 음. 좋아.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 내 라인 아이디를 알려줄테니까 사진만 보내줘. 딱히 내 쪽에서 연락하거나 하진 않을테니까."
이런 방식이면 괜찮겠어?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하네의 반응을 보려고 했다. 만약 이것도 싫다라고 한다면 그땐 어쩌겠는가. 사진을 지우는 수밖엔 없었다. 인화를 한다고 해도 결국 인화를 해주는 사진사에게 그 사진을 보여줘야만 하지 않는가. 자신도 곤란하게 하면서까지 사진을 가지고 싶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기에 치아키는 그 정도로 협의를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이거 알고 있어? 이곳의 물은 모두 과거의 신이 내렸다고 하는 성스러운 샘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어서 이 바닷물조차도 신의 기운이 녹아있대. 후배 양은 진짜일 것 같아? 아니면 그냥 적당히 꾸며낸 말일 것 같아?"
그녀는 자신이 아는 바, 자신처럼 신에게서 태어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과연 그녀의 관점에선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하나의 답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미소를 유지하며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영광일 리가요! 이런 걸 영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쓸모없고 별 볼 일 없습니다! 선배님한테 보여주는 것도 부끄럽지만요, 선배님이 나온 사진이니까 힘내고 있는 것 뿐입니다. 부끄럽다고는 단 한마디도 안 했는데 부끄럽냐고 물어보는 건 장난일까요, 아니면 부끄러워하는 티가 나는 걸까요? 차라리 장난을 치는 거라면 좋겠습니다. 티가 나고 있다면 바닷물에 잠수를 해서라도 숨고 싶어질 것 같아요...
“이놈한다고 하면 차단할 거예요.”
라인 아이디 교환은 너무 친구같은 일이에요! 선배님이 저를 친구 삼으실 이유도 없고, 저는 친구할 만큼 좋은 사람도 재밌는 사람도 아니니까요. 선배님은 마츠리에서 길도 찾아주고, 사탕도 주고, 네잎클로버도 선물해주고, 학생회 일이랑 신사 일도 열심히 하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라인 아이디 교환은 머뭇거리게 돼요. 개인적인 연락처를 주고 받는다는 뜻이니까 역시 부끄럽습니다. 제 연락처를 드리는 건 상관없지만, 연락처를 받는 건 받아도 되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끊기지 않게 돼요. 근데 선배님은 아이디를 알려준다고 하셨습니다. 제 아이디를 알려주겠다고 우기는 것도 변명이 생각나지 않아서 머뭇거리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라인에서 아이디로 친구 추가하는 화면을 띄운 다음에 선배님에게 폰을 건넵니다.
“......오컬트마니아에요?”
신과 관련된 질문은 생각을 많이 하고 답해야합니다. 보통은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게 대부분이니까요. 저는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났고, 그래보여야 하니까 답을 잠시 고민해요. 진짜일 것 같다고 말하는게 신이 있단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겠죠? 아니에요, 안전하게 어느 쪽에도 치우쳐지지 않는 답이 나을 것 같습니다.
졸려서 머리가 빙글빙글이라 잡담은 거의 못 했네.... 🥲 늦었지만 사야카주 잘 자고 좋은 밤 보내. 푹 쉬어. 이노리주도 잘 쉬길 바라고. 캡틴도 잘 자. 😴 토아주도 자러 갔으려나? 자러갔으면 푹 쉬고 좋은 밤 보내자. 그리고 나도 자러 가볼게.... 😴 다들 이틀만 견디면 주말이니까 목요일 힘내자! 🤗
꿈이라. 케이는 조금 먼 곳을 바라보며 긴 세월을 훑었다. 이전에는 꿈이라고 해야하나 목표라고 해야하나, 그런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실 잘 모르겠다.
"글쎄요. 캠퍼스 생활이 재밌을만한 곳으로 가고 싶달까요. 그럼 후배님은요?"
꿈이라거나 목표라거나 같은 것을 묻는다. 캠퍼스 생활이 재미있을 만한 곳이라. 조금 이상할지도 모를 조건일지도 모르겠다. 가미즈나에 계속 있을 지 아니면 다른 도시로 갈지는 굳이 생각해본 적이 없기도 했고. 지금은 선생님이 얼른 정하라고 하니까 생각하고는 있지만 막 당장 끌리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나름 학창생활을 즐기면서 공부도 적당히 하고 있는 것 뿐이라서. 자신의 꿈 이야기보다는 사에의 목표나 꿈 같은 게 더 흥미진진할 것 같다.
"하긴 겨울엔 조심해야겠네요. 저는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겨울은 괜찮은데."
카운터에서 음료가 나오자 사에가 금방 음료를 챙겨온다. 빠릿한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음료를 받으며 감사 인사를 하다가 이어진 말에 쿡쿡 웃는다.
"이렇게 한 번 씩 돌아가면서 사는 거에요?"
그런 것도 나쁘지 않지. 곰돌이 모양의 파란 빨대로 주스를 젓자 동그란 얼음들이 부딪히면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동그란 얼음 모양에 기분이 좋아지는 게 조금 민망한 생각도 들었지만.
빨대로 내용물을 마시니 그제야 갈증이 풀렸다. 가격이 바가지가 좀 있었지만 내용물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아니. 보통은 말이지.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은 싫습니다..라고 하면 대부분 다 그런 느낌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후배 양의 속 뜻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서도. 아하하."
그럼 대체 무슨 이유로 다른 이가 보는 것은 싫다는 말인가.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주기 싫은 이유는 십중팔구 부끄러워서가 아니던가. 아니면 뭐일까. 자신들의 나잇대에 흔하게 겪는 사춘기 그런 것일까. 사실 평소에 자신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약간 툴툴거리거나 조금 부정적 의미로 말하는 것도 그렇고. 역시 잘은 모르겠다는 듯이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 자신에게 안 좋은 그런 느낌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지.
한편 라인 화면이 띄워져있는 핸드폰을 내밀자 치아키는 빠르게 자신의 아이디를 추가해서 그녀에게 돌려줬다. 그 와중에 이놈하면 차단한다는 그 말에 치아키는 키득키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에 만났을 때 말한 이놈이 은근히 기억에 많이 남은 것일까. 또 이렇게 보면 귀여운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못된 짓을 하지 않으면 학생회장이 이놈 할 일은 없을걸? 하핫. 그때 많이 놀랐나봐? 이렇게 인용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야."
아마 부정하려나? 그렇게 나름대로 대답을 예상하면서 치아키는 싱글벙글한 표정을 보였다. 묘하게 장난을 치고 싶지만 장난을 치면 정말로 홱 삐지거나 도망치듯이 가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진 못하며 그는 두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에도 살짝 장난기가 도는 것은 사실이라 주머니에 넣어둔 사탕을 손으로 만지면서 사탕을 몇 번 굴리다가 결국 꺼내진 않고 오렌지 맛 사탕을 꺼내서 그는 제 입 속에 쏙 집어넣었다. 향긋한 시트러스 향이 녹아있는 진한 오렌지 맛 사탕을 입에 담으며 치아키는 자신의 물음에 대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쪽이든 자신이랑은 상관없다. 그 말을 들으며 치아키는 두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말하자면 오컬트보다는 신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 난. 그렇지 않아보여도 신사의 아들이잖아? 그래서 그런가 신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그런 것에는 관심이 많은 편이야. 이렇게 전해지는 이야기의 뒤에는 어떤 진실이 있을까...라는 느낌으로 말이야. 가능하면 그 전승의 신을 만날 수 있고 직접 들어봤으면 좋겠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 아마. 애초에 내 앞에 나타나지도 않을테고."
아마 전승이 사실이라면 어지간하면 이 마을 어딘가에는 그 샘을 보내줬다는 신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인간이기에 그 신을 탐지할 수 없었다. 이럴 때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것이 조금 안타깝다고 생각하면서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그의 표정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치아키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신발을 벗고 철썩이는 파도에 발을 담그면서 근처에 있는 낮은 바위에 조심히 걸터앉았다. 그 상태에서 가볍게 발로 물장구를 치니 가볍게 물이 위아래로 튀었다. 그 상태에서 치아키는 하네를 바라보면서 가볍게 물었다.
"와. 역시 물이 좋아서 그런가 엄청 시원하네. 이런 곳에 수박을 넣고 시원하게 식히면 그게 또 꿀맛인데 말이야. 아. 그건 그렇고 너는 신을 싫어해? 혹시?"
“명문일수록 재미없다는 것도 다 옛말이라던데. 대학 생활도 한 번쯤 해보고 싶긴 해서 좀 부러워요.”
눈까지 반짝반짝 빛내며 말하는 게 진심으로 꽤나 부러운 모양이다. 한창 숙제를 괜히 ‘조별과제’라고 부르거나 교사를 ‘교수’로 부르는 둥 대학에 희한한 로망이 있을 나이대이니 그녀가 유달리 별난 건 아닐 테다. 거 반 학기만 다녀봐도 생각이 180도 바뀔 텐데······. 반대로, 이번에는 자신에게 같은 질문이 돌아오자 미야나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레쳤다.
“저요? 에이, 들어봤자 진부한 꿈이에요. 흠······ 뭐가 좋을까. 은퇴하고 나면 발레 마스터 되고 싶은 거? 수석 출신 발레리나가 나이 들어서 마스터로 일하는 게 너무 멋있더라고요. 아, 그리고 엄마랑 같이 사는 거.”
마스터! 되면 나 완전 잘할 것 같지 않나? 무대 서는 것보다 적성일지도. 우스꽝스럽게 허공에다 핸즈온 하는 척하며 “무릎 끝까지 펴시고, 풀업 제대로 하세요.” 하고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말고 번갈아 사자는 말에 얼른 “안 사주셔도 괜찮다는 말이에요!” 하며 대꾸했지만. 음료를 건네준 미야나기는 이내 발개진 뺨에 얼음컵을 가져다대고 냉기에 한껏 취했다.
남궁 린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흘리지_못한_눈물이_비가_되어_내리는_세계가_있다면_그_세계의_평균_강수량은 가뭄이라서 거기 사는 생물들 다 죽었잖아 남궁린 이자식 어떻게 책임질거야~!!!!ヾ(。`Д´。)ノ 참아서 흘리지 못한 눈물도 없고 솔직한 마음으로 흘린 눈물도 없을걸? 애초에 진지한 감수성이 없다시피 해서 슬픈 감정을 잘 모르는 편이라...
