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트 내에 있는 매점에서 정말 이것저것 맛있는 간식거리를 산 치아키는 한 손에 간식이 가득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푸딩, 사탕, 초콜릿, 감자칩, 그 외에 빵이라던가. 아무튼 오늘 저녁에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확실하게 구입했으니 이제 한동안은 간식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대로 바로 방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잠시 주변을 둘러볼까 생각을 하던 치아키는 잠시 주변을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들어온 것이 다름 아닌 라운지였다. 딱히 목적을 가지고 발을 들인 것은 아니었으나 발 닿는 곳으로 왔다갔다하다보니 들린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뭐 재밌는 거 없을까. 하면서 두리번거리는 와중 소파에 앉아있는 미카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뭐지? 자고 있나?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바로 눈에 보였기에 치아키는 바로 말을 걸진 못하고 빤히 미카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곳에 두는 것보다는 역시 방에 가서 자게 하는 것이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미소를 지으면서 미카에게 다가갔다.
"방의 침대가 아니라 소파에 앉아서 자고 있는 거기의 후배 군. 잘 거면 방에 들어가서 푹신한 침대에 눕는 것이 어떨까? 하핫. 여기서 자려고 하면 시끄러워서 잠도 못 잘 것 같은데. 나라던가. 나라던가! 나라던가!!"
이른바 삼단 강조를 사용하면서 치아키는 두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키득키득 웃으면서 이내 그는 미카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세 번째로 만나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학생회 권유 이야기는 해보겠다고 했지? 삼고초려로 말이야. 그래서 생각 있어? 물론 없어도 땡큐!"
/당연하지만 그냥 장난으로 권하는 거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리고 쥰주는 어서 오시고 안녕히 가세요!
"아. 자는 거 아니었어? 그렇다면 깊은 고뇌에 빠져있었나? 그렇다면 미안. 미안. 난 또 자는 줄 알았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치아키는 그래도 미안하다는 듯이 괜히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자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으니 적어도 자신의 책임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입에 담진 않았다. 입에 담을 이유가 없었기에. 아무튼 자신의 제안에 세 번째 거절을 하는 미카의 말에 치아키는 알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냐. 아냐. 아냐. 괜찮아. 괜찮아. 애초에 나도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이것도 어디까지나 저번에 말했던 삼고초려처럼 한 것 뿐이니까. 그러니까 죄송해하기 없기. 사실 지금 시점에서는 크게 임원이 필요한 것은 또 아니거든."
이미 여름이 되었고 머지 않아 여름방학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굳이 학생회가 더 필요하거나 한 일은 없었다. 사실상 봄 시즌때 정말로 바쁜거지. 여름에는 크게 바쁜 것은 없었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가을에 있을 학교 축제가 아무래도 조금 바쁘지 않을까. 그러나 그건 그때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후배 군.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 학생회장님이 지금은 프리하니까 고민이 있다면 들어줄 수는 있는데 말이야."
고민거리가 있거나 한다면 자신에게 얼마든지 말해보라고 이야기를 하며 치아키는 이내 다시 한 번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제 손에 있는 비닐봉지를 바라보더니 그는 미카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후배 군. 푸딩 좋아해? 간식거리를 샀는데 바나나 푸딩 정도라면 내가 하나 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살아온 세월이 길었던 만큼 지금껏 사랑이며 낭만과 같은 이야기를 여럿 접해보았다지만 그중 하나라도 와닿았다면 이런 답 모를 한담을 하고 있지는 않았으리라. 갖은 기법과 표현으로 정제한 사랑의 찬미는 분명 그에게도 막연한 감명을 선사할 수는 있었으나, 그렇기에 언제까지고 동떨어진 개념처럼 요원하게만 보일 뿐이다. 서로 약속이나 한듯 일말도 기대하지 않고 있는 이 둘의 일이 앞으로는 어떻게 풀릴지 모르겠다. 지금까지처럼 모르는 채 살더라도 나쁠 것 없고 누군가는 알게 되는 때가 온다면… 아, 이렇게 되니 번뜩 실없는 생각 하나 스친다.
"그럼 내기라도 할까? 먼저 아는 쪽이 지는 거 어때? 이겨서 얻는 건…… 뭐, 꼭 대가가 있어야 내기 성립되는 건 아니니까 일단 없는 걸로 치고."
별것 아닌 딱밤 때리기 가위바위보에도 환장하는 그가 이런 생각 놓칠 리 없지. 눈 반짝거리는 눈치 보아하니 수락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저 혼자 성립됐다 칠 게 뻔했다. 그러고선 그는 뒤쪽에 자리잡은 나무기둥을 지지대 삼아 늘어지게 기댔다. 거칠하고 단단한 나무껍질이 거슬릴 법도 하지만 뭐, 이미 풀밭에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했는데 그런 걸 신경이나 쓰겠나. 미유키가 떠날 준비를 하는 것과는 반대였다. 착한 학생은 못 된다고 말하지만 어디로 보나 제법 착실해 보이는데 말이다. 낮에 조는 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니 어쩔 수 없는 거기도 하고. 떠나려는 미유키에게 살래살래 느긋하게 손 흔들어 보이다 들려오는 물음에 참, 새삼스레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복잡하게 신명 인명 두 번 소개할 필요 있나. 그는 잠시 생각하다 간단하게 말하기로 했다.
