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그는 요 며칠간 꽤나 모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기획자의 의도에 잘 따라 준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학교에 갇혀 (비교적)얌전하게 지내다 넘치는 활동성을 정식으로 풀어낼 기회가 생겼으니, 모처럼 여기저기 죄다 찌르고 기웃거리며 아주 잘 놀았다. 보통의 남고생이나 동물이었다면 며칠 간 누적된 활동량으로 인해 어느 정도 체력이 빠져 쉬고자 했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일반적인 생물에 해당하지 않는 종이라서. 오히려 더 쌩쌩해져서는 더 할 만한 것 없는지 들쑤시고 싶은 마음 더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저녁에는 이런저런 시설들도 닫혀서 갈 만한 곳이 없다. 리조트나 그 주변 시설은 몇 번인가 가 보았기에 오늘도 거기서 놀기는 좀 지루하고. 할 만한 것 없나 싶어 혼자서 밖에 나와 이 동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그는 마침내 웬만해서는 들어갈 이유도 없을 동굴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쿄스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선객이 여기 있었던 사연이다.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인영은 어째서인지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굴 속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던 것 같다. 생긴 모습이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않았더라면 전형적인 호러 매체의 괴물에 어울리는 등장이었다. 아, 어둠 속에 서 있다 불 켜지자마자 갑자기 달려들기 시작했다는 점도 제법 호러 크리처 같기도 하다. 눈앞까지 순식간에 닥쳐온 누군가는 휙 손을 뻗어 쿄스케의 어깨를 붙잡으려는가 싶더니…….
"에헤이, 조심해야지. 이런 데서 넘어지면 큰일난다?"
제법 친절한 행동을 한다……? 깜짝 놀란 쿄스케가 넘어지거나 펄쩍 뛰지 않도록 어깨를 붙잡고 토닥거리려 한다. 놀래킨 주제에 본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아무튼.
“무슨······ 선배가 부르면 외국에 있다가도 한달음에 달려갈 건데. 아니면 저 그냥 계속 일본에 있을까요?”
우호적인 눈빛을 잔뜩 담아 반짝반짝 바라보는 게 순 농담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여러 가지 문제들만 해결한다면야 고국에서 사는 것도 썩 나쁜 선택만은 아닐 테다.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앗, 근데 여우 때문에 안 되겠네. 단념! 굳은 표정으로 음료를 입에 가져다 물자 붉은 액체가 빨대를 타고 한없이 빨려들어간다······ 폐활량이 한계까지 다다를 때까지······ 숨찬 얼굴로 푸하! 하고 풍선처럼 호흡을 가득 채운 미야나기는 문득 “마츠리이?” 하고 되물으며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모든 기분이 표정에서 즉각 드러나는 게 참 알기 쉬웠다.
“정말요? 우와, 저 그거 강에 등불 띄우는 거 진짜 해보고 싶었는데. 완전 갈래요!”
물론 그 다음 주가 콩쿨이긴 한데 으레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원래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라고 이미 속으로 정신 승리까지 마친 후였다. 지난 마츠리 때 본의 아니게 제대로 된 대접도 못 했으니 이번에 만회하는 것도 좋겠다!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신경쓰지 않기로 합니다. 제가 계속 신경쓰여하면 선배님도 부담스러울 거에요.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신경쓰지 않기 위해서 신경을 써야하는 거라고요. 꼬이고 꼬이고 꼬여버립니다. 선배님의 신사는 분명 키즈나히메님을 모시는 신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제 가족들이 부탁을 했을, 누군지 모를 신님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키즈나히메님의 가족분들일거예요. 설마 키즈나히메님한테까지 찾아가서 부탁을 했을 거라는 상상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수학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꼭 물어봐야겠습니다. 도대체 누가 한 부탁이느냐고요. 심부름시켜도 안 들어줄 거고, 연락은 무조건 단답으로 할거에요!
“앗착.”
선배님이 두 손에 물을 받는 모습은 보았어요. 뿌리려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보처럼 멀뚱히 있어버렸어요. 그렇지만 선배님이 갑자기 제게 물을 뿌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멍하니 있다가 당해버린 겁니다. 그래도 오른쪽 눈에는 렌즈를 끼고 있으니 황급히 고개를 돌리기도 했고, 뒤늦게라도 손을 올려 막아보려고 했으니 바닷물로 세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반사적으로 차가운 물에 닿아버리면 놀란 소리를 내버려서 입을 막아야했어요. 소리도 잘 삼켜내고 얼굴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면 선배님을 바라봅니다. 왜 갑자기 물세례를 맞았는지 의문이라서 가만 쳐다보게 돼요. 괜찮다거나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사실 예의상 한 말이었고 본심은 그게 아니었던 걸까요? 말도 모나게 하고 제대로 감사 인사도, 사과도 하지 않는 후배가 괘씸해서 그런 걸까요?
“...필요없어요. 사과도, 등불도요.”
놀래켜서 미안하다는 사과는 정말 들을 이유 없는 사과이고, 등불은 더욱 그렇습니다! 선배님이 띄울 등불까지 뺏어버리면 안 돼요. 선배님의 등불은 선배님이 띄워야합니다. 애초에 마츠리에 같이 갈 친구라니 잘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재밌고, 착하고 마츠리에서 같이 놀기에 좋은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굳이 절 데려갈 이유는 없고, 제가 누군가에게 염치도 없이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아요. 이런 이야기까지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절대 안 된다는 뜻을 담아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네? ........................싫은 거 아닙니다.”