자캐_주변의_자캐에_대한_소문은 진짜 시끄러운 애... 수업 빠지는 애... 몽키어쌔신닌자류 소문이 대부분이라고 해 ◠‿◠
자캐가_외로움을_표현하는_방식은 우당탕탕 시끄럽고 활발하지만 독립적인 성향이라서 혼자 있어도 외로움은 안 느끼는 타입이고... 자주 말하지만 섬세한 감수성이 죽은 아저씨라 만약 외로워진다고 해도 자기가 외롭다는 걸 모를걸? 외로우면 기껏해야 '음~ 나 지금 심심한 것 같은데 다른 사람 귀찮게 해야지' ←이러고 모르는 사람이나 아는 사람 붙잡고 너뭐해 심심해 놀아줘 으아앙안놀아주면구질구질하게굴거임 이러면서 떼쓰지 않을지...🤦🏻♀️
>>552 으앗.. 그래도 그 말을 다르게 말하자면 린은 굳이 참지 않고 눈물을 흘린다는 그런 거잖아요! 그럼 된거예요!! 그러면 된거야! 긜고 몽키어쌔신...ㅋㅋㅋㅋㅋㅋ 으악. 혹시 상자 안에 숨어서 막 움직이고 그런 것은 아니죠?! 음. 때쓰는 린..이건 맛있군요. 한번 보고 싶다! 치아키가 당해라!! (안됨)
찔리는 구석에 당신은 시선을 피하지만, 바라는 대로 자연스러웠던 것인지. 미유키는 그 시선 피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바쁠 당신을 걱정할 뿐이다. 그리고 고민하던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서 미유키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얽매이고 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텐데. 맺는 관계에 대해서, 그것이 가져올 불안과 같은 감정들,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도저히 자신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것이므로.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을 테니. 그저 막연히 선망할 뿐이다.
"글쎄요. 그 고통을 감내할 만큼 사랑할 것도 없는걸요. 이후로도 없을 것이고요."
그러니, 자신보다 당신이 먼저 알게 되겠지. 미소 띤 얼굴로 미유키는 당신에게 답하고서 이어지는 물음에 어깨를 으쓱인다.
"나도 착한 학생은 못 되는걸요."
능청스럽게 눈을 깜박이며 농담일지 모르는 말을 하지만. 불량 학생 역시 못 되는지. 미유키는 아쉽다는 듯, 당신과 주변을 둘러보다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제 옷을 털어낸다. 몰려온 피로를 아직 채 밀어내지 못한 것이었기에. 수업에 들어간다면 분명 꾸벅꾸벅 졸게 분명하였지만. 당신과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그걸로 되었을까. 미유키는 당신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은 잘 지키는 학생이지요. 응. 아쉽지만. 슬 시간이 되어가니까. 먼저 가볼게요."
하며 눈웃음치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 하면서 막 떠나려던 미유키는 잠깐 걸음을 멈춘 고서 당신에게 묻는다.
“그렇게 좋게 말씀해주시니까 좀 부끄럽다. 그, 이게 워낙 수명이 짧은 예술이라 그 뒤까지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제가 특별히 멋진 게 아니에요.”
멋쩍은 듯 검지로 뺨을 긁으며 열심히 해명하려 들었다. 말마따나 특히 토슈즈를 신고 전막을 소화해내야 하니만큼, 짧은 수명 운운은커녕 제 수명을 무사히 채우고 무대를 내려올 수 있기나 바라야 했다. 문득 미야나기는 케이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옮기다 비로소 채 마르지 않아 젖은 옷을 자각한다. 찝찝해서 돌아가고 싶어하는 눈치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계속 붙잡고 있는 것도 오히려 난처하기만 할 테지. 그녀는 황급히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길을 터주려 했다.
“아······ 그럼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
그러면서 자신도 이내 객실로 돌아가버릴까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선배 만나게 돼서 좋지만 애초에 하루 종일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할 계획이었는데 땡볕에나 나오고 신발에 모래 잔뜩 들어가고 피부 완전 홧홧하고 이게 뭐람······. 속으로 오만 불평불만을 중얼중얼 나열하던 미야나기의 얼굴에 금세 다시 화색이 돌았다. 잠깐 뜸들인 후 덧붙인 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우와, 정말요? 저는 당연히 너무 좋죠! 선배 언제 시간 되시는데요?”
좀 이따가? 아니면 저녁에? 내일? 객실에 틀어박혀 있겠다는 다짐은 어느새 말끔하게 사라지고 난 뒤였다.
>>552 오마이가뜨... 이 진단 정말 <젯따카와이> 슬픔을 모른다는 건… 좋은 거야 린탸 눈물 흘릴 일 업는 이유. 린탸 눈에서 눈물 안 나도록 내가 ‘평생 지켜줫음’ 어. 근데 구질구질하게 구는 건... 제법 좋구나… 눈물은 안 흘리되 외로웟으면 좋겟구먼 왜냐 앵기는 모습 제법 귀여워(저기요)
이제 막 저녁 시간대로 접어드는 때 미카는 지금도 여전히 하는 거 없이 리조트 라운지의 구석진 소파에 들어앉아서 멍하니 스마트폰이나 쳐다보는 중이다 방으로 들어가서 낮잠이나 자려고 해도 도저히 잠이 안 오는 바람에 그래도 에어컨 하나는 빵빵하니 좋다 스마트폰을 몇 번 만지작대던 미카는 결국 화면을 꺼버리고 테이블 위에 대충 올려놓는다 그러더니 등받이에 기대고서 눈을 감는다 생각이 많아진다...
리조트 내에 있는 매점에서 정말 이것저것 맛있는 간식거리를 산 치아키는 한 손에 간식이 가득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푸딩, 사탕, 초콜릿, 감자칩, 그 외에 빵이라던가. 아무튼 오늘 저녁에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확실하게 구입했으니 이제 한동안은 간식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대로 바로 방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잠시 주변을 둘러볼까 생각을 하던 치아키는 잠시 주변을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들어온 것이 다름 아닌 라운지였다. 딱히 목적을 가지고 발을 들인 것은 아니었으나 발 닿는 곳으로 왔다갔다하다보니 들린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뭐 재밌는 거 없을까. 하면서 두리번거리는 와중 소파에 앉아있는 미카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뭐지? 자고 있나?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바로 눈에 보였기에 치아키는 바로 말을 걸진 못하고 빤히 미카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곳에 두는 것보다는 역시 방에 가서 자게 하는 것이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미소를 지으면서 미카에게 다가갔다.
"방의 침대가 아니라 소파에 앉아서 자고 있는 거기의 후배 군. 잘 거면 방에 들어가서 푹신한 침대에 눕는 것이 어떨까? 하핫. 여기서 자려고 하면 시끄러워서 잠도 못 잘 것 같은데. 나라던가. 나라던가! 나라던가!!"
이른바 삼단 강조를 사용하면서 치아키는 두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키득키득 웃으면서 이내 그는 미카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세 번째로 만나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학생회 권유 이야기는 해보겠다고 했지? 삼고초려로 말이야. 그래서 생각 있어? 물론 없어도 땡큐!"
/당연하지만 그냥 장난으로 권하는 거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리고 쥰주는 어서 오시고 안녕히 가세요!
"아. 자는 거 아니었어? 그렇다면 깊은 고뇌에 빠져있었나? 그렇다면 미안. 미안. 난 또 자는 줄 알았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치아키는 그래도 미안하다는 듯이 괜히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자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으니 적어도 자신의 책임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입에 담진 않았다. 입에 담을 이유가 없었기에. 아무튼 자신의 제안에 세 번째 거절을 하는 미카의 말에 치아키는 알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냐. 아냐. 아냐. 괜찮아. 괜찮아. 애초에 나도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이것도 어디까지나 저번에 말했던 삼고초려처럼 한 것 뿐이니까. 그러니까 죄송해하기 없기. 사실 지금 시점에서는 크게 임원이 필요한 것은 또 아니거든."
이미 여름이 되었고 머지 않아 여름방학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굳이 학생회가 더 필요하거나 한 일은 없었다. 사실상 봄 시즌때 정말로 바쁜거지. 여름에는 크게 바쁜 것은 없었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가을에 있을 학교 축제가 아무래도 조금 바쁘지 않을까. 그러나 그건 그때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후배 군.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 학생회장님이 지금은 프리하니까 고민이 있다면 들어줄 수는 있는데 말이야."
고민거리가 있거나 한다면 자신에게 얼마든지 말해보라고 이야기를 하며 치아키는 이내 다시 한 번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제 손에 있는 비닐봉지를 바라보더니 그는 미카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후배 군. 푸딩 좋아해? 간식거리를 샀는데 바나나 푸딩 정도라면 내가 하나 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살아온 세월이 길었던 만큼 지금껏 사랑이며 낭만과 같은 이야기를 여럿 접해보았다지만 그중 하나라도 와닿았다면 이런 답 모를 한담을 하고 있지는 않았으리라. 갖은 기법과 표현으로 정제한 사랑의 찬미는 분명 그에게도 막연한 감명을 선사할 수는 있었으나, 그렇기에 언제까지고 동떨어진 개념처럼 요원하게만 보일 뿐이다. 서로 약속이나 한듯 일말도 기대하지 않고 있는 이 둘의 일이 앞으로는 어떻게 풀릴지 모르겠다. 지금까지처럼 모르는 채 살더라도 나쁠 것 없고 누군가는 알게 되는 때가 온다면… 아, 이렇게 되니 번뜩 실없는 생각 하나 스친다.
"그럼 내기라도 할까? 먼저 아는 쪽이 지는 거 어때? 이겨서 얻는 건…… 뭐, 꼭 대가가 있어야 내기 성립되는 건 아니니까 일단 없는 걸로 치고."
별것 아닌 딱밤 때리기 가위바위보에도 환장하는 그가 이런 생각 놓칠 리 없지. 눈 반짝거리는 눈치 보아하니 수락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저 혼자 성립됐다 칠 게 뻔했다. 그러고선 그는 뒤쪽에 자리잡은 나무기둥을 지지대 삼아 늘어지게 기댔다. 거칠하고 단단한 나무껍질이 거슬릴 법도 하지만 뭐, 이미 풀밭에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했는데 그런 걸 신경이나 쓰겠나. 미유키가 떠날 준비를 하는 것과는 반대였다. 착한 학생은 못 된다고 말하지만 어디로 보나 제법 착실해 보이는데 말이다. 낮에 조는 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니 어쩔 수 없는 거기도 하고. 떠나려는 미유키에게 살래살래 느긋하게 손 흔들어 보이다 들려오는 물음에 참, 새삼스레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복잡하게 신명 인명 두 번 소개할 필요 있나. 그는 잠시 생각하다 간단하게 말하기로 했다.
그의 성향을 생각해봤을 때 이렇게 괜찮다는 식으로 거절할 것은 눈에 보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목소리 역시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톤이었다.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아니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애초에 자신보다는 좀 더 친한 친구가 있거나 한다면 그 애에게 털어놓거나 하는 일은 분명히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튼 바나나 푸딩에 관심을 보이는 미카의 모습에 치아키는 미소를 지으면서 비닐봉지 내부를 뒤적거리다가 편의점에서 파는 바나나 푸딩을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아래에는 작은 나무 스푼도 함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푸딩을 맨 손으로 먹을 수는 없으니까.
"자. 여기! 여기 간식거리가 얼마나 좋은지. 아주 편의점 안이 가득 찼다니까. 가미즈나에는 없던 것들도 있고 가미즈나에는 있지만 여기에는 없는 것들도 있고. 괜히 신기해서 구경한다고 시간을 또 보냈지 뭐야."
대수롭지 않은 잡담을 이어가면서 치아키는 적당히 그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내부에서 초콜릿 바를 꺼낸 후에 그 포장지를 까고 입에 물었다. 초콜릿 향과 특유의 단 맛이 혀에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치아키는 숨을 후우 내뱉었다.
