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관심이라. 뭔진 몰라도 일이 있긴 있었구나? 하핫. 오케이. 오케이. 굳이 묻진 않을게."
갑자기 신에게 관심이 생긴 이유는 치아키도 추측할 수 없었다. 신을 본 것인지, 아니면 갑자기 종교에 관심이 생긴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인지. 가급적 세번째는 아니길 바라면서 치아키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것은 굳이 캐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치아키는 호기심을 잠시 가라앉히려고 했다. 혹시나 신에 대해서 들은 것이 생겼거나 신을 만났다고 한다면 잘못 말하게 될 경우엔 그녀가 천벌을 받을 수도 있었으니까. 일단 미카는 자신이 신의 손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치아키는 핸드폰을 꺼낸 후에 자신이 직접 만든 '키즈나히메' 모양의 인형이 담겨있는 사진을 보여줬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키즈나히메를 본따서 만든 인형이었다. 물론 키즈나히메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이들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치아키는 이어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기했다.
"혹시 모르지? 가미즈나 마을을 지켜준다고 하는 키즈나히메님은 이렇게 생겼을지도?"
장난스럽게 쿡쿡 웃으면서 치아키는 괜히 어깨를 으쓱한 후에 잠시 말을 고민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들어 에어컨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그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신이 진짜로 있어도... 의외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지도 몰라. 그야 뭐 우리나라에 신이 그렇게 많으니까 신들이 살아가는 사회라던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우리와 은근히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면 신자를 얻겠다고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뭔가 로망이 없잖아! 그러니까 패스. 패스."
빨리 넘겨버리겠다는 듯이 치아키는 오른손으로 휙휙 넘기는 시늉을 하면서 꺄르륵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미카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확실한 것은... 이 나라에 다양한 신들이 있는 만큼, 신들도 분명히 다 다를거야. 혹시 알아? 키즈나히메님은 인연의 신이니까 의외로 순정만화를 정말로 좋아할지. 하핫."
음~ 확신의 오레남이지! 젊은 소년~청년!이라는 이미지도 있고 예의랑 격식 측면에서도 이게 맞는 것 같아~ 실제로 아무한테나 반말쓰고 다녀서 예의 없는 편이기도 하니까~ 일코 off했을 때는 와시+할아버지 말투야. 점잖고 위엄있기 보다는 진짜로 그...우리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랄지...(?)
후루토는 제 손 안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떤 말을 골라야 적절할지 생각하는 것처럼. 얼마되지 않아 그녀는 금방 이렇게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그것들은 맛이 좋았습니다. 다른 신들이 어째서 필멸자들에게서 '공물'을 취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렇구나. 결국은 맛이구나. 신이라는 존재치고서는 상당히 원초적인 지적이었다. 하기사 신의 입장에선 인간이 만든 술과 음식이란, 자신네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공물인지도 모른다. 음식이라는 것의 의미 중 하나는, 시간과 노력의 결정체이니까. 다만 이 신은 이제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아서는 여태껏 그럴 기회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어떤 이유가 있어 받지 않았던 건지... 했던 것 같지만. 그리고 문득, 후루토의 시선은 당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빤히. 당신이 무안해 할 정도로 빤하게 얼굴을 바라봤다... 그렇게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그녀가 늘 그랬듯 단지 표정과 눈빛으로 의도를 읽기는 어려워보였다.
"필멸자여... 당신은 지금이 즐거운 겁니까?"
그러던 와중에 그녀는 입을 열어. 당신에게는, 당신이 방금 말한 것을 되묻는 것 같은 물음을 건네어왔다.
시선을 피하고 싶어집니다. 선배님은 분명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시선이 맞춰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부끄러워서 보고 있기가 어려워요. 정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게 싫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바로 부끄럽냐고 물어보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제가 찍은 사진을 보는게 싫다고 하지는 않지만요, 잘 찍었다거나 남들 보여주기 부끄럽지 않은 사진이 아니니까 보여줄 수 없을 뿐입니다. 속으로만 부끄럽다고 하고 선배님한테는 절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놀란 적 없거든요?”
다시 돌려받은 휴대폰 화면에는 선배님의 라인 아이디가 추가된 화면이 떠 있습니다. 사진을 보내줘야 하니까 바쁜 척, 집중해야하는 척 하면서 휴대폰에 시선을 꽂아요. 그때 많이 놀랐지만, 그건 선배님 탓도 있으니까요. 솔직히 온전히 제 탓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조금은 선배님 탓도 있어요. 일부러 목소리를 바꾸신 것도 있고, 조용히 발소리를 감추고서 다가와 말을 거셨으니까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쪼록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여요. 친구 목록에 뜨는 선배님을 누르고, 사진을 보내려다가 잠시 멈춰요. 보정을 해서 보내는게 더 예쁠 것 같아요. 푸른 하늘과 바다의 색감이 좀 더 도드라지게 보정하는 거에요. 간단한 보정은 휴대폰 기본 사진 어플에서도 가능하니까 정말로 집중하게 됩니다.
“선배님은, 신이 있다고 생각해요?”
신사의 아들이라고 신의 존재를 믿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불경되다고 혼날 지도 모르겠지만, 신을 믿는 사람보다는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요. 신을 믿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면 제가 열심히 렌즈를 낄 이유가 조금은 작아졌을 겁니다. 그리고 사진 보정도 어느 정도 마음에 들게 된 것 같습니다. 원본보다 좀 더 파랗고 여름같은 색감이에요. 그렇지만 혹시 모르니까 원본도 같이 라인으로 보냅니다.