사람이 얼마나 상냥하고 친절해야 제가 까칠하게 구는 것을 알고도 친구하자는 말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좋다던가 싫다던가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물론 저라는 사람보다는, 같은 처지라는 공통점 덕분이니까 괜히 들뜨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저도 신이었다던가, 가족들이 인간이었다던가 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도 역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은 기쁜 말이고, 선배님에게 답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겨우 얼굴이 식은 것 같은데 부끄러워서 그랬다는 말은 할 수 없어요.
"...사과는 그렇다고 쳐도 등불도 필요없는거야?! 토모시비 마츠리 참여 안 하는 거야? 아니. 물론 참여 안하는 것은 자유긴 한데... 아니. 하지만 찾아온다면 꼭 이야기해줘. 우리 부모님과 만나면 무슨 이야기 나올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내가 그런 일 없도록 살짝 등불을 줄테니까. 어차피 나도 신사 사람이라서 등불을 나눠주는 일을 해야하거든. 그러다가 적당히 타이밍보고 중간에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일이니까! 하하."
조금 뜻밖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이상할 것은 아니었다. 그야 마츠리를 참여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였으니까. 그렇다면 눈앞의 이 후배는 안 온다고 봐도 좋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렇게 말을 해두면 마음이 바뀌어서 참여를 할 때 자신이 살짝 등불을 줘서 괜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안 나오도록 할 수 있을테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의 누나에게는 절대로 걸리지 않게 해주겠다고 치아키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어디까지나 이 후배가 그 날 참여를 할 때의 이야기지만.
"...그럼 지금까지의 말은 그러니까... 사춘기 뭐 그런 거야? 후배 양과 대화하면서 한번도 호의적인 말을 들은 기억이 없는데."
뜻밖의 말이 나오자 치아키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잘못 생각을 했나 싶어서 두 손으로 물을 뜬 후에 자신의 얼굴에 약하게 뿌렸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이어지는 말에는 더더욱.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서 비밀을 알려주지 않겠다는 그 말에는 절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내가 후배 양의 비밀을 알아서 뭐하겠어. 그냥 내 비밀을 말한 것 뿐이야. 그러니까... 너하고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는 거 말이야. ...아니아니. 비밀이 있다면 궁금하긴 하지만 딱히 꼭 알아야겠다 그런 것은 아니고 말이지. 필요없어. 그런 거."
적어도 자신은 그녀의 비밀을 캘 생각이 없다는 듯,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어 치아키는 다시 물살을 가르면서 근처에 있는 바위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어 고개를 살짝 내려 제 발을 담근 맑은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두 발을 천천히 앞뒤로 흔들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덧붙여서 마음대로 하세요...보다는 후배 양이 어쩌고 싶은지 듣고 싶은걸. 나는. 안될까?"
...잘못 이해했어요! 선배님 몫의 등불을 준다는게 아니라, 등불을 받아간다면 그때 선배님이 등불을 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티내면 안 됩니다. 놀라면 안 돼요. 바보같이 말도 제대로 이해치 못 하고 싫다는 말이나 해버리고 한심해서 다시 숨고 싶어집니다. 모래사장 아래로 숨지도, 바닷속으로 숨지도 못 하니까 숨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마츠리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으니까요, 필요없다는 말이 크게 틀리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등불을 같이 띄우고서 기도를 하면, 등불을 같이 띄운 사람들의 인연이 깊어진다는 말이 있으니 더욱이요.
“꼭 하란 법 없잖아요.”
아마 마츠리에 가게 되어도 등불을 띄울 생각은 영영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때 선배님을 마주하게 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선배님은 그저 저를 배려해서 선배님의 가족들 중 신인 분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건넨 친절이었는데, 제가 바보인 탓에 이렇게 돼 버렸어요. 책을 많이 읽어야겠어요......
“마츠리에서는 수상한 사람같이 구셨잖아요. 화단에서는 이놈한다고 하셨고요. 호의적인 말 들을 일은 없었니까 당연합니다.”
호의적인 말 들을 일은 많아요! 많습니다. 수상한 사람같이 구셨단들 그저 같은 학교 학생이 반가워서 인사하려고 했던 것 뿐이고, 이놈한다고 하신 것도 제가 많이 놀라버려서 그렇지 단순히 웃어넘길 수 있는 장난이었어요. 사춘기라는 말에 괜히 선배님 탓을 해버립니다. 선배님이 아까 하셨던 친하게 지내고 싶었단 말이나, 비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같은 말을 전부 취소하더라도 제 잘못입니다.
“저도 선배님 비밀 필요없거든요?”
이런 유치한 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비밀 이야기를 한 건, 선배님이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을 해준 것에 괜히 들떠버리니까 스스로 찬물을 쏟은 겁니다. 저와 친해지고 싶을 리가 없다고, 처지가 같아서일 뿐이라고, 비밀 이야기를 캐내려고 그러는 것 뿐이라고 멋대로 곡해하고 멋대로 모난 말을 한 거에요. 곡해한 것 뿐이니까 선배님이 제게 그럴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 비밀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단 건 저도 잘 압니다.
“......상관없단 뜻이잖아요.”
바보냐는 말을 하지 않도록 힘냈습니다. 바보라는 말을 많이 해버리면 안 돼요. 상대방이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요, 또 그런 일을 만들지 않도록 힘낸 거예요. 아니, 앞으로도 힘내야합니다. 저도 친구라고 해준다면 좋은 친구는 못될망정 나쁜 친구는 되면 안 되니까 힘내도록 합니다. ......갈 길이 먼 것 같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