"수학여행지인데 좀 가본 곳 있고 그래? 여기는 물이 유명하지만 물이 없어도 여기저기 돌아다닐 곳은 많을텐데 말이야."
"당연히 그래야지! 이런 리조트에서 파는 건데! 이런 곳에서 파는 것은 아무래도 질 좋은 그런 상품이 많지 않겠어?"
가격도 조금 있긴 했었지만 굳이 그 부분은 거론하지 않으며 치아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대신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초콜릿 바를 냠냠 먹은 후, 그는 손수건을 꺼내서 자신의 입가를 닦았다. 연하게 묻어나오는 갈색 초콜릿을 확인한 후, 치아키는 이내 손수건을 다시 접은 후에 자신의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었다.
"바닷가 산책? 확실히 여기 경치도 괜찮긴 하지.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스파 같은 곳도 가면 좋을텐데. 수영은 하지 않더라도 몸에 물을 담그면서 피로는 풀 수 있잖아."
자신도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수학여행이 끝나기 전에는 꼭 가고 말거라고 이야기를 하며 치아키는 살며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눈을 감았다. 이래서 눈을 감은거구나. 굉장히 바람이 시원하고 좋네. 그렇게 전혀 상관없는 일을 생각하던 그는 오른쪽 눈만 살며시 떠서 윙크하는 모습을 취하고서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면 다음엔 성스로운 샘이 있는 곳으로 가보는 건 어때? 그 샘이야말로 여기 아니면 절대로 못 보는데. 딱 지금 시기만 볼 수 있기도 하고. 내년에 샘 하나 보겠다고 여기에 오는 것은 조금 그렇잖아?"
기왕 이곳에 왔으니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면서 치아키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샘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이야기했다.
"사실 말이 좋아 샘이지. 그것은 호수야. 호수. 동굴 안에 있는 호수. 진짜 맑고 깊고 완전 넓다니까. 거기다가 물도 굉장히 시원하고 좋아. 정말."
여기에서까지 당신은 재미를 찾는 것일까. 당신의 눈치를 보고서 미유키는 말없이 웃는다. 영원히, 자신은 알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만큼은 분명하였고, 그의 제안은 저에게도 재미있는 것이었기에. 미유키는 경쾌한 목소리로 "좋아요." 하며 대답했을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금에서는 정하지 못한 대가로 당신에게 무엇을 받아야 할까, 고민하게 되는 것일까. 당신의 이름을 들은 미유키는 고개를 끄덕인다. 남궁 린, 당신의 인간으로써의 이름. 소리 내어 발음해보고선 당신의 물음에 눈웃음친다.
"미유키. 이토이가와 미유키에요."
하며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떼어내니, 따라 당신에게도 손 흔들고서 시야 밖으로 멀어져가는 것이다. - 끝내면 되겠네요. 돌려줘서 고마웠어요.
이건 또 의외의 물음이었다. 신이라는 것이 진짜로 있을까? 라는 물음. 그런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을 것 같았기에 꽤나 뜻밖의 물음이었다. 일단 그 물음은 혼잣말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자신에게 묻는 말인 것 같았기에 치아키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대놓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신일까. 아니면 그저 평범한 인간일까. 일단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에 그는 평범한 인간에게 할법한 말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건 전승이나 그런 것들도 꽤 퍼져있고 신을 모시는 사람들도 있고, 신을 믿는 이들도 있으니까. 물론 그 신이 우리가 아는 그 신과 완전히 동일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 정도면 무난하겠지. 딱히 이상하게 생각할 부분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스스로 말한 답이 꽤나 대견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뿌듯함을 마음 속으로 만끽했다. 그러다 괜히 헛기침 소리를 여러 번 내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후, 이어 손에 쥔 초콜릿 바를 마저 꿀꺽 삼켜버리고서 좀 더 편안하게 자리에 앉았다.
"무엇보다 후배 군이 신을 만약 믿는다고 한다면 실제로 있을거야. 하지만 믿지 않는다면 없는 것일테고. 그런데 의외네. 후배 군. 신이나 그런 전승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없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관심이 생길만한 일이라도 생겼어? 하핫. 그렇게 말을 덧붙이며 치아키는 살며시 미카의 눈치를 살폈다. 순수하게 갑자기 이런 것을 왜 묻는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최근에 관심이라. 뭔진 몰라도 일이 있긴 있었구나? 하핫. 오케이. 오케이. 굳이 묻진 않을게."
갑자기 신에게 관심이 생긴 이유는 치아키도 추측할 수 없었다. 신을 본 것인지, 아니면 갑자기 종교에 관심이 생긴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인지. 가급적 세번째는 아니길 바라면서 치아키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것은 굳이 캐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치아키는 호기심을 잠시 가라앉히려고 했다. 혹시나 신에 대해서 들은 것이 생겼거나 신을 만났다고 한다면 잘못 말하게 될 경우엔 그녀가 천벌을 받을 수도 있었으니까. 일단 미카는 자신이 신의 손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치아키는 핸드폰을 꺼낸 후에 자신이 직접 만든 '키즈나히메' 모양의 인형이 담겨있는 사진을 보여줬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키즈나히메를 본따서 만든 인형이었다. 물론 키즈나히메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이들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치아키는 이어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기했다.
"혹시 모르지? 가미즈나 마을을 지켜준다고 하는 키즈나히메님은 이렇게 생겼을지도?"
장난스럽게 쿡쿡 웃으면서 치아키는 괜히 어깨를 으쓱한 후에 잠시 말을 고민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들어 에어컨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그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신이 진짜로 있어도... 의외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지도 몰라. 그야 뭐 우리나라에 신이 그렇게 많으니까 신들이 살아가는 사회라던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우리와 은근히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면 신자를 얻겠다고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뭔가 로망이 없잖아! 그러니까 패스. 패스."
빨리 넘겨버리겠다는 듯이 치아키는 오른손으로 휙휙 넘기는 시늉을 하면서 꺄르륵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미카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확실한 것은... 이 나라에 다양한 신들이 있는 만큼, 신들도 분명히 다 다를거야. 혹시 알아? 키즈나히메님은 인연의 신이니까 의외로 순정만화를 정말로 좋아할지. 하핫."
음~ 확신의 오레남이지! 젊은 소년~청년!이라는 이미지도 있고 예의랑 격식 측면에서도 이게 맞는 것 같아~ 실제로 아무한테나 반말쓰고 다녀서 예의 없는 편이기도 하니까~ 일코 off했을 때는 와시+할아버지 말투야. 점잖고 위엄있기 보다는 진짜로 그...우리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랄지...(?)
후루토는 제 손 안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떤 말을 골라야 적절할지 생각하는 것처럼. 얼마되지 않아 그녀는 금방 이렇게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그것들은 맛이 좋았습니다. 다른 신들이 어째서 필멸자들에게서 '공물'을 취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렇구나. 결국은 맛이구나. 신이라는 존재치고서는 상당히 원초적인 지적이었다. 하기사 신의 입장에선 인간이 만든 술과 음식이란, 자신네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공물인지도 모른다. 음식이라는 것의 의미 중 하나는, 시간과 노력의 결정체이니까. 다만 이 신은 이제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아서는 여태껏 그럴 기회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어떤 이유가 있어 받지 않았던 건지... 했던 것 같지만. 그리고 문득, 후루토의 시선은 당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빤히. 당신이 무안해 할 정도로 빤하게 얼굴을 바라봤다... 그렇게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그녀가 늘 그랬듯 단지 표정과 눈빛으로 의도를 읽기는 어려워보였다.
"필멸자여... 당신은 지금이 즐거운 겁니까?"
그러던 와중에 그녀는 입을 열어. 당신에게는, 당신이 방금 말한 것을 되묻는 것 같은 물음을 건네어왔다.
시선을 피하고 싶어집니다. 선배님은 분명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시선이 맞춰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부끄러워서 보고 있기가 어려워요. 정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게 싫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바로 부끄럽냐고 물어보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제가 찍은 사진을 보는게 싫다고 하지는 않지만요, 잘 찍었다거나 남들 보여주기 부끄럽지 않은 사진이 아니니까 보여줄 수 없을 뿐입니다. 속으로만 부끄럽다고 하고 선배님한테는 절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놀란 적 없거든요?”
다시 돌려받은 휴대폰 화면에는 선배님의 라인 아이디가 추가된 화면이 떠 있습니다. 사진을 보내줘야 하니까 바쁜 척, 집중해야하는 척 하면서 휴대폰에 시선을 꽂아요. 그때 많이 놀랐지만, 그건 선배님 탓도 있으니까요. 솔직히 온전히 제 탓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조금은 선배님 탓도 있어요. 일부러 목소리를 바꾸신 것도 있고, 조용히 발소리를 감추고서 다가와 말을 거셨으니까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쪼록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여요. 친구 목록에 뜨는 선배님을 누르고, 사진을 보내려다가 잠시 멈춰요. 보정을 해서 보내는게 더 예쁠 것 같아요. 푸른 하늘과 바다의 색감이 좀 더 도드라지게 보정하는 거에요. 간단한 보정은 휴대폰 기본 사진 어플에서도 가능하니까 정말로 집중하게 됩니다.
“선배님은, 신이 있다고 생각해요?”
신사의 아들이라고 신의 존재를 믿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불경되다고 혼날 지도 모르겠지만, 신을 믿는 사람보다는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요. 신을 믿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면 제가 열심히 렌즈를 낄 이유가 조금은 작아졌을 겁니다. 그리고 사진 보정도 어느 정도 마음에 들게 된 것 같습니다. 원본보다 좀 더 파랗고 여름같은 색감이에요. 그렇지만 혹시 모르니까 원본도 같이 라인으로 보냅니다.
“사진 보냈습니다.”
선배님을 바라보면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질문이 하나 들려옵니다. 신을 싫어하냐는 질문이에요. 제게 신은 초월적인 존재, 경이로운 무언가보다는 제 가족이고, 가족이 아니더라도 가족같은 가까운 사이에요. 싫어할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에요. 다른 신들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은 부끄러우니까 말 할 수는 절대 없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그때 주저앉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말을 굳이 해봐야 좋을 것은 없었기에 치아키는 간질간질한 입을 겨우 막으면서 웃음을 애써 참았다. 이어 뭘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지는 하네의 모습을 바라보며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사진을 추가해서 메시지 하나만 보내면 될텐데. 혹은 사진만 보낼 수도 있고. 라인을 못 다루진 않는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치아키는 일단 가만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편 들려오는 물음에 치아키는 딱히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녀의 입장에선 자신이 신에게서 태어난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은 알고 있었기에 행할 수 있는 망설임이 조금도 없는 행동이었다. 이어 고개를 끄덕이며 치아키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괴면서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만 이대로 계속 유지하는 것도 조금 불공평하려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치아키는 이내 결심을 끝냈다. 이 정도면 괜찮겠거니 생각을 하며.
"생각해. 누구보다 강하게."