“사진 보냈습니다.”
선배님을 바라보면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질문이 하나 들려옵니다. 신을 싫어하냐는 질문이에요. 제게 신은 초월적인 존재, 경이로운 무언가보다는 제 가족이고, 가족이 아니더라도 가족같은 가까운 사이에요. 싫어할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에요. 다른 신들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은 부끄러우니까 말 할 수는 절대 없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그때 주저앉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말을 굳이 해봐야 좋을 것은 없었기에 치아키는 간질간질한 입을 겨우 막으면서 웃음을 애써 참았다. 이어 뭘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지는 하네의 모습을 바라보며 치아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사진을 추가해서 메시지 하나만 보내면 될텐데. 혹은 사진만 보낼 수도 있고. 라인을 못 다루진 않는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치아키는 일단 가만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편 들려오는 물음에 치아키는 딱히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녀의 입장에선 자신이 신에게서 태어난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은 알고 있었기에 행할 수 있는 망설임이 조금도 없는 행동이었다. 이어 고개를 끄덕이며 치아키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괴면서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만 이대로 계속 유지하는 것도 조금 불공평하려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치아키는 이내 결심을 끝냈다. 이 정도면 괜찮겠거니 생각을 하며.
"생각해. 누구보다 강하게."
그 목소리는 장난 어린 목소리가 아니라 꽤나 진지한 목소리였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확신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 단순히 신사의 아들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며 방금 막 보냈다고 하네가 말한 사진을 치아키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낸 후에 확인했다. 사진은 총 두 장이었다. 원본으로 보이는 것 하나. 그리고 푸른 보정을 넣은 것 같은 사진 하나. 둘 장 다 마음에 들었기에 치아키는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핸드폰에 저장했고 이내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 쪽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나름 앉아있는 위치를 잘 조절한 후에 치아키는 또 다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확실히 굳이 생각할 사안은 아니긴 하지. 하지만... 역시 이대로는 조금 불공평한 것 같으니까 후배 양에게는 내 비밀 하나를 말해줄게."
이어 오른손 검지를 들어올리며 치아키는 숫자 1을 표시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내리고 팔짱을 낀 후에 그는 가볍게 두 발을 움직이며 물장구를 치면서 물을 앞으로 튀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나는 너하고 같은 부류의 사람이야. 그러니까 솔직히 방금 물음은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어떻게 답할까 싶어서 궁금해서 물어본거야. 딱히 답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 하핫. 원래대로라면 이런 것은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것 같지만 일단 먼저 접촉한 것은 저쪽이니까. 그것도 우리 부모님을 통해서 말이지. 그러니까 너무 캐려고 하지만 않는 이 정도면 세이프. 이전에 살짝 확인한거기도 하고. 아. 참고로 이거 농담이 아니라 진짜야."
그러니까 다른 이들에겐 쉿. 소리를 내면서 치아키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다시 물장구를 쳤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뭘 해주거나 챙겨주거나 한 적은 없지만 말이야. 네잎클로버도 포함해서 말이지. 그런 것을 해봐야 서로서로 껄그러워질 뿐이고 부담이 될 뿐이고. 아무튼 나만 아는 것은 슬슬 불공평한 것 같으니 내 비밀 하나만 공개하는 느낌으로 서프라이즈! 려나. 알아달라는 것은 아니고 그냥 불공평한 것을 남기긴 애매해서. 단지 그 뿐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진 말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떤 말이 더 적절한지에 대해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좀 더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확실히 전례가 있다보니 금방 납득할 수 있었을까? 상당히 원초적인 본능이라 할수 있으나 애당초 신들 역시 하나의 객체, 자신에겐 없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대가, 시기가 지나도 여전히 여러 방법으로 신들은 '공물'을 원하겠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또 무언가가 있는지, 그녀가 별안간 엄청난 집중력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지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하는 마음에도 마주보기 시작했다. 표정이라던지 그런걸로는 그 내막이 뭔지 맞추기 힘들었지만... 애초에 억지로 맞출 생각도 없었다. 대강은 보이는 걸지, 아니면 맞춰보기도 전에 상대방이 직접 설명해주는 덕분인지...
"음... 마치 '당신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습니까?' 같은 질문이네요?"
별안간 불어오는듯한 차가운 기류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스스로 즐기고 있다 말했듯, 미소도 무표정도 진중함도 오롯이 담겨있었다.
"질문의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는 것도 나쁜 버릇이지만... 반대로 마주하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인지요?"
목소리는 꽤나 진지하게 깔려있었지만 역설적으로 표정만큼은 평소보다도 온화했다.
"죽음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하지요. 무에서 와 무로 돌아가는 건 인간에겐 꽤나 엄숙하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당신과 가까이 있는게 즐겁지 않을 이유도 없는걸요? 사람은 늘 죽음이 조심스레 뒤를 쫒아온답니다. 하지만 그사람이 세상을 떠나는건 정해진 운명, 딱히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고 명이 단축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키득거렸을까, 푸스스 흩어지는 그 웃음은 상대를 비웃는 것이 아닌 도리어 안도감을 주려는 웃음이었다.
"무엇보다... 그렇다고 혼자 내버려두고 멀리하면 너무 가엽잖아요? 아무리 죽음을 인정하는 5단계에 부정이 있대도, 그렇다고 죽음을 터부시하는건 예의가 아니죠."
...상대방이 그 '죽음'이라면 적잖이 실례가 되는 말일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것이 또 자신만의 성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