그의 성향을 생각해봤을 때 이렇게 괜찮다는 식으로 거절할 것은 눈에 보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목소리 역시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톤이었다.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아니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애초에 자신보다는 좀 더 친한 친구가 있거나 한다면 그 애에게 털어놓거나 하는 일은 분명히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튼 바나나 푸딩에 관심을 보이는 미카의 모습에 치아키는 미소를 지으면서 비닐봉지 내부를 뒤적거리다가 편의점에서 파는 바나나 푸딩을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아래에는 작은 나무 스푼도 함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푸딩을 맨 손으로 먹을 수는 없으니까.
"자. 여기! 여기 간식거리가 얼마나 좋은지. 아주 편의점 안이 가득 찼다니까. 가미즈나에는 없던 것들도 있고 가미즈나에는 있지만 여기에는 없는 것들도 있고. 괜히 신기해서 구경한다고 시간을 또 보냈지 뭐야."
대수롭지 않은 잡담을 이어가면서 치아키는 적당히 그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내부에서 초콜릿 바를 꺼낸 후에 그 포장지를 까고 입에 물었다. 초콜릿 향과 특유의 단 맛이 혀에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치아키는 숨을 후우 내뱉었다.
"수학여행지인데 좀 가본 곳 있고 그래? 여기는 물이 유명하지만 물이 없어도 여기저기 돌아다닐 곳은 많을텐데 말이야."
"당연히 그래야지! 이런 리조트에서 파는 건데! 이런 곳에서 파는 것은 아무래도 질 좋은 그런 상품이 많지 않겠어?"
가격도 조금 있긴 했었지만 굳이 그 부분은 거론하지 않으며 치아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대신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초콜릿 바를 냠냠 먹은 후, 그는 손수건을 꺼내서 자신의 입가를 닦았다. 연하게 묻어나오는 갈색 초콜릿을 확인한 후, 치아키는 이내 손수건을 다시 접은 후에 자신의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었다.
"바닷가 산책? 확실히 여기 경치도 괜찮긴 하지.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스파 같은 곳도 가면 좋을텐데. 수영은 하지 않더라도 몸에 물을 담그면서 피로는 풀 수 있잖아."
자신도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수학여행이 끝나기 전에는 꼭 가고 말거라고 이야기를 하며 치아키는 살며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눈을 감았다. 이래서 눈을 감은거구나. 굉장히 바람이 시원하고 좋네. 그렇게 전혀 상관없는 일을 생각하던 그는 오른쪽 눈만 살며시 떠서 윙크하는 모습을 취하고서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면 다음엔 성스로운 샘이 있는 곳으로 가보는 건 어때? 그 샘이야말로 여기 아니면 절대로 못 보는데. 딱 지금 시기만 볼 수 있기도 하고. 내년에 샘 하나 보겠다고 여기에 오는 것은 조금 그렇잖아?"
기왕 이곳에 왔으니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면서 치아키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샘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이야기했다.
"사실 말이 좋아 샘이지. 그것은 호수야. 호수. 동굴 안에 있는 호수. 진짜 맑고 깊고 완전 넓다니까. 거기다가 물도 굉장히 시원하고 좋아. 정말."
여기에서까지 당신은 재미를 찾는 것일까. 당신의 눈치를 보고서 미유키는 말없이 웃는다. 영원히, 자신은 알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만큼은 분명하였고, 그의 제안은 저에게도 재미있는 것이었기에. 미유키는 경쾌한 목소리로 "좋아요." 하며 대답했을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금에서는 정하지 못한 대가로 당신에게 무엇을 받아야 할까, 고민하게 되는 것일까. 당신의 이름을 들은 미유키는 고개를 끄덕인다. 남궁 린, 당신의 인간으로써의 이름. 소리 내어 발음해보고선 당신의 물음에 눈웃음친다.
"미유키. 이토이가와 미유키에요."
하며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떼어내니, 따라 당신에게도 손 흔들고서 시야 밖으로 멀어져가는 것이다. - 끝내면 되겠네요. 돌려줘서 고마웠어요.
이건 또 의외의 물음이었다. 신이라는 것이 진짜로 있을까? 라는 물음. 그런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을 것 같았기에 꽤나 뜻밖의 물음이었다. 일단 그 물음은 혼잣말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자신에게 묻는 말인 것 같았기에 치아키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대놓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신일까. 아니면 그저 평범한 인간일까. 일단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에 그는 평범한 인간에게 할법한 말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건 전승이나 그런 것들도 꽤 퍼져있고 신을 모시는 사람들도 있고, 신을 믿는 이들도 있으니까. 물론 그 신이 우리가 아는 그 신과 완전히 동일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 정도면 무난하겠지. 딱히 이상하게 생각할 부분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스스로 말한 답이 꽤나 대견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뿌듯함을 마음 속으로 만끽했다. 그러다 괜히 헛기침 소리를 여러 번 내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후, 이어 손에 쥔 초콜릿 바를 마저 꿀꺽 삼켜버리고서 좀 더 편안하게 자리에 앉았다.
"무엇보다 후배 군이 신을 만약 믿는다고 한다면 실제로 있을거야. 하지만 믿지 않는다면 없는 것일테고. 그런데 의외네. 후배 군. 신이나 그런 전승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없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관심이 생길만한 일이라도 생겼어? 하핫. 그렇게 말을 덧붙이며 치아키는 살며시 미카의 눈치를 살폈다. 순수하게 갑자기 이런 것을 왜 묻는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기에.