그 목소리는 장난 어린 목소리가 아니라 꽤나 진지한 목소리였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확신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 단순히 신사의 아들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며 방금 막 보냈다고 하네가 말한 사진을 치아키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낸 후에 확인했다. 사진은 총 두 장이었다. 원본으로 보이는 것 하나. 그리고 푸른 보정을 넣은 것 같은 사진 하나. 둘 장 다 마음에 들었기에 치아키는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핸드폰에 저장했고 이내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 쪽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나름 앉아있는 위치를 잘 조절한 후에 치아키는 또 다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확실히 굳이 생각할 사안은 아니긴 하지. 하지만... 역시 이대로는 조금 불공평한 것 같으니까 후배 양에게는 내 비밀 하나를 말해줄게."
이어 오른손 검지를 들어올리며 치아키는 숫자 1을 표시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내리고 팔짱을 낀 후에 그는 가볍게 두 발을 움직이며 물장구를 치면서 물을 앞으로 튀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나는 너하고 같은 부류의 사람이야. 그러니까 솔직히 방금 물음은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어떻게 답할까 싶어서 궁금해서 물어본거야. 딱히 답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 하핫. 원래대로라면 이런 것은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것 같지만 일단 먼저 접촉한 것은 저쪽이니까. 그것도 우리 부모님을 통해서 말이지. 그러니까 너무 캐려고 하지만 않는 이 정도면 세이프. 이전에 살짝 확인한거기도 하고. 아. 참고로 이거 농담이 아니라 진짜야."
그러니까 다른 이들에겐 쉿. 소리를 내면서 치아키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다시 물장구를 쳤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뭘 해주거나 챙겨주거나 한 적은 없지만 말이야. 네잎클로버도 포함해서 말이지. 그런 것을 해봐야 서로서로 껄그러워질 뿐이고 부담이 될 뿐이고. 아무튼 나만 아는 것은 슬슬 불공평한 것 같으니 내 비밀 하나만 공개하는 느낌으로 서프라이즈! 려나. 알아달라는 것은 아니고 그냥 불공평한 것을 남기긴 애매해서. 단지 그 뿐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진 말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떤 말이 더 적절한지에 대해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좀 더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확실히 전례가 있다보니 금방 납득할 수 있었을까? 상당히 원초적인 본능이라 할수 있으나 애당초 신들 역시 하나의 객체, 자신에겐 없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대가, 시기가 지나도 여전히 여러 방법으로 신들은 '공물'을 원하겠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또 무언가가 있는지, 그녀가 별안간 엄청난 집중력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지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하는 마음에도 마주보기 시작했다. 표정이라던지 그런걸로는 그 내막이 뭔지 맞추기 힘들었지만... 애초에 억지로 맞출 생각도 없었다. 대강은 보이는 걸지, 아니면 맞춰보기도 전에 상대방이 직접 설명해주는 덕분인지...
"음... 마치 '당신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습니까?' 같은 질문이네요?"
별안간 불어오는듯한 차가운 기류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스스로 즐기고 있다 말했듯, 미소도 무표정도 진중함도 오롯이 담겨있었다.
"질문의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는 것도 나쁜 버릇이지만... 반대로 마주하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인지요?"
목소리는 꽤나 진지하게 깔려있었지만 역설적으로 표정만큼은 평소보다도 온화했다.
"죽음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하지요. 무에서 와 무로 돌아가는 건 인간에겐 꽤나 엄숙하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당신과 가까이 있는게 즐겁지 않을 이유도 없는걸요? 사람은 늘 죽음이 조심스레 뒤를 쫒아온답니다. 하지만 그사람이 세상을 떠나는건 정해진 운명, 딱히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고 명이 단축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키득거렸을까, 푸스스 흩어지는 그 웃음은 상대를 비웃는 것이 아닌 도리어 안도감을 주려는 웃음이었다.
"무엇보다... 그렇다고 혼자 내버려두고 멀리하면 너무 가엽잖아요? 아무리 죽음을 인정하는 5단계에 부정이 있대도, 그렇다고 죽음을 터부시하는건 예의가 아니죠."
...상대방이 그 '죽음'이라면 적잖이 실례가 되는 말일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것이 또 자신만의 성격이었다.
진지한 목소리에 눈을 조금 동그랗게 떴어요. 신이 있다는 걸 굳게 믿고 있단 생각이 들어서, 방금 한 생각이 불경하단 느낌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사과를 해야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선배님은 조금 모르겠는 이야기를 해요. 비밀 하나를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불공평한 것 같으니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하시면 저는 표정이 굳고 말아요. 제가 갖고 있는 비밀이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겁이 납니다. 무슨 비밀을 알고 계신건지 몰라서 들고 있던 휴대폰을 두손으로 꼭 쥐었어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비밀을, 어떻게.........’
고민이,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시야는 발 밑만 바라보고, 그마저도 눈을 꼭 감아버립니다. 발을 적셨다가 쓸어내려가는 바닷물을 보고 있지 않아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지금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들과 말도 전부 바닷물에 쓸려내려가면 좋겠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머릿속을 비워버린 건 선배님의 목소리였습니다. 선배님과 제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말이요. 저의 무슨 비밀을 알고 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쉽게 골라낼 수 있었어요. 신의 이야기를, 신과 관련된 질문을 했었습니다. 선배님도 신과 가족이라는 뜻일까요? 숙였던 고개가 퍼뜩 들어올려지고 선배님을 바라보게 돼요. 놀란 기색을 숨길 수 있지 않아요. 그럴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럼, 선배님도 가족들이...”
먼저 접촉했다는 말에 느낌이 와요. 다른 신들에게 막내딸을, 막내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종종 하고 다녔다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그때 학생회장 선배님들의 가족들도 그런 말을 들은 모양이에요! 선배님의 가족들이 신이라는 이야기는 저도 그러니까 많이 놀라지는 않지만, 가족들이 그런 부탁을 하고 다녀서 그런 부탁을 받은 당사자가 눈 앞에 있다는게 한없이 놀랍고,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가족들이 그런 부탁을 해서, 선배님들의 가족이 선배님에게 그 부탁을 전달해준 게 분명해요. 얼굴에서 열이 펄펄 끓는 기분이 들어요. 아까까지는 여름 햇빛이 눈 부시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뜨겁습니다. 아까 전과는 전혀 다르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그만 제자리에 쭈그려앉고 맙니다. 바닷물에 옷이 젖을 수도 있다거나 그런건 모르겠어요. 제가 게였다면 모래 아래로 굴을파고 들어가 숨을 수 있었을까요? 고개를 무릎에 묻어버립니다.
“당연히, 당연히 안 챙겨주셔도 됩니다! ...어린애 아니에요.”
민망함이 차올라서 목소리가 조금 커졌어요. 선배님을 바라보고서 큰 소리를 내버린게, 저도 제 목소리에 놀라버려서 뒤늦게 목소리를 줄이고 다시 고개를 살짝 내려요. 애꿎은 선배님한테 이럴 이유는 없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말, 정말로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쳐도 나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말이야. 어릴 때는 이게 참 불만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것도 크게 나쁘진 않단 말이지."
말은 그렇게 하긴 했으나 사실 하네의 부모님이 어떤 모습이고 어떤 이인지는 치아키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신, 그리고 그 신과 혼인의식을 치뤄서 신이 되는 것이 확정이 된 자신의 부모님을 통해서 이런이런 신이 있었는데 그 신의 딸이 너와 같은 학교라더라. 만나면 좀 챙겨주고 그래라. 그렇게 말을 들은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그 와중에 눈앞에서 제자리에 쭈그러앉는 그 모습에 치아키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바닷물 위인데 저렇게 하면 옷이 다 젖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앉아있던 바위에서 천천히 일어났고 하네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괜찮아. 말을 듣긴 했지만 일단... 크게 신경쓰고 그러진 않아서. 오히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이 마을에 또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정도였거든. 알다시피... 이런 사정 아무에게나 쉽게 이야기하진 못하잖아? 나도 내 친구들 중 아무에게도 말한 사람이 없고. 네가 나와 같은 부류의 이가 아니었다면 굳이 이런 거 말할 이유도 없었고. ...정확히는 나만 일방적으로 아는 것은 불공평한 것 같아서가 크긴 했지만."
사실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과연 이 후배가 고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날지는 알 수 없었다. 괜히 말을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일단 당황하거나 그렇다기보다는 일단 치아키는 평소에 보이는 가볍고 경박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진지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래. 어린애가 아니지. 물론 우리 부모님에게 접촉을 해서 이것저것 말을 한 이들에게는 한없이 어린애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시선이고, 인간의 시선은 다르니 말이야. 그러니까 어. 특별히 뭘 더 해주거나 특별대우해주거나 그럴 일은 없으니까 슬슬 고개 들고 일어나주면 안될까? 뭐랄까. 그렇게 있으면 옷 다 젖잖아. 나중에 돌아갈 때 곤란해져. 내가 첫날에 바다에 옷 입고 뛰어들었다가 흠뻑 젖어서 꽤 고생하면서 들어갔었거든. 갈아입을 옷 없어서 말이야."
첫날, 바다를 안내했다가 그대로 물에 뛰어들고 만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치아키는 머리를 괜히 긁적였다. 뒤이어 그는 마찬가지로 무릎을 굽혀서 최대한 시선을 마주하려고 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말하기도 뭐하지만, 너도 여러모로 고생하는구나 싶어. 물론 나쁜 뜻으로 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후배 양. 어떻게 해주면 고개를 들어주고 일어나주려나. 내가 이 자리에서 사라져주면 일어날거야? 응?"
수학여행은 신문부원들에게 있어서, 부활동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학교신문에 기고할 칼럼을 위한 특종을 찾으러 탐방하는게 이번 수학여행에 신문부에게 내려진 히든 퀘스트니까. 그렇지만 다들 결국 진짜 기자가 아니라, 수학여행에 온 학생들이므로 허락된 행동반경 외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사실상 '누가누가 수학여행 후기 더 잘쓰나' 대회 정도의 느낌이다. 물론, 그에 맞게 상품도 있었다.
학교 신문에 올라가는 후기는 제한되어 있다. 신문부원 외에도 일반 학생의 후기를 모집하는게 있고, 또 지면의 한계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의 상품은...
패스트푸드 세트 쿠폰이었다.
정말 별거 아니지만, 또 그런 별거 아닌 공짜 음식에 목숨을 거는 것이 남고생인 법. 나는 평소대로의 방식답게, 위험하거나 남들이 잘 안갈만한 흉흉한 곳을 탐방하고 후기를 적고자 했다. 특히나 이, 해안에 있는 자연 동굴.
스마트폰 시계를 본다. 밀물이 들어오면 위험할수도 있으니, 여유 시간을 고려해서 탈출할 수 있도록 알람을 해 두고 동굴 안으로 들어선다. 사실 여기는 이미 조명만 안 설치되어 있지, 사실상 관광동굴이나 마찬가지였다. 넘어가지 말란 울타리도 설치되어 있고...
문제는, 그 울타리는 깊숙한 데 있고 그곳을 비추는 조명은 하나도 없어서 아무도 깊은 곳은 안간다는게 문제였다고 해야하나.
그렇기에 내가 들어가보기로 했다. 깊숙하고 어두컴컴한 해안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슬슬 햇빛이 사라지고, 암흑이 주위를 감싼다. 분명 이런 경험을 전에도 겪은 적이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야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때 쯤 랜턴을 켜자...
같은 부류라는 말이, 가족들이 신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혼자 인간이라는 것까지였나 봐요. 선배님도 혼자만 인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보다, 지금이 조금 더 저 혼자 인간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립니다. 신이 되고 싶다거나 신이 아닌게 불만인 건 아니지만요, 같은 부류라고는 해도 선배님한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고 다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아요. 입술을 물고서 침묵을 유지합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됐어요.”
불공평한 것 같다는 것까지 신경써주시다니, 이렇게 상냥하셔도 되는 걸까요? 분명 선배님의 가족들도 그만큼이나 좋은 신님들이라서, 가족들이 부탁을 했는 지도 몰라요. 저만, 제가 민망한 것만 빼고는 좋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민망한게 큰일이지만요! 얼굴에 오른 열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질 않아요. 겉보기에도 빨갈 것 같아서 정말, 차라리 바닷속으로 빠지고 싶습니다. 분명 열은 금방 가라앉을 거에요. 바닷물이 아무리 햇빛을 받아도 제 얼굴보다는 시원할테니까요!
“전 여벌 있거든요.”
그렇다고 선배님이 계속 무릎 굽혀 불편한 자세를 하도록 할 생각은 없습니다. 선배님 보고 사라지라고 할 생각도 전혀 없고요. 그러니 쭈뼛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하지만 여전히 고개는 들지 못합니다. 선배님이 특별대우해줄 일은 없다고 해주셔서 다행이지만, 여전히 민망한 건 민망한 거고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겁니다. 그런 부탁을 해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선배님한테도 선배님의 가족들에게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도요. 무시해도, 거절했어도 괜찮았을 부탁을 기억해준 거니까요. 이미 부끄러울 만큼 부끄러워진 거, 지금 하는게 나을지도 몰라요. 심호흡을 소리없이 하고, 숨을 삼켰다가 말과 함께 내뱉습니다.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도 감사인지도 제대로 말하지 못 했어요! 이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어서 목소리를 잦아들고 말았지만요. 괜히 딴청을 피웁니다. 옷을 확인해보는 거에요. 다행히 다 젖지는 않았지만 남방 끝자락이 젖어 버렸습니다. 남방자락은 길게 떨어지니까 바닷물에 금새 닿았던 모양이에요. 휴대폰은 바지 주머니에 잘 넣고, 남방 끝자락을 비틀어서 물을 꾹 짜냅니다.
의자도 덜컹덜컹, 화면에는 가공의 괴물들이 득실득실, 인간의 무기인 화기를 통했으나 실제의 살상이 없는 건전한 오락거리. 이노리가 좋아하는 건 모두 모였지만 사람만 모이지 않던 마법의 상자! 이노리는 활짝 웃고는 쫄래쫄래, 경쾌한 발걸음으로 마련된 자리를 향해 달려갑니다.
동전을 투입했을 적, 이노리는 요란한 효과음과 화면이 바뀌는 모습이 그리도 신기했는지 와아, 작은 탄성 내봅니다. 난이도와 맵도 총을 발사해야 정할 수 있군요! 이노리는 활짝 웃으며 어떤 것이 좋겠냐는 듯 당신을 쳐다보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입니다.
"으음- 놀이는 다 좋아요? 게임도, 재밌는 것도 다 좋아! 그러니까 게임도 좋은 걸로 할래-"
천진난만하게 답하곤 되묻습니다.
"친구는요? 게임 좋아해요?"
이렇게 재밌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지만요.
// 갱신하고 갈게.. 곧 출근(ㅋㅋ)...이라........ 나중에...보자....ㅠ...ㅠㅠ...
떨떠름한 목소리로 반문하는 듯하면서도 냉큼 키패드를 켠 핸드폰을 건네 쥐어주려 했다. 이거 한창 바쁜 3학년이나 닦달해서 괴롭히는 민폐 후배 되는 거 아닌가 몰라······. 번호를 받은 기쁨과는 별개로, 눈치 없이 귀찮게 굴다 비호감이 되는 일만은 절대 없게 하도록 다짐했다! 핸드폰을 돌려받은 미야나기는 저장된 번호로 제 이름을 담은 문자 한 통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유 날 때 말씀해주시면 제가 최대한 맞춰볼게요. 저야 유동적으로 일정 조정할 수 있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절반은 거짓이다. 실제로 스케줄을 임의로 변경 가능한 건 맞지만, 그랬다가는 지도자한테 맞아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시모토 선배가 만나자는데! 까짓 거 화끈하게 맞아 죽지 뭐!
"물론 그렇게 해도 상관없었겠지만 내 성격이 그러지 못하는 그런 성격이라서 말이야. 하하하. 그러니까 후배 양이야말로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돼."
얼굴이 아직은 빨간 것 같은 하네를 바라보며 치아키는 아주 가볍게 물을 뿌려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딱히 얼굴이 빨개서 장난을 치고 싶다라기보다는 그 시원함과 차가움이 아예 신경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기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무슨 말이 나올지. 어쩔까. 어쩔까. 고민을 하는 와중 그녀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이자 치아키 역시 무릎을 펴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연히 바지의 젖은 부분에서 바닷물이 뚝뚝 떨어졌고 치아키는 두 손을 내려 바지 밑단을 쭈욱 짜면서 물기만 빼내려고 했다. 어차피 리조트로 들어가면 또 세탁기에 돌려서 세탁을 하고 탈수를 해야 할테니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였지만.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이 들려오자 치아키의 시선이 다시 하네에게 향했다. 여전히 고개를 잘 들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굳게 마음을 먹고 두 손으로 물을 받은 후에 그녀의 얼굴을 향해 아주 살짝 가볍게 뿌리려고 했다. 행동이 컸으니까 미리 알아보고 피하는 것도 가능했을테고 설사 피하지 않는다고 해도 얼굴의 뺨 부분에 바닷물이 찰싹 붙었다가 떨어지는 정도였을 것이다. 이어 치아키는 피식 웃으면서 제대로 허리를 편 후에 오른손을 제 허리에 올리면서 이야기했다.
"죄송할 일도 없고 고마울 일도 없어. 사실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거든. 딱히 네가 죄송할 일도, 그리고 내 쪽에서 감사를 받을 일도 없는걸. 굳이 말하자면 놀래켜서 미안하다..라는 말은 내 쪽에서 하고 싶은걸. 그러니까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토모시비 마츠리 때 친구랑 같이 키즈나히메를 모시는 신사로 온다면 특별히 눈에 안 띄게 내가 강에 띄울 등불을 줄게. 일단... 나는 이렇다고 쳐도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이야."
아마 어지간하면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자신이 전해줄 등불을 전해준다면 딱히 무슨 말을 할 것도 없이 바로 전해줄 수 있을테니까. 괜히 가족에게 붙잡혀서 이런저런 말을 듣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나 이 후배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할 진 자신도 알 길이 없었다.
"대신에 후배 양도 나에게 싫은 점이 있다면 얘기해주기! 뭔가 후배 양은 나하고 대화할 때 묘하게 까칠한 면이라고 해야할까. 아니. 심한 것은 아니고 약간 벽을 치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혹시나 내가 뭘 잘못했나...생각하는 것이 몇 번 있고 그렇거든. 일단.. 같은 처지의 사람인만큼 후배 양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기도 해서. 신이라던가 그런 이야기. 함부로 못하잖아. 어디 가서. 신에게는 할 수 있다고 쳐도 난 내 가족 이외에는 누가 신인지 전혀 모르거든. 그러니까 그런 비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라던가 있었으면 했어. 물론 후배 양이 싫다면 패스!"
수학여행! 그는 요 며칠간 꽤나 모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기획자의 의도에 잘 따라 준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학교에 갇혀 (비교적)얌전하게 지내다 넘치는 활동성을 정식으로 풀어낼 기회가 생겼으니, 모처럼 여기저기 죄다 찌르고 기웃거리며 아주 잘 놀았다. 보통의 남고생이나 동물이었다면 며칠 간 누적된 활동량으로 인해 어느 정도 체력이 빠져 쉬고자 했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일반적인 생물에 해당하지 않는 종이라서. 오히려 더 쌩쌩해져서는 더 할 만한 것 없는지 들쑤시고 싶은 마음 더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저녁에는 이런저런 시설들도 닫혀서 갈 만한 곳이 없다. 리조트나 그 주변 시설은 몇 번인가 가 보았기에 오늘도 거기서 놀기는 좀 지루하고. 할 만한 것 없나 싶어 혼자서 밖에 나와 이 동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그는 마침내 웬만해서는 들어갈 이유도 없을 동굴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쿄스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선객이 여기 있었던 사연이다.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인영은 어째서인지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굴 속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던 것 같다. 생긴 모습이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않았더라면 전형적인 호러 매체의 괴물에 어울리는 등장이었다. 아, 어둠 속에 서 있다 불 켜지자마자 갑자기 달려들기 시작했다는 점도 제법 호러 크리처 같기도 하다. 눈앞까지 순식간에 닥쳐온 누군가는 휙 손을 뻗어 쿄스케의 어깨를 붙잡으려는가 싶더니…….
"에헤이, 조심해야지. 이런 데서 넘어지면 큰일난다?"
제법 친절한 행동을 한다……? 깜짝 놀란 쿄스케가 넘어지거나 펄쩍 뛰지 않도록 어깨를 붙잡고 토닥거리려 한다. 놀래킨 주제에 본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아무튼.
“무슨······ 선배가 부르면 외국에 있다가도 한달음에 달려갈 건데. 아니면 저 그냥 계속 일본에 있을까요?”
우호적인 눈빛을 잔뜩 담아 반짝반짝 바라보는 게 순 농담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여러 가지 문제들만 해결한다면야 고국에서 사는 것도 썩 나쁜 선택만은 아닐 테다.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앗, 근데 여우 때문에 안 되겠네. 단념! 굳은 표정으로 음료를 입에 가져다 물자 붉은 액체가 빨대를 타고 한없이 빨려들어간다······ 폐활량이 한계까지 다다를 때까지······ 숨찬 얼굴로 푸하! 하고 풍선처럼 호흡을 가득 채운 미야나기는 문득 “마츠리이?” 하고 되물으며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모든 기분이 표정에서 즉각 드러나는 게 참 알기 쉬웠다.
“정말요? 우와, 저 그거 강에 등불 띄우는 거 진짜 해보고 싶었는데. 완전 갈래요!”
물론 그 다음 주가 콩쿨이긴 한데 으레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원래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라고 이미 속으로 정신 승리까지 마친 후였다. 지난 마츠리 때 본의 아니게 제대로 된 대접도 못 했으니 이번에 만회하는 것도 좋겠다!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신경쓰지 않기로 합니다. 제가 계속 신경쓰여하면 선배님도 부담스러울 거에요.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신경쓰지 않기 위해서 신경을 써야하는 거라고요. 꼬이고 꼬이고 꼬여버립니다. 선배님의 신사는 분명 키즈나히메님을 모시는 신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제 가족들이 부탁을 했을, 누군지 모를 신님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키즈나히메님의 가족분들일거예요. 설마 키즈나히메님한테까지 찾아가서 부탁을 했을 거라는 상상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수학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꼭 물어봐야겠습니다. 도대체 누가 한 부탁이느냐고요. 심부름시켜도 안 들어줄 거고, 연락은 무조건 단답으로 할거에요!
“앗착.”
선배님이 두 손에 물을 받는 모습은 보았어요. 뿌리려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보처럼 멀뚱히 있어버렸어요. 그렇지만 선배님이 갑자기 제게 물을 뿌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멍하니 있다가 당해버린 겁니다. 그래도 오른쪽 눈에는 렌즈를 끼고 있으니 황급히 고개를 돌리기도 했고, 뒤늦게라도 손을 올려 막아보려고 했으니 바닷물로 세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반사적으로 차가운 물에 닿아버리면 놀란 소리를 내버려서 입을 막아야했어요. 소리도 잘 삼켜내고 얼굴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면 선배님을 바라봅니다. 왜 갑자기 물세례를 맞았는지 의문이라서 가만 쳐다보게 돼요. 괜찮다거나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사실 예의상 한 말이었고 본심은 그게 아니었던 걸까요? 말도 모나게 하고 제대로 감사 인사도, 사과도 하지 않는 후배가 괘씸해서 그런 걸까요?
“...필요없어요. 사과도, 등불도요.”
놀래켜서 미안하다는 사과는 정말 들을 이유 없는 사과이고, 등불은 더욱 그렇습니다! 선배님이 띄울 등불까지 뺏어버리면 안 돼요. 선배님의 등불은 선배님이 띄워야합니다. 애초에 마츠리에 같이 갈 친구라니 잘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재밌고, 착하고 마츠리에서 같이 놀기에 좋은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굳이 절 데려갈 이유는 없고, 제가 누군가에게 염치도 없이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아요. 이런 이야기까지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절대 안 된다는 뜻을 담아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네? ........................싫은 거 아닙니다.”
사람이 얼마나 상냥하고 친절해야 제가 까칠하게 구는 것을 알고도 친구하자는 말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좋다던가 싫다던가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물론 저라는 사람보다는, 같은 처지라는 공통점 덕분이니까 괜히 들뜨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저도 신이었다던가, 가족들이 인간이었다던가 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도 역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은 기쁜 말이고, 선배님에게 답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겨우 얼굴이 식은 것 같은데 부끄러워서 그랬다는 말은 할 수 없어요.
"...사과는 그렇다고 쳐도 등불도 필요없는거야?! 토모시비 마츠리 참여 안 하는 거야? 아니. 물론 참여 안하는 것은 자유긴 한데... 아니. 하지만 찾아온다면 꼭 이야기해줘. 우리 부모님과 만나면 무슨 이야기 나올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내가 그런 일 없도록 살짝 등불을 줄테니까. 어차피 나도 신사 사람이라서 등불을 나눠주는 일을 해야하거든. 그러다가 적당히 타이밍보고 중간에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일이니까! 하하."
조금 뜻밖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이상할 것은 아니었다. 그야 마츠리를 참여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였으니까. 그렇다면 눈앞의 이 후배는 안 온다고 봐도 좋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렇게 말을 해두면 마음이 바뀌어서 참여를 할 때 자신이 살짝 등불을 줘서 괜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안 나오도록 할 수 있을테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의 누나에게는 절대로 걸리지 않게 해주겠다고 치아키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어디까지나 이 후배가 그 날 참여를 할 때의 이야기지만.
"...그럼 지금까지의 말은 그러니까... 사춘기 뭐 그런 거야? 후배 양과 대화하면서 한번도 호의적인 말을 들은 기억이 없는데."
뜻밖의 말이 나오자 치아키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잘못 생각을 했나 싶어서 두 손으로 물을 뜬 후에 자신의 얼굴에 약하게 뿌렸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이어지는 말에는 더더욱.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서 비밀을 알려주지 않겠다는 그 말에는 절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내가 후배 양의 비밀을 알아서 뭐하겠어. 그냥 내 비밀을 말한 것 뿐이야. 그러니까... 너하고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는 거 말이야. ...아니아니. 비밀이 있다면 궁금하긴 하지만 딱히 꼭 알아야겠다 그런 것은 아니고 말이지. 필요없어. 그런 거."
적어도 자신은 그녀의 비밀을 캘 생각이 없다는 듯,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어 치아키는 다시 물살을 가르면서 근처에 있는 바위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어 고개를 살짝 내려 제 발을 담근 맑은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두 발을 천천히 앞뒤로 흔들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덧붙여서 마음대로 하세요...보다는 후배 양이 어쩌고 싶은지 듣고 싶은걸. 나는. 안될까?"
...잘못 이해했어요! 선배님 몫의 등불을 준다는게 아니라, 등불을 받아간다면 그때 선배님이 등불을 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티내면 안 됩니다. 놀라면 안 돼요. 바보같이 말도 제대로 이해치 못 하고 싫다는 말이나 해버리고 한심해서 다시 숨고 싶어집니다. 모래사장 아래로 숨지도, 바닷속으로 숨지도 못 하니까 숨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마츠리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으니까요, 필요없다는 말이 크게 틀리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등불을 같이 띄우고서 기도를 하면, 등불을 같이 띄운 사람들의 인연이 깊어진다는 말이 있으니 더욱이요.
“꼭 하란 법 없잖아요.”
아마 마츠리에 가게 되어도 등불을 띄울 생각은 영영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때 선배님을 마주하게 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선배님은 그저 저를 배려해서 선배님의 가족들 중 신인 분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건넨 친절이었는데, 제가 바보인 탓에 이렇게 돼 버렸어요. 책을 많이 읽어야겠어요......
“마츠리에서는 수상한 사람같이 구셨잖아요. 화단에서는 이놈한다고 하셨고요. 호의적인 말 들을 일은 없었니까 당연합니다.”
호의적인 말 들을 일은 많아요! 많습니다. 수상한 사람같이 구셨단들 그저 같은 학교 학생이 반가워서 인사하려고 했던 것 뿐이고, 이놈한다고 하신 것도 제가 많이 놀라버려서 그렇지 단순히 웃어넘길 수 있는 장난이었어요. 사춘기라는 말에 괜히 선배님 탓을 해버립니다. 선배님이 아까 하셨던 친하게 지내고 싶었단 말이나, 비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같은 말을 전부 취소하더라도 제 잘못입니다.
“저도 선배님 비밀 필요없거든요?”
이런 유치한 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비밀 이야기를 한 건, 선배님이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을 해준 것에 괜히 들떠버리니까 스스로 찬물을 쏟은 겁니다. 저와 친해지고 싶을 리가 없다고, 처지가 같아서일 뿐이라고, 비밀 이야기를 캐내려고 그러는 것 뿐이라고 멋대로 곡해하고 멋대로 모난 말을 한 거에요. 곡해한 것 뿐이니까 선배님이 제게 그럴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 비밀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단 건 저도 잘 압니다.
“......상관없단 뜻이잖아요.”
바보냐는 말을 하지 않도록 힘냈습니다. 바보라는 말을 많이 해버리면 안 돼요. 상대방이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요, 또 그런 일을 만들지 않도록 힘낸 거예요. 아니, 앞으로도 힘내야합니다. 저도 친구라고 해준다면 좋은 친구는 못될망정 나쁜 친구는 되면 안 되니까 힘내도록 합니다. ......갈 길이 먼 것 같지만요.
"그렇긴 하지. 그래서 혹시라도 온다면이라는 조건을 건거고. 아무튼 확실히 생각해보니까 딱히 호의적인 말을 들을 이유가 없긴 하네. 우와. 이런 사람 아닌데 후배 양에게는 묘하게 장난을 많이 치긴 쳤나봐. 나."
하긴, 그랬는데 호의적인 말들이 나오면 그게 이상한거지. 그렇게 납득하며 치아키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 와중에 이놈이라는 말이 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게 가장 기억에 남고 여러모로 임팩트가 컸겠거니 치아키는 생각했다. 물론 말해도 또 부정할테니 굳이 말을 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는 다시 한 번 가볍게 두 발로 물장구를 쳤다.
"그래? 그럼 괜히 말했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말을 꺼낸 것을 역시 없던 것으로 하자! 라고 할 순 없으니 말이야. 적당히 잊어주면 될 것 같아. 나도 굳이 더 언급은 하지 않을테니까. 정말로 필요없다고 한다면 말이야. 아무튼 상관없다라. 그게 가장 어려운건데.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내 멋대로 해석하도록 할게."
물론 어떻게 해석하는지의 여부는 딱히 알려주려고 하지 않으면서 치아키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아이는 생각보다 새침떼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에 대해 싫어하는 점을 말해달라고 하니 싫어한다는 점은 없다고 하면서 묘하게 툴툴대고 지금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딱 그 표본이 아니겠는가. 조금은 이 후배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치아키는 가만히 하네를 바라보면서 의미모를 웃음소리를 냈다. 이어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다가 그는 다리를 굽혀 오른손을 물 속으로 쑤욱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얀색 조개껍데기를 잡고 손을 밖으로 꺼냈다. 겉면은 정말로 새하얀색이었으나 뒤집어보면 빛을 반사하며 무지개빛을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꽤 예쁘다고 생각을 하며 치아키는 하네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그럼 이건 서로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잘 지내보자는 나름의 선물이야. 우연히 이게 또 보이네. 하하하. 그럼 나는 후배 양이 쉬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슬슬 가볼게. 수학여행 잘 즐기길 바랄게."
다음에 어딘가에서 만나면 인사해주면 고맙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치아키는 바다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오며 모래사장을 밟았다. 그리고 주변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저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또 볼 수 있으면 보자. 후배 양. 아. 그 근처에 조개껍질 예쁜 거 많으니까 더 찾고 싶으면 찾고."
이내 그는 하네를 바라보며 가볍게 손을 저었다. 딱히 부르거나 더 이야기가 없으면 아마 그대로 밖으로 완전히 나가서 걸어가지 않았을까.
/슬슬 막레적으로 가도 좋을 것 같으니! 막레로 받아도 되고 막레를 따로 쓰셔도 괜찮아요!
외국에 있어도 한 달음에 달려온다니, 대화를 나눈 것이 이제 겨우 두번째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역시 빈말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기에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결국 웃어 넘긴다. 역시 사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외국으로 나가겠지. 한국어와 중국어는 조금은 할 줄 아는데 서양쪽 언어를 역시 배워두긴 해야 할 듯 하다.
“그래요. 그럼 그 때 만나요.”
눈을 접어 웃으며 이내 작별 인사를 건넨다. 처음 만났을 땐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원래 사건들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법이었다. 인사를 하고 사에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갈 것이었고 케이는 간이 샤워장 쪽으로 향해 갔기에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그 와중에 청포도 주스를 다 마셔 버렸고 이내 동그란 얼음만 남아버렸다. 여우와 신포도 우화가 생겨난 건 확실히 여우가 포도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지난 대화를 거슬러서 생각했다면 여름이 콩쿨 피크라서 지금도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했던 말을 기억했을텐데, 이 신은 휴가를 나온 직장인이라 미처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아마 마츠리 몇 주 전 쯤에야 콩쿨 일정을 알고 아차하지 않았을까.
/얍. 이걸로 막레 하면 될 것 같아. 일상 돌리느라 수고했어~ 마츠리 기간에 내한공연 보러 가는 구나....!!!! 접률이나 텀 같은 것 신경 쓰지 말고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해보면 되니까~! 어쨌든 잘 부탁합니다(꾸벅)
물론 생선 비린내 따위는 나지 않고, 비늘로 덮여있지도 않지만 내심 이런 동굴에 그런게 있을거라 생각한 것이리라. 어찌 되었든 마구 난동... 까지는 부리지 않고, 갑작스레 내뱉은 비명 이후에 다시금 정신을 차려보니 앞에 있던 인물은 전혀 물고기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생...선이 아니네. 아니, 이런 어두운 데서 불도 안 켜고 뭐하고 있던거야?"
깜짝 놀란게 멋쩍기라도 했던건지, 상대에게 묻는다. 물론 자기가 할 말도 아니긴 하다. 대충 어디서 본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어찌되었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눈앞에 있는 상대가 먼저 반말을 했으니 거침없이 반말을 하기로 했다.
수학여행은 꽤나 큰 행사였다. 반의, 학교의 모든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간다는 그 거대한 테마에 제법 타이트하게 짜여져있는 일정에다가 충분히 보장된 자유시간들. 이미 친구가 많은 사람에겐 또 다른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였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어쩌면 새로운 인연이나 만남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바꾸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조금이나마 홀로서기에 도전할 수 있는 도전의 장이기도 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리오는 홀로서기로 학생회장과 친구-적어도 리오는 그렇다고 믿고있다.-가 되기도 했고 반짝반짝을 찾으러 나가기도 했으며 남 몰래 사온 수영복을 입고 그 생기가득한 무리 사이를 걸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선 조금 흥이 올라서 바다에 발도 담궈보고 허리까지 올라오는 깊이까지 천천히 걸어가보기도 했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혼자 놀았지만 제법 괜찮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방 안에 가만히 앉아있다.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시간이다. 방 밖에서는 웃음소리라던가 이야기소리들이 많이도 들려왔다. 저 문 하나를 기준으로 저 밖은 생기가 돌고 이 안은 새카만 악의가 가득차버려 조금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리오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이부자리를 펴놓고는 다시 그 위에 앉아서 지금까지 있던 일들을 회상했다. 반짝반짝을 찾으러 나간 일과 학생회장과 친구가 된 일, 그리고 생기 넘치던 바다에 들어가 봤던 일. 생각해보면 또 미소가 지어졌다. 제법 훌륭한 홀로서기의 시작이라고 생각돼서 하레하네를 만나면 잔뜩 자랑할 생각이었다.
사실 지금은 혼자서 궁상을 떨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반짝반짝 아니, 바다에서 여기까지 들어오는 길에는 '같이 놀래?' 하고 말해주는 이들도 몇 몇인가 있었다. 자신도 누군가와 함께 있었더라면 그 분위기를 타서 그러자고 말한다던가 지금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벼운 일탈행위에 참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리오는 혼자였던 탓에 의도와는 다르게 아무 말도 없이 검은 마스크를 쓰고 꽤나 사나운 눈동자로 마주보곤 했다. '싫어'라던가 '그래' 라던가 같은 말을 쉬이 꺼내지 못하고 머릿 속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최선일지르 계속 생각하다보면 '미안, 이치노세양.' 하는 말이 들리고 멀어진다. 그들이 멀어지고 나면 리오는 나직이 '나도 갈래' 하고 조용히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지금 현재.
방 안에 얌전히 앉아서 조금은 멍하니 있었다. 마치 주인이 돌아오길 바라는 강아지처럼 문을 응시하거나 방 이리저리를 돌아다녀보며 '이런게 있었네-' 하고 말해본다거나 조금 높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밤에도 바다가 제법 잘 보인다는 것에 감동하거나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수학여행은 '제법' 완벽했다. 생각하고 있자면 혀 끝에서 단 맛이 도는 느낌이 들었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하늘하늘한 솜사탕 같은 단맛이 퍼지는 느낌. 잠깐 눈을 감았다 떠보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조금 휑한 방에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앉아있는 모습. 혀 끝에 살짝 쓴 맛이 퍼지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소꿉친구와 한 방이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잠깐 밖에 있는지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아무튼 같은 방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평소에도 가끔 저의 집에서 자거나 친구의 집에서 함께 자곤 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또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 '색다른' 경험은 아니겠으나, 누구의 영역도 아닌 새로운 곳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많이, 달랐다. 그러고보면 지금의 이것도 홀로서기라고 볼 수 있겠다. 평소였으면 어디있냐고 잔뜩 라인을 보내거나 밖에서도 꼭 달라붙어서 남들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질투를 느꼈을 것인데 지금은 그런 마음을 꾹꾹 눌러담고 방에서 얌전히 앉아 기다리고 있다.
잘 참고있다. 정말 꾹꾹 눌러담아 참고있다. 이렇게 될 것 같아서 일부러 구급상자도 가져오지 않았고 스스로를 상처입힐 만한 자기파괴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악의가 가득 찬 무기들도 가져오지 않았다. 사실 눈을 돌리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다만 그러지 않았다. 오늘, 다시 하레하네를 만나기 까지가 오늘의 홀로서기 도전의 마지막이다. 지금 이렇게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것은 소꿉친구가 돌아왔을 때 오늘 있던 홀로서기의 무용담을 한껏 풀기 위함이었으리라.
최신 문화에 박식하신 도깨비께서도 마이너 지식에 통달하지는 못했다. 무슨 소리 하느냐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다가 그는 갑작스레 크게 웃으며 쿄스케의 등등 팡팡 후려치려 들었다. 맞는다면 아프면서도 엄살 부리기는 뭐한, 절묘한 강도의 충격이 전해지리라. 사람 놀래키기 좋아하는 그는 단숨에 기분이 좋아져서는 싱글싱글한 얼굴이 되었다.
"어른들한테 걸리면 혼날까봐 불 끄고 없는 척하고 있었지? 왜, 이런 덴 위험하다고 단속하는 사람들 가끔 있잖아."
짧은 말 한 마디에 거짓이 둘이다. 우선 첫째로 그는 동굴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인기척을 느끼고선 놀래켜주고자 가만히 없는 척을 하던 중이었고, 둘째는 처음부터 불은 켜지 않고서도 잘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빛이 없다시피 해도 밤눈이 밝은지라. 랜턴 조명에 잡혀 얌전히 서 있었던 것도 잠시, 린은 또 예고도 없이 불쑥 움직여 쿄스케의 어깨에 팔 올리고 어깨동무를 하려고 했다. 이 선객은 그저 우연히 생각이 통해서 같은 자리에 오게 된 사람에 불과한데도 과하리만치 거리감이 없다.
"자, 그럼 이름도 모르지만 아무튼 생각 통한 친구야. 같이 가보실까. 근데 여긴 딱히 볼 만한 것도 없는데 왜 왔어? 난 그냥 지나가다가 심심해서 들어온 건데 넌 꽤 준비하고 온 것 같다?"
바로 옆에서 종알종알대는 소리 떠들썩하다. 이래서는 미스터리의 ㅁ자도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되었지 않나……. 아, 물론 공포영화 같은 데서는 이런 캐릭터가 제일 먼저 죽곤 한다. 신이라서 만일 그렇게 된다 해도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치아키:.....(대체 나에게 왜 이러냐는 눈빛) 치아키:굳이 골라야한다면 못 당겨. 나는. 치아키:나는 이기적이라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보다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이 더 중요해. 치아키:인연의 신의 손자이니까.. 인연을 지키기 위해서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상관없잖아? (어깨 으쓱) 치아키:유감스럽게도 난 모두를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은 죽어도 되지 못하거든. 하핫!
안녕하세요, 타카나시 하네입니다. 조금 걸음을 빨리 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돌아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것은 아니고요, 검은 밤이라고는 해도 마냥 어둡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건물의 불빛이나 달과 별빛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조금 다른 이유가 있다면 불꽃놀이예요. 커다랗게 터지는 소리가 나면 하늘에 알록달록하게 화려한 불꽃들이 타올랐다가 사그라들어 떨어집니다. 낮의 바다도 충분히 예쁘지만, 밤의 바닷가에서 잇쨩과 같이 불꽃놀이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폭죽과 스파클라를 샀습니다. 불을 붙여야 하니까 라이터도요. 불꽃놀이는 예쁘고, 예쁜 풍경을 보면 잇쨩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녀왔습니다.”
리조트의 입구를 지나서 숙소로 머무는 방 앞까지 오면,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인사를 합니다. 갑자기 벌컥 들어가면 아마 누구라도 놀라고 말 거예요. 손목에 걸린 봉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신발을 벗어요. ...그러고보니 잇쨩이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을 안 했어요. 깨워야하는 걸까요, 아니면 조용히 저도 같이 자는게 맞는걸까요? 피곤해서 잠들었다면 깨우고 싶지는 않은데, 다음날 잇쨩이 아쉬워할까봐 고민이 커집니다.
“......자요?”
술을 마시고 또 마시다가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던 언니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조금 이해됐어요. 이런 기분으로 살금살금 집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잠들었다면 깨우지 않겠지만, 깨있다면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기분이요. 물론 저는 언니처럼 혼날 짓을 하고 들어오는게 아니니까 긴장해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라도 잠들어있다면 잠을 깨울까봐 떨리기는 해요. 연락이 온게 하나도 없었으니 오늘 재밌게 놀고서 잠들었을 지도 몰라요.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기가 몇 분 이었을까. 문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창문을 보면 좀 나아지겠건만 뭔가 좁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숨이 막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문이 열렸다.
" 하네! 하레-하네-하로-! "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뻔 했지만 리오는 참았다. 이것도 어찌보면 홀로서기의 일환인 것이다. 그리고 보여주고 싶었다. 이 학교와 이 마을에서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친한 이들에게 내가 이렇게 성장해서 혼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해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의 마지막 단계로 리오는 하네를 보자마자 몸이 뛰쳐나가려고 하는 것을 '읏' 하는 소리와 함께 참고는 얌전히 기다리면서 '어서와' 하고 말했다.
" 있지, 하네. 하레하네. 나 할 얘기가 있어. "
아마 꼬리가 있었다면 그게 엄청나게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리오는 금방까지 이 방이 좁게 느껴져서 숨이 막힐 뻔한 것도 잊었다. 갑자기 너무 외로워져서, 그 악의가 스스로를 집어삼키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상처입힐 도구를 찾아 눈을 돌렸던 것도 잊었다. 이제 다 괜찮아졌다. 가장 친한 친구가 와주었으니 이제 다 되었다는 것이었다. 리오는 조금 신난 듯이 목소리의 톤을 조금 올렸다.
" 하네. 나, 오늘 혼자서 놀았어. 혼자서 잘 놀았어! 반짝반짝- 아니, 바다도 가봤구 수영복도 입어봤어. 그리고, 그리고 또.. 바다에 발도 담궈봤구 거기 사람 엄청 많았는데 있지.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바다에 들어가봤어 하네! 바다는 음, 반짝반짝하구 따뜻했는데 안으로 조금 들어가니까 시원했어! 사람들이 엄-청 많았고 또.. 또.. 무슨 일이 있었냐면.. 아! 학생회장! 아이자와 치아키. 응. 그 사람하고도 친구가 되어서 라인도 교환했어! "
어린아이가 신이 나서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듯 리오는 눈을 빛냈다.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 이렇게나 기념할 만큼 귀중하고 열심히 노력한 것이었다. 평소였다면 하루종일 방에만 들어가 있거나 하네가 돌아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을 것이 불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홀로서기를 해보겠다며, 스스로가 변하겠다며 노력한 것이었다.
안즈는 생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야카의 조언(?)을 따를 일은 요원하지 않을까? 안즈에게 있어 점심시간은 제일 생기 넘치고 즐거운, 친구들과의 시간이니까! 그런 시간을 홀로 보내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이게 안즈의 생각이었다.
어째서? 사야카의 말에 안즈가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남들이 이용하고 괴롭힌다는 말에 그건 성가시니까 귀찮다, 정도의 반응인 것이 괜찮은가? 괜찮을까? 하지만 다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어쩌면 그럴지도, 라는 것이다. 만약 남들에게 잘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별 감정이 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전부 추측이지만 말이다.
"으음, 사야카 양이 그렇다면야..."
그런고로 안즈는 적당한 말로 이야기를 넘겼다. 섣불리 넘겨짚어 이야기하기는 싫어서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뭐랄까, 당신이라면 정말로 괜찮을지도? 같은 근거 없는 생각이 들어서기도 하다. 사야카가 웅얼거리며 하는 말을 듣고서 안즈는 작게 웃었다.
"사야카 양은 정말로 친절하구나? 하지만 지금은 정말로 괜찮아! 나중에 혹시라도 공부해 보고도 모르겠으면... 차라리 그때 필기 좀 빌릴게. 물론 사야카 양이 그래도 괜찮다면!"
경쾌한 목소리로 실컷 떠들던 안즈는 순간 입을 합 다문다. 아마 그제서야 사야카의 기분을 눈치챈 모양이다. 잠시 입을 손으로 막고 있다가, 약간 목소리를 낮춰 마저 말한다.
당신의 말을 쭉 듣고 난 상대는 교무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섰다. 눈치를 살피면 싫은 기색은 없다. 정말 순수한 의문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아냐, 싫은 건 아닌데..."
당신의 말에 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진심이다! 애초에 안즈는 선생님들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사실 이 정도면 아주 좋은 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교무실에 들어가는 걸 꺼리진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하면 모를까.
"그, 음, 껄끄러운 것 정도면, 나랑 같이 가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 당신의 일이니까 직접 가보는 편이 좋지 않으려나, 같은 생각은 든다. 뭐랄까. 우리는 학생이고, 도움이 필요할 때 학생이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평소에 관계가 어땠든 간에 이런 건 전혀 껄끄러울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오지랖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나, 떠드는 건 잘하니까, 내가 선생님들 정신 쏙 빼놓고 있는 사이에 넌 분실물 수거함에 지갑이 있는지 살펴보면 되지 않으려나?"
말을 마치고는 실없는 웃음을 짓는다. 마치 당신의 경계를 사고 싶지는 않다는 태도다. 안즈는 괜스레 뒷목을 매만지며 마저 말을 꺼낸다.
"너무 번거롭나? 미안! 그런데 그래도 네 지갑이니까 직접 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물론 분실물 수거함에는 거의 뭐가 없으니까 네 말대로 찾기 쉬울 수도 있겠지만, 혹시 또 모르잖아!"
그래도 거북하다면... 그냥 나 혼자 다녀올게!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한발 물러서듯 이야기한다.
"당신같은 필멸자가 빨리 죽어준다면 좋을텐데... 하고, 잠깐이지만 생각했던 것 뿐이에요......"
담담하게 웬 뜬금없이 저주를 퍼붓나 싶을 것이다. 그러나 토아의 앞에 있는 게 자칭 '사신'이라는 동급생이었고, 저번에도 비슷한 말을 했던 전적과. 또한 그녀의 눈에는 딱히 이렇다 할 적개심은 담겨있지 않은 것. 그렇다면 이것은 호의에 가깝겠구나. 어쩌면 당신은 가까스로라도 단서를 얻었을지도.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이쪽 세계의 바다에 오는 일도 없었겠지요."
저쪽 세계에도 바다는 있었지만. 웃고 떠드는 살아있는 사람이나 해변가를 같이 걸어주는 자는 일체 없다. 후루토는 그것에 대해 여태껏 의문조차도 가져본 적 없었으나 어째서 다들 들뜬 기색이 되어서 바다에 모이는가, 어쩐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필멸자...... 제게 좀 더 어울려주세요..."
살아있는 동안에 죽음을 두려워 않는 인간은 드물다. 조금은 데리고 있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했는지, 문득 사신은 자신 쪽에서 당신의 손을 채어 재촉하며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시선이 한층 더 내려가있던 그녀가 잠깐 말을 쉬어가다 이내 담담하게 내놓은 것은 '당신같은 필멸자가 빨리 죽어준다면 좋을텐데'라는 이야기였다. 평범한 사람끼리의 대화라면 꽤나 비뚤어진 심성을 가지고 있다거나 뜬금없이 악담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미 그녀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자신에겐 그것이 이전보다 더 분명한 호의로 와닿았을까, 분명 이전에도 죽어달라는 말은 호의와 마찬가지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으니 말이다.
"뭐, 그렇게 되었으니 지금의 이런 순간이 있는 셈이니까요?"
그렇기에 한층 더 가벼이,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가 자신의 말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좋았다. ...아니,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문제될건 없었다. 무엇보다 친구가 되기로 했고, 언제든 길을 잃는다면 길잡이가 되어주겠노라 호언장담한 마당에 설마 그것 하나 기다려주지 못할까? 모든 신이 제 섬기는 이 마냥 인세에 빠싹한건 아니니까, 그런 그녀를 위해서라도 언제든 느긋하게 기다려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 필멸자가 신이라는 불멸자에게 품기엔 터무니없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이 원하신다면, 언제든지요~"
다만 아무래도 죽음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 인간은 드문 케이스였는지, 아니면 나름의 이해된 바가 있었는지 먼저 손을 잡아오면서 길을 앞서는 그녀가 보였다. 아무렴, 길을 밝히는데에 발자국의 순서를 따질 필요는 없을테니. 혹은 그녀가 곧 이 세상에 좀 더 친숙해져서 먼저 길을 권하거나 그녀만 알고 있는 곳으로 이끈다고 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분명 그것은 그것대로의 즐거움이 되어 와닿을테니까,
다행이에요. 자고 있지 않았습니다. 잇쨩의 반가운 목소리에 벗어둔 신발을 굳이 정리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서요. 어차피 불꽃놀이를 하러 나가야한다면 다시 신발을 신어야할테니까요. 손목에 봉투가 걸린 쪽 손을 허리 뒤로 돌려서, 꽤 어정쩡한 것 같지만 그래도 숨겨봅니다. 어서 오라고 말하는 잇쨩과 마주보게 자리잡고 앉아요. 할 이야기가 있다며 들떠보이는 잇쨩의 모습에 가만히 귀 기울이기로 합니다. 잇쨩은 목소리도 조금 높아진 것 같아요. 수학여행이 즐거웠던 것처럼 보여서 다행입니다.
“칭찬...”
눈을 반짝거리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까 당연히 즐거웠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잇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어요. 저는 말 중간중간에 맞장구를 치거나 문맥에 맞는 말을 얹으면서 재밌게 반응해주는 건 잘 하진 못 하니까, 잘 듣고 있다는 티를 내려면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바다도 가고, 수영복도 입어보고, 물놀이도 해보고, 풍경도 보았고 친구도 만든 것 같아요. 교환을 했다니 엄청 대단해요! 저는 친구를 쉽게 만들지 못하니까, 용기내지 못 하니까 칭찬해달라는 잇쨩의 말에 잠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챙겨온 짐 중에서 수첩을 찾아요. 언제나 모으고 있는 클로버 스티커입니다. 잇쨩도 제가 스티커를 준 적이 많고, 모으고 있으니까 칭찬이라고 한다면 역시 이게 생각나요. 쓰다듬는다거나 잘했다고 안아준다거나 하는 건 제게 무리입니다... 무리에요!
“여기, 스티커.”
이번에는 잇쨩의 옆으로 앉았습니다. 손등에 스티커를 하나씩 붙이려고 해요. 몇 개를 붙일 거냐면, 잇쨩이 얘기해준 갯수만큼입니다. 혼자서 잘 았다는 말부터, 라인도 교환했다는 말까지 갯수를 세어요. 그러니까 총 일곱개입니다.
“많이 칭찬해줬어요.”
생색내는 것처럼 말하는 것만 같지만 그럴 의도는 없었어요. 정말로 많이 칭찬한 거라고 알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쉬운 난이도와 맵도 고를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들립니다. 그마저도 이노리의 눈에는 아주 신기하고 멋있는 것뿐이라서, 자꾸만 화면에 눈이 가게 됩니다. 친구와 대화할 때는 친구를 보랬는데!
"으응, 그렇구나. 그러면 점차 좋아하게 될 기회가 많다는 거네요? 멋지다!"
이노리는 그런 존재였으니까요. 아직 좋아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있다는 상태로 보곤 했습니다. 음식도 먹어보고 언젠가 또 마음에 들지도 모르니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답하고, 취향이 아닌 드라마도, 그리고 인간도. 음, 인간은 좋아한다고 할까요?
"응!"
화면이 점차 어두워지고, 조잡한 3D로 만들어진 간단한 프롤로그가 시작됩니다. 두근두근, 기대에 부풀었지만.. 원래 이런 게임은 갑자기 무언가 쾅! 하고 튀어나오며 총으로 쏘는 것부터가 진짜였지요. 이노리는 그걸 몰랐던 모양인지, 조잡한 괴생명체가 화면의 시점으로 달려들자 화들짝, 파다닥. 몸을 떨며 총구를 움직입니다. 앗, 더듬이.. 움직이는 게 아닌 줄 알았는데, 움직이던 거였나요..? 안테나처럼 쫑긋 서버렸군요.
"좋은생각인지는 개별의 판단." "그렇지..." 사실 사야카주가 이전에 올렸던 레스를 기억을 잘 못해서(...) 그런거지만.
"호기심이란 게 존재하는 것들은 나를 파헤칠 만하니까." 나를 사랑하고 동시에 파헤치고 싶어하는 이들을 생각하면서 중얼거립니다. 빌리겠다는 것은 언제든 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잃어버리는 게 귀찮으니까 나중에 복제본도 만들 거니까(이럴 때 쓰는 신의 힘!) 그리고 편하게 쉬어라는 안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듯 몸을 움찔거립니다.
"눈... 감을거야.." 진짜 잠들기에는 쉬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못하겠지만, 잠깐 눈을 감아서 눈을 쉬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웅